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제갈사열은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정보망을 다시금 가동시켰다.
당장에 제갈청룡을 찾아야 하는 일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궁산이 가져온 이야기에 대한 진위 여부였다.
제갈사열은 남궁산이 보는 앞에서 남궁산의 이야기의 진위 여부를 파악했다.
이는 남궁산에게도 불쾌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남궁산 또한 일의 중요함을 알기에 전혀 기분 나빠 하지 않았다.
절대 입을 열지 않으려 했던 하오문의 문주를 채근하여 강호맹의 정보를 알아내고, 개방의 방주를 닦달해 강호맹 무인들의 움직임에 대해서 파악했다.
잠들어 있던 정보망은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지만 그렇게 복귀한 정보망은 제갈사열의 머리를 더욱 어지럽게 했다.
현재 중국 상계에 펼쳐지고 있는 일들은 그들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게끔 만들고 있었다.
“이,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가.”
“보는 나도 믿을 수가 없군.”
남궁산과 제갈사열은 자신들이 확인한 정보들을 규합하여 제갈세가 최고의 브레인들의 도움을 받아 현 중국 상계의 무력 지도를 그려내었다.
그리고 스크린에 적시된 그림은 충격적이었다.
“이거 확실한 거 맞느냐?”
제갈사열의 물음에 제갈적룡은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지당전의 최고 인재들이 내놓은 결과입니다. 현실 도피는 그만하십시오, 아버지.”
제갈적룡의 행동에 남궁산이 낯빛을 붉히며 말했다.
“끄응. 저놈이 이제는 내 머리 위에 올라타려고 하네.”
황보현은 그런 제갈적룡의 등짝을 내려치며 말했다.
찰싹!
“대체 아버님께 무슨 말버릇이에요! 서방님!”
“끄응….”
“어서 사과드리세요.”
“죄송합니다. 아버지. 저도 모르게 또 버릇없는 행동이 나와 버렸습니다.”
“되었다. 네가 그리하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닌걸.”
그 장면을 보던 남궁산은 껄껄 웃을 수밖에 없었다.
“크하하하. 역시나 대단하구나. 현아. 혹시 적룡이랑 이혼하고 남궁가의 여식이 될 생각은 없느냐? 옛날도 아니고 그리 구식인 사고방식만을 고수할 필요도 없는데!”
“호호호. 말씀은 감사하지만, 적랑은 제가 없으면 안 되는걸요.”
황보현이 적룡의 팔짱을 끼자 적룡의 날카로운 얼굴이 누그러지며 볼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고 남궁산은 다시금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강호맹이 지금 결사항전을 벌이고 있다. 이렇게 봐도 무방한 것이냐?”
남궁산의 물음은 제갈적룡 또한 진지하게 만들었다.
제갈적룡은 황보현의 팔짱을 풀고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결사항전이라는 표현이 맞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강호맹의 상대는 흔적이 보이지 않고, 강호맹은 끝없이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중국 상계에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는 것은 강호맹이 결코 떳떳한 행동을 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그렇다면 청이의 말이 맞는 것이겠지.”
제갈사열의 말에 제갈적룡은 남궁청을 보며 말했다.
“청의 말을 믿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부 믿을 수는 없습니다.”
“내가 이런 일로 농담을 할 사람처럼 보여?”
“…이성적 분석을 통해서 하는 말이다. 더구나 그 최시우? 네가 말한 그자의 신위를 너라면 믿을 수 있겠나?”
“맨날 책상 앞에만 앉아 있으니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거다. 저 스크린을 봐라. 끊임없이 올라가고 있는 강호맹의 사망자 수가 뭘 뜻하겠나.”
“모든 것을 한 사람의 무력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 거다. 우연히 나타난 토네이도를 자신의 힘이라고 주장한다면 그자는 단순한 미친 자에 불과하지.”
“빌어먹을!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 구름을 부르고 번개를 내려, 그 사람의 움직임에 땅이 갈라지고, 그 갈라진 땅 사이로 불길이 치솟는다.”
제갈적룡은 고개를 젓고는 제갈사열을 보며 말했다.
“최근 흔적이 사라진 야토가미가 대륙으로 몰래 넘어왔을 가능성을 차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라면 저희의 정보망을 쉽게 피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야토가미가 쳐들어 왔다면 강호맹이 피해를 숨기는 것도 말이 됩니다.”
남궁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야토가미는 한연맹에 손에 의해 사라졌다.”
“…확인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갈적룡의 태도에 황보현이 다시금 나섰다.
“적랑!”
짝!
“윽! 죄송합니다.”
“됐네. 자네 잘못도 아닌걸. 우리 가문의 어른께서 한국 상계의 가문에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긴 들었지? 그분을 통해서 이 믿지 못한 정보를 가장 처음 들었다. 그리고 그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일본 땅을 밟았지.”
“가주님께서 직접 말입니까?”
“그래. 믿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었지.”
“결과는… 어땠습니까?”
“자네, 야토가미의 황거를 본 적 있는가?”
“위성사진으로만 봤습니다. 그마저도 구름에 가려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구요.”
“난 보았네. 처참하게 부서진 야토가미의 황거를.”
“!!”
“!!”
“…그런 일이….”
제갈사열과 제갈적룡, 황보현까지 두 눈을 부릅떴다.
“이번 싸움은 야토가미의 폐망과 무관하지 않을 게야. 아마도 그런 이유로 강호맹이 상계 전체에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
“…진정 그렇다면….”
제갈적룡이 고심하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건 단 두 가문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제갈적룡의 말에 남궁산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제갈사열을 바라봤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네.”
“설마 …오대세가를 이야기하는 건가?”
“그것 말고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잘 생각해야 하네. 강호조약에 대해서 잊은 건 아니겠지.”
강호조약은 강호맹이 창설될 당시 상계의 모든 세력들이 모여 합의한 강력한 조약이었다.
강호 조약의 주요 내용은 강호맹에 무력과 재력을 재공하고 강호맹으로서만 야토가미를 적대한다는 이야기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뿔뿔이 흩어져 사분오열되었던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방법이었다.
상계의 주 세력들은 각자가 이루던 연합을 다시 이룰 수 없으며, 상계의 주된 권력은 강호맹 하나로 집중한다는 것이 이 조약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었다.
이는 강호맹에 소속된 문파들을 비대하게 키우는 효과를 가져왔으나, 그들이 대표로 야토가미를 상대하기에 안정적인 세를 누릴 수 있었던 다른 문파들은 이 조약에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 조약을 두둔하고 실행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제갈사열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오대세가의 연합은 강호조약을 어기는 일이야. 그 일이 벌어지면, 중국 상계의 모든 세력들이 우릴 적대할 걸세. 과거 마교를 그랬던 것처럼.”
남궁산은 흔들림 없는 눈으로 제갈사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강호맹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야토가미의 폐망을 이야기하지 않은 순간부터 강호맹의 존립 이유는 사라졌네. 또한 그들이 인륜을 벗어남을 서슴지 않았음에야 의(義)를 숭상하는 자가 한낱 샅된 무리의 눈초리가 무서워 검을 들지 못하는가?”
“….”
“그렇다 해도, 강호맹이 쫓고 있는 자들이 누군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제갈적룡이 말하자 남궁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것은 이미 중요한 것이 아니네. 최시우 그자가 어떤 능력을 가졌던 간에 그가 하는 일이 잘못된 의를 바로 잡는 것이라면 우리 또한 너무 늦지 않게 움직여야 하는 것이라네.”
“그건 너무 위험한 일입니다.”
“자네, …그 부작용이 심한가 보군. 점점 총기를 잃어 가. 만약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간다면, 중국 상계는 누구 손에 떨어지겠는가?”
“…강호맹.”
“그래, 야토가미의 죽음마저도 숨긴 자들일세. 지난 반세기 동안 힘을 키워온 자들이 계속 득세하려 한다면 과연 지금의 중국 상계에서 그들을 막아설 자들이 있겠는가?”
남궁산의 말에 제갈적룡은 답하지 못했다.
“또한 그들이 부당함으로 득세한다고 할 때, 그들을 반대하는 자와 그들의 밑에 선 자들이 서로 싸우게 될 것일세. 그렇게 되면 중국 상계 전체에 얼마나 큰 피해가 갈 거라 예상하는가.”
세상에 절대 선과 절대 악이란 없다.
강호맹이 부당함으로 득세한다 해도, 모든 이들이 강호맹을 징벌하려고만 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입장에서 정의를 실현하려는 이와 강호맹을 두둔하는 이들로 갈라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렇게 커진 싸움은 다시금 중국 상계에 야토가미가 남긴 상처와 같은 커다란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었다.
“다시 묻겠네. 영특한 자네 머리로 생각해 보게.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남궁산의 물음에 제갈적룡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대세가의 부활. 그리고 청룡이 필요합니다.”
제갈적룡의 대답에 남궁산이 황보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현아, 황보세가는 너에게 맡겨도 되겠느냐?”
황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버지를 모시고 오겠습니다.”
“그래. 근데 청룡이는 어디 있는가?”
“이틀 전에 수소문해서 지금 데려오고 있네. 오늘쯤 도착했어야 하는데….”
그때, 벌컥 문이 열리며 그들의 코를 강하게 찌르는 주취가 사방에 퍼졌다.
제갈사열이 고개를 절레 저었다.
“휴… 왔나 보군.”
주취의 주인공은 문을 열고 비틀거리며 회의실 안으로 들어오는 청년이었다.
“엇! 가주님. 인사 올림니다. 청룡입니다.”
“네 녀석은 이제 이름을 바꿔야겠구나. 청룡보단 주룡이 어떠냐?”
“아! 그렇다면 저도 더할 나위 없이 좋지요!”
제갈사열은 청룡의 모습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 두 아들의 자식 농사를 망쳤으니, 의지할 곳은 너 뿐이다, 아가야.”
황보현은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아버님.”
제갈청룡은 비틀거리며 회의실 안으로 들어와 탁자에 걸터앉으며 취한 몸을 가누지 못했다.
“어디까지 이야기하셨습니까? 오대세가 이야기까지 하셨습니까? 한연맹의 맹주를 찾자는 이야기까지 하셨습니까?”
제갈청룡은 마치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듯 이야기하자 남궁산이 기가 찬 듯 물었다.
“설마 옆에서 듣고 있었느냐?”
“아! 그건 아니고! 이틀 전에 아버님께 이메일로 자료를 받았습니다. 오는 길에 할 일이 없어 대충 봤고요.”
“허허, 이게 농사를 잘못 지은 거라고? 내 보기엔 지선이 살아 돌아온 것 같구만.”
“그럼 뭐하나! 제정신으로 깨어 있는 때가 없는 것을.”
제갈청룡이 자신의 찻잔에 찻물을 채우며 말했다.
“그래서 어디까지 이야기하셨습니까? 오대세가까지입니까? 한연맹까지입니까?”
“한연맹 맹주의 이야기는 왜 갑자기 나온 것이냐?”
“오대세가가 명분을 가지고 강호맹을 심판하기 위해선 그 명분의 중심이 되는 한연맹의 맹주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강호맹이 대외적으로 비밀로 하고 꽁지에 불붙은 말마냥 한연맹 맹주를 쫓고 있는 건 아마도 그에게 강호맹의 숨기고 싶은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겠죠. 그러자면 한연맹 맹주가 어디 있는지부터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했을 거라고?”
남궁산이 묻자 제갈청룡이 찻잔을 술 마시듯 들이키며 마시곤 입맛을 다셨다.
“혹시 술 없습니까?”
제갈사열이 청룡의 말에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일갈했다.
“얼른 대답하지 못해!”
“오대세가까지 이야기하셨다면 …아마 8시간쯤 후에 한연맹의 맹주가 어디 있는지 궁금해하셨겠군요.”
“허허….”
남궁산이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제갈청룡을 보고 있을 때. 제갈적룡이 나서며 물었다.
“넌 이 이야기를 진지하게 믿는 것이냐?”
“형님의 상식으론 한연맹의 맹주의 존재를 믿을 수 없었겠지요? 그래서 망설이시는 거고요.”
“….”
“최근 화산독응이 출관했다는 건 알고 계십니까?”
“…조익경이 나왔더냐.”
“제 예상보다 훨씬 빨랐지요. 그가, 화산의 원로들과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 그걸 어찌 아느냐!”
“상갓집에는 종종 큰 술판이 벌어지는 법이지요.”
“점창의 정산명이 점창과 함께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리고 중국 상계에서는 장의사들이 쉴틈이 없다고 하더군요.”
제갈청룡이 정신이 돌아오는 듯 머리를 한참 흔들더니 천천히 말했다.
“그에 대한 소문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과소평가 되어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하러 가는 것 또한 무의미한 일이 아니겠느냐.”
제갈적룡의 말에 제갈청룡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 일을 그저 그에게만 맡겨 둔다면, 강호맹은 너무 많은 피해를 입을 지도 모릅니다. 또한 강호맹이 이길 경우 우린 나설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겠죠. 어떤 상황이든 우리에게 좋을 것은 없습니다. 당장 이 자를 찾아 도와야 합니다.”
제갈청룡의 말에 남궁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였던 돈황을 끝으로 그의 자취가 감춰졌다. 그를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느냐.”
“어디로 갔는지 대충 예상이 갑니다.”
“그곳이 어디냐?”
제갈청룡은 컴퓨터를 조작해 스크린에 한 도시를 확대하였다.
회의실에 있는 대부분은 위성사진으로 보는 도시임에도 그 도시를 쉽게 알아 차릴 수 있었다.
“정저우시? 소림사에 있다는 이야기냐?”
제갈청룡은 고개를 저으며 사진을 조금 이동시켰다.
정저우 시에서 멀지 않은 한 지역. 아직 개발 되지 않은 듯한 산 속을 찍으며 제갈청룡은 말했다.
“이곳에 있을 겁니다.”
남궁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걸 어찌 아느냐?”
“3년 전에 강호맹으로부터 한 가지 의뢰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야토가미의 사천신이나 오오가미가 중국 상계에 나타났을 때 그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인간의 경지를 벗어난 자를 피해 없이 상대하려면 기관진식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버님 알고 계셨습니까?”
제갈적룡이 묻자, 제갈사열은 손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저놈이 우리 몰래 강호맹의 일을 했구나.”
제갈청룡은 능청을 떨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 말하자 그들은 그럼 오오가미 뿐만 아니라 사천신을 뛰어넘는 자를 상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전 기관진식에 진법을 섞어 귀신마저 빠져 나올 수 없는 무덤을 만들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남궁산이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그랬더니?”
“그들이 만들어 달라고 했고, 전 그 일을 받아들였습니다.”
제갈청룡의 말에 제갈사열이 탁자를 치고 일어나 외쳤다.
“이놈! 그 돈은 어디 있느냐!”
“아버님. 지금 그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갈사열은 분을 참으며 자리에 앉았다. 제갈청룡은 말을 이어갔다.
“그럼 설마 자네가 만든 그곳에 한연맹의 멤버들이 있단 말인가?”
“네. 이름은 지옥관. 들어가면 귀신도 나오지 못할 무덤이 있는 곳에. 그들이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