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아버님이 그러셨죠? 선조분들 중에서도 신화를 좋아하시는 분이 계셨다고.”
제갈청룡은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제갈사열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은하칠성검의 전설은 사실이었습니다. 신투 진소율의 존재도 사실이었고요.”
은하칠성검은 제갈세가의 선조인 은하기신 제갈현의 검으로 전해진다.
기문둔갑과 검에 일절이었다고 전해지는 그는 검으로 당대 천하제일인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가문의 기록 어디에도 그가 익힌 검과 기문둔갑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에 후손들은 검으로서 무림을 횡보하지 못했던 선조 중 누군가 자신들의 바람을 적은 것이라 넘길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전설의 존재인 은하칠성검이 제갈사열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었다.
“그들이 신투 진소율의 무덤이란 것을 알려 줬다는 말이냐?”
그토록 숨기려 했다면 이제 와서 그 정보를 밝힌 것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남궁산이 물었다.
“아니요. 그들은 제게 무덤의 주인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곳에 아무도 나가지 못할 기관을 만들어 달라고 했지요.”
“그럼 어떻게 알아낸 것이냐. 저 검이 네 손에 있는 이유는 무엇이고.”
“그들은 저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해왔습니다. 절대로 그 누구도 나갈 수 없는 기관을 만들어 달라고. 무덤을 둘러보던 저는 기존에 무덤에 설치된 기관과 규모에 궁금증을 가지고 그들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갈사열이 정신을 차리고 제갈청룡에게 물었다.
“무엇이냐?”
“과거의 천마가 와도 나가지 못할 기관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기관을 만들기 위해선 어떤 물건이 필요하다고요. 이 질문엔 두 가지 함의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누굴 기관에 가두려 하는지. 그리고 이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들이 이걸 내놓았다는 것이냐?”
제갈사열이 은하칠성검을 내보이며 말했다.
은하칠성검의 검면엔 금색의 알갱이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별은 별과 연결되어 별자리를 만들었고, 얇은 검면 전체에 우주를 담고 있었다.
“네. 제갈세가에 내려오는 비전의 기문둔갑을 펼치기 위해선 시동에 사용되어야 하는 재화가 필요하다고요. 세상에 없는 것을 내로라하였는데. 그것을 보란 듯이 가져왔으니 그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결국 밝혀지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결국 만든 것이냐?”
“네. 만들었습니다. 그 누구도 빠져나오지 못할 최후의 기관. 지옥관을 말이죠.”
“넌 이 검을 보고도 그런 기관을 만들어주었단 말이냐?”
강호맹은 상계의 공동의 이익을 대표하는 집단이다.
그런 집단이 상계 전체를 상대로 무언가를 숨기고 감추고 있었다면 그들의 존재는 더 이상 무의미해지는 것이었다.
“그 정도의 엄청난 지원을 받으면서 기관을 만들 기회가 또 있겠습니까?”
제갈사열은 영특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아들의 사고방식에 진절머리를 내며 머리를 흔들었다.
“내 품으로 낳은 자식이지만 이해할 수가 없구나.”
“그런 위험한 기관을 만들었다면 목격자를 남기고 싶어 하지 않았을 텐데?”
남궁산의 물음에 제갈청룡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목격자를 남기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기관을 유지 보수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기관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천하에 저뿐이니 기관을 사용하는 동안은 제가 살아 있어야겠지요. 전 그들에게 비밀유지협약을 하고선 1년에 한 번 기관을 점검해주는 대가로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위험한 것 아니냐?”
남궁산의 말에 제갈청룡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미 오대세가를 꿈꾸신 분들이 제 앞에 있지 않습니까?”
제갈사열은 가만히 제갈청룡을 바라보다 물었다.
“넌 강호맹이 얼마나 갈 것이라 보느냐?”
“강호맹은 조만간 상계에서 지워질 겁니다.”
제갈청룡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물론 지금 강호맹이 쫓고 있는 최시우란 자가 살아 있을 때를 말하는 겁니다. 그가 죽는다면 강호맹은 다시금 상계를 지배하고 상계를 나눠 전쟁과 혈투가 끊이지 않는 끔찍한 미래를 만들 겁니다.”
“그가 지옥관에 들어가서 살아남을 확률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제갈사열이 탁자를 내려쳤다.
“그가 이미 지옥관에 들어갔다면 어떻게 되느냐?”
“부디 저희가 늦지 않기를 바랍니다.”
* * *
시우 일행은 두 개의 조로 나뉘어 가기로 했다.
시우가 탐색한 산 너머 반대편에서 감지되는 에너지로 침투하는 조와 동굴을 지나는 조.
시우는 동굴을 지나는 것은 홀로 하겠다 말을 했고, 소빈은 격하게 반대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맹주님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시우는 소빈의 말을 듣고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들은 사람처럼 멍해졌다.
“그거 되게 괜한 걱정 아닌가요?”
“만약의 사태가 일어났을 때, 최소한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소빈은 단호했다.
“하지만, 만약 동굴 밖에 이 녀석의 동생이 잡혀 있다면, 그들을 구출해내는 것도 쉽지 않아요.”
“그건… 그렇지만….”
“직접 동굴로 들어가는 건 미끼를 자처하는 겁니다. 사실은 소빈씨와 일행들이 안전하게 동생을 구출해주길 바라고 있어요.”
시우의 말에 소빈은 심히 갈등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 순간이동 마법이 있으니까. 오히려 혼자 가는 게 더 안전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소빈이 결국 어쩔 수 없이 납득하려 할 때 형원이 나섰다.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내 말 못 들었냐? 나 혼자 가는 게 더 안전하다니까. 그리고 넌 의술 외엔 펼칠 수 있는 의술도 없다면서.”
“그들이 함정을 준비한 거라면 제가 들어가지 않는 걸 수상하게 여길 거예요. 그럼 제 동생이 위험에 빠질 수 있고요. 그리고 제 한 몸쯤은 맹주님이 지켜주실 수 있지요?”
“말이 이상한 거 같다?”
시우의 말에 형원은 배시시 웃으며 소빈을 향해 말했다.
“맹주님과는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너무 걱정마세요.”
형원의 말에 소빈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잘 부탁드릴게요. 신의님.”
“어서 출발해.”
시우의 외침과 함께 소빈과 일행은 시우가 찍어둔 좌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가볼까?”
시우가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동굴을 막고 있던 돌덩이들이 순식간에 날아가며 절벽 일부를 부쉈다.
콰르르릉.
“꼭 그렇게 격하게 하셔야 하나요?”
“이건 선전포고다. 기선제압! 선전포고! 싸움에서 제일 중요한 것들이니 명심해 둬.”
시우는 거침없이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형원은 뻔히 보이는 강호맹의 함정으로 들어가고 있음에도 하나도 불안하지 않았다. 그의 등은 세상 가장 안전해 보였다.
* * *
“누군가 들어오고 있소.”
계상학의 말에, 의자에 앉아 있던 장송계가 벌떡 일어나 스크린으로 향했다.
“왔군.”
“명진 방장은 왜 안 오고 있을까요?”
최시우가 이곳 지옥관으로 들어 왔다는 것은 곧 명진 방장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우 일행을 지옥관으로 넣고는 바로 자신들이 있는 이곳으로 와야 할 명진 방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잘 봐라. 두 명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뒤에서 느긋하게 술잔을 기울이는 혁련무궁의 말에 계상학과 장송계는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그 얘긴.”
“…설마….”
혁련무궁은 그들의 반응에 피식 비웃음을 내뱉었다.
“설마는 무슨, 명진도 당했다는 말이겠지. 아마도 그 일행들은 주변 산을 뒤지며 우릴 찾고 있을 거다.”
경악할 만한 일임에도 혁련무궁은 느긋하기 그지없었다.
“그럼 이럴 때가 아니지 않소, 교주. 혈체강시나 천마강시를 그쪽으로 보내야 하는 것 아니오?”
계상학의 말에 혁련무궁은 여전히 입가에 웃음기를 지우지 않았다.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호들갑을 떨기는.”
“교주!”
“정신 차려라! 우리의 진정한 적이 누구냐?”
“…….”
“저기 보이는 저놈이다. 화산파와 점창을 지우고, 너희들이 정신적 지주로 삼고 있는 땡중도 저놈의 손에 당했을 거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인질이냐? 아니면 저놈이냐?”
“…….”
계상학은 말없이 스크린 속의 시우를 바라봤다.
“애초에 이따위 잔꾀를 부리는 것이 아니었다. 붙으려면 화끈하게 붙었어야지. 결국 선택한 것이 천야총에 놈을 파묻는 것이더냐?”
혁련무궁의 비아냥에 계상학이 말했다.
“이 일이 중국 상계 전체로 퍼지면 교주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오.”
“어차피 우리 천년마교는 수백년간 너희 정파 떨거지의 정적이었다. 우리가 교류한 지 겨우 100년도 되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해라.”
그때 장송계가 나서며 말했다.
“이는 계 문주의 말이 맞소. 이미 화산과 점창이 지워진 일로 상계가 떠들썩할 것이오. 이 이상의 소란은 없어야 하오.”
“겨우 이따위 장난감 같은 기관진식에 놈이 말려 들것 같더냐.”
혁련무궁의 말에 장송계가 말했다.
“교주가 혈체강시와 천마강시를 가지고 있었다니 우리도 진실을 말하겠소.”
“뭐냐?”
“이 시설은 사실 야토가미와의 전쟁이 끝난 후, 당신을 가둘 감옥이었소.”
장송계의 말에 처음으로 혁련무궁의 이맛살이 구겨졌다.
“뭐라?”
“과거 천하무적이었던 천마를 잡기 위해 설계된 감옥이오.”
“빌어먹을 정파 떨거지, 본교의 전설이신 천마가 겨우 이따위 기관진식에 걸려들 것 같으냐?”
“과거라면 천마를 가둘 수 없었을 것이오, 하지만 현대의 과학 기술과 모산파의 술법, 제갈세가의 기문둔갑으로 만들어진 감옥이라면 어떻소?”
“…….”
혁련무궁은 무표정한 얼굴로 장송계를 바라보았다.
“이곳은 최시우 저자의 무덤이 될 것이오.”
* * *
“으악!”
통로 안으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검은 코트를 입은 청년은 아직 앳되어 보이는 소년을 옆구리에 끼고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바닥을 밟을 때마다 벽면에선 불기둥이 치솟아 나왔고, 바닥은 마치 점토로 만든 듯 무너져 검은 무저갱만이 보였다.
와르르륵.
마지막으로 밝은 바닥의 타일마저 기다렸다는 듯이 바닥 아래로 추락하자 소년을 끼고 있던 청년이 사방으로 손을 버둥거렸다.
[플라이]
청년의 남은 손에서 나온 마법진이 사라지며 그의 등 뒤로 검은 날개가 치솟아 올랐고, 나락으로 떨어지던 청년은 겨우 무저갱에 빠지지 않고 다시금 복도로 올라섰다.
“하아, 하아, 가뿐하네.”
“가뿐이요?”
“내가 누군지 다시 상기시켜줄까? 이 정도는 나한테 방 탈출 게임 같은 수준인 거지.”
“방 탈출 게임이 이렇게 과격하다고?”
시우를 바라보는 형원은 어쩐지 그의 등이 조금은 작아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쿵!
복도 하나를 지나자 두 사람의 뒤로 또다시 거대한 벽이 떨어져 내렸다.
“이 벽은 계속 불안감을 조성하네요.”
형원은 돌벽을 치며 말했다.
이전 통로에서 방 안의 가스가 가득 차자 시우는 왔던 통로를 뚫어 환기하려 했지만, 아무리 마법을 소환해서 때려도 돌벽은 부서지지 않았던 탓이다.
“공간이 조금만 넓었어도 부술 수 있었을 거다.”
시우의 말에 형원은 점점 그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이런 기관을 뚫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주로 만드는 입장이었지.”
“네?”
“뭐, 내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많았다고 해두지. 그 자들을 막기 위해선 성이나 벽보단 차라리 이런 던전이 더 편리했거든.”
시우는 알게니하 대륙에서의 일을 추억하듯 말했다.
그 당시는 몰랐지만, 이제 와 당하는 입장에 있어 보니 그들이 죽어가면서 왜 그렇게 저주를 퍼부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인간의 심리와 반응을 예상해 그들을 사지에 몰아넣는다. 인간의 본능적인 행동을 따라가면 그곳에 죽음으로 직행하는 함정이 있는 것이었다.
과거 시우는 침입자들을 처리하기 위해 이 방법에 대해서 죽어라 연구했다.
지금 이 동굴을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자 또한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것이 시우를 더욱 당황스럽게 하고 있었다.
“또 그게 재미있는 거겠지.”
시우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 세계에 돌아와서 이런 상대를 만나보지 못했다.
알게니하 대륙에서도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최소한 그곳에선 마법이라는 다른 카테고리의 무력이 존재했기에 공격의 방법들이 다양했다.
지구의 존재들은 알게니하 대륙의 기사들보다 더 효율적인 무공과 운용방법을 가지고 있었지만, 시우처럼 머리를 쓰고 계략을 이용해 상대를 처리하는 이는 더욱 드물었다.
그렇기에 시우는 이런 기관에 들어온 것이 당황스러운 한편, 호기심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걸 만든 작자의 얼굴이 보고 싶군.”
“그런 한가한 생각을 할 겨를이 있을까요? 저 슬슬 무서워지는데.”
형원의 말에 시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걱정마라. 우스운 꼴을 보이면서 패턴은 다 파악했다. 더 이상 당하는 일은 없을 거야.”
시우의 손에서 복합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매직 미사일][오버 더 스틸]
손바닥만 한 작은 마법진에서 환한 빛을 뿜어내는 빛의 화살들이 사방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퍽, 퍽, 퍽, 퍼퍼퍼퍼퍼퍽!
순식간에 날아간 수십 개의 매직 미사일은 바닥과 벽면에 있는 함정들을 모두 깨고 사라졌다.
형원은 그 광경을 넋 놓고 보고 있었다.
“가볼까?”
시우의 말에 형원은 고개를 끄덕였고, 시우와 형원이 한 발을 딛는 순간.
찌이잉.
공기의 울림과 함께 시우가 급하게 형원의 머리를 짓눌렀다.
“숙여!”
[배리어]
찌이이잉. 파파팟!
공기의 울림과 함께 붉은색의 고밀도 분사 레이저가 시우와 형원의 목이 있던 자리를 지나갔다.
가까스로 피한 두 사람은 나풀나풀 떨어지는 머리카락들을 넋 놓고 보고 있었다.
시우의 입에서 된소리가 튀어 나왔다.
“이거 미친 새끼 아냐! 무슨 던전에 레이저를 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