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강호맹이 최시우에 의해 무너졌을 때 상계의 문파들이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은 ‘복수’였다.
거기에 그 일에 함께 가담한 오대세가의 배신에 대해서도 성토의 목소리가 컸다.
강호맹이 아무리 인간 이하의 짓을 해왔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중국 상계를 위함이었으니까.
대를 위한 소의 희생에서 ‘대’에 포함된 이들은 ‘소’의 희생에 무감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문파들의 뒤통수를 친 것은 다름 아닌 ‘강호맹’이었다.
신투 진소율의 무덤을 발견한 후, 그 무덤에서 각각의 문파들이 잃어버린 무공과 보물들이 나오면서 분노의 대상은 자연스레 강호맹으로 돌아갔다.
잃어버렸다고 전해지던 무공과 보물들이 전설로만 내려오던 신투 진소율의 투행기 속에 실재했다는 놀라움은 곧 ‘강호맹’이 모든 걸 숨겼다는 분노로 변했다.
공동의 강진명을 비롯한 청성의 두사정 등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기선을 잡고 분위기를 이끌어 가려 했던 것이 한참이나 꼬인 탓이었다.
“우선은 신투 진소율의 무덤에서 나온 물건들 중에 주인이 확실한 것들은 모두 돌려주기로 하였소.”
“…….”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문주들의 안색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외에 주인이 불분명한 물건들과 보물들은 한연맹이 그 소유권을 가질 것이오.”
청성의 두사정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것이 있소. 주인이 불분명하다는 것은 무슨 이야기요?”
“확실한 증거가 없는 물건들에 대해선 그 주인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요.”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오?”
시우가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신투 진소율의 활동 시기 자체가 역사에 남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전이오. 그런 식의 기준으로는 되려 주인이 자신의 물건을 받을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 내오.”
“하지만 반대로 주인도 아닌 자가 자신이 주인이라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오.”
“우린 그런 무뢰배가 아니오.”
청성의 두사정이 이것만큼은 넘어가지 않겠다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가령 칠채보황주에 대한 전설은 청성과 종남 모두에 내려오고 있소. 이 보물은 누구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것이오?”
“그건…….”
청성의 두사정과 종남의 정산월은 놀란 표정으로 시우를 바라봤다. 그가 던진 질문의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그가 중국 상계의 비사를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놀란 것이었다.
“또한 청성이 보낸 보고서에서 분실한 무공이라 한 허령신보는 과거 청일곡의 무공이었다 알고 있소. 이런 경우, 사라진 청성곡의 후예를 찾아 돌려주어야 하오? 아니면 그 무공을 훔친 청성에게 돌려줘야 하오?”
청일곡은 이미 사라진 지 천년도 더 지난 문파였다. 상계의 호사가도 잊어버린 일에 대해서 시우가 술술 이야기를 꺼내자 두사정의 입이 점점 다물어졌다.
“중국 상계의 각지에서 보낸 보고서들 태반이 같은 무공과 보물을 자신들의 것이라 주장하고 있소. 어떤 무가에선 소림의 칠십이절예종 모두가 자신의 가문의 무공이었으니 돌려달라는 말을 하기도 했소. 진소율의 무덤에는 소림의 무공이 존재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오.”
“…….”
“그리고 자꾸 잊어 먹는가 본데, 나는 그대들의 애로 사항을 해결해주러 온 사람이 아니오. 나는 바로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강호맹을 비롯하여 중국 상계 전부를 불바다로 만들고 싶어 했던 사람이오.
내가 이리 예의를 갖추고 협상 테이블에 그대들을 불러 모은 것은 어디까지나 중국 상계, 동경하던 강호의 협의를 보여준 오대세가의 모습 때문이라는 것을 명심하시오.”
“……알겠소.”
청송의 두사정이 결국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렇게 실망하지 마시오. 정 그 물건들이 가지고 싶다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가져가시오.”
“정말이오?”
“그렇소. 마법을 익힌 내가 굳이 무공을 가져가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소.”
“……가, 가격은 얼마나 되오.”
옆에서 조용히 앉아있던 공동의 강진명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의 물색없는 행동에 두사정이 눈치를 주었지만 그도 그것이 궁금했던지 시우의 입을 가만히 바라봤다.
“본국으로 가져가 평가를 해 보아야겠지만, 허령신보 같은 경우엔 대략 한화로 50억 정도를 예상하고 있소.”
“5, 50억?”
강진명이 부들부들 떨며 ‘이런 천하의 날강도 같은……’이라 말하고 싶어 하는 눈으로 시우를 바라보았다.
“뭐, 무공에 그 정도 가치가 없다 생각하면 사지 않으면 될 일이오.”
“……끄응.”
전설로 내려오는 무공들이 대단하긴 하지만 현대의 무공은 과거와는 그 궤를 달리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엔 그저 최강의 무공을 찾아 기연을 기다리거나 무덤을 찾았다면, 현대엔 과학이라는 인류의 산물로 무공을 분석해 더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나 더 효율적으로 수련을 할 수 있는 방법 등을 찾았다.
그러니 과거에 아무리 대단한 무공이 있었다 해도 현대의 발전된 효율성과 활용성에는 미치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그런 이유로 고대의 무공을 굳이 필사적으로 찾을 필요는 없었다.
그것이 없을 때도 이미 충분히 강했고 그것을 찾았다 해도 비약적인 강함을 바랄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공동을 위시한 문파 대표들의 얼굴은 크게 아쉬움이 없는 표정이었다.
그때, 시우가 말을 이어갔다.
“혹시나 너무 비싸다고 생각할까 봐 저렴한 가격대도 생각해 봤소.”
“저렴한 가격?”
이 무슨 시장 가판대에서 무공 파는 소린가.
“무공서적의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원본을 소유하는 것에 있지 않겠소? 그런 충족감은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대신 복사본은 조금 저렴하게 팔 생각이오. 방금 얘기한 허령신보 같은 경우엔 한 30억 정도?”
시우의 말에 문주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미친…….”
강진명은 자신의 본심이 흘러나와 깜짝 놀라며 입을 틀어막았다.
강진명의 실수에도 다른 문주들은 그를 크게 문책하지 않았다. 그들의 심정이 딱 그가 내뱉은 말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좆 댔다.’
명문 정파의 경우, 한 가지 원류가 되는 요체를 중심으로 긴 세월 동안에 화수분처럼 많은 무공을 만들어 낸다.
각각의 문파들이 각기 다른 이름으로 무공을 사용해도 결국은 그 형과 식이 서로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원류가 되는 요체가 항시 중시되기 때문이었다.
무공의 요체가 밝혀진다는 것은 약점을 드러낸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비급에는 그 요체를 어떻게 활용했는지가 적혀있다.
결국 무공서적이 세상에 돌아다닌다면 그 숫자만큼이나 문파 원류에 대한 약점 또한 파악하기 쉬워진다.
결국 자파 무공의 복사본이 돌아다니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그 원본을 구매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최 맹주!”
두사정이 결국 참지 못하고 탁자를 내리치며 말했다.
시우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두사정을 바라봤다.
“너, 너무 비싼 것 같소이다. 원본의 가격을 조금 조정해 주시오.”
“그러고 보니 그걸 말 안 했군. 지금 중국 상계의 여러 곳에서 이미 복사본이나 원본을 사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해 왔소. 그들은 당장이라도 구매를 하고 싶어 하는 모양인데, 그래도 팔 때 팔더라도 조금은 연관이 있는 곳에 팔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본국으로 돌아간 이후에 거래를 시작하기로 하였소. 그러니 그전까지 자료와 돈을 잘 준비해 두도록 하시오.”
강진명을 비롯한 다섯 사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 *
“이미 복사본이 있으니까 그냥 넘겨줘도 됐을 텐데요.”
한세아의 말에 시우가 그녀를 무슨 소리냐는 듯 바라봤다.
“할 때는 확실히 해야 한다면서?”
“이 정도로 뼛속까지 뽑아 먹을 줄은 몰랐지요.”
시우에게 진소율의 무덤에서 나온 무공 같은 것은 의미가 없었다.
중국 상계의 태산북두인 소림
그 소림의 모든 무공을 익힌 명진의 머릿속에서 모든 무공을 빼내었기 때문이었다.
“이 일이 잘 마무리되면, 한국 상계는 아시아 상계의 중심이 될 거야. 그리고 자네 말대로 중국 상계의 세력들은 그 크기가 우리와는 차원이 달라. 아마 공동파 같은 곳만 해도, 일 년의 예산 규모가 우리의 두세 배쯤은 될걸.”
“사실 강호맹의 회계자료를 보면서 깜짝 놀랐어요. 이건 완전 세계적인 대기업 저리 가라 할 정도의 규모라…….”
“기업 수준이 아니지, 나라 수준으로 봐야겠지. 전혀 다른 세계니까.”
“어쨌든 고생 많으셨어요.”
“한 문주가 고생이 많았지.”
두 사람의 반대편에서 오대세가의 가주들이 천천히 걸어왔다.
부당한 거래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공동 등의 문주들과는 달리 얼굴이 환하였다.
협상의 테이블에 앉기 전에 이미 오대세가에는 그들의 보물과 무공을 모두 돌려주었다.
청성의 허령신보와 같이 주인이 애매한 물건에 대해서도 그 권리를 인정해 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협상 테이블에서 웃음을 참느라 허벅지를 꼬집는 고생을 해야 했다.
남궁산이 시우를 보며 물었다.
“준비는 다 마쳤는가?”
“네, 대충 마무리는 하고 가는군요.”
“아쉽군. 본래 이런 큰 전투 이후에는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을 마셔야 하는 것을.”
“전 아직 미성년자라 술을 못 마십니다.”
“허허! 아아! 그렇지! 허허허!”
남궁산 옆으로 제갈사열이 자애로운 미소로 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백 마디의 말이나 천 개의 단어로는 내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으니, 이 감사함은 행동으로 보여주겠네.”
“우연히 재주가 맞았을 뿐, 그렇게 큰일도 아니었으니 부담감은 털어 내시지오.”
시우의 말에도 제갈사열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아무리 말려도 그의 마음속에 짐은 그의 행동으로만 갚아질 듯했다.
“자네 혹시 혼처가 정해져 있는가?”
제갈사열의 말에 시우가 끌끌 웃었다.
그때, 한세아가 앞에 나서며 말했다.
“저희 맹주님께선 이미 사귀고 계신 분이 있습니다.”
“허허, 그런가? 그렇다면 그 처자와 결혼이 약속되어 있는가?”
“그게 아니더라도 이런 식의 정략결혼은 현대인의 생활과 맞지 않습니다.”
“난 그저 집안에 괜찮은 여식이 있으니 소개시켜 주려 하는 것일세.”
“죄송하네요. 빨리 한국에 돌아가 봐야 할 일이 있어서 그만 가보겠습니다.”
한세아는 시우의 옷자락을 잡고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한세아에게 끌려가는 시우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오대세가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워프 마법진도 완성되었는데, 뭘 그리 급하게 가려고 해?”
“나참! 왜 애인이 있다고 말 못 하세요? 설마 만나보기라도 하실 생각이셨어요?”
“아니, 그게 그냥 덕담을 주고받는 자리였잖아. 왜 화를 내고 그래…….”
“제가 언제 화를 냈다고 그래요.”
시우 일행을 비롯한 한연맹의 사람들은 모두 1층 로비에 모여 있었다.
한세아에게 끌려 온 시우는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모두들 고생 많으셨고, 그에 응분의 대가가 있을 겁니다. 허나 회포를 풀기에 이곳이 적당한 곳은 아니지요. 우리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갑시다!”
“예!”
지고한 별 성하 존하.
일전에 말씀드린 대로, 저희는 조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조사를 이어 갈수록 저희는 희망보단 절망을 더욱 많이 목격하고 있습니다.
조사가 진행될수록 더욱 많은 수의 어린 양들이 고통 속에 죽어 가고 있습니다.
특히나 이들은 가장 밑바닥에 있는 자들이 아닌 상계 내부에서도 높은 위치와 높은 수준의 능력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들을 향한 무차별적 저주의 행위가 상계 전반, 그리고 일반인들에게까지 퍼질 것이 두렵습니다.
7천사의 지원이 필수 불가결한 상황입니다.
하루의 시간이 앞당겨질 때마다 구할 수 있는 어린 양들의 숫자가 늘어납니다.
성하 존하께선 하루라도 아니 한시라도 빨리 결단하시어 이 세상에서 악의 무리들을 쫓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희망적인 것은 저주에 걸린 이들의 에너지가 향하는 곳을 알아내었습니다. 저희는 먼저 이 에너지가 향하는 곳을 쫓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