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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투 다크위저드-135화 (135/200)

135화

우빈의 온 몸이 피투성이었다.

성한 곳 하나 없이 온몸에 깊은 상처가 가득했다.

머리를 타고 흐른 핏물이 눈에 스며들어 시야를 가렸지만, 우빈은 그 눈에 흐른 핏물조차 닦아 낼 수 없었다.

그는 그저 검을 들고 서 있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움직임이었다.

“훌륭하다.”

우빈을 바라보는 조익경의 얼굴엔 만면의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그는 우빈과 달리 상처 하나 없어 보였다.

“자네를 만나, 내가 보낸 인고의 시간은 내 인생의 최고의 시간이 되었다.”

“…….”

우빈은 가슴 벅차는 익경의 말에도 입을 뗄 수 없었다.

우빈은 그저 버티고 서서 조익경을 바라보는 것에도 정신이 아득해 질 정도의 인내력을 뽑아내고 있었다.

“그대들을 쫓아 왔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것은 결국 화산의 운명이었다.”

우빈의 시선이 그의 얼굴에서 아래로 조금 내려갔다.

조익경의 배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우빈의 최후 초식에 의해 장기까지 날아가 버린 그의 텅 빈 구멍 속으로 남은 장기의 조각들과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시우가 우빈 곁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어리석은 자신의 선택을 끝까지 합리화하려 하는가?”

조익경이 시우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우리 화산의 원로원분들을 모두 상대한 것인가? 정말 놀랍군!”

시우는 포션 네 개를 한 손으로 쥐고 우빈의 머리 위에 부었다.

각 포션들이 우빈의 상처 속을 파고들며 그의 상처를 회복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국 버틸 수 없었는지 바닥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대체 이 쓸데없는 싸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희생한 것인가?”

시우의 날 선 비난에 조익경은 씁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자네는 마지막 순간까지 상대를 지옥으로 던지고 싶어 하는군…….”

“…!”

조익경의 말에 시우의 얼굴이 처음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다 해도. 결국 결과는 같았겠지. 그저 죽는 사람만이 달랐을 뿐.”

화산은 자신들의 굴욕을 참고 넘기기엔 너무 강하고, 너무 거대했다.

만약 자신이 폐관동에서 탈출하지 못했다면, 자신이 원로원을 이끌고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면, 짧은 시간 동안 그 어떤 가상의 시나리오 속에서도 화산이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이리 되었을 것이네. 화산의 어른들과 제자들이 죽은 것은 미치도록 슬프나, 최강의 인물과 싸우다 죽은 것은 무인으로서 영광이지.”

“…….”

조익경의 말에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우빈이 시우의 바지춤을 잡고 흔들었다.

“시우야…….”

우빈의 두 눈에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그것은 인생 최고의 숙적을 쉽사리 보내고 싶지 않다는 안타까움과 짧은 시간 동안 검을 나누며 마음이 통한 검우를 죽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시우에겐 그를 살릴 방법이 있을 거라 확신하는 우빈이었다.

그 때 시우가 우빈의 손짓을 쳐 내며 혀를 찼다.

“이 철없는 놈이. 적인 당신에게 정이라도 들었나 보군.”

“후후, 최강에 오른 이가 모르는 것이 하나 있지. 라이벌이 풍기는 향기는 대륙 최고 미녀의 분향보다 감미로운 법이라네.”

“살고 싶은가?”

시우의 질문에 우빈이 간절한 눈빛을 조익경에게 보냈다.

하지만 조익경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 목숨의 가치가 그리 대단하지 않지만, 남은 생존자들을 돌려보내 주게.”

조익경의 말에 시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까지 제 발로 서 있는 화산의 문도수는 일백이 안 돼 보였다.

처음 천에 달하는 숫자였던 것을 생각하면 화산의 입장에선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들로는 화산을 재건할 수 없을 텐데?”

살아남은 이들이라곤, 필사적으로 도망다니던 자들, 심각한 부상을 당해 거동하지 못하던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화산의 역사는 여기까지네. 바로 오늘이 화산이 역사 속에서 지워지는 날이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군.”

“하하하, 그나마 마지막엔 자네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었군. 그럼 잘 부탁하네.”

조익경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듯, 천천히 뒤로 넘어갔다.

그는 먼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은 그대들일 테지. 그러니 통탄스럽지 않다.”

조익경은 뜻 모를 말을 끝으로 천천히 눈을 감았다.

천하제일검의 후예이자, 화산신응에서 화산독응으로 불리며 화산의 역사를 다시 쓰려 했던 조익경은, 그렇게 자신이 말한 대로 화산의 이름과 함께 역사 속에서 이름을 지웠다.

* * *

조익경이 쓰러진 곳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곳.

아무것도 없는 벌판 위에 높게 뜬 헬기 한 대가 존재했다.

헬기 안에는 강호맹을 비우고 나온 네 사람이 탑승해 있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먼 곳을 보고 있었다.

침묵 속에서 명진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명진이 나지막이 읊조린 말에 남은 세 사람의 정신이 돌아왔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군.”

계상학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계 문주. 모산파 술법가 전체를 비교해 볼 때, 술법으로서의 차이가 얼마나 되오?”

장송계의 말에 계 문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무인으로서 일평생을 살아왔고, 나름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수준에 들었다 생각했지만, 마주한 현실은 처참할 정도로 냉정했다.

“모산파에는 저자의 술법을 넘어설 만한 것이 없소.”

“…그럼 저자의 술법을 막아낼 방도도 없소이까?”

“최시우와 맞상대 했던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저 방어하는 데만 급급했다 하더이다.”

“그럼 막아낼 수단이 전혀 없는 것이오?”

“최시우 저자가 쓰는 대단위 마법은 막아낼 수단이 없는 것 같소. 그저 도망만이 살 길인 듯하오.”

계상학은 까마득히 먼 곳에서도 느껴지는 시우의 7서클 마법에 전율하며 말했다.

일개 인간이 그 정도 파괴력을 뿜어내는 대단위 마법을 쓴다는 것은 적과 아군을 넘어 같은 술법을 사용하는 사람으로서 경외의 대상이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상황이 허락한다면 어떻게든 그와 대화를 나눠보고 함께 연구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자신의 생에서 그런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는 계상학이었다.

“그렇다면, 우린 그를 상대할 수 없다는 말이오?”

장송계의 말에 계상학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오. 아마도 그가 쓰는 대단위 마법에는 한계가 있을 거라 생각하오.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기는 한계가 있소. 그가 전투에 임함에 있어 매번 대단위 마법을 쓰지 않는 것은 그 이유가 있을 것이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저자를 상대할 수 있겠소?”

“모산파의 술법가들을 모두 술법을 상대하는 일에만 쓰는 것이오.”

계상학의 말에 장송계가 고개를 끄덕였다. 계상학은 말을 이어 갔다.

“그동안 자파의 무인들이 낸 보고서를 읽어 보면, 전투 중에 마법을 방어하는 것에는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소. 하지만, 최시우를 공격하기 위해 술법을 쓰는 순간 매번 당했다는 말을 하더이다.”

계상학의 이야기를 듣던 장송계가 계상학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모산파에게 최시우의 마법을 부탁해도 되겠소?”

장송계의 말에 계상학이 한숨을 쉬듯 말했다.

“최선을 다해 보겠소.”

계상학의 부족한 답변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 또한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작금 그들에게 닥친 현실이 쉽사리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항상 스스로를 최강이라 생각하던 그들 자신이 겨우 약관의 청년 한 명에게 크게 흔들린다는 것은 스스로 느끼면서도 믿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하오. 방금 보았듯 결국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건 단순히 한 연맹의 무인 열 명이 아닌 것 같소. 교주께선 어떻게 보시었소?”

다크 나이트와 데스 나이트의 존재를 보자마자 문주들은 모두들 강시를 떠올렸다.

그토록 강력한 마물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인력보단 같은 마물이 어울렸기 때문이다.

천하에 강시 같은 마물을 소유하고 있는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저렇게 마음대로 넣었다 뺄 수 있는 술법이 있다는 게 놀랍군. 본좌도 탐나는 능력이다.”

“감상을 물어본 게 아니오.”

장송계의 말에 혁련무궁이 혀를 찼다.

“알고 있다. 본교의 혈체 강시와 천마 강시를 깨우라고 하겠다.”

“처, 천마 강시도 가지고 있었소?”

혁련무궁의 말에 장송계가 놀라며 말했다.

혁련무궁은 팔짱을 풀지 않은 채 먼 곳의 시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본교의 사자부는 언제나 전력을 유지해 왔다.”

혁련 무궁의 말에 장송계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천마 강시는 무림인들에게 악몽과도 같은 존재였다.

과거 천마 강시 한 마리와 함께 무림에 출두한 염홍대좌가 홀로 강남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과거 연맹이었던 무림맹의 전력 절반을 날려 버린 일이 있었다.

과거의 천년 마교가 사건을 일으킬 땐 언제나 천마 강시가 함께했고, 강호맹은 아직도 천마 강시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강호맹에 천년마교가 가입한 뒤에는 정·마가 대립할 일이 없었기에 자연히 강시 또한 가지고 있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탓에 장송계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강호맹에 가입한 뒤에도 강시 전력을 유지했다는 것이오?!”

장송계의 말에 혁련무궁이 스윽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봤다.

“그것이 중요한가? 그나마 천마 강시가 없었다면 저 빛나는 해골을 어떻게 상대할 참이었지?”

“크흠. 이 일은 후에 책임을 묻겠소.”

혁련무궁은 금세 시선을 돌렸다.

“그럴 걱정은 살아남은 후에나 하는 게 좋을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명진이 입을 열었다.

“앞으론 어떻게 할 생각이신지요?”

“생사신의의 동생은 이미 이동을 시작했소. 저들의 목적이 당초 그녀였던 만큼 아마도 쫓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오.”

“결국 대회전을 치를 수밖에 없다는 말이겠군요.”

“대회전뿐만 아니오. 차륜전과 기습… 어떤 것이든 사용할 수밖에 없소.”

“…이만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더 이상 동도들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이 괴롭군요.”

명진이 고개를 돌리며 말하자. 장송계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헬기는 곧장 방향을 돌려 이동하기 시작했다.

헬기 내부에선 프로펠러 엔진이 도는 소리 외엔 아무것도 울리지 않았다.

* * *

“우웩!”

전장의 한쪽 구석에서 형원은 끊임없이 구역질을 했다.

끊임없이 죽어가는 사람들과 산처럼 쌓인 시체들, 매캐한 연기와 노릿한 살타는 냄새까지. 형원은 자신이 겪은 그 어떤 처참한 지옥도 이곳만큼은 안 될 거라 생각했다.

또한 더불어 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생각을 하자 속을 게워내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괜찮습니까?”

형원의 등을 토닥여 주던 김준상이 걱정스럽듯 물었다.

한참을 토하던 형원은 결국 주저 앉듯 벽에 기대었다.

한숨을 토해낸 형원은 엄습하는 현실감에 두려워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국엔 눈물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준상은 그저 말없이 그의 옆에 앉았다.

형원이 한참을 눈물을 쏟아 낸 후에 김준상은 휴지를 건넬 뿐이었다.

“이제 좀 괜찮습니까?”

“저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전 이걸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형원의 말에 김준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동생을 구하러 가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건.”

“그동안 살아온 이유가 동생의 안위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맞나요?”

“…네.”

형원이 고개를 숙이며 답하자 김준상은 그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그렇다면 아무 생각 하지 마시고. 동생만 생각하십시오.”

“…….”

형원은 쉽사리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대답하지 않았다.

김준상은 그 심경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쉽지 않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애초에 이 싸움은 신의님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 아닙니다.”

“…….”

“그저 신의님이라는 핑계가 필요했을 뿐.”

“…….”

“저희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싸움을 해왔습니다. 그 대부분 싸움의 이유는 그저 저희 생존을 위한 것이었죠. 아마 앞으로도 대부분의 싸움은 저희 생존을 위한 싸움일 겁니다.”

“…겁 안 나십니까?”

“납니다. 겁. 턱이 떨릴 만큼 두렵고 괴롭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멈춰 설 수는 없습니다. 저 또한 제 가족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피가 통하진 않았지만 피가 통한 형제보다 더욱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그들을 지키기 위해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준상의 말에 형원은 가만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김준상도 자신이 한 말이 조금은 간지러웠던 탓인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또 싸움은 대부분 시우님이 하시지 않습니까? 저희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프흡.”

김준상의 말에 형원이 결국 웃음 짓고 말았다.

“너무 고민하지 마십시오. 모두 잘 해결될 겁니다.”

“……제가 나이가 한참이나 어립니다. 말 편히 하셔도 괜찮습니다.”

“하하! 그럴까? 안그래도 좀 불편했는데.”

김준상과 형원이 각자 자신의 동생들 이야기로 대화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출발할 거야! 오바이트 다 했으면 돌아와!”

시우가 먼 곳에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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