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다크위저드-134화 (134/200)

134화

다크 나이트가 화산파의 합격진에 쓰러졌다.

쓰러진 후에도 무인들은 몇 번이나 검을 휘둘러 다크 나이트를 난자했다.

이는 화산파의 무인의 잔혹성을 드러낸 것이 아닌. 다크 나이트를 멸살하기 위한 필사적 발악이었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희생자와 함께, 다크 나이트들을 쓰러뜨렸지만, 남은 것은 수십의 다크 나이트였다.

동료의 죽음에도 무감각한 다크 나이트들은 전투 기계처럼 오로지 눈앞의 적만을 노리며 몸을 날렸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적을 상대하는 무인들의 마음은 계속 꺾여 가기만 했다.

“형님, 이렇게 가다간 제자들이 남아나지 않을 겁니다.”

전대 십대 장로 중 일원으로 건장한 체구에 괄괄한 인상을 가진 평일환이 전대 십대 장로를 이끌었던 남정설에게 외쳤다.

“하지만, 사조님을 두고 갈 수는 없다.”

장로원의 원로들은 심히 괴로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시우가 소환한 데스 나이트는 그들의 상식을 확연하게 벗어난 존재였다.

검기가 통하지 않는 몸체, 강기와 비슷한 힘을 흩뿌리는 검, 틈이 보일 때마다 쏘아대는 마법과 고도의 상승 무공으로 느껴지는 검법까지.

그 오랜 세월 전장을 누벼온 장로원의 원로들도 이토록 어려운 적을 상대해 본 적이 없었다.

깡!

겨우 검이 파고들어 해골의 목을 치면, 검강을 두른 검은 마치 무쇠라도 부딪친 듯 커다란 반탄력으로 화산 무인의 검을 피해 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다크 나이트로부터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틈을 보일라치면, 데스 나이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원로원들의 검을 피해 화산 무인들을 공격하기 일쑤였다.

단 한 번 장로원들이 틈을 준 사이 데스 나이트가 눈 깜짝할 사이에 오십의 무인들을 싹쓸이하는 것을 보곤 장로원들의 원로들은 절대 데스 나이트를 내보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참으로 사이하구나! 참으로 사이해! 네놈이 이런 역천의 술을 쓰고도 하늘의 처벌이 두렵지 않더냐!”

송단현이 분노를 쏟아내며 말했다.

“재밌는 게 뭔지 아시오? 인간은 정의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악행도 할 수 있다는 것이오.”

“…그래 강호의 수많은 동도들이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시우는 그러라는 듯 귀를 파며 불량하게 이야기 했다.

“실제로 그러하였소. 야토가미와의 일전으로 약해질 대로 약해진 한연맹을 공격한 상대가 누구였는지 아시오?”

“….”

“3천의 강호맹 무인을 거느린 화산의 문주였소.”

“…뭣이!”

“야토가미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강호맹의 수장인 화산파의 문주가 야토가미를 상대한 우리를 첬다는 말이오! 정의의 이름으로!”

“…그, 그럴 리 없다! 네놈 간악한 혀로 우릴 농락하려 하느냐!”

“댁들의 정의가 지금 그렇소.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은 절대 믿으려 하지 않지.”

“…이, 이토록 사이한 힘이라면 문주의 근심도 이해는 되는 바이다.”

송단현이 미간을 찡그리며 말하자 시우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거 보시오. 자신들이 얼마나 모순되고 비겁한 존재인지. 단지 악을 무너뜨린 힘을 가졌다는 이유로 우릴 얼마나 탄압했는지 보시구려.”

“지금 죽어 가고 있는 것은 화산의 무고한 제자들이다!”

“무고한? 누가 무고하단 말이오?”

송단현이 다크 나이트의 검에 꽂혀 이리저리 휘둘리는 젊은 청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 보아라! 인간이 어찌 저런 잔인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이냐!”

“노인장. 정신 차리시오. 지금 노인장이 말하는 정의는 겨우 열 명 남짓한 인원이 자신의 여동생을 구하러 가는 길을 막고 그들을 죽이겠다고 천 명의 인원을 데려왔소이다. 과연 우리가 아니어도 이런 불합리하고 억울한 상황을 이겨 낼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하시오?”

“….”

“그렇기에 나는 화산파에게 아무런 동정도 느끼지 않소. 아니, 오히려 더욱 확실하게 근원을 뽑아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오. 자신들의 힘에 얼마나 과신했으면 이런 오만방자한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시우의 손에서 복잡한 마법진들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시우의 손에서 마법진이 발현될 때마다 끔찍한 일을 겪었던 송단현은 단숨에 시우의 손을 잘라내려 했다.

챙!

하지만, 붉은빛의 연기를 뿜어내는 데스 나이트가 어느새 송단현의 검을 막고 그의 목을 노리기 시작했다.

“저, 저놈을 막아! 저놈이 또 한 번 사술을 사용한다!”

화산의 원로들이 시우에게 쇄도했다.

시우는 화산의 원로들의 검이 코앞까지 오고 있었음에도 수인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몸에 둘러 있던 배리어들도 모두 해제당한 상태.

그럼에도 시우의 온몸에선 여유가 흘러넘쳤다.

“뒤를 조심하시구려.”

시우의 말과 함께 원로 세 명의 입에서 동시에 비명이 흘러나왔다.

“크흑!”

“컥!”

“으악!”

빛나는 검에 쇠꼬챙이처럼 꿰어진 화산의 원로들은 평생을 익혀온 무공보단 본능적인 발버둥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그들의 몸을 꿰뚫은 검은 빠지기보다는 더욱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깡! 캉! 깡!

원로들이 검에 꿰이자 대경실색한 다른 원로들이 검을 휘둘러 데스 나이트를 공격해 보았지만, 그들의 검은 데스 나이트에게 작은 생채기만 낼 뿐이었다.

“내 말하지 않았소. 뒤를 조심하라고.”

시우의 말과 함께 그의 손에서 수인이 완성되었다.

마법진은 붉은빛과 함께 뜨거운 열을 쏟아냈다.

[마스터 오브 파이어][헬 파이어]

시우의 주위로 파도가 치듯 뜨거운 열기가 솟구쳤다.

그의 주변을 두른 불꽃은 바닷속에 몸을 숨겼다가 사냥감을 발견한 상어처럼 사람들을 향해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피, 피해!”

불길이 지나간 곳에 남는 것은 없었다.

작은 불씨마저도 옷에 엉겨 붙는 순간 인간의 뼈가 남을 때까지 빠르게 태워 버리기 시작했다.

지옥의 불기둥 속에서 살아남는 존재는 다크 나이트와 데스 나이트밖에 없었다.

환영 속에 갖혀 동료를 죽이던 화산의 무인도, 그 무인을 상대하던 젊은 무인도, 7서클의 마법 헬 파이어의 희생양에 불과했다.

* * *

조익경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를 제외하곤 이름 모를 산과 정리되지 않은 들, 그리고 마구 자라난 잡풀들만이 가득했던 곳이 지금은 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사방에선 시뻘건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감정이 없는 듯한 괴한들이 화산의 무인을 도륙하고 있었다.

당연한 수적 우세였던 아군들의 숫자는 상대의 보잘것없는 숫자에도 불구하고 한참 부족해 보였다.

그 원인은 단 한 사람.

장로원의 원로들 사이에서도 고고하고 서 있는 시우 때문이었다.

원인을 알고 있지만, 조익경은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선배, 자꾸 딴 곳으로 시선이 가시는군요.”

그것은 시우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우빈이었다.

온 몸에 자잘한 상처를 입고 조금은 지쳐 보였지만, 쉽사리 우빈을 두고 자리를 뜰 수 없었다.

그의 무위가 생각보다 무시할 수 없는 수준.

아니,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기 때문.

“자꾸 그러시면, 당합니다!”

매화천망을 펼칠 때까지만 해도 조익경은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매화천망을 가까스로 뚫고 나온 우빈의 반격은 매서웠다.

일 초 일 초에 깨달음이 담기고, 검법 하나하나에 자연이 담겨 있었다.

조익경은 새삼 놀라운 눈으로 우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하가 넓다 하더니….”

조익경은 폐관동을 나설 때만 해도 더 이상 세상에 자신의 적수는 없을 거라 확신했다.

검을 든 이상 자신이 긴장해야 할만한 상대는 천하의 손으로 꼽을 정도.

또한 그들의 나이가 자신의 곱절은 되니 젊은 나이에 이룬 성취는 자신을 천하제일인으로 만들고도 남았음이라 생각했다.

처음 화산파가 엉망이 되었을 때. 분노와 슬픔도 있었지만, 그보다 큰 기쁨이 있었다.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상대.

어떤 힘을 가졌던 절대적인 무력을 가진 상대가 있다는 것이 조익경은 조금 기뻤다.

하지만, 작금 현실에선 그 상대는커녕, 이름도 알지 못했던 어린 우빈에게 발목을 잡힌 현실이 씁쓸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너는 두렵지 않느냐?”

조익경의 말에 우빈이 답했다.

“무엇이 말입니까?”

“최시우란 자에게 이토록 놀라운 무력이 있다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우리 화산파는 그에 몇 배나 되는 전력을 갖추고 있음이다.”

“….”

“그것만이더냐, 우리를 밟고 지나간다 해도 강호맹이 남아 있다. 그들과 함께 너희를 치지 못한 것은 통탄할만한 일이다만, 그들 또한 너희를 노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조익경의 말에 우빈이 꿀꺽 침을 삼켰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너 또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강호맹이 사라지면, 그 다음엔 새로운 강호맹이, 그리고 그 이후엔 중국 상계 전체가 너희를 노릴 것이다. 그 끝없는 싸움 끝에 결국 너희는 비참하게 패배할 것이다.”

조익경의 말을 가만히 듣던 우빈은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이 든 듯 고개를 절레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말이냐?”

“어차피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저 아귀처럼 검을 휘두를 뿐이냐?”

조익경이 불쌍한 듯 이야기 했지만, 우빈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그저 미래의 일을 미리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

“시우라면,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그딴 생각 할 바엔 한 놈이라도 더 처 죽여!’라고.”

“…끌끌.”

“전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검을 들었습니다. 제 소중한 것을 위해선 죽기 직전까지 검을 휘두르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빈의 말을 조용히 듣던 조익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옳다. 옳은 말이다.”

조익경이 검을 고쳐 잡았다.

“그대를 작게 본 것에 사과한다. 그대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숙적이다.”

조익경의 기세가 이전과 달리 급변했다.

조익경을 마주하는 우빈은 주변의 지옥보다 조익경의 기수식이 더욱 두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우빈 또한 검을 고쳐 잡았다.

도망칠 수는 없다.

도망으로부턴 아무것도 배울 수 없었다.

오직 부딪치고 깨질 때만 승리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우빈의 단전이 우빈의 의식을 따라 우빈의 온몸으로 빠르게 뻗어 나갔다.

“영광입니다. 선배님.”

우빈의 몸에서도 측정할 수 없는 압도적인 기가 흘러나왔다.

* * *

송단현의 얼굴엔 절망이 어렸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가 꿈에서도 보지 못한 끔찍한 악몽이었다.

문제는 지금 펼쳐진 그 광경이 악몽이 아니라 뚜렷한 현실이라는 것.

자신에게 인사 올렸던 제자의 제자가 죽어 간다.

그 제자의 제자가 팔이 잘려 울부짖고, 그 제자의 동료가 살기를 흩뿌리며 화산의 무인의 등에 칼을 꽂는다.

장로원의 원로들 또한 그와 생각이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들은 처연하게도 데스 나이트의 검에 붙잡혀 꼼짝할 수 없는 상태였다.

“평생을 쌓아왔건만, 이딴 미물 하나 상대하지 못하다니. 허탈하구나.”

“미물이라 하면 기분 나쁘오. 그래도 명색이 내 깨달음으로 만들어진 기사일진데.”

“저따위 사술을 쓰는 것에 네 어떤 깨달음이 있다는 것이냐?”

“보고 싶소?”

“끝까지 나를 농락하는 구나. 네놈의 세치 혀에 죽어가는 우리 화산의 문도를 욕보이지 말거라!”

시우의 손에서 검은 액체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하나만 이야기하겠소. 내 힘은 당신이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사술도 눈속임도 아니오. 당신들이 죽는 것은 그저 나보다 약했기 때문이요.”

“갈! 어디서 또 그 세 치 혀를 놀리느냐!”

송단현이 검을 쥐어 잡았다.

어느 새부턴가 데스 나이트는 송단현의 근처엔 얼씬도 거리지 않았다. 그저 다른 장로원의 원로들을 상대할 뿐이었다.

“증명해 보이리다. 그것이 당신을 더욱 절망에 빠트릴 것 같으니까.”

시우가 터벅터벅 앞으로 걸었다. 송단현은 구궁보를 펼치며 순식간에 9개의 환영을 만들어 내어 시우의 팔방을 점했다.

“이것으로 화산의 한을 갚겠다!”

시우의 사각에서 나타난 송단현이 일격에 시우의 목을 베어냈다.

하지만 그의 검에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송단현이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자 시우는 다섯 보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손을 흔들어 검을 흩트리고 있었다.

“이놈 검을….”

송단현의 목소리가 점점 느려졌다.

내공이 끊기고, 근육에 힘이 빠졌다. 그리고 천천히 세상이 뒤집혔다.

“검을….”

결국 검을 든 팔과 목이 잘린 송단현의 최후는 그것이 끝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