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장송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금 태극혜검을 흩뿌렸다.
그에 맞춰 혁련무궁이 천마오검을 펼쳤다.
건곤의 힘이 모든 것을 제거하려는 듯, 시우에게 쏘아져 갔다.
[익스플로전]
[아이스 캐논]
[윈드 블레이드]
[콜 라이트닝]
시우의 손에서 네 개의 마법이 융합되어 건곤의 힘에 맞부딪쳤다.
펑!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눈이 부신 광원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잠시 시선을 피하던 장송계는 순식간에 뒷덜미가 강하게 잡히는 것을 느꼈다.
“헙!”
뒷덜미가 잡혀 몸이 붕 뜨자 깜짝 놀란 장송계가 고개를 들었고, 그곳엔 심각한 표정의 혁련무궁이 자신들이 벗어난 장소를 가리키고 있었다.
쾅!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연무장의 바닥이 깊게 파이며 갈색의 속살을 드러냈다.
시우의 마법이 건곤의 힘을 소멸시키고 그대로 장송계에게 직격했던 것이다.
“어, 어찌.”
시우는 재밌다는 표정이었다.
“마법사도 아닌 양반들이 참 재미난 공간을 많이 만들었네. 테마파크에라도 온 기분인데?”
시우의 손에선 각기 크기가 다른 마법진들이 생성되었다.
“내가 또 마법사 이전에 호기심 가득한 연구가이기도 해서 말이지.”
커다란 마법진은 3중으로 겹겹이 쌓인 거대한 마법진이고, 작은 마법진은 푸른 광원을 내는 2중 마법진이었다.
[윈드스톰]
[체인 라이트닝]
두 개의 마법진이 하나로 합쳐지며, 총 다섯 개의 복잡한 중첩 마법진으로 변했다.
파지직, 파지직.
허공의 공기들이 서로 부딪치며 정전기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정전기는 마치 바람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장송계와 혁련무궁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검을 든 손을 타고 오르는 전기의 찌릿함에 금방이라도 검을 놓칠 것 같아 장송계는 급하게 내공을 끌어올렸다.
혁련무궁의 표정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휘이이잉.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눈앞엔 거대한 폭풍이 생겨났다.
기이하게도 폭풍은 바람과 수분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푸른색의 광원을 내뿜는 번개로 만들어진 폭풍이었다.
번개 폭풍의 위세는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지경이었다.
혁련무궁이 잡은 장송계의 몸이 자꾸만 폭풍 쪽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교주!”
급박해진 장송계의 외침과 함께 혁련무궁이 허공을 두 번 박찼지만, 그들의 신형은 쉽사리 번개 폭풍의 영향권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큭.”
허공답보를 펼치는 그의 발이 제자리를 맴돌자, 혁련무궁은 결심한 듯 장송계의 뒷덜미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장송계의 옷은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당겨졌다.
“중심을 잡아라. 도사!”
펑!
화류무극장의 비의가 담긴 수법으로 쏘아진 장송계는 마치 폭풍의 기세를 뚫고 날아가는 번개 같았다.
너무 빠른 기세로 쏘아나간 탓에 장송계는 바닥에 착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퍽!
흙모래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착지한 장송계가 재빨리 고개를 들어 혁련무궁을 바라봤다.
화류무극장을 쏘아낸 반탄력으로 혁련무궁은 그대로 번개 폭풍 속으로 끌려들어 갔다.
조용히 나부끼던 번개 폭풍 속으로 혁련무궁이 들어서자 전도체에 반응하는 전기처럼 번개 폭풍이 사방으로 날뛰었다.
파지지지지직!
“끄아아아악!”
사방엔 수 개의 태양이라도 생긴 것처럼 물체의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밝은 빛이 생겼다.
번개 폭풍 속에서 비명을 지르던 혁련무궁의 목소리가 잦아들자, 장송계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언제나 마(魔)가 없는 무림을 꿈꿔 왔다. 하지만 지금 그가 죽어선 안 되었다.
그의 간절함이 닿았던 것일까?
푸른빛으로 가득하던 번개 폭풍의 중심에서 검은 용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검은 용은 폭풍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 폭풍의 눈 속에서 고고히 떠올랐다가 몸을 뒤집어 그대로 번개 폭풍의 핵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쐐애애액!
퍼퍼펑!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검은 용의 폭발과 더불어 번개 폭풍은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산산이 부서졌다.
갑자기 들이닥치는 번개의 쓰나미에 장송계는 급하게 호신강기를 일으켰고, 강기 밖으로 찌릿하게 스치는 번개의 영향을 느껴야 했다.
폭풍이 가시고 사위가 잠잠해지자, 장송계가 겨우 고개를 들었다.
폭풍의 중심에선 온몸이 시꺼멓게 타버린 혁련무궁이 오연하게 서 있었다.
“교주! 괜찮으시오!”
혁련무궁은 대답이 없었다.
한팔만 남은 그의 손은 교주의 신물인 파천마검이 들려 있었고, 그의 시선은 오직 시우를 향해 있었다.
“말코 도사.”
혁련무궁의 말에 장송계가 재빨리 검을 들고 뛰려 했다.
“내 금방 돕겠소!”
“돌아가라.”
“무슨 말이오?”
“강호맹으로 돌아가, 무림을 지켜라.”
“그러니까 그러기 위해 지금….”
“이 이상 우리의 작전은 무의미하다.”
“그게 무슨….”
혁련무궁이 고개를 돌려 장송계를 바라봤다.
시꺼멓게 타버린 피부 덕분에 하얀 눈동자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지난 오랜 역사 속에서 정파가 살아남았던 것이 마교보다 강해서는 아니었지 않느냐.”
“…….”
혁련무궁의 말에 장송계는 입술을 떨며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계속 싸우면 이긴 후에도 강호맹은 사라질 것이고, 네가 간다면 내가 지더라도 강호맹은 남을 것이다.”
장송계가 입술을 질끈 물었다.
“뒤를 부탁하겠소.”
장송계가 검을 집어넣자 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밌네, 내 허락도 없이 어딜 마음대로 가려고 하는 거지?”
시우의 손에서 이미 완성된 마법진이 융합을 시작하고 있었다.
[프로즌 패더]
[윈드 블레이드]
두 개의 마법은 장송계와 혁련무궁이 쓴 건곤의 힘과 달리 마법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특성을 확연히 드러내며 쏘아진 한 개의 기류는 더욱 커다란 파괴력을 선보였다.
마법의 빛이 장송계에 다다랐을 때. 혁련무궁의 검이 시우의 빛을 막아섰다.
“크윽! 어서 가라! 말코 도사!”
혁련무궁의 말에 장송계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장송계. 형원의 동생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 거다. 만약 그 아이를 건드린다면, 강호맹 뿐만 아니라 무당파의 주춧돌 하나까지도 남겨두지 않겠다.
시우의 낮은 목소리가 장송계의 머릿속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장송계는 시우를 한 번 본 후 달리기 시작했다.
시우의 손에서 쏘아진 빛을 막아낸 혁련무궁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번개의 고열로 타버린 신체가 극저온의 얼음마법으로 금방 얼어버렸고, 마법의 영향이 풀리자 얼었던 신체가 녹으면서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상처 곳곳에서 진물이 터져 나왔다.
“이것까지도 예상한 것인가?”
혁련무궁이 진물이 터지는 자신의 상처를 보며 물었다.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았지.”
고열의 공격, 그 후에 극저온의 공격. 인간의 신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공격을 연속으로 받아낸 혁련무궁의 신체는 무너질 듯 위태해 보였다.
“마법사란 그런 것까지 생각하는 건가?”
“장송계를 놓아준 건 그런 마법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이미 알고 있었나?”
혁련무궁이 씁쓸하게 웃었다.
혁련무궁은 시우와 다시금 맞붙고 싶었다.
평생 호적수를 만나보지 못한 그에게 시우는 고독감을 풀어주는 존재였다.
같은 무인이 아니란 것이 안타까웠지만, 그런 존재를 만났다는 것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에게 그런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군림하던 곳이 그의 손과 발을 묶었고, 그가 지배하던 이들이 그의 의지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대가는 이미 치렀다.”
많은 대가를 치렀다.
팔을 잘라내고, 같은 하늘 아래서 살 수 없는 이들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희생을 치른 뒤에야 그의 앞에 서게 되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지? 강호맹이 없더라도, 마교는 존속됐을 텐데.”
당초 시우의 목적은 우빈의 단전을 고치는 것.
혁련무궁에게 나서지 말라는 약속을 했던 것은 쓸데없는 싸움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강호맹과의 싸움은 피할 수 없었지만, 천년 마교는 원한다면 나서지 않고 더욱 힘을 키워 상계를 홀로 지배할 수도 있었다.
혁련무궁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다 타버린 그의 입술 사이로 하얀 이빨과 잇몸이 흉측하게 드러났다.
“아까 말한 대로, 그것이 무림이기 때문이다.”
경쟁자가 없는 승부는 의미가 없다. 적이 없는 전투는 이뤄지지 않고, 라이벌이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
혁련무궁이 홀로 고독한 이유는 그가 상계의 최강자이기 때문이었고, 천년 마교가 십만대산을 가득 채울 정도로 큰 세력을 이룬 것은 무림이라는 거대한 세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당신의 말도 안 되는 바람 때문에 나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는 중이야.”
혁련무궁이 형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아이의 동생이라면 걱정 말아라. 본교의 교도들이 지키고 있고, 그 아이의 몸에 생채기 하나 내지 말라 명령했다.”
“그대가 죽어도, 교도들이 그 명령을 따를까?”
“교주령은 마교의 약속이다. 교주의 생사에 무관하다.”
“역시 내가 보는 눈이 틀리지 않았네.”
시우가 천천히 형원에게 걸어갔다.
시우의 손에서 오랜만에 완드가 생성되었고, 완드의 움직임을 따라 형원의 주변으로 마법진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에서 나오지 마라. 이곳에서 나오면 나도 너를 책임져 줄 수 없다.”
“괜찮은 거죠?”
시우가 불안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형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걱정 말아라. 이제 곧 동생을 볼 수 있을 거야.”
돌아서는 시우의 손에 쥐어진 완드가 천천히 형태를 변형시키기 시작했다.
완드는 곧이어 검의 형태로 변하였고, 검신에선 검은색의 기류가 끝없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법사가 검을 쓴다고 해서 자존심 상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
시우가 웃으며 말하자, 혁련무궁이 호탕하게 웃었다.
“크하하하! 그대는 내가 만나본 최강의 무인이다. 이 이상 내가 무엇을 바랄까!”
혁련무궁의 몸에서 마기가 용솟음쳤다.
장송계와 손발을 맞출 때와는 차원이 다른 진득한 마기가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넘실거렸다.
“팔을 자른 건 이것 때문이었군.”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패도적인 기운에 시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그대의 최후에 가장 어울리는 적이 아니겠는가!”
갈무리하지 않는 혁련무궁의 기운이 사방으로 넘실대었다.
공간이 일그러질 정도로 패도적인 기운은, 시우가 만든 마법진 안에서 보호받는 형원도 당장에 도망치고 싶을 만큼 두려운 힘이었다.
혁련무궁의 마기가 한바탕 시우를 휩쓸었다.
정제되지 않은 난폭한 마기가 시우를 덮쳤고, 시우의 천살지존검이 마기를 맞대응해 보았지만 겨우 시우의 몸을 보호하는 정도였다.
“크으윽. 이 정도의 마기는 악마들이나 펼칠 수 있을 텐데.”
“악마? 이 몸은 마왕이다!”
또 한바탕의 마기가 시우를 덮쳤다.
거듭된 공격에 시우의 몸이 점점 만신창이로 변해가고 있었다.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야.”
시우의 검이 황금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검봉에서 시작한 금색의 물결이 검극까지 퍼지고, 검에선 검은 기류 대신 황금색의 기류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허어…. 금강이라니…? 소림의 힘을 쓸 수 있었더냐!”
시우의 손에 쥔 검을 보는 혁련무궁의 눈이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이 공간 덕분에.”
시우의 대답에 혁련무궁이 광소를 터트렸다.
“결국 너를 묻으려던 이 공간이 우리의 무덤이 되는구나!”
“즐거워 보이네.”
“어찌 즐겁지 않겠느냐! 상계의 오랜 역사 속에서 그 누구도 너와 같은 호적수를 만날 수 없을 터인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기왕이면 당신과 이런 곳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인간의 인연이란 결국 인간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지.”
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우의 검에서 폭발적인 금강의 힘이 솟아올랐다.
혁련무궁의 몸에선 여전히 칠흑 같은 마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두 개의 힘은 피할 것도 돌아갈 것도 없이 정면으로 맞부딪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