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저놈! 저놈을 공격해라!”
심령의 주문으로도 충분할 만큼 강력한 금제에 걸린 영환술사인 것을 까먹은 듯 장송계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영환술사는 묵색의 피리를 불어 천마강시를 모두 불러 시우를 향하게 했다.
천마강시는 방어를 도외시한 채, 검을 휘둘렀다.
강시가 되면 고통이 사라진다.
감정과 고통이 사라진 몸은 또렷한 이지만이 남는다.
명령에 복종하고, 상대와의 싸움에 집중한다.
천마강시의 최우선 목표는 상대의 죽음뿐이다.
자신에 대한 방어 기제 위에 상대의 죽음이 있다. 살을 주고 심장을 빼앗을 수 있다면 천마강시는 그것을 지체하지 않는다.
검강으로도 벨 수 없는 몸을 가진 천마강시에게 두려울 것은 없었다.
공격 일변도의 천마강시를 보며 시우가 건조하게 말했다.
“네놈, 두려움을 모르는구나.”
천마강시의 검을 받아 내던 시우의 검세가 더욱 날카로워졌다.
“두려움을 잘라낸 각오 없는 검을 따라 무적이라도 된 기분이었더냐”
시우의 움직임에도 공격 일변도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칠게 내지르는 그의 움직임을 따라 천마오검이 발산하는 거친 마기가 시우의 몸 이곳저곳에 생채기를 내기 시작했다.
위태하게 달려드는 시우의 모습에 한숨을 돌리던 오대세가의 무인들이 손에 땀을 쥐었다.
하지만 그들의 걱정을 환기시키듯, 시우의 몸은 아슬아슬하게 천마강시의 검을 피해내고 있었다.
천마강시의 검이 시우의 볼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시우는 그 틈 사이로 검을 내질러 그의 가슴을 베어냈다.
스각.
끔찍한 절삭음과 함께, 천마강시가 뒤로 몇 걸음이나 물러났다.
벌어진 옷깃 사이로 가슴에 쩍 벌어지며 시꺼먼 뼈와 장기가 드러났다.
더 이상 구동하지 않는 듯 장기는 움직임이 없었고, 피는 흐르지 않았다.
천마강시가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가슴을 보는 사이 벌어진 상처가 절로 아물기 시작했다.
그로테스크한 장면에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검기도 통하지 않는 신체를 가진 천마강시가 상처에 대한 회복력까지 갖추고 있다는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꼭 몬스터 같구나.”
사람들의 반응과는 달리, 정작 천마강시를 상대하고 있는 시우의 표정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8서클에 오르지 못한 게 아쉽다만, 그렇다고 상대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시우가 검면을 쓸어 내자, 그의 손길을 타고 검은색의 검이 하얀빛을 내는 검으로 바뀌었다.
[라이트 세이버]
빛을 발하는 검이 천마강시의 신체를 베어내자, 이전보다 더욱 쉽게 천마강시의 몸 이곳저곳에 상흔이 나기 시작했다.
시우가 가진 검에 계속해서 상처가 나자 천마강시의 움직임도 조금씩 부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야! 나도!”
다른 천마강시를 상대하고 있는 우빈이 절박하게 외쳤다.
시우의 손에서 마법진이 생성되어 우빈에게 흡수되었다.
[인챈트][라이트 세이버]
“무적의 성검(聖劍) 아니야! 긴장하고 싸워!”
우빈의 검이 조명을 켠 듯 스스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태백지존검의 검세에 따라 쏟아져 나가는 검기가 천마강시의 몸 이곳저곳에 상흔을 내기 시작했다.
“자 친구도 왔는데 계속해 볼까?”
시우가 자신을 둘러싼 천마강시를 바라보며 천살지존검을 쏟아 내었다.
시우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감정을 잃은 천마강시들의 얼굴이 씰룩거리고 움직임은 더욱 부자연스러워졌다.
오랜 세월 방어를 도외시하고 공격하던 버릇이 되레 현 상황에선 악수가 되어 버린 탓이었다.
스각!
처음 시우를 상대하던 천마강시의 목이 결국 잘려나갔다.
다른 천마강시들의 손과 검이 시우를 향해 찔러 들어 왔지만, 시우는 그들을 무시하고 잘린 목을 세로로 한 번 더 베어내었다.
잠시간 자신의 목을 찾기 위해 허둥거리던 천마강시의 몸체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우아아아!”
오대세가의 무인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장면을 보던 장송계는 입술을 질끈 물었다.
몇 수를 교환하지도 않았건만 벌써 천마강시 하나가 죽어 버렸다.
우빈 또한 검에서 기이한 빛이 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천마강시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다시 돌려라! 저놈들을 무시하고 오대세가를 전멸시켜라!”
잠시 멈칫 몸을 부르르 떨던 영환술사가 다시금 묵색의 피리를 불기 시작하고, 소리 없는 음색이 천마강시들에게 전해지자, 천마강시들은 시우와 우빈을 일별하고 오대세가 무인들에게 달려들었다.
“피, 피해!”
시우의 활약으로 뭉쳐 있던 인원들에게서 큰 피해가 나기 시작했다.
천마강시를 뒤쫓으려던 시우의 눈에 장송계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형란에게 다가가려 했다.
등에서 검은 날개가 튀어나온 시우는 바닥을 박차고 장송계에게 날아갔다.
“내가 아직 당신한테 받은 선물에 대한 보답을 못 해서 말이야!”
[헬 버스터]
시우의 손에서 쏘아져 나간 헬 버스터가 빠르게 장송계의 등을 때리려 하자, 장송계는 곧장 검을 휘둘러 헬 버스터를 잘라내려 했다.
펑!
폭발음과 함께 터진 충격파로 장송계의 신형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크윽.”
시꺼멓게 그을린 장송계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겨누었다.
그리고 곧장 크게 외쳤다.
“삭월! 묵야자! 이놈을 막아라!”
천마강시의 난입으로 겨우 한숨을 돌리고 있던 삭월과 묵야자가 장송계의 말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교주의 명령을 잊은 것이냐! 그가 없는 곳에선 누구의 명령을 따르라 했더냐!”
그제야 두 사람이 신형이 시우 앞에 나타났다.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강호맹은 이대로 끝나지 않는다.”
말과 함께 장송계가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시우의 손이 그를 향해 뻗어 가자 허공에 생성된 마법진에서 거인의 손이 그를 잡아채려 했다.
[거인의 손]
촤르르르르르.
그 순간. 쇠사슬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거인의 손 전체가 검은 쇠사슬에 막히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네가 한연맹의 맹주 최시우더냐?”
삭월이 쇠사슬을 당겨 내자, 거인의 손이 기우뚱하며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쿵.
“진득한 마기를 풍기는 걸 보아하니, 마교도인 거 같은데, 최근에 개종이라도 했나?”
“놈, 무얼 믿고 그렇게 건방을 떠는 것이냐?”
“비켜, 지금 비키면 살려서 보내주지.”
“한 가닥 재주가 있는 것 같다만, 우리 쌍룡대와 사자부를 동시에 상대할 수 있을 성 싶으냐!”
“네놈 머리는 무공을 쫓아가지 못하는 모양이구나.”
시우의 양손이 겹쳐졌다가 떨어지고, 시우의 손에서 마법진들이 비눗방울처럼 허공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쏟아지는 수십 개의 각종 마법들, 불의 공과 칼날의 바람, 얼음으로 만든 암기와 마기로 느껴지는 검은 창까지.
퍼퍼퍼퍼펑!
삭월과 묵야자의 손이 쉴 틈이 없었다.
시우는 그 틈을 타 두 사람을 넘어 장송계에게 따라붙으려 했다.
하지만 시우는 금방 장송계를 따라가지 못했다.
방어를 도외시한 삭월이 시우에게 사슬을 날렸다.
“어딜!”
사슬이 시우의 발목을 감고, 시우의 몸은 날아가던 반대 방향으로 떨어져 내렸다.
퍽!
시우의 몸이 바닥에 박혔다.
이윽고 시우의 몸이 들썩거리며 움직였다. 방금의 급박함 따위는 잊은 듯 움직이는 모습이 느리기 그지없었다.
“후우.”
바닥에서 일어난 시우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 삭월과 묵야자를 바라봤다.
두 사람은 마법의 폭격을 제대로 쳐내지도 못한 채 이곳저곳에 마법 후유증을 가지고 있었다.
“후회할 것이다.”
시우의 손에서 검은 마법진과 십여 개와 흰 마법진 여덟 개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마교에서 말하는 지옥은 어떤 모습이냐?”
맥락을 알 수 없는 시우의 질문에 삭월이 자신도 모르게 의문을 내뱉었다.
“뭐?”
“그게 어떤 모습이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소환]
[다크 나이트]
[데스 나이트]
시우의 주변에 퍼진 마법진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신체를 가진 다크 나이트와 몸에서 빛을 내뿜는 데스 나이트가 나타났다.
“마기를 품은 놈들을 살려 보내지 마라.”
절그럭 절그럭.
다크 나이트와 데스 나이트들이 각자 자신의 목표를 정한 듯 사방으로 흩어지고, 삭월과 묵야자의 앞엔 한 마리의 데스 나이트만이 남아있었다.
절그럭 절그럭.
걸을 때마다 둔탁함 소음을 자아내는 기이한 생명체에 삭월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따위 장난감으로 우릴 상대하려고 했더냐!”
삭월의 낫이 붉게 물들며 톱니바퀴 같은 강기가 솟았다.
묵야자의 창끝에도 철퇴 같은 강기가 형성되었다.
절그럭 절그럭.
두 사람을 향해 움직이던 데스 나이트가 우뚝 움직임을 멈췄다.
덜컥.
단 한 수였다.
눈으로 좇기도 힘들 만큼 쾌속한 움직임의 데스 나이트의 검이 묵야자를 지나쳤다.
영문을 모르던 묵야자는 자신의 묵창이 잘려나가는 모습을 보며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눈동자로 삭월을 보다가 바닥에 머리를 떨구었다.
잘려나간 묵야자의 목 위로 피분수가 솟구쳤다.
“이, 이 무슨!”
덜그럭.
삭월이 놀랄 틈도 없이 그의 낫이 두 동강 나버렸다.
낫과 함께 그의 손이 잘려나갔고, 피를 본 삭월이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그의 목도 데스 나이트의 검에 잘려나갔다.
무너지는 삭월의 신형을 보지도 않고 데스 나이트는 몸을 돌려 다음 대상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사자부의 등장으로 기세등등하던 천년 마교의 교도들이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정현민은 멍하니 장내를 보고 있었다.
혈체강시와 천마강시의 등장으로 인해 난장판이 되었던 싸움은 시우의 등장으로 전세가 뒤바뀌었고, 도망치는 무인들은 오대세가에서 천년마교의 교도들로 바뀌었다.
그 엄청난 위세를 자랑하던 강시들은 시우의 기사들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빛이 나는 검으로 강시를 상대했다.
새삼 한연맹의 맹주인 시우의 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하는 중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시우가 정현민에게 다가와 물었다.
핼쑥하게 변해버린 정현민은 겨우 며칠 동안 몇 년의 세월을 맞은 사람처럼 힘들어 보였다.
“도움을 주러 왔다 자네들에게 짐만 되는 것 같군.”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시우의 시선이 곧장 소빈에게 향했다.
형원은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며 소빈을 치료하고 있었다.
주변에선 아직도 비명과 병장기 소리가 크게 울리고 있었지만, 형원은 마치 그런 것들은 모두 잊은 듯, 소빈의 상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괜찮은 것이냐?”
“……좋지 않습니다.”
대답하는 형원의 표정이 잔뜩 찡그려졌다.
“어디가 다친 거냐? 외상은 보이지 않는데.”
소빈의 몸에도 이곳저곳 다친 곳이 있었지만,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진신내력을 사용하면서 진기가 고갈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진기의 고갈?”
“생명력이나 다름없는 힘입니다. 그런 힘을 쓴다는 건…….”
무인이기에 쓸 수 있는 힘, 힘을 가질 수 있기에 선택할 수 있는 힘이지만, 그 힘을 가져다 쓴다는 것은 남은 생을 포기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형원의 음성이 무겁게 이어졌다.
“숨이 붙어 있는 것도…… 고작 30분이 최대일 겁니다.”
겨우 천마 강시 하나를 처리하고 뒤를 데스 나이트에게 맡기고 돌아온 우빈이 그 이야기를 듣고, 검을 떨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