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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투 다크위저드-162화 (162/200)

162화

“치료를 핑계로 허튼수작 부릴 생각 마라.”

제갈청룡은 독문무기인 백금선을 꺼내 들었다.

백금선의 하얀 털 사이로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듯한 은색의 화살촉이 번쩍거렸다.

“청룡! 일단 무기를 내려놓아라! 한연맹의 맹주에게 이 무슨 무례더냐!”

“아버지, 전 아직 저 사람을 확실하게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대화로 해결할 생각을 해야지!”

“아버지도 보지 않으셨습니까? 저자가 쓰는 마법은 쉽게 벗어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제갈청룡이 그렇게까지 이야기하자 제갈사열이 시우를 바라봤다.

잠시 고민하던 시우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사고가 있은 후에, 달라진 점이 있지 않던가요? 두통을 느낀 다거나? 잠을 이루지 못한다거나, 생활의 변화…… 뭔가에 중독된…… 가령 술이나, 마약 앵속 같은…….”

시우의 말에 제갈청룡이 움찔하며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고, 제갈사열 또한 놀람을 금치 못했다.

“그러고 보니…… 저 아이가 술이 없이는 못 사는 생활을 하게 되었네.”

“아마 꽤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방금 제가 이야기한 증상들 전부를 가지고 있었을 테니, 그것을 잊기 위해 계속 술을 마셔 댄 것이겠죠. 그리고 그 강도는 점점 강해졌을 테고요.”

“헛소리!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시우는 대답 대신 조용히 제갈사열을 바라봤다.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니 결정을 내려달라는 의중을 보냈다.

“…….”

제갈사열은 시우와 제갈청룡을 번갈아 보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제갈청룡은 오랜 세월 홀로 집안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왔다.

가주도 장자도 아닌 제갈청룡에게 많은 짐을 지우게 된 데에 안타까움이 많았지만, 의지할 수 있는 이가 제갈청룡 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제갈청룡을 볼 때마다 더욱 안쓰러웠던 그였다.

“청룡아, 너도 이제 짐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아버지!”

제갈청룡이 외쳤지만 제갈사열은 시선을 돌려 버렸다.

“제갈가의 사람들은 절대로 경거망동하지 말라!”

무인들에게 그렇게 말한 제갈사열은 시우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우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제갈청룡에게 다가갔다.

“이 지옥관을 만든 게 그쪽이라지?”

“흥! 결국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것이냐?”

“아냐, 전말에 대해선 나도 이야기 들었어, 뭐 같은 학자로서 당연한 행위였다고 생각해. 더군다나 안의 내부에 대해서 묻고 싶은 것도 있거든.”

“그렇다면, 허튼 짓거리 할 생각 마라.”

“아, 그게 또 원활한 대화를 위해선 서로 벽이 없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시우의 발걸음이 거침없자 결국 제갈청룡이 먼저 손을 썼다.

제갈세가의 손짓에 하얀색의 면들이 나타나 시우의 사방을 둘러쌌다.

“혼자, 이런 걸 만들어 내다니 놀랍네요.”

상자 안에 갇히기 전까지 시우는 느긋하게 이야기했다.

쿵.

하지만 곧 작은 충격음들이 상자 안에서 들리고 이어서 귀를 찢을 듯한 고성이 울려 퍼졌다.

쨍그랑.

산산 조각나버린 하얀색의 조각들을 밟으며 시우는 계속해서 제갈청룡에게 다가갔다.

결국 조준하고 있던 백금선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펑.

작은 소성과 함께 날아간 은시가 촉을 화려하게 피며 맹렬하게 회전했다.

호신강기도 뚫는 필멸의 무기.

쒜애액.

눈으로 좇을 수도 없는 화살 세 대가 빠르게 지나가며 바람 소리만을 울렸다.

백금선이 발사되었을 때는 제갈사열도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갈세가에 기보인 백금선이 발휘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탓이었다.

팅팅팅.

하지만 예상외의 소성에 제갈사열은 의문을 금치 못하고 고개를 돌려 시우를 바라봤다.

황금색으로 물든 시우의 팔이 백금선의 은영을 막아낸 것이었다.

더구나 팔에서 은은히 풍기는 불가의 기운에 풍기고 있었다.

“자 다 했나요?”

“이익!”

제갈청룡은 분하다는 듯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

그 순간 시우의 손길을 따라 검은 그림자에서 촉수들이 뻗어 나가 순식간에 제갈청룡을 제압하였다.

“놔라! 가만두지 않겠다!”

“사고 이후에 머리가 더욱 좋아진 것을 느꼈죠? 마치 새로운 세상을 본 듯이.”

“으아아악!”

시우의 손이 제갈청룡의 머리에 닿자, 제갈청룡의 머리에서도 제갈적룡의 것과 같은 반투명한 물체가 분리되려 했다.

찌지지직.

옷가지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제갈청룡의 머리에서도 백발의 귀신이 뜯겨 나왔다.

시우의 손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백발의 귀신은 손발을 휘적거리며 시우를 공격하려 했다.

“원한의 장(狀)은 내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한다.”

시우의 손에서 백발의 귀신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괜찮습니까?”

시우는 바닥에 엎드린 제갈청룡을 바라보며 물었다.

제갈청룡은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어 시우를 바라봤다.

“열린 두정은 그대로 뒀습니다. 허기진 지식을 채우기 위해선 무공보단 마법이 나을 겁니다. 마법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연맹에 방문해 주세요.”

시우의 말에 놀란 것은 제갈청룡 뿐만이 아니었다.

오대세가의 가주들 또한 마법을 알려 주겠다는 시우의 말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그렇게 쉽게 알려줘도 상관없는가?”

오대세가 뿐만 아니라 상계의 이·삼류 문파도 자신들의 비전절기를 남과 공유하려 하지 않는다.

하물며, 강호맹을 무너뜨린 마법을 공유하겠다는 시우의 말은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야토가미에게 당한 것도, 강호맹이 썩어버린 것도 모두 힘과 지식의 독점에 의한 겁니다. 그렇게 해선 어떤 발전도 할 수 없지요. 그리고 앞으로 함께 갈 동맹 아닙니까? 그 정도는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오대세가는 시우의 말에 감동 받은 듯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한쪽에서 시우의 행동을 지켜보던 소빈은 속으로 놀람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시우의 말 몇 마디에 오대세가와 한연맹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확실한 동맹 관계가 되었다.

강호맹의 부제가 예상되는 시점에서 강호맹을 대체할 단체는 오대세가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한연맹의 맹주인 시우가 중국 상계에서 벌인 일은 정당하다 할 수 있지만 단체적인 입장에선 단지 잘잘못을 따질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시우는 말 몇 마디로 오대세가에게 큰 짐을 지워 놓은 것이다.

‘거기다, 아까의 그 무공은.’

시우의 팔이 황금색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며, 소빈은 소림의 금강불괴를 떠올렸다. 명진에게서 얻은 무공을 벌써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차후에 소림의 무공을 가져간 것을 문제 삼지 않으려면 한연맹에서도 줄 것이 있다는 입장을 내놓는 것이 편했다.

어찌 보면 중국 상계가 한연맹에게 더욱 많은 것을 가져가는 것 같았지만, 마법이라는 학문 자체가 고도의 계산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무용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중국 상계에서 시우만큼이나 마법적 성취를 이룰 이가 나올 가능성은 전무했다.

시우의 호의가 그 모든 것을 계산했다고 생각되지 않았지만, 소빈으로선 시우가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그만 돌아갈까요?”

시우의 말에 오대세가의 가주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이 많은 수의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가 시우인 것처럼 보였다.

* * *

지고한 별 성하 존하.

직접 뵙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점을 앞서 사죄드립니다.

먼 이국땅의 상황은 예상과는 달리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저희의 조사에 의하면 지금 중국 상계의 전반에 걸쳐 악마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 악마의 흔적은 이전부터 문제 시 되어 오던 인간의 감정에 기반한 마교의 마기가 아닌 본질적으로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지역에서 대규모의 인원이 무언가에 홀린 채,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정신적 신체적 착취를 당하고 있습니다.

저희 팀에서 임의로 구마의식을 시행하려 했으나 강력한 반탄력에 의해 되려 피해를 받고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7천사의 지원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저희는 종마의 기운을 쫓아 근원을 조사하고 있겠습니다.

부디 최대한 빨리 부탁드리겠습니다.

시우 일행은 지옥관의 일을 모두 정리하고, 강호맹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한동안은 중국 상계에 머물러야 했다.

중국 상계의 일은 중국 상계가 알아서 처리하라며 당장이라도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시우의 옷자락을 잡은 것은 다름 아닌 시우의 복귀를 가장 바라는 한세아였다.

그리고 그런 한세아가 시우를 강호맹에 앉혀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남궁혜자의 근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남궁혜자의 근심이 시작된 것은 남궁혜선의 고민 때문이었다.

위정자를 제거하고, 정의를 바로 세운 것은 백번 올바른 행동이었으나, 상계의 구심점이었던 강호맹이 사라지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남궁혜자는 호랑이가 사라진 상계라는 커다란 산을 걱정했다.

각지의 몸을 웅크리고 있던 여우와 늑대들이 하나씩 고개를 들기 시작할 것이고, 산의 주인을 정하기 위해 서로의 목덜미를 노리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남궁혜자의 사문인 남궁세가도 그 싸움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본래라면 호랑이를 죽인 이가 산중의 주인이 되는 것이 마땅하나, 강호맹을 없앤 것은 한국의 시우였고 그를 도와 움직였던 것이 오대문파였다.

잘못하다간 국가 간의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았고, 오대문파는 이번 일을 빌미로 마도보다 무서운 역도로 취급될 수도 있었다.

새로이 산중의 주인을 자부하는 자라면 명분을 위해서도 한연맹과 오대문파를 공적으로 몰아갈 확률이 높았다.

더군다나 이 여우와 늑대들은 주변의 기척을 살피지도 않았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강호맹이 함락되고, 장송계가 감옥에 갇히자마자 자신들의 병력을 이끌고 강호맹에 당당하게 입성했다.

강호맹의 건물은 그들이 끌고 온 무인들로 가득 찬 상황이고, 더 나아가 베이징의 비싼 호텔들은 모두 자리가 꽉 차서 더 이상 예약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엄청난 금력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호텔에서 무기한 숙박을 이어가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전 여섯 명만이 앉을 수 있었던 탁자는 치워지고, ㄷ자 모양의 거대한 탁자가 놓여 있었다.

가장 상석엔 가운데 자리를 비워둔 채, 한세아와 남궁혜자가 앉아 있었고, 양옆으로 오대세가의 가주들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으로 공동, 청성, 종남, 형산, 하오문의 총 다섯 개 문파의 문주들이 차례로 앉아 있었다.

단지 다섯의 인원이 앉아 있었지만, 이들의 표정은 여유로웠고, 편안해 보였다.

그런 반면에 이번 일에 큰 공을 세웠던 오대세가 가주들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이셨소.”

공동파의 장문인인 강진명이 혀를 끌끌 찼다.

“아무리 권력이 탐이 난다 한들 이런 식의 명분 없는 전쟁으로 그대들이 권력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요?”

강진명의 말에 오대세가의 가주들은 한순간에 권력을 탐해 외세를 끌어들인 역도로 변하고 있었다.

그런 모욕적인 말을 들었지만, 오대세가는 쉬이 답을 할 수 없었다.

“말이 심하시오. 강호맹의 전후 사정에 대해선 이미 말을 하지 않았소이까?”

그나마 남궁혜선만이 그들의 기세에 지지 않고 이야기를 내뱉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태도도 장송계를 상대할 때와는 달리 상당히 유약해 보였다.

“그렇다면, 어찌 우리에게 소식을 전하지 않은 것이오?”

“그건…….”

“중국 상계에 중·대형 규모의 사문들이 오십여 개가 넘소, 자잘한 세력까지 모두 포함한다면 족히 백은 넘을 것이고. 그런데 굳이 한국을 끌어들인다? 쯧.”

강진명은 마지막에 한세아와 남궁혜자 쪽으로 눈을 흘긴 후 혀를 찼다.

이들이 이토록 당당할 수 있는 이유.

오대세가가 그들 앞에서 쉬이 말을 꺼낼 수 없는 이유.

그들의 세력과 그들을 따르는 크고 작은 문파들의 규모가 결코 기존의 강호맹에 비해 떨어지거나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당장 그들이 명분을 가지고 세력을 일으킨다면, 오대세가는 강호맹이 사라지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상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최시우란 작자가 어찌하여 이 일에 최종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떠나서 오대세가는 이번 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할 것이오.”

강진명의 말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강호맹의 자리를 오대세가에 넘기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앞뒤가 틀렸지.”

그때, 문을 열고 시우가 등장했다.

강진명은 자신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목소리에 인상을 구기며 시우를 바라봤다.

그리고 예상보다도 훨씬 어려 보이는 그의 외모에 꽤나 놀란 얼굴이었다.

“왜 이렇게 해결할 수밖에 없었냐는 탓을 하기 전에, 왜 이런 상황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먼저 따져야지.”

채 약관도 되어 보이지 않는 어린 시우의 말과 태도의 강진명의 얼굴에 노기가 잔뜩 어렸다.

“네놈은 누구냐?”

뻔히 알면서도 물었다.

시우는 그의 의도를 이미 알고서는 웃으며 말했다.

“한연맹의 맹주, 최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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