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구양패는 제갈적룡의 신위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짐승처럼 내 발로 땅을 딛고, 금방이라도 튀어 오를 듯 몸을 잔뜩 낮춘 자세다.
핏발선 두 눈의 눈동자는 검은색의 동공 대신 노릿한 빛깔이 돌고 있었다.
살짝 벌려진 입에선 실성한 것처럼 침을 흘리고 있었다.
“제갈가의 적성(赤星)이 꼴이 말이 아니구나, 형제의 난으로 청성의 실험체라도 된 것이냐?”
제갈세가의 두 형제 적룡과 청룡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한 세 대에 너무도 뛰어난 두 사람의 등장은 뭍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지만, 가문 내부에선 언제나 큰 근심거리였다.
과거와 달리 현대에 들어서며 장자계승과 남아계승의 원칙도 희미해지고, 가문의 성장과 함께 한 외인들의 유입은 세가 내부의 갈등을 점점 키워갔다.
그리고 사람들은 언젠가 세가 내부에서 두 형제간의 돌이킬 수 없는 싸움이 있을 거라 예상했다.
“크르르.”
적룡은 구양패의 말을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그저 노란빛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로 구양패를 바라볼 뿐이었다.
“흐흐, 상관없는 것인가? 이 싸움에 끼어들었다는 것은 맹의 뜻을 거부한다는 것으로 알아도 되겠지?”
“크르르.”
구양패는 대답 없는 적룡 대신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남궁가의 애송아. 네놈에게 물은 것이다.”
구양패의 틈을 노리며 숨어 있던 남궁청이 움찔했다.
제갈청룡이 자신이 사금적을 맡을 테니 제갈적룡과 구양패를 맡으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남궁청은 그 의견에 적극적으로 반대를 했다.
세 사람이 힘을 모아 한 사람을 처리하기도 어려울 텐데, 각자 싸운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자신이 알기로 제갈적룡과 제갈청룡은 무공에 큰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이 타고난 재능은 몸보단 머리에 더욱 집중되어 있었다.
“걱정 마십시오. 지금 무림에서 형님을 상대할 수 있는 자는 몇 되지 않을 겁니다.”
제갈청룡의 말에 남궁청은 안도감보단 궁금증이 더욱 커졌다.
미친 제갈적룡이 어떻게 강자가 될 수 있다는 거지?
아니나 다를까 남궁청의 근심은 현실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 해도 이미 제갈청룡이 사금적에게 가버린 이상 돌이킬 수 없었다.
남궁청은 손에서 구성의 기운을 담은 창궁무애검법이 펼쳐지며 그의 신형이 벼락같이 구양패를 찍어 내렸다.
콰콰쾅
커다란 폭음과 함께, 수직으로 낙하했던 남궁청은 낙하했던 속도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횡으로 날아갔다.
구양패와의 일전으로 몸을 가누지 못한 남궁청은 무방비로 날아갔지만, 제갈적룡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쐐애애애액
뒤이어 섬뜩한 소리를 울리며 잔혈오조수가 뒤따라 왔다.
충격으로 온몸이 딱딱하게 굳은 남궁청이 무방비한 상태로 잔혈오조수에 당할 것 같은 순간.
제갈적룡이 손과 발로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크아아앙!”
괴물 같은 울음소리와 함께 적룡의 손에서 열 개의 조영이 쏘아져 나갔다.
붉은빛의 조영이 잔혈오조수와 만나는 순간 거친 파열음을 내며 사라졌다.
그가가가가.
제갈적룡은 마치 그것이 신호탄이라도 되는 듯 구양패에게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짐승처럼 길어진 손톱과 흡혈귀처럼 길게 자란 이빨이 제갈적룡을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게 만들고 있었다.
“흥! 이 몸이 대주의 자리를 공으로 딴 것이라 생각하느냐!”
적혈태도가 반월을 그리며 반달 모양의 강기가 사방으로 폭사되었다.
인간의 신위라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파괴력이었다.
“크아아아!”
짐승의 울음소리와 함께 제갈적룡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제갈적룡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사각지대를 교묘하게 파고들고 몸을 비틀어 구양패의 공격을 모두 피해 내었다.
콰과과광!
제갈적룡이 피한 공격들은 모두 남궁청이 막아내야 하는 실정이었다.
‘이 정도의 파괴력이라니!’
남궁청은 뒤에 무방비로 쓰러져 있는 소빈 때문에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구양패와 제갈적룡의 전투가 너무 빨라 눈으로도 쫓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흥, 수인(獸人)의 술은 이지 없는 전투 기계를 만들 뿐이다.”
반월을 그린 적혈태도가 당겨지자, 제갈적룡이 주변의 인력에 끌리듯 구양패에게 끌려가기 시작했다.
“이지가 없는 존재는 고수들에게 장난감에 불과하다.”
가기 싫은 곳에 억지로 끌려가는 듯 적룡은 손과 발을 허둥거렸다. 그러다 이내 자세를 바로잡고, 구양패에게 다가가기 위해 땅을 발로 찼다.
“흥! 이지는 사라졌어도 자존심은 남은 것이냐!”
츠츠츠츠츠
적혈태도의 고리들이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네놈에게 어울리는 최후의 초식이다!”
고리에선 무수히 많은 붉은 원의 강기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뭍사람들은 적혈태도의 무서운 점이 태도에서 나오는 파괴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 적혈태도의 무서운 점은 고리에서 시작되는 무수히 많은 환들의 공격이었다.
겉에 보이는 것과 다르게 세심한 컨트롤이 장기인 구양패는 언제나 이렇듯 파괴적인 공격으로 상대의 혼을 빼놓은 후에 붉은 환으로 상대의 심장을 박살내었다.
사방을 점한 붉은 환들이 달려오는 제갈적룡에게 폭사 되었다.
인간은커녕 짐승인 그라도 피할 수 없는 완전한 공격이었다.
붉은 환에서 느껴지는 가공할만한 위력에 남궁청이 결국 자리를 박차고 뛰어갔다.
“안 돼!”
남궁청이 미친 듯이 달려 봤지만 적룡과 구양패에게 닿기는 한참이나 먼 상황이었다.
더구나 적룡은 구양패가 만든 인력으로 더욱 속도가 빨라진 상황.
손가락 크기의 붉은 환이 제갈적룡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충격음도 피격음도 없을 정도로 붉은 환의 파괴력은 굉장했다.
“제갈적룡!”
남궁청의 절규가 구양패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했다.
“걱정 마라, 다음은 네놈….”
승리를 확신한 구양패가 말을 잇다가 갑자기 두 눈을 부릅떴다.
온몸이 붉은 환으로 꿰뚫려 이미 숨을 거두었어야 할 제갈적룡이 아직 자신에게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던 탓이다.
“이…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적혈태도의 고리가 미친 듯이 흔들리며 제갈적룡을 향해 도강을 쏟아냈다.
기이하게도 사람의 신체와 닿는 순간 신체는 가루가 되어 버려야 할 도강이 제갈적룡의 몸을 그냥 통과해 버리고 있었다.
마치 제갈적룡은 유령이라도 된 것처럼 도강들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채로 구양패의 지척에 닿아 있었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제갈적룡의 긴 손톱이 구양패의 목을 쓸고 지나갔다.
인간의 손톱은 무언가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기의 영향으로 날이 바짝 선 손톱은 말이 달랐다.
경동맥을 비롯한 내부의 장기와 연결된 구양패의 목이 적룡의 손에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구양패는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상처를 막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신의 목에서 솟아 나오는 피분수가 제갈적룡의 몸을 그대로 통과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구양패는 죽기 직전까지 자신이 보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남궁청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구양패가 죽긴 했지만, 과연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강기의 환과 도강을 맞았는데.’
짐승같이 기민하고 빠른 움직임을 보이긴 했지만, 제갈적룡은 짐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의 움직임은 눈에 빤히 보였다. 일반인에게 위협적일지 몰라도, 자신 정도만 되어도 제갈적룡의 움직임을 손쉽게 막아 낼 수 있었다.
싸늘한 주검으로 바뀐 구양패 또한 자신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크르르르.”
낮은 울음소리에 남궁청이 정신을 번뜩 차렸다.
구양패의 시체를 툭툭 건드리던 제갈적룡은 이내 흥미가 없는 듯 고개를 돌려 남궁청을 바라봤다.
노릿한 빛이 감도는 그의 동공이 남궁청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저, 적룡?”
남궁청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저벅저벅
제갈적룡은 짐승처럼 남궁청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제갈적룡이 뿌리는 기운은 명백한 살기였다.
야수처럼 정제되지 않은 살기를 받은 남궁청의 마음이 급박해 지기 시작했다.
‘제길, 어쩌지?’
뒤로는 소빈이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고, 자신은 어떻게 제갈적룡을 상대해야 할지 감을 못 잡고 있었다.
‘이럴 바엔.’
남궁청의 온몸에서 창궁대연신공의 기파가 뿜어져 나왔다.
그의 무복이 터질 듯 부풀고, 그의 어깨에선 푸른 수증기가 넘실거렸다.
한순간의 강력한 기파에 제갈적룡은 진짜 짐승처럼 잠시 경계하다 몸을 더욱 낮추었다.
‘온다.’
구양패와의 일전을 지켜본 남궁청은 곧 제갈적룡이 튀어 오를 것이라 예상했다.
남궁청의 손에서 대연검법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아는 무공 중 가장 강한 무공은 창궁무애검법이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가장 손에 익은 무공이 더 효과적이라 생각했다.
공기의 흐름이 남궁청을 중심으로 바뀌기 시작하였고, 이상 기류를 감지한 제갈적룡이 곧장 남궁청의 목을 놀리고 튀어 올랐다.
지잉.
남궁청의 손에서 검기가 쏟아져 나가는 순간.
제갈적룡의 몸 주위로 하얀색 판들이 생성되더니 순식간에 제갈적룡을 커다란 상자 안에 가둬 버렸다.
“크아아악!”
제갈적룡은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사방으로 흥분하여 날뛰었고, 상자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했다.
“괜찮으세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제갈청룡이었다.
“대, 대체 어찌 된 거냐?”
“실험의 실패로 저리된 겁니다. 힘을 개방했을 때는 이성을 잃어 되돌리는 데 한참의 시간이 걸리죠.”
남궁청은 불안한 눈빛으로 상자를 바라봤다.
“괘, 괜찮은 것이냐?”
제갈청룡은 씁쓸한 눈빛으로 상자를 바라봤다.
남궁청이 하는 말이 어떤 함의를 담고 있는지 알아서였다.
제갈적룡의 상태를 본 사람들 대부분은 그를 동정하기보다, 그의 위험성에 대해서 더욱 걱정했다.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서운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괜찮습니다. 저 안에선 물체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그, 그래? 근데 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분명 구양패와 맞붙을 때, 도강이 그의 몸을….”
남궁청은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자신의 표현력을 저주하였고, 제갈청룡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선선히 끄덕였다.
“실험의 부작용인 듯한데, 어떤 이유로 그렇게 가능한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고생이 많았구나.”
남궁청은 그제야 제갈청룡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러다 문득 잊고 있던 것을 깨달으며 물었다.
“그 다른 대주는?!”
남궁청과 제갈적룡이 구양패를 상대하는 동안 제갈청룡 또한 사금적을 상대하러 갔다.
여러모로 전력의 차가 확실했지만, 제갈청룡이 지휘하던 상황이었기에 달리 말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자는 처리했습니다.”
“벌써?”
“네, 저 친구가 꽤 실력이 좋더군요.”
제갈청룡이 가리키는 곳에 처참한 몰골의 우빈이 일행과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누나!”
우빈이 경신법을 펼쳐 순식간에 소빈의 옆으로 다가갔다.
서로 인사를 나눌 사이도 없이, 모든 이들이 소빈에게 다가갔다.
의학에 약간 조예가 있는 제갈청룡이 소빈의 맥을 짚었다.
“…끄응.”
“어떻게 된 거죠? 저희 누나 괜찮은 건가요?”
제갈청룡은 재빨리 품 안에서 환약을 꺼내어 소빈의 입에 넣고, 침통을 꺼내어 사라져가는 맥을 짚기 시작했다.
“상세가 너무 좋지 않습니다.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소빈의 숨소리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