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강원도 외곽의 산 중턱.
혐오 시설로 분류된 정신병원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시로부터 밀려 나와 산 중턱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다.
교통수단과 편의시설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저렴한 산 중턱에 자리 잡은 것은, 환자들에게 어떨진 몰라도 환자의 보호자들에겐 작은 위안을 주곤 했다.
하얀 눈이 두껍게 쌓인 산자락을 바라보는 한 사내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영상 30도와 영하 30도를 오가는 극단적인 추위는 이탈리아반도 출신인 그에겐 익숙지 않은 환경이었다.
“시베리아도 이렇게 추울 때가 별로 없었는데. 참 거지 같은 나라군.”
산 너머로 항구에 모여 있는 도시들이 보인다.
이런 극단적인 날씨에도 옹기종기 모여 살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있다고 했던가? 하나님의 성은으로 이렇게 버티고 있는지도 모르겠군. 키킥.”
가죽 재킷만 입은 사내가 혼자서 어깨를 들썩일 정도로 웃고 있을 때.
뒤에서 신관 복장을 한 사내가 추위에 벌벌 떨며 다가왔다.
“다, 다, 준비되, 되었습니다. 처, 천사님.”
가죽 재킷의 사내가 선글라스를 추켜올리며 물었다.
“원래부터 말더듬이었나?”
“네? 아, 아, 아닙니다. 그, 그게, 추, 추위 때, 때문에 그렇습니다. 처, 천사님.”
“믿음이 부족하구나 형제여. 이 추위 또한 하나님이 내리신 시련이신 것을.”
신관은 마치 천벌이라도 내린 것처럼 바닥에 주저앉았다.
“죄, 죄송합니다. 처, 천사님. 더, 더욱 기도에 저, 정진하겠습니다.”
신관은 최대한 추운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바닥에 닿은 손은 벌써 발갛게 변했고 입술은 점점 파리해져 가고 있었다.
애초에 혹한의 강원도 날씨를 신관복 하나로 버텨 낸다는 것 자체가 일반인인 그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크크, 됐어. 농담이야. 일어나.”
가죽 재킷의 말에 신관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어, 어찌 그런 농담을.”
“준비가 끝났다고?”
“네. 지금 천사님의 성은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여기선 천사라는 말 대신 신관으로 통일하지.”
“어, 어찌! 감히.”
조사관으로 파견된 신관들은 대부분 구품신관이었다.
대중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고 가지고 있는 성력도 미비했다.
그런 구품신관의 눈에 천사는 하늘의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천사 천사,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그 기억 지울 때마다 성력을 써야 하는데, 하느님께서 그렇게 쓸데없이 성력을 사용하면 좋아하시겠어?”
“아, 알겠습니다. 그럼 대신관님으로 통일하고 다른 신관들에게도 알려 두겠습니다.”
가죽 재킷은 신관의 말에 고개를 절레 저었다.
신관들의 답답한 성격은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런 성격 때문에 신관이 된지도 몰랐지만.
“아무튼 가자고.”
* * *
가죽 재킷이 안내받은 곳은 병원의 한 특별실이었다.
본래는 다용도실로 사용하던 거대한 창고가 집단 병실로 변해 있었다.
“그것이 치료 방도도 없고, 같은 증상이라 모아 두는 것이 좋을 듯해서…….”
생명을 다루는 의사의 직무에 대한 책임감이 없는 늙은 의사는 갑작스레 닥친 손님들에 대해 진땀을 빼는 중이었다.
이곳 정신병원은 이 신관들이 소속된 종교기관에서 지원금을 받고 있었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방치 그 이상의 모습이 아닌 꼴로 인해 지원금이 끊길까 전전긍긍하는 중이었다.
가죽 재킷의 사내는 주변을 휘휘 둘러보며 말했다.
“돈이 안 되는 환자는 이렇게 방치하는 건가?”
가죽 재킷 사내의 입에서 이탈리아어가 흘러나오자 의사는 알아듣지 못해 통역을 담당하고 있는 신관을 바라봤다. 하지만 신관은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꼴이 처참하군. 차라리 안락사라도 시켜 주지.”
“천사님!”
칠품 신관 하나가 놀라 말했다.
“왜? 이 꼴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가죽 재킷은 한 환자의 팔을 들었다.
미라처럼 바짝 말라 있는 그의 팔은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았고 불을 붙이면 활활 타오를 것 같았다.
퀭하니 들어간 눈, 짙게 주름진 얼굴의 피부. 간헐적으로 끔뻑이는 눈동자만 아니었다면 과연 산 사람이라 할 수 있을지 궁금할 정도였다.
“나가서 단체 장례식이나 준비하라고 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들은 살기 힘들어, 그나마 기생하고 있는 저주가 숙주의 생명을 간신히 붙여 놓고 있는 상황이야, 저주를 떼어내는 순간 기력을 다한 숙주도 결국 죽고 말 거야.”
“…….”
신관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민했다.
아무리 구마의식을 행한다 해도 일반인에게 죽음은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선의로 그들을 구해준다 해도 대상자가 죽는다면 그 일에 책임을 묻는 것이 일반인들의 생리다.
가죽 재킷 사내도 무엇 때문에 주저하는지 알고 말했다.
“정신 방면은 내가 해결할 테니까. 나가서 뒷정리 준비나 해.”
“알겠습니다.”
신관들이 의사와 간호사를 데리고 특별실 밖으로 나갔다.
홀로 환자들 사이에 선 가죽 재킷 사내는 처음으로 선글라스를 벗고 재킷을 벗어 링거 거치대에 걸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전지전능하신 아버지시여 이 땅에 불쌍한 당신의 자식을 위해 거룩하고 성스러운…….”
“가죽 재킷에 눈이 묻었네. 그러면 가죽 손상될 텐데.”
기도를 이어가던 사내는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어둑한 특별실의 조명 아래서 황금색으로 변한 그의 눈이 번뜩였다.
“누구냐?”
조명의 사각에서 그림자를 등지고 두꺼운 털 파카를 입은 청년이 나타났다.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청년의 얼굴엔 특이하게도 이마를 가르는 깊은 흉터가 남아 있었다.
청년의 입에서 유창한 영어가 흘러나왔다.
“이 녀석들은 죗값을 치러야 할 놈들이야. 고통받아 마땅한 놈들이니까. 그냥 두고 돌아가.”
사내 또한 이탈리아어 대신 영어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네놈이 이 저주를 건 놈이구나. 이들의 죄가 얼마나 크기에 이따위 짓을 벌인 거지?”
“강도, 살인, 폭행, 강간.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게 굴었지. 무너진 이를 나락으로 처박고, 상처받은 이의 영혼을 부숴뜨렸어. 그 정도면 대답이 될까?”
사내가 환자들을 보며 말했다.
“나쁜 놈들이네.”
“아주 쓰레기 같은 놈들이지.”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인간의 죄를 인간이 단죄할 수 없는 법.”
“그럼 하나님의 이름으로 단죄했어야지. 왜 뒤늦게 나타나 뒷북치고 난리야?”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것이네 형제여.”
“그놈의 만물시련설. 그거 내가 아주 싫어하는 논리거든. 그리고 누구더러 형제래. 노랑머리 가짜 신관아.”
시우와 이야기를 하던 사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자네가 저주를 건 게 맞나?”
“맞아.”
사내의 고개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 정도의 저주라면 그 저주를 건 상대에게서도 무시 못 할 마기가 흘러나온다.
그런데 마기는커녕 눈앞의 청년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루체 시국에서 나온 건가?”
시우의 질문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체 시국도 상계의 세력인가?”
시우의 계속된 질문에 사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주면서도 의문을 지우지 못 했다.
“자네도 상계 사람인가?”
“응.”
“한국은 중국 상계의 영향으로 무공 외에는 다른 특기는 없을 텐데?”
“아! 상계끼리 교류가 없다더니 정말 몰랐나 보네. 이번에 특채로 들어온 사람이야. 차차 한국 상계에도 다른 힘을 쓰는 사람이 늘어날 거고.”
시우의 말에 사내는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호오. 자네 같은 힘을 쓰는 사람 말인가?”
“그렇지.”
“잘 생각하고 답하게. 자네의 대답에 의해 한국 상계에 큰 위기가 올 수도 있어.”
“풉. 루체 시국 때문에?”
시우의 행동에 사내의 입가엔 더욱 큰 미소가 지어졌다.
루체 시국의 천사를 보고도 보이는 저 여유라니.
저 여유가 무지에서 나오는지 강함에서 나오는지 알 수 없었지만 사내는 참으로 오랜만에 즐거움을 느꼈다.
“루체 시국의 7천사를 모르는 건가?”
“아아, 아까 얘기하던 ‘천사’가 그걸 이야기하는 건가?”
“……아까? 계속 듣고 있었다는 건가?”
“수상한 이들이 오가기에 지켜보고 있었지.”
“호오, 여유를 부릴 만한 비상한 재주를 가졌나 보군? 하지만 어리석어. 스승이 누구지? 저주 마법을 부릴 줄 알았다면 우리를 조심하란 이야기를 했을 텐데.”
“스승은 없어. 스스로 깨달은 자라.”
사내의 얼굴이 처음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 없이 혼자 이뤄지는 건 없지. 나와 조금이라도 얌전히 대화를 하고 싶다면 다시는 그런 소릴 하지 말라고.”
“뭐, 스스로 깨달았다는 거? 사실인 걸 어째?”
“허허, 참.”
사내가 고개를 절레 저었다.
“아참! 그쪽 천사라고 했지? 이름이 뭐야?”
“라구엘.”
라구엘의 음성에는 은은한 투기가 담겨 있었다.
“혹시 하나님하고 가끔 이야기도 하고 그러나? 다이렉트 메시지 같은 걸로 말야.”
“신성모독은 그만하는 게 어때?”
“아니, 그게 아니라 궁금한 게 있어서, 그쪽 자식이라는 내가 약 90년간 버려진 적이 있었는데. 왜 날 버렸냐고 좀 물어보고 싶어서. 혹시 메시지 보내 줄 수 있어? 내 기도에는 답을 안 하더라고.”
“……어리석게도 선을 넘는구나.”
“아니 진짠데.”
“난 악마를 맹신하는 것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들의 믿음의 대상이 잘못된 것은 결국 우리의 잘못 우리가 계도하여 바로 잡아주면 그만인 것이지. 하지만, 신의 사랑을 받으면서 모독하는 행위를 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는다.”
라구엘이 가죽 재킷을 다시 입었다. 그리고 품속에서 기다란 바스타드 소드를 뽑아냈다.
“그런 자는 계도와 회개가 불가하지. 대체로 혀를 뽑고 눈알을 파고 귀를 막아서 하나님의 것들에서 멀어지도록 만들지.”
“거참 과격한 신이시네. 차라리 죽이는 게 낫지 않아?”
“삶과 죽음은 오직 신만이 결정하신다.”
바스타드 소드의 검면이 황금색으로 밝아지기 시작했다.
“알았어. 사과할 테니까. 대화를 좀 더 해보는 게 어때? 난 루체 시국이란 곳에 관심이 많거든.”
“하나만 묻겠다.”
라구엘이 커다란 바스타드 소드를 가볍게 들어 시우에게 겨누며 말했다.
“중국 상계의 무인들이 받은 저주 또한 네가 내린 것이냐?”
“필요 불가결했어. 그들이 먼저 나를 죽이려 했거…….”
라구엘은 시우의 뒷 말을 듣지 않은 채 시우에게 달려들었다.
시우는 환자의 침대 하나를 발로 차 라구엘을 막았다.
라구엘은 바닥을 차고 공중에서 돌며 바스타드 소드로 시우의 머리통을 반으로 가를 듯 내리쳤다.
시우는 재빨리 털 파카를 입은 손을 올려 바스타드 소드를 막았다.
쾅!
털 파카가 찢어지며 하얀 털이 사방으로 날렸다.
팔과 바스타드 소드가 부딪쳤지만 기이하게도 큰 둔탁음이 울렸다.
라구엘이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을 때, 시우의 손이 라구엘의 멱살을 잡았다.
“이거 엄마가 아껴 입으라고 사준 건데! 어쩔꺼야! 너 잠깐 뒤로 따라와!”
라구엘의 시선에 빛이 가득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이동한 곳은 아까의 전경을 바라보던 산꼭대기.
폭설로 인해 인적이 드문 산 정상의 한 주차장이었다.
“무서운 재주를 가지고 있구나.”
라구엘이 놀라며 말했다.
산 아래로 정신병원이 보인다. 눈대중으로 보이는 거리만 해도 5~600m는 되어 보였는데 그 거리를 1초 산간에 이동한 것이다. 그것도 자신과 함께.
“뭐 작은 재주 중에 하나지.”
“너, 나랑 함께 가야겠다.”
“미안 내년부터 군대 가기 전까지 먹구 대학생 생활이 예정이라 외국에 나가긴 좀 그래.”
“나도 농담을 꽤 좋아한다만 너처럼 분위기 파악하지 못하고 하진 않는단다.”
“왜 이 정도 분위기면 충분하지.”
“어디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라구엘이 바스타드 소드를 양손으로 잡았다. 그의 성력이 검으로 집중되며 검은 태양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다.
“참, 내 소개가 늦었네. 난 다크위저드야. 그쪽이 말하는 악에 가장 가까운 존재지.”
시우의 평범한 말과 함께 그의 온몸에서 검은 마기가 소용돌이치며 쏟아지기 시작했다.
라구엘은 달려나가다 피부를 찌르는 지독한 마기에 숨이 막혀 자리에 멈춰 섰다.
시우의 등 뒤로는 검은 형체의 팔 여섯 개와 뿔 여덟 개를 가진 악마의 형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라구엘의 입이 떨리며 허파의 공기를 쥐어짜듯 겨우 말했다.
“아, 악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