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출격 준비”
존의 작은 음성은 커맨드 센터에 자리한 대부분의 요원들의 귓속에 선명하게 들렸다.
커맨드 센터의 요원들은 신속하게 움직여 자신의 자리로 이동했다.
커맨드 센터는 가로세로 길이 20여 미터에 달하는 커다란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고, 그 안을 돌아다니는 요원들은 공간이 좁다고 느껴질 만큼 많았다.
“출격 준비합니다.”
“반중력 장치 가동.”
“주익 보조익 모두 양호.”
“태양 엔진 상태 양호.”
수없이 많은 훈련을 해 온 요원들의 태도와 목소리에는 결연함이 가득했다. 조금이라도 쉽게 생각하거나 늘어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우스갯소리로 1년에 한 번 출격하는 게 너무 많이 출격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51area의 최강이자 최후의 무력부대의 요원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해치가 열리며 사막의 뜨거운 빛들이 쏟아진다.
전후좌우 사방이 유리 재질로 만들어진 커맨드 센터로 환한 빛이 들어온다.
요원 하나가 계기판을 조작하여 유리 전체를 어두운 재질로 바꾸었다.
“이카루스의 날개. 출격 준비 완료했습니다.”
메인 조타수의 말에 요원들이 마른침을 삼킨다.
51area가 공격을 받을 때부터 자신들의 출격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없지만, 자신들의 출격이 정해진 이상 상대와 상대가 소속된 집단, 거기에 상대를 비호하는 나라마저도 이 세상에서 지워질 것이 분명했다.
커맨드 센터 중심에 놓인 자리에 기대앉아 한쪽 팔을 턱에 괸 존이 말했다.
“출격.”
“출격!”
메인 조타수의 말에 요원들의 손이 부산해진다.
동체 길이 200m. 세상에서 가장 큰 여객기 에어버스에 세 배에 달하는 크기를 자랑하는 이 거대한 기체는 이미 인간의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물건이었다.
당연히 그런 물건을 조작하는 요원들의 손이 쉬이 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커맨드 센터 전체가 붕 떠오르는 느낌과 함께 51area가 서서히 작아지기 시작했다.
“초음속비행 준비.”
존의 말에 메인 조타수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네?”
존은 아무말 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위기를 느낀 메인 조타수가 목이 찢어져라 소리쳤다.
“초음속비행준비!”
존의 이상한 분위기를 느낀 건지, 다른 요원들 또한 손이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초음속비행준비 완료.”
메인 조타수가 마하엔진을 가동 버튼을 눌렀다.
위이이이잉-!
예열도 안한 태양엔진이 굉음을 내뿜자 커맨드 센터까지 소리가 들렸다.
엔진의 여파가 어찌나 대단했던지, 커맨드 센터를 둘러 싼 유리 밖으로 네바다의 사막 모래들이 가득했다.
“초음속비행시동! 목적지까지 55분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눈 몇 번 깜빡이는 동안 이미 이 거대한 기체는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그래? 그럼 녀석을 만나기 전까지 배나 든든히 채워야겠군.”
존은 자리에서 일어나 터덜터덜 식당으로 향했다.
그제야 메인 조타수가 긴장을 풀며 깊은 한숨을 쉬었고, 요원들이 하나둘 다가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알고 있었습니까?”
마첼리노가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시우는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었던 건 아니야. 예측한 것들 중에 하나였던 거지.”
“……어떻게?”
“인질이 효과가 있으려면, 그 인질을 안전하게 보관할 곳이 필요하지. 하지만 루체 시국은 나에게서 안전하게 그 인질을 보호할 수 없잖아?”
“……그렇군요. 존도 그대와 똑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별로 기분은 안 좋네. 그런 양아치와 사고 방식이 비슷하다는 게.”
“존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나한테 그거 칭찬 아냐.”
“존은 이길 수 없습니다. 그와 대적하는 것보다 대화로써 해결하는 것이 더 이익일 겁니다.”
“방금 전까지 신념 때문에 목숨을 걸고서라도 나와 적대하겠다고 한 사람치고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군.”
마첼리노는 창피한지 고개를 돌렸다.
“제가 이야기한다면 잘 해결될 수도 있습니다. 애초에 루체 시국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저희가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성하 존하! 말도 안 됩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성하께서 해결하신다니요!”
천사들이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시우는 힘을 빼버린 천사들이 유치하게 느껴졌다.
“닥치고 있어.”
“읍! 읍! 읍!”
“으으읍!”
시우가 손을 휘두르자 천사들의 입술이 사라지고 살이 붙어 버린 듯 벌려지지 않았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이미 존의 의도대로 되지 않은 이상 난 그와 거래의 상대가 아니야. 이런 때에 어쭙잖은 대화 시도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기만 할 뿐이지.”
“그는…… 수 세기를 살아온 사람입니다. 하계의 신이자, 상계의 절대자인 그를 적대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누군 뭐 한 때. 신이 아니었는 줄 알아?”
시우의 말에 마첼리노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마력과 성력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환상과 현실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으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다. 과연 그를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인간이 아니라면 그는 신인가? 그런 의문이 마첼리노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이번 일을 벌인 루체 시국을 그냥 넘어갈 생각 따윈 없어. 대가를 받을 준비는 되었나?”
어찌 되었든 모든 일의 시발점은 바로 루체 시국이었다.
아무 일도 아닐 수 있었던 것을 크게 키워 시우와 한연맹에 피해를 주었다. 시우는 이 일을 그냥 넘어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떤 대가든 달게 받지요.”
천천히 마첼리노의 입이 열리고 천사들이 묶인 몸을 더욱 퍼덕거렸다. 그때마다 무인들이 천근추의 수법으로 지그시 천사들의 몸을 땅속으로 박아 넣었다.
시우의 손에서 순백색의 아름다운 마법진들이 쏟아져 나간다.
손톱만큼 작았던 마법진들은 이내 사람 머리만큼 크게 커져, 루체 시국의 인원들에게 하나씩 달라붙었다.
그리고 환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대들이 기도로 모은 성력엔 손을 대지 않았어. 그대들이 아집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도록 해.”
눈이 부실 만큼 환하게 빛나던 빛이 사그라들고, 천사들의 모습은 일반인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육중한 육체미를 자랑하던 성기사들도 갑자기 말라 홀쭉하게 변했고, 대주교 또한 중년의 나이를 넘어 노년의 모습으로 변한 상태였다.
“아아!”
“이럴 수가…….”
성기사와 천사들이 절규를 내질렀다. 그들의 몸속에 언제나 충만하던 성력은 온데간데없었다.
마첼리노만은 종전과 크게 다름이 없었다. 아주 약간의 세월의 풍파를 맞은 듯 피곤해 보일 뿐이었다.
“역시 성하는 성하인가?”
“미국을…… 존을 어떻게 상대하실 생각이십니까?”
“여러 가지로 생각해 둔 바가 있지. 크흐흐.”
시우는 곧장 떠나려는 듯 몸을 돌렸다.
한연맹의 무인들도 더 이상 성기사와 천사들을 제압하지 않고 천천히 시우를 따랐다.
“자, 잠깐.”
“……?”
“아까 말씀하신 그것 말입니다.”
“뭘 얘기하는 거지?”
“버림받았다는 그것 말입니다.”
“아아, 대신 기도라도 해 주려고?”
마첼리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뭐지?”
“전 그것 또한 아버지의 계획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대가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그 시간 또한 아버님께서 모두 보고 계셨을 겁니다.”
“…….”
시우가 정색했다.
“뜨거운 파이어볼 먹어 볼래?”
51area 근처는 모래만이 가득하다.
라스베가스의 영향으로 네바다의 곳곳이 개발 물결이 퍼졌지만, 미 국무부는 51area 근처에 인간의 접근하는 것을 일체 금지했다. 때문에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자들조차도 이 근처론 얼씬도 하지 못 했다.
덕분에 네바다의 거대한 모래사막은 여전히 전갈과 선인장들의 차지였다.
그런 모래만이 가득하던 사막이 갈라지며 도시 하나를 덮을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원반이 모습을 드러냈다.
sf 과학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거대 비행체의 모습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UFO의 모습과 똑같았다.
더구나 모습을 드러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지는 모습까지. 그 모습은 하계의 사람들이 봤다면 미국이 이제껏 외계인의 존재를 숨기고 있었다고 말하기에 충분하였다.
비행체가 사라진 후, 사막엔 모래 폭풍이라도 분 것처럼 모래가 사방으로 날렸다.
그리고 그 모래가 조금 잦아질 즈음.
사막의 한 공간이 들썩거렸다.
“텟 텟! 테테텟!”
커다란 천막을 들추고 나온 건 놀랍게도, 두 명의 여성이었다.
“세아 님. 괜찮으세요?”
머리에 잔뜩 묻은 모래 먼지를 턴 소빈이 입안에 들어간 모래를 털고 있는 세아를 걱정스레 봤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물 속성을 익힐 걸 그랬어요.”
세아는 가져온 물로 입안을 헹궜다. 하지만 여전히 모래 몇 개가 입안에 남아 있는지 찝찝함을 숨기지 못했다.
“근데 정말 대단하네요. 미국 상계의 힘은. 저 정도의 비행체라니.”
“그 로봇 같은 것도 있었잖아요.”
“하아. 어쩌다 우리 시우 님 같은 분을 모셔서.”
입으로는 불평을 내뱉었지만 세아의 입가엔 옅게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정말 시우 말대로 됐네요.”
마나 감지 시스템이 발동하고 있을 거라는 시우의 예상 때문에 두 사람은 포털을 이용해서 이곳에 올 수 없었다.
포털을 이용하긴 했다. 그 목적지가 사람이 발 디딜 수 없는 허공이라는 것이 문제점이긴 했지만.
두 사람은 운석으로 51area의 마법공학 레이더를 피해 이곳에 내려왔다.
그리고 시우의 명령대로 거대 병력이 움직일 때까지 모래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정말이지, 대단하단 소리밖에는 할 게 없네요.”
시우는 51area가 운석을 막아 낼 것까지 예상했다. 거기에 더불어 거대 병력이 움직일 것까지 예상한 걸 직접 목격하니 다음 주 로또 번호라도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돌아가서 꼭 로또 번호 물어봐요.”
세아의 농담에 소빈이 풋 웃었다.
“가지고 싶은 거 있으세요?”
“모래를 뒤집어쓴 기억을 지울 수 있을 정도로 비싼 명품이요!”
세아는 자신의 정령의 등에 올라탔다. 소빈은 신법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닫히기 시작하는 해치를 향해 전력으로 달려 나갔다.
“곧 오딘 함대와 조우합니다. 초음속비행을 중단합니다.”
초음속비행이 중단되자 비행 속도가 서서히 줄기 시작했다.
가늘게 그저 줄기로만 보이던 구름이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고, 형체로만 보이던 바다와 지상의 그림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속도가 줄자 요원들은 참았던 숨을 겨우 내뱉었다.
숱한 훈련을 반복해온 그들에게도 초음속비행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오딘 함대 발견…… 그런데…….”
메인 조타수가 말을 흐리자 요원들은 또다시 긴장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존은 냉정한 사람이다. 아니 냉정한 존재다.
그는 인간성이 드러나는 행동을 싫어한다. 언제나 신속 정확 기계적인 모습으로 활동하는 것을 무엇보다 선호한다.
그가 매년 수조 원의 돈을 인공지능 연구에 쏟아부은 것은 이런 그의 성향 때문이었다.
“뭐라고?”
심기를 건드린 메인 조타수의 말에 존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손에서 마나의 기운이 어렸다. 단숨에 그의 뇌를 갈아버리려는 그때.
유리 밖으로 매캐한 검은 연기를 내뿜는 오딘 함대의 모습이 그려졌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와 헬기들은 날개를 퍼덕이는 거대한 도마뱀과 대치 중이고, 운동장만큼 거대한 활주로에는 건물처럼 거대하고 기괴한 존재가 항공모함을 박살 내고 있었다.
“…….”
존은 메인 조타수의 뇌를 갈아버리는 대신, 곧장 해치를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일순간 대기압의 차이로 커맨드 센터의 모든 물건이 사방으로 날렸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메인 조타수가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전투 준비! 전투 준비!”
비상이 떨어진 커맨드 센터 전체에 붉은빛이 깜빡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