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다크위저드-176화 (176/200)

176화

빛이 사라진 뒤 시우는 티끌만큼의 상처도 없이 오연하게 나타났다.

애초에 시우는 자신이 다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시우에 대해서 잠시나마 걱정하던 이들도 다시금 자신들의 대적자와 전투를 이어 갔다.

미카엘은 꽤나 놀란 눈치였다.

“라구엘이 제대로 이야기 하지 않았나 보지?”

―쏘피오soffio(빛의 브레스)

미카엘의 창끝에선 다시금 빛이 폭사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시우는 오연히 서 있었다.

“내 시력에는 조금 안 좋을 수 있겠네.”

―말도 안 된다!

성력의 공격을 받는다는 것은 정화의 의식에 가까운 것이었다.

평범한 인간도 강력한 성력을 쬔다면 탈진해 버리고 만다.

평범한 인간도 그럴 진데, 악의 화신인 시우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그에게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성력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니.’

그건 마치 ‘성자’같지 않은가…… 라고 생각하던 미카엘은 자신의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지웠다.

말도 안 된다.

사람을 공마로 만들고 마기를 휘둘러 싸우는 자가 ‘성자’라니.

“이제 내 차례지?”

[소환]

[홀리 나이트]

바닥에서 흰색의 마법진이 새겨지더니 빛이 뿜어져 나왔다.

백마를 탄 금색 갑옷을 입은 기사가 축복이라도 받은 것처럼 지상에 나타났다.

“나도 처음 만들어 보는 거야. 근데 꽤 재미있더라고.”

히이이잉!

백마가 앞발을 들어 허공에 발길질하고는 미카엘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기사의 한쪽 팔에는 기다란 랜스가 쥐어져 있었다.

[차징 랜스]

빠르게 달리던 백마와 기사의 모습이 한순간 사라졌다.

기사는 미카엘의 눈앞에 나타나 기다란 랜스로 미카엘의 심장을 뚫으려 했다.

쾅!

랜스가 조각나며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어찌나 강한 충격이었는지, 미카엘의 황금빛 갑옷의 일부가 심하게 찌그러질 정도였다.

기사는 랜스를 버리고 장검을 뽑아 다시금 미카엘에게 달려들었다.

[차징]

다시 한번 모습이 사라졌던 기사는 미카엘의 눈앞에 나타나 그의 목을 단숨에 베어 버렸다.

창!

미카엘의 창과 기사의 장검이 연속으로 부딪치며 불꽃을 만들었다.

“역시 같은 상성이라 힘든가.”

[소환]

[데스 나이트]

시우의 발치에서 음울한 검은색의 마법진이 생성되고, 빛나는 갑옷을 걸친 해골 기사가 나타났다.

온몸에 발광 다이오드를 박아 넣은 듯 빛을 뿜어내는 데스 나이트는 곧장 미카엘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좀 전과 달리 마기를 노골적으로 뿜어대며 다가오는 데스 나이트를 보며 미카엘은 곧장 성력을 끌어올려 데스 나이트를 공격했다.

―쏘피오soffio(빛의 브레스)

확실하다. 이번엔 반드시 죽는다. 미카엘은 확신했다. 노골적인 마기, 시체에서나 느껴질 법한 음울함. 유럽 대륙에 남아 있는 좀비들에게서나 느꼈던 죽음의 향기를 맡은 미카엘은 반드시 데스 나이트가 죽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미카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뿐 아니라 미카엘은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홀리 나이트라 불린 기사가 어느새 데스 나이트 앞에 서서 빛의 브레스를 막아서고 있었던 것.

“이, 이, 무슨.”

최소한.

서로 간의 성향을 생각해서라도 두 객체는 서로를 껄끄러워해야 했다.

빛과 어둠이 그렇듯,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는 것들이 있는 거니까.

하지만 앞에서 빛의 브레스를 막아서는 홀리 나이트도.

그 뒤에서 당연한 듯 빛에 몸을 대지 않으려 애쓰는 데스 나이트도 마치 서로를 믿는 듯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빛의 브레스가 사라지자 두 나이트는 손발을 합쳐 미카엘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화려한 두 나이트의 검술과 합격진에 미카엘은 연신 뒤로 물러나기 바빴다.

뒤로 물러나던 미카엘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서 빛무리가 쏘아 올려지고, 검은 구름이 가득하던 하늘은 불온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늘이 진동하는 소리가 울렸다.

―란치아lancia(빛의 검)

쐐애애액!

검은 구름의 중심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한 줄기 빛이 지상에 내리꽂혔다.

쾅!

엄청난 충격과 함께, 돌무더기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검의 공격을 받은 홀리 나이트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천사들은 하늘의 무기를 사용하라!

미카엘의 말에 천사들은 하나 같이 ‘벌써?’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레미엘이 하늘을 향해 빛을 쏘아 올린 순간, 다른 천사들도 일제히 같은 행동을 했다….

―스꾸레scure(빛의 도끼)

―마르뗄로martello(빛의 망치)

―프렌치아freccia(빛의 화살)

쐐애애액!

쾅!

쾅! 콰쾅!

마치 운석이 떨어지는 것처럼 빛의 무기들이 한연맹의 건물과 사람을 공격했다.

인간이 방어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피해가 커지고 비명이 울려 퍼지자, 시우의 눈동자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대화의 여지마저 없애려는 것인가?”

―악마에겐 징벌만이 있을 뿐!

미카엘은 계속해서 하늘로 빛을 쏘아 댔다.

미칼엘이 쏘아 대는 빛의 크기가 커질 때마다 지상에 꽂히는 무기의 파괴력도 점점 커져 가고 있었다.

[소환]

[아크 데몬]

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과 함께 여러 개의 뿔이 달린 검은색 악마들이 마법진에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너희들이 원하는 지옥의 괴수다. 맞서 보아라.”

한연맹에 있는 건물을 훌쩍 넘길 정도의 커다란 덩치를 가진 아크 데몬은 하늘에서 날아드는 검을 피해 천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시우는 등 뒤로 네 개의 검은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의 손에는 바스타드 소드 대신 검이 들려 있었다.

[천살지존검법]

시우의 외침과 함께 검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두 개, 네 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검들이 하늘 가득 살기를 메웠다.

하늘에서 떨어지던 천사들의 무기는 번번이 시우의 검에 막혀 지상에 닿지 못했다.

그사이 피해에 격분한 한연맹들도 더 이상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세아의 정령이 천사의 각막을 태워 버렸고, 제갈청룡의 진법이 천사의 무기를 ‘방’ 안에 가둬 버렸다.

성력의 피해를 받았던 우빈은 시우의 포션으로 기력을 되찾고 일어나 태산 같은 기세로 천사를 몰아세웠다.

시우를 제외하더라도 한연맹은 천사에게 쉽게 당하지 않을 만큼 강한 상태였다.

“모두 물러나세요.”

공중에 떠 있던 시우의 외침에 한연맹의 인원이 순식간에 뒤로 물러났다.

[어스 퀘이크]

[볼케이노]

시우의 양손에서 사라진 두 개의 마법진에 의해 한연맹의 부지가 순식간에 박살이 났다.

갈라진 틈 사이로 용암이 들끓었다.

천사들의 무기로 환해졌던 하늘이 다시금 어두워지고 사방에선 번개가 내리쳤다.

“신을 믿는 절대선이라고?”

시우의 양손에서 하나의 커다란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그럼 어디 이것도 막아봐.”

마법진이 사라지자 대기가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피유우우웅

아득히 먼 하늘에서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가 울렸다.

바닥이 무너지고 용암이 들끓었지만, 천사들은 날 수 있기에 큰 피해는 입지 않았다. 그들은 아크 데몬을 뿌리치고 시우에게 날아가려 했다.

―쏘피오soffio(빛의 브레스)

미카엘의 공격에 아크 데몬이 사라진 팔을 부여잡으며 고통스러워했다.

미카엘은 아크 데몬의 겨드랑이를 통과해 총알처럼 시우에게 날아갔다.

날카로운 창끝이 시우의 심장을 겨냥하고 있었다.

“막는 데 집중했어야지.”

―뭐?

시우의 뒤로 검은 구름이 대해가 갈라지듯 쫙 벌어졌다.

그리고 시뻘겋게 달아오른 무언가가 미카엘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미카엘은 본능적으로 방패를 소환했다.

―스꾸도scudo(빛의 방패)

쿠과가가.

미카엘은 날아올랐던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바닥에 내리꽂혔다.

쾅! 쿠르릉.

미카엘이 부서진 지면에 부딪히며 흙과 바위가 사방으로 날렸다.

미카엘을 공격한 것은 다름 아닌 사람 머리만 한 운석이었다.

“그게 끝이 아니야.”

시우의 말을 끝으로 연달아 운석이 떨어졌다.

미티어 스웜.

미티어 스트라이크처럼 대륙을 멸망시킬 정도는 아니었지만, 일개 군단 정도는 가볍게 지울 수 있는 엄청난 파괴력의 마법이었다.

천사들은 저마다 방패를 만들거나 피하려 했지만 중력가속도를 타고 날아든 미티어 스웜의 공격은 막거나 피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쾅! 쾅! 쾅! 쾅! 쾅!

조준이 잘못된 미티어 스웜에 맞은 4층짜리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시, 신이시여!”

피유우우웅

천사의 간절한 외침은 운석의 파공음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미카엘의 모습은 처참했다.

빛이 나던 갑옷은 심하게 타버린 것처럼 검게 변하고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발과 다리가 기이한 형태로 꺾였고, 온몸에 깊은 화상 자국이 남아 있었다.

가늘게 숨은 붙어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며 한연맹의 사람들은 천사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알고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다른 천사들의 모습도 다르지 않았다.

모두들 정신을 잃거나 중태에 빠져 있는 상태.

막는 것이 아니라 피하는 데 최선을 다했던 우리엘만이 한쪽 손과 발이 부러진 채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럴수록 한국은 더욱 불리해질 거예요.”

회복마법을 쓰지 못하도록 마법 구속구가 채워진 우리엘이 시우를 보며 말했다.

“우리 루체 시국은 포기하지 않아요. 다음엔 대주교가 나설 것이고, 그다음엔 성하가 이곳에 올 거예요. 그럼, 한국은 최악을 사태를 맞이하겠죠.”

시우가 피식 웃으며 돌아서려 하자, 우리엘이 필사적으로 말을 이어갔다.

“우리를 보내줘요. 그렇다면 한국…… 아니 당신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겠어요.”

“눈앞에서 수많은 증거를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던 네가 무슨 뭘 한다고?”

이미 시우가 빛의 브레스에 공격당했을 때부터 시우의 의혹은 풀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천사들 중 누구도 그의 정체에 의문을 품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명령받은 걸 시행했을 뿐.

“의심을 하긴 했었어요. 하지만 그건 루체 시국에 가서 모두 풀려 했을 뿐이에요.”

“아! 일단은 잡아 두고 평가를 내린다. 역시 힘을 가진 놈은 선과 악을 가리지 않고 지들만 생각하는 군.”

시우의 비아냥에 우리엘이 입술을 꾹 물었다.

“당신도 우릴 보내줄 수 밖에 없을 걸요. 이 꼴을 봐요. 루체 시국이 나서면 부서지는 건 한연맹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될 거예요.”

우리엘이 폐허가 된 한연맹의 부지를 보며 말했다.

“꼴은 무슨 꼴?”

시우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갈청룡이 한쪽에서 손가락을 퉁 튕겼다.

쩌저저저적.

갈라졌던 땅들이 다시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부서진 건물들이 재조립되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싸우기 이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 이건…….”

“진법이란 거야. 내가 만들어 낸 환상마법진에 저 녀석이 우연히 발견한 진을 결합시켰지. 어때? 실제와 다를 게 없었지?”

“공간도 걷어 낼까요?”

“그래, 그리고 다들 지하 감옥에 처넣어, 성하라는 인간과 이야기를 해 봐야 겠으니까.”

시우가 돌아서며 말했다.

우리엘은 넋이 나간 채로 입을 다물었다.

하늘에 경계가 지듯 검은 구름이 갈라지며 환한 낮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공간이 반쯤 열렸을 때, 한연맹의 사람들이 여전히 하늘을 가리고 있는 그림자에 고개를 들었다.

그사이 공간이 대부분 열리고 그 공간을 가리고 있던 존재에 사람들은 모두 넋이 나가버렸다.

“저, 저게 뭐, 뭐지?”

다들 시우와 오래 생활하며 놀라운 일을 많이 경험했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은 그 차원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마천루 같은 거대한 형체의 무언가가 하늘과 태양을 가리고 서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