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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투 다크위저드-172화 (172/200)

172화

쪼오오옥.

쪼오오오옥.

우빈이 빨아 들이는 빨대 소리가 크게 울렸다.

찌릿.

시우의 서늘한 눈빛에 우빈이 흡입을 멈췄다.

“…….”

“…….”

이어지는 정적.

커다란 카페는 손님 하나 없이 텅 비었다.

주인은 영문을 모르는 얼굴이었지만, 우빈과 시우는 소빈이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손님들에게 기를 발사해 오금이 저리도록 서늘한 기분을 느끼도록 해 내쫓은 것을 알고 있었다.

쪼오오오옥.

정적을 깨고 있던 우빈의 음료가 결국 바닥나고, 우빈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나 잠깐 리필 좀…….”

덥썩.

시우가 우빈의 컵을 부여잡았다.

“그냥 있어, 내가 화장실 가는 김에 받아다 줄게.”

우빈은 시우의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간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냐, 화장실 다녀오는 더러운 손으로 만지면 내가 좀 그렇지. 내가 다녀올게.”

우빈의 컵이 우빈 쪽으로 드르륵 밀렸다.

“깨끗하게 씻고 올 테니까. 너무 걱정 마.”

우빈의 컵이 시우 쪽으로 드르륵 밀렸다.

“뭘 귀찮게 그래. 내가 알아서 할게.”

“아냐, 그냥 편안히 앉아 있어. 이제 서울대생인데.”

챙그랑.

결국 두 사람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컵이 깨졌다.

사장은 놀라며 두 사람에게로 다가오려다 소빈이 뿌리는 무형의 기에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상태였다.

시우와 우빈은 어색한 웃음으로 손을 펴 보이며 괜찮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시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컵의 잔재를 치우려 할 때, 지혜가 시우의 옷자락을 잡아끌어 다시 앉혔다.

“시우하고는 어떻게 알게 되신 사이세요?”

“아 그게…….”

찌릿.

평소와 달리 냉기가 풀풀 날리는 지혜의 눈빛과 어조에 시우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말을 잇지 못했다.

그와 반대로 소빈은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며 천천히 대답했다.

“시우가 저희 집에 자주 놀러 오면서 알게 됐어요. 친해진 건, 시우가 우빈이랑 많이 돌아다니면 저도 함께 다니는 경우가 종종 있었거든요.”

소빈의 말에 지혜의 눈빛이 서늘하게 바뀌었다.

그녀의 말에 놀란 건 우빈도 마찬가지였다.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하계의 사람인 지혜에게 모든 진실을 밝힐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 오, 오해가 좀 있는 거 같은데?”

우빈도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그, 그렇지, 우리가 어딜 막 돌아다니고 할 그럴 여력이 없었잖아?”

소빈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지혜는 소빈을 노려보았지만 소빈은 반응이 없었다.

친한 사이라는 것 외엔 달리 어떤 말도 하지 않은 그녀였기에 지혜가 소빈에게 무언가 따질 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저 친한 사이라는 이야기 외에 다른 무언가가 그녀에게 있었다.

지혜가 지닌 여자로서의 감이 절대 지나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거기다…….’

상대는 재벌가의 상속녀.

외모는 말할 것도 없고, 온몸에 밴 기품이 지혜를 더욱 불편하게 했다.

더구나 수수하게 보이지만 셔츠부터 청바지까지 온몸에 걸친 것이 지혜는 알지도 못하는 고급스런 명품처럼 보였다.

지혜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옷차림을 보았다.

옷차림 때문에 기가 죽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비싼 옷을 입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수준에 나름 합리적이라 생각되는 옷을 편하게 잘 입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편하다고 생각했던 옷들이 더없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지혜는 고개를 홱 돌려 시우를 노려봤다.

“어? 왜?”

오늘따라 평소처럼 듬직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시우가 더욱이 원망스러웠다.

시우를 바라보는 지혜의 눈동자가 그렁그렁하니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했다.

“왜 얘기 안 했어? 친.한.누나가 있다고?”

“아니, 그게 난…….”

그때, 소빈이 커피잔을 탁자 위에 탁 내려놓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소빈에게 향했다.

“미안해요. 장난이 심했죠?”

“네?”

“사실 지혜 씨가 걱정할 만한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

“친한 사이…… 라는 건 거짓말이고. 제가 시우랑 친해지고 싶은 사이인 거죠.”

지혜가 탁자 밑으로 시우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시우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 나한테 그러냐고…….’

“지혜 씨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는 좀 사는 세계가 달라요. 있는 사람들의 삶은 드라마에 나오는 것보다 더욱 과격하고 때론 잔인하기도 하고요.”

소빈이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혜는 잠자코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가문…… 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니까. 우리 집안과 원수를 진 곳이 있어요. 그 원한의 골이 깊어서 때때로 사람들을 직접 해하기도 하는데. 이번엔 제가 그 타겟이었죠.”

갑작스레 무거운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여태껏 경계하던 지혜의 얼굴이 한순간 풀렸다.

“위험한 상황에 처했었고, 집안 사람들과 회사 직원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어요. 그때 나서준 것이 시우였어요. 시우는 단지 제가 우빈이의 친구라는 이유로 절 도와주러 왔었어요. 그 덕분에…… 이렇게 동생 입학식도 보게 되었네요.”

소빈이 우빈을 한 번 보았다.

우빈은 이런 상황이 낯간지러운지 손가락으로 볼을 긁으며 시선을 돌렸다.

“저희 집안은 시우에게 많은 빚을 졌어요. 대한민국에서 부러울 것 하나 없는 집안인데도 불구하고 시우에게 제대로 보답할 만한 것이 없네요. 사실 그런 이유 때문에 친해지고 싶었던 거예요.”

소빈이 말을 끝내며 미소 짓자, 어느새 지혜도 그녀를 따라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장난을 친 건 미안해요. 사실 시우가 매번 자랑하는 여자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했었거든요. 실제로 보니 정말 자랑할 만하네요.”

“아, 아니에요.”

“혹시 나랑 친구 할 생각 없어요? 시우는 저랑 친해지는 거에 관심이 없는 것 같고, 지혜 씨를 보니까. 꼭 친구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니요.”

지혜의 말에 소빈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쵸, 갑자기…….”

“언니라고 부를게요.”

소빈의 얼굴이 한방 얻어맞은 표정이었다.

“에?”

“저보다 나이 많으시잖아요. 저도 언니 동생으로 지내는 게 더 편할 거 같아서요.”

“호호 그럴까요?”

소빈의 입가에도 활짝 미소가 어렸다.

“말 편히 하셔도 돼요.”

“그래, 그럼 동생 생긴 기념으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아까 아버지께 카드 받아 왔거든.”

소빈이 지갑에서 검은색으로 칠해진 플래티넘 카드를 꺼냈다.

지혜가 반색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하고 있어. 일어나.”

소빈이 우빈의 다리를 툭 치며 말했지만, 우빈은 탁자에 바짝 엎드린 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시우야, 가자 언니가 밥 산대.”

시우도 마찬가지로 탁자에 엎드린 상황이었다.

“기 빠져서 입맛도 없어. 친해진 두 사람끼리 갔다 와.”

“……야토가미랑 다시 붙는 게 낫지.”

우빈이 시우에게만 들릴 듯 나직이 중얼거렸다.

* * *

이번 회의는 존이 늦었다.

빈 탁자 사이로 앉아 있는 성하의 주변으론 빛무리가 어렸다.

마치 성령의 은혜를 받은 성인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낸 것처럼 성하의 주변엔 황금색의 불빛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마법과 현대과학을 융합해 만든 이 회의 공간은 각각의 대표들이 가진 특성을 구체화시켜 보여주곤 했다.

일본의 대표가 참여했을 땐, 그의 주변에 떠다니는 귀신들이 성하 근처만 피해서 공간을 유영하곤 했다.

‘어서 다시 새로운 이들을 뽑아야 하는데.’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총 다섯 개의 자리 중 세 자리가 비었으니, 사실상 회의가 무의미한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오셨습니까?”

성하 마첼리노가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역대의 그 어떤 마첼리노도 저런 식의 행동을 하지 않았다.

성하의 자리란 한 단체, 크게 보면 세계 종교의 커다란 카테고리를 차지하고 있는 곳의 대표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가 존에게 극존의 예를 취할 필요는 없었다.

역대의 성하들이 그래왔다.

하지만 성하 마첼리노는 성하가 되기 전에도 이후에도 여전히 예의를 갖춘다.

존은 그래서 마첼리노가 역대 성하 중 가장 껄끄러운 상대였다.

“이 자리가 계속 비어 있는 것도 보기 좀 그렇군.”

“영국은 어떻게 된 겁니까?”

“내부에서 큰 사건이 있었던 듯해. 우리 쪽 인원을 파견해 보았지만, 사건에 대한 단서조차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야.”

성하는 자신의 턱을 쓸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그러니까. 나도 무섭다는 이야기야, 세계의 조율선이 무너지면서 예상하지 못하는 일들이 생겨나고 있어.”

“이미 생각하고 계신 곳이 있겠지요.”

“그래. 그래서 이야기했는데 성하가 강하게 거부했잖아.”

“한국을 넣으실 생각이십니까?”

“일본과 중국을 삼킬 정도의 무게야. 조율선을 맞추기엔 충분할 거야.”

“만약 그자가 없다면 저도 언제나 환영입니다.”

“벌써 특정 인물을 솎아낸 거야?”

“세계를 향한 눈은 존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내가 한국에 간 걸 아는 거지?”

“물론입니다.”

“내가 개입한다 해도 그와 싸울 건가?”

“성하에 자리에 오르면 성하로서 받는 삼계명이 있습니다. 혹시 아십니까?”

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살았지만 삼계명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이계명 아니었나? 약자를 잊지 마라. 기도를 잊지 마라.”

“이계명을 알고 계시는 것만으로도 대단하신 겁니다.”

“그럼 세 번째 계명은 뭐지?”

“악과 공생하지 마라.”

“결국 싸우겠다는 이야기군.”

“싸움이 아닙니다. 악의 소멸을 바라는 것이죠.”

“언제부터 시작할 생각이지?”

존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51area의 인원을 한국에 미리 파견하면, 두 사람 간의 전면전을 최대한 피할 수 있도록 전략을 짤 수 있을 것이다.

“지금입니다.”

성하의 아무렇지 않은 이야기에 존이 잔뜩 이맛살을 찌푸렸다.

“뭐?”

“악과의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존이 꽉 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구태여 회의를 하자고 나에게 연락을 한 이유가 있었군…….”

“죄송합니다.”

성하 마첼리노의 말에 존이 숨을 잔뜩 들이쉬었다.

“천사들은 얼마나 파견할 생각이지?”

“6천사를 제외한 모든 이들입니다.”

“미쳤군. 한국을 지도에서 지울 셈이야!”

“이건 성전입니다. 단순한 조율선을 위한 싸움이 아닙니다.”

존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몸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 듯 스르르 사라졌다.

“악이 세상에 퍼지는 것을 막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잠깐…… 설마 라파엘 녀석도 함께 보낸 거냐?”

“상대의 어둠이 너무 짙습니다.”

성하 마첼리노의 말에 존이 은근한 경멸의 표정까지 지어가며 말했다.

“지금 네 행동이 세계의 조율선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끼칠지 알기나 해!”

“세계의 조율선 또한 세계의 평화 아래서 유지되는 겁니다.”

“젠장! 이렇게 되면 너희를 두둔하려던 내 계획까지 무너지잖아!”

“루체 시국은 누구에게도 도움받지 않고 누구에게도 동의를 구하지 않습니다.”

“빌어먹을 종교인!”

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신기하게도 자연스레 뒤로 넘어갔어야 할 의자가 어둠 속에 스미며 사라졌다.

동시에 몸을 돌린 존의 모습 또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빈자리에 다시금 의자가 생기고 그때까지도 회의장 안에 있던 마첼리노가 나직하게 이야기했다.

“저희를 굽어살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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