188화
골렘의 팔에서 다시금 브레스가 쏟아졌다.
응축된 레이저 기파처럼 쏘아지는 브레스는 존재하는 모든 걸 태워버렸다.
아군의 탱크와 헬기도 예외가 아니었다.
― 모두 전력을 다해 피해!
타이탄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에 한연맹은 더 이상 전투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전력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는 고출력 대단위 방사형 마법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호신강기나 시우의 알머스트 따위를 통째로 녹여 버리는 브레스에 무인들은 알머스트 밖으로 땀이 흘러나올 정도로 다급하게 움직였다.
타이탄의 등과 다리에서 해치가 열리며 부스터가 불을 뿜었다.
불꽃과 함께 지상에서 튀어 오른 타이탄의 손에서 마나 소드가 솟아 나왔다.
타이탄은 나선형 비행으로 브레스를 피하며 골렘에게 다가갔다.
타이탄이 브레스를 휘감고 날 때마다 브레스가 얼음으로 얼어붙었다.
부악-! 하는 소리와 함께 타이탄의 마나 소드가 골렘의 팔을 파고들었다.
타이탄은 골렘의 팔에 검을 꽂은 채, 어깨까지 비행했다.
푸쉬-! 펑! 펑!
타이탄의 검이 지나간 곳으로 연신 폭발이 일어났다.
골렘이 반대 손으로 타이탄을 내려치자, 급하게 선회 비행하던 타이탄이 골렘의 팔에 맞고 수십 미터나 날아간 후에야 겨우 균형을 잡았다.
골렘이 팔을 감싸듯 안는 모습은 마치 아픈 팔을 부여잡는 모습과 같았다.
― 이 정도 마나 밀도라니……. 이런 걸 구현화할 만한 기술이 한국에 있었나?
허공에 비행하고 있는 타이탄이 거대한 몸집의 골렘과 눈을 마주치기 위해 마나 소드를 재생성하며 말했다.
― 기술은 본래 가지고 있었지, 자금이 부족해서 구현화하지 못 하고 있었을 뿐.
― 그렇겠지. 그 정도의 물건이 기술만 가지고 구현될 리 없으니, 한국의 국고라도 털었나?
― 쯧쯧, 눈치가 없는 건가? 아니면, 외면하고 싶은 건가?
― ……무슨 말이냐?
타이탄은 마치 웃긴 것을 본 어린아이라도 되는 것처럼 킥킥댔다.
― 이걸 만들어 준 건 바로 당신이잖아?
― 뭐?
― 각종 시설물 권한 이행부터, 접근 명령까지, 빌리언트한테 완전한 자유를 줬던데?
드드득, 드드득.
골렘은 이를 갈듯 턱을 덜덜거렸다. 그럴 때마다 골렘의 입에서 단단한 철조각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 말도 안 된다. 이미 주종계약을 몇 번이나 확인했을 텐데.
골렘의 고개가 캐시에게 향했다.
캐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 물론, 마나의 계약을 어기는 건 에고로서도 불가능한 일이지. 하지만,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에고가 계약을 피할 방법은 찾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잖아. 안 그래?
― 계약을 뛰어넘어, 너의 명령을 따랐다는 말인가? 인공지능에게 그게 가능한 것인가?
― 단순한 인공지능이 아니니까. 그걸로도 가능했다면, 당신이 빌리언트를 훔쳐 갈 일이 없었겠지.
― 인간을 해하지 않는, 아니 인간을 위하는 인공지능이란 말인가? 자신이 소멸할 위험을 각오하고?
― 많이 놀란 모양이네?
― 어떻게 만든 거지?
― 왜 만들었다 생각하지?
― 아… 그런 것인가? 영혼의 종속, 혹은 영혼의 조각…….
― 호오, 역시 수 세기를 살아온 괴물답군.
― 처음부터 계획한 것이었나?
― 그건 아니야, 하지만 당신이 뻘짓을 해준 덕분에 손 안 대고 코 좀 풀었지.
―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놀랍군. 영혼까지 손대는 건 이 세계의 마법이 아니야. 그런 일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는 것은 결국 다른 개념과 법칙을 가진 다른 세계의 존재라는 말이겠지. 넌 이(異) 세계의 사람인가?
― 난 토종 한국인이야.
― 그렇다면 이(異) 세계에 다녀온 거로군. 어떤 방식으로 다녀온 거지?
― 왜 이(異) 세계 관광이라도 다녀올 셈인가?
― 우리 세계에 위협이 될 만한 것은 남겨 놓을 생각이 없다. 캐시. 빌리언트에게 명령해 한국을 지도에서 지워버려라.
골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캐시가 51area 안으로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한연맹의 무인들이 골렘의 말을 듣고 캐시를 막아서려 했다.
“저 여자를 막아!”
51area의 병사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은 우르르 몰려 오직 캐시가 51area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 아직도 빌리언트를 믿는 건가?
― 생각해 보았지, 만약 빌리언트가 그대의 말을 완벽하게 따르는 존재라면, 애초에 자네를 방해할 필요가 있었을까? 접근 권한도 내 허락 없이 뚫을 수 있는 존재였을 텐데? 거기다 아직까지 이 일대는 공간이동이 불가능하도록 봉인되어 있지. 그것은 결국 영혼의 종속이든 영혼의 조각이든 절대적이지 않다는 증거.
― 한국을 구하려면 빠르게 승부를 봐야겠군.
― 그대에게 당하긴 했지만, 나를 우습게 봐선 곤란하지.
골렘이 안고 있던 팔을 내렸다. 시우가 냈던 상처는 이미 모두 수복된 뒤였다. 믿기 어렵지만, 저 거대한 골렘은 자가수복능력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신의 검][브류나크]
이카루스의 날개에서 해치가 열리며, 거대한 검이 자유 낙하했다.
별다른 추진체 없이 검 자체의 무게와 중력을 이용해 지상에 내리꽂힌 검에 의해 일대는 다시 한번 모래의 쓰나미를 겪어야 했다.
“모두 피하세요! 더 이상 전투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한세아가 한연맹의 무인들을 지휘하여 전투 범위 밖으로 사람들을 내보냈다.
“미화문은 진을 형성하여 맹주님을 돕습니다!”
한세아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오행진이 오행륜을 뿜어 골렘을 공격하였다.
찬란하게 빛나는 오행륜이 골렘의 무릎에 직격했다. 하지만 골렘에는 아무런 타격도 없는 듯했다.
시우의 타이탄은 더욱 거대한 마나 소드를 뽑아내어 골렘의 브류나크와 대응하고 있었다.
― 세계의 온갖 신화는 다 가져다 쓰는군. 근본이 없어서 그런가?
― 그 입이 언제까지 나불거릴 수 있는지 보겠다.
브류나크의 검신에서 뜨거운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골렘은 그 육중한 크기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둘렀고, 그때마다 브류나크의 검신에서 쏟아져 내린 불길이 사방에 번졌다.
브류나크에서 옮겨붙은 불은 인화 물질이 없어도 타올랐기에 사막 일대는 점점 더 거세지는 불길에 휩싸였다.
쾅! 쾅! 쾅!
타이탄이 자신의 몸보다 훨씬 더 큰 마나 소드로 브류나트와 맞섰다.
지축을 흔들고, 하늘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타이탄의 외피도 점점 검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 고생해서 만든 물건 치곤 신통치 않구나.
― 당신이 이 물건의 진가를 몰라서 그래.
브류나크의 검역에서 떨어져 나온 타이탄의 손에서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시우가 마법을 부리는 방식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생성된 마법진들이 타이탄에게 흡수되었다.
마법진이 흡수되자마자 타이탄의 행동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부악-!
더 강력한 출력을 갖게 된 타이탄은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의 빠르기로 골렘의 몸 구석구석에 마나 소드를 찔러 넣기 시작했다.
골렘은 빠르게 나는 새를 쫓는 인간의 모습처럼 허둥지둥 고개를 돌리기 바빴다.
― 이따위 잡기로 골렘을 어찌할 수 있다 생각한 것이냐!
큰 소리를 내며 골렘은 브류나크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브류나크를 중심으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퍼퍼퍼펑!
불꽃의 폭풍은 거대한 압력을 생성하여 일대의 모든 것을 사방으로 밀어냈다.
허공을 비행하던 타이탄도 그 압에 밀려 날아갔다.
공중에서 몸을 두 번 뒤집은 타이탄의 손에서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대(對) 마신 마법]
[종속의 끈]
공간을 찢고 튀어나온 검은 뿌리들이 골렘의 양팔을 묶기 시작했다.
아직도 골렘의 주위에 흩날리고 있는 뜨거운 불꽃이 검은 뿌리들을 태웠지만, 찢어진 공간 안에선 끊임없이 검은 뿌리들이 튀어나와 기어코 골렘의 팔을 양쪽으로 당기기 시작했다.
[대(對) 마신 마법]
[영원의 부패]
골렘의 머리 위에 생성된 거대한 마법진이 검붉은 빛 가루를 흩뿌렸다.
불티처럼 흩날리는 가루들이 골렘이 닿기 시작하자, 골렘의 모양이 기이하게 변질되기 시작했다.
콰득, 콰득.
무게를 버티지 못해 등 쪽의 갑옷이 일그러지거나 관절들이 어긋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대(對) 마신 마법]
[절대검(absolute sword)]
타이탄의 손안에서 마나 소드가 아닌 실제 검이 구현화되었다.
특정한 조건에서만 발동되는 절대검.
타이탄은 지체 없이 검을 내리쳤다.
타이탄의 오른팔 어깻죽지를 가로지른 절대검이 순식간에 산산조각 나 사라져버렸다.
― 끄어어어억!
부서진 것은 타이탄의 검이었건만, 비명은 골렘에게서 튀어 나왔다.
골렘의 어깨가 깨져 잘게 부서지더니 팔이 뚝 하고 떨어져 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쿠앙!
자욱한 모래 먼지를 풍긴 후, 브류나크의 검신에 붙어 있던 불꽃이 점점 잦아들었다.
이제는 골렘의 한참 위에 뜬 타이탄이 오만하게 골렘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 겨우 그 정도로 스스로를 세계 최강이라 자신한 것이었나?
― 꼴이 우습군. 겨우 애송이 하나한테 농락당하는 꼴이라니.
― 이 정도의 실력 차이에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건, 나이가 너무 많아서인가?
― 네가 강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는 법이지.
51area의 모든 해치가 오픈되기 시작했다.
활주로를 비롯한 기지의 해치뿐 아니라, 사막에 숨겨져 있던 모든 기관들이 모래를 해치며 지상으로 솟아 올라왔다.
쿵.
거대한 문이 열리고, 각종 병기와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이 중장갑을 착용한 병사와 장갑부대였다.
동시에 사막에 숨겨져 있던 기관들이 일제히 거대한 문을 열었다.
크르르르르.
크르르릉.
컁컁!
그림자 안에서 노란빛이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가진 존재들이 사막 밖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엄청난 속도로 한연맹의 맹도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지, 진법! 진을 갖춰!”
“크아아악!”
초록색의 피부에 커다란 발톱, 날카로운 이빨과 기괴한 생김새. 처음 보는 낯선 생명체는 무인들의 검격에도 상처 하나 없이 무인들을 목을 물어뜯었다.
“괴, 괴물!”
인간의 상식 안에 존재하지 않는 특이한 생명체에 무인들은 투지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더군다나 어지간한 검기 따위는 무시하는 데다 단단한 알머스트는 우습게 뚫고 들어오는 강력한 이빨에 두려움은 더욱 커졌다.
타이탄이 낮게 비행하며 마나 소드로 괴물들의 목을 쳤다.
순식간에 십여 기의 괴물들이 푸른 피를 뿜으며 자지러지게 비명을 질렀다.
키에에에엑!
끔찍한 음성이었다.
― 손대지 말아야 할 것에 손을 댔구나.
타이탄이 골렘을 바라보며 말했다.
― 이제야 왜 51area가 최강인지를 알겠느냐?
― 키메라인가?
― 그 개념에 대해선 공통적인가 보군.
― 키메라는 인간이 손대선 안 될 학문이다.
― 악마와도 손잡는 마법사가 있는 데, 인간이 하지 말아야 할 한계라도 있다는 것이냐?
― 경험상 말해주는 거야. 저것들, 너희 스스로도 제어가 되지 않았겠지?
― …….
― 키메라 임에도 기이할 정도로 비슷한 형태, 이토록 많은 수. 아마 번식을 감당하지 못하고, 가둬 놓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겠지.
― 그리고 이런 중요한 순간에 써먹는다.
― 그게 미국의 방식인가?
― 그게 최강의 방식이다.
― 졸렬하군.
― 크하하하, 결국 이 전쟁은 우리의 승리로 끝났지 않느냐?
― 뭐가 끝났다는 거지?
― 한국은 곧 지구상에서 지워질 것이다. 네놈과 함께 온 저 한연맹의 무인들은 키메라의 먹이로 뼛조각 하나 남기지 못한 채 이곳에서 죽어갈 것이다. 이 세계의 너 혼자 남는다면, 넌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지?
타이탄의 부스터에서 불이 뿜어졌다.
타이탄은 골렘을 한참 넘어설 정도로 높이 치솟아 올랐다.
― 난 혼자 남지 않아. 이제 고독이라면 질렸거든.
타이탄의 손짓에 워프 마법진 중심에 놓여 있던 드래곤 하트가 타이탄에게 날아들었다.
타이탄의 가슴 중앙에 위치한 투명한 캡이 열리고, 드래곤 하트가 타이탄의 가슴에 안착했다.
드래곤 하트는 환한 붉은 빛을 번쩍였다.
하늘 전체가 온통 핏물에 물든 기분이 들 정도로 환한 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