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콰콰콰쾅!
계곡이 무너지면서 거대한 암석들이 모래처럼 날렸다.
정현민은 필사적으로 경공을 펼치며 집채만 한 돌들을 피하기 바빴다.
김준상을 비롯한 이프리트 팀들도 다르지 않았다.
최후의 일격을 위해 정령의 정체를 숨겨야 했던 그들은 암석을 쳐내기보단 피하기에 급급했다.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가장 걱정했던 것은 천마교룡대와 천마위룡대의 참전이었는데, 그들은 사금적과 구양필의 지시를 받은 것인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이 참전하지 않는다고 해서 위험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되레 그들이 참전하지 않아도 될 만큼 뒷사람의 무력이 뛰어나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그들의 여유를 증명하듯 사금적과 구양패의 신위는 놀라웠다.
독문 무공인 적혈마공은 천마심공을 기본으로 자신의 특성을 살린 무공답게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했다.
특히나 적혈마공의 두려운 점은 선공 이후에 후공으로 잔혈오조수가 뒤따라 온다는 것이다.
그가 태도를 휘두르면 태도의 목표물이 산산조각이 나고, 태도가 휘둘려진 방향으로 다섯 개의 날카로운 검기가 검로를 찢어발긴다.
뭇 상계인들은 적혈태도에 달린 고리가 그 효과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자세한 내막은 알려지지 않았다.
사금적은 구양패와 달리 적수공권을 주로 사용했다.
그가 익힌 암흑수라일천권은 마교 백대무공 상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적수공권은 최강의 무공이라 불리는 소림의 백보신권에 비견될 만한 유일한 무공이라고 상계에 알려져 있었다.
‘이게 백보신권에 비견된다고?’
하지만 암흑수라일천권을 직접 상대하는 우빈의 심정은 가히 절망적이었다. 암흑수라일천권이 백보신권에 비견된다면, 백보신권 또한 이에 못지않은 대단한 무공이라는 이야기였고, 그렇다는 것은 곧 천살지존검을 익히고 그것을 태백검법으로 융합하여 스스로 경지에 올라섰다 자부할 수 있는 자신의 무공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야기였으니까.
“흐익!”
우빈이 가까스로 고개를 숙이자 그의 뒤통수로 묵직한 권영이 스쳐 지나갔다.
콰콰콰콰쾅!
그리고 이어 뒤에서 들리는 계곡 무너지는 소리에 그의 권영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놀랍군. 태백 정가의 무공이 이렇게 뛰어났던가?”
사금적의 칭찬은 우빈을 전혀 기쁘게 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말은 진작 죽었어야 할 네가 아직 살아 있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끄응.’
평소 같았으면 시우를 따라다니면서 배운 대로 너스레라도 한번 떨어 주고 싶었지만, 사금적의 공격은 우빈에게 작은 입을 뗄 시간도 주지 않았다.
더구나 빈틈없이 공격하고 있는 사금적의 태도는 아직 본격적으로 싸움을 하지 않은 사람인 듯 툭툭 손을 휘두르고 있을 뿐이었다.
‘언제까지 당할 것 같으냐!’
검을 움켜쥔 우빈이 수평으로 몸을 뉘며 앞으로 치고 나아갔다.
그의 검을 중심으로 대기가 요동을 치며 거압의 힘이 사금적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태백압천!”
여유롭게 손을 휘적거리던 사금적이 갑작스레 주머니에서 손을 빼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양손을 휘둘러 순식간에 우빈의 압력을 해소했다.
“암흑권!”
두 개의 거대한 경력이 허공에서 부딪쳐 사방에 자욱하던 모래 먼지들을 순식간에 밀어냈다.
퍼퍼퍼펑!
꽤 만족스러운 일격을 날린 우빈은 무릎을 딛고 일어서 사금적을 찾았다.
하지만 그가 날아갔을 거라 예상한 지점에 그는 보이지 않았다.
“설마!”
사금적의 모습을 확인한 우빈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그의 신형은 제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사금적은 예의 무감각한 얼굴로 우빈을 보며 말했다.
“자연검인가? 어린 나이에 대단하군, 하지만 스스로 깨달은 바가 아니라 아직 미약하구나. 누구한테 배운 거지? 내가 알기론 태백 정가의 무공은 초월의 경지에도 이르지 못할 수준일 텐데.”
이제야 조금 숨 돌릴 틈이 생긴 우빈이 웃으며 말했다.
“천년마교가 십만대산에서 일절 외출을 안 한다고 하더니 정보력이 좀 딸리나 보네요?”
“그럴 리가. 너희의 수준이 초월의 경지 이상이었다면 너희의 무공에 관심을 가졌었겠지.”
애초에 관심도 없었다는 말에 우빈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럼 관심 한번 가져 보시죠. 이렇게 확실하게 증거가 있는데.”
사금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스스로 말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 거다.”
본격적으로 하려는 듯 기수식을 잡는 사금적의 모습에 우빈이 크게 침을 넘겼다.
* * *
“크하하하하하!”
구양패와 일전을 벌이고 있는 소빈의 상황도 우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바닥은 폭격을 맞은 듯 푹푹 패이고, 천년의 세월을 견뎌온 계곡은 수수깡처럼 바스러졌다.
특히나 그의 공격에는 잔혈오조수가 따라붙어 공격을 피할 수 있는 활로가 많지 않았다.
한쪽 면으로 피할 때마다 수빈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구양패가 틈을 만들어 공격해 왔다.
“크하하하하! 제법 검을 가지고 놀 줄 아는구나.”
구양패에게 인정받았지만 수빈의 기분 또한 우빈과 다르지 않았다.
‘자연검이 버거운 내력이라니.’
수빈은 속으로 구양패에 대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수빈은 천살지존검을 얻고 자연검을 이해하면서 본디 쌓은 내력보다 더욱 많은 양의 내력을 상대의 내력과 무관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반면에 구양패는 자연검의 검리 같은 건 전혀 없이 순수한 내력만으로 무공을 펼치고 있음에도 수빈을 한참이나 웃도는 위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새삼 천년마교의 저력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재미난 검을 가졌다만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천마심공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죠.”
소빈의 대답에 구양패는 광소를 터트렸다.
“뿌헐헐헐. 네가 본교의 마인들보다 낫구나. 내 친히 널 고통 없이 조각조각 내주마!”
구양패의 어깨에 붉은 수증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몸에서 폭사 되는 기류는 사방의 공기들마저 찐득하게 밀도를 올릴 정도였다.
그동안의 합이 그의 본신전력은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실제 그가 보이는 무력의 정도는 소빈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고도 남음이었다.
그 순간 소빈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감각을 떠올렸다. 바로 ‘죽음’에 대한 감각.
천살지존검을 익히고 난 후 처음으로 느껴지는 죽음에 대한 위기감이 몰려들어 그녀의 마음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매번 죽음의 순간마다 떠올리는 시우의 얼굴. 하지만 그는 지금 이곳으로 올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이 닿자 소빈은 정신을 번뜩 차렸다.
‘안 돼. 여기서 죽을 수 없어.’
수빈은 검을 고쳐 잡으며 천살지존검의 구결을 외기 시작했다.
천하의 기가 나와 함께하니.
나의 길을 막을 자가 없도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폐를 당기게 만들었던 밀도 높은 공기가 점점 편안하게 느껴졌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뜬 소빈의 눈에서 시뻘건 붉은 색의 안광이 폭사 되었다.
그것을 기점으로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사라져 정 중앙에서 다시 만났다.
챙! 퍼퍼퍼펑!
* * *
독각화망이 사물을 부식시키는 부식액을 쏟아 내었다.
초록색의 부식액이 폭포수처럼 쏟아지자 시우는 곧장 형원을 안고 몇 번이나 블링크를 이용해 독각화망과 천년지주들에게서 멀어졌다.
“저쪽이다!”
계상학이 계곡 위에 위치한 곳을 가리키자 천년지주와 독각화망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계곡 위에서 그 광경을 보며 질려 하던 형원을 시우가 흔들어 깨웠다.
“정신 차려!”
“여, 여기서 어떻게 나갈 수 있죠?”
형원의 말에 시우가 그의 머리 한 부분을 만졌다.
그러자 형원의 온몸을 감고 있던 알머스트의 얇은 갑주들이 접혀 가며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형원의 얼굴엔 공포심으로 가득했다.
짝!
시우의 손바닥이 움직이고, 형원은 볼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그제야 시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잘 들어. 너 여기 왜 들어왔어?”
“…….”
형원의 시선은 시우와 영물들을 오갔다. 그토록 애타게 찾던 여동생의 존재도 일순 잊어먹을 만큼 영물들이 보여 주는 시각적 폭력성은 대단했다.
형원은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운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저건 그냥 허상이야. 이 세상에 없는 것. 저 허상이 너를 두렵게 만든 이유는 너 스스로가 두려워하고자 했기 때문이야. 다시 봐.”
“…….”
형원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하지만 조금씩 제 호흡을 찾기 시작했다.
“그동안 너를 괴롭혀 왔던 인간들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확실해?”
“…….”
“네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복수해달라고 했던 이들보다 무서운 존재인 거 확실하냐고.”
형원이 고개를 돌려 시우를 바라봤다.
더 이상의 흔들림은 없었다.
“아뇨.”
“그래. 우리의 목적은 여길 나가는 게 아니야. 네 동생을 구하고 그동안 너에게 인간으로서 해선 안 될 짓을 한 놈들을 벌주기 위해서지.”
“네.”
“5분. 딱 5분만 도망 다닐 수 있겠어?”
형원은 영물들과 계상학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
시우가 알머스트를 조작해 다시금 형원의 헬멧을 씌워주었다.
“저 부식액이나 지네의 독을 한 번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로 인해 고장 나면 더 크게 다칠 수 있으니까. 최대한 당하지 마라.”
“네.”
형원의 대답을 끝으로 두 사람은 계곡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시우는 곧장 등 뒤의 날개를 펼쳐 계상학에게 날아갔다.
계상학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시우를 보며 괴항지를 날렸다.
괴항지는 화살처럼 시우에게 날아가다 갖가지 무기로 변화해 시우를 공격했다.
[거인의 손]
커다란 거인의 손이 나타나 무기들을 막아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미끼를 던지고 나를 상대하려 하는가?”
“당신이 죽는다고 이 공간이 달라지나?”
시우의 말에 계상학이 히죽 웃었다.
“역시 만만치 않군.”
“궁금했어. 내가 만약 이런 공간을 만들 수 있다면, 상대방의 무력 같은 건 애초에 사용하지도 못하게 할 거라 생각했거든. 그런데 난 이렇게 마법을 쓸 수 있잖아? 뭐 밖에서만큼은 아니지만.”
시우의 손에서 헬 버스터와 아이스 블라스터가 생성되어 계상학에게 날아갔다.
계상학의 사방에서 날리던 괴항지들이 마치 실이 매달린 것처럼 움직이며 계상학의 전면 네 방위를 점했다.
네 방위를 정한 괴항지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막을 만들었고, 시우의 마법을 막아내었다.
파스스스스스
이번엔 계상학이 커다란 철퇴를 만들어 시우를 공격했다.
시우는 자신의 주위로 반투명한 막을 만들어 철퇴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지, 혹시 이 공간은 모산파의 술법가들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닌가. 어쨌든 모산파의 술법가도 대 자연의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자신들에게 딱 맞는 기운만으로 이 공간을 채운 거겠지.”
시우의 말에 계상학이 공격을 멈췄다.
“그러니 나같이 비슷한 능력이지만 다른 기운을 쓰는 사람은 의문 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거겠지. 분명 밖과 다름없는 공간임에도 이질감을 뿌리칠 수 없으니 말이야.”
시우의 말에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던 계상학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역시 대단하군. 자네의 무력이 대단한 건 그저 운이 좋은 것 때문만은 아니란 걸 믿을 수 있겠어. 맞네. 자네 말대로 이 공간은 우리 모산파 만을 위한 공간이네. 무공의 고수도 우리의 술법을 쓸 수 없는 이상 이 안에선 무력할 수밖에 없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곳이 자네의 무덤이 될 거라네.”
“당신이 모르는 게 있는데. 내 마법 중에는 상대방의 머릿속에 든 것을 빼낼 수 있는 마법이 있어.”
시우의 말에 계상학이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지금 내 머릿속을 뒤져 보겠다는 말인가?”
시우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물론 당신을 붙잡기는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시우의 손이 하늘을 가리켰다.
계상학은 자신도 모르게 시우가 가리키는 하늘을 바라봤다.
그곳엔 빌딩만큼 커다란 아이스 블라스터가 하얀 김을 흩뿌리고 있었다.
시우의 손이 번개같이 떨어지고, 아이스 블라스터가 지면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계상학은 재빨리 괴항지를 던져 커다란 막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아이스 블라스터는 곧장 강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퍼퍼펑!
큰 폭발음과 함께 강물이 해일처럼 솟구치고, 강바닥이 폭격을 맞은 것처럼 일어났다.
그리고 그 동시에 강바닥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그 안에 숨어 있던 모산파의 무인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헙!”
블링크로 공간이동을 한 시우가 일그러진 공간 안에 있던 모산파의 무인의 목덜미를 잡고 다시금 공간이동을 했다.
“봐. 이러면 나도 이제 모산파의 술법을 사용할 수 있지?”
시우의 손에서 검은 촉수들이 모산파 무인의 칠공으로 빠르게 침투했다.
“끄아아아악!”
시우의 마법이 고통스러운지 모산파 무인의 비명이 공간 내부를 가득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