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크윽!”
검이 없는 상태에서 검을 든 상대와 싸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나 자신이 평생 익혀온 무공이 검이고, 상대 또한 검의 고수라면, 이것은 거의 자살에 가까운 시도가 된다.
우빈은 화끈 거리는 고통이 밀려오는 왼쪽 어깨를 부여잡았다.
이제 막 상처가 난 팔에선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찌지직
옷의 일부를 찢어 상처를 동여매자 빈약한 천 쪼가리가 금방 핏물에 물들었다.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상대는 멈출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백발의 사내는 투기도 살기도 없이 무미건조하게 우빈에게 계속 다가왔다.
우빈은 무미 건조한 그의 태도가 더욱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그냥 대화로 해결합시다!”
-…….
우빈의 뜬금없는 말에 사내가 잠시 우뚝 멈춰 섰다가 다시금 우빈에게 다가갔다.
-내 것을 훔쳤으니 너의 것을 받아 가겠다.
“당최! 댁은 당신이 누군지도 모른다면서!”
우빈이 손을 사방으로 뿌려 태백권을 시전했다.
[태백권][태백입해]
그의 주먹이 온 사방을 매우고 백발 사내의 요혈을 노리며 파도처럼 밀려 들어갔다.
강대한 투기에 압살당할 것 같았던 백발 사내는 가볍게 검을 휘둘러 권기의 막을 소멸시켰다.
‘미치겠네.’
아까부터 같은 자신의 공격을 무위로 돌리는 백발 사내의 무공에 우빈의 마음이 차츰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강기의 파괴력에만 기대는 것은 어리석은 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백발 사내의 말에 우빈의 손이 펼치며 장백수를 펼치기 시작했다.
[장백수][죽렴임지]
호수에 흐르는 잔잔화 물과 같은 부드러운 수법은 상대의 강공을 타고 들어가 상대의 요혈을 노린다.
처음엔 산들 바람과 같은 공격이 종국엔 알면서도 피할 수 없는 뱀의 공격과 같았다.
쉐엑!
수기가 백발사내의 머리칼 몇 개를 자르고 그의 두 눈을 곧장 찔러 들어갔다.
백발사내는 눈도 깜빡 거리지 않고 강기를 내뿜어 수기를 일거에 소멸시켰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지루한 공격이군.
“강공에 기대는 건 어리석은 자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우빈이 일갈 했지만 백발 사내는 지루한 듯 하품이나 하는 정도였다.
‘제길, 검이라도 있으면….’
우빈의 시선이 사내의 손에 쥐어진 자신의 검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허공섭물의 능력이라도 없이는 상대의 검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쒜에에엑!
우빈이 잠시 딴청을 부리고 있는 사이 그의 귓가로 공기를 찢는 소리가 울렸고, 우빈은 대경실색하여 몸을 피했지만, 왼쪽 어깨에 화끈거림을 피할 수는 없었다.
“크아아악!”
칼이 움푹 패고 지나간 상처 속으로 허연 뼈가 드러나 보였다.
-지루하구나.
백발 사내의 말에 우빈은 욕지기가 튀어 나왔지만,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상대의 압도적인 강함에 질려 버린 것이다.
[그래서 포기할래?]
어째서 죽기 직전에 생각나는 것이 그 뺀질거리는 최강자의 얼굴일까? 소혜도 있고, 세아도 있으며, 하다못해, 데이지의 연우라도 생각날 법한데.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바로 시우의 말과 표정이었다.
‘녀석이라면 포기 했을까?’
시우가 자신과 같은 처지라면 포기 했을까라는 물음을 하자마자 대답은 ‘노’였다.
시우가 이곳에 같이 있었다면, 우빈은 당연한 듯 시우에게 질문을 했을 것이고, 시우는 당연한 듯 상대를 꺾을 방법을 알아냈을 것이다.
‘시우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어!’
우빈은 재차 다가오는 사내의 공격을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의 검은 내공을 많이 사용하지도, 움직임이 화려하지도 않았다.
빠르고 간결하게, 정확하고 밀도 있게, 필요한 부분만을 사용하면서 전체를 무너뜨렸다.
‘저건 확실히 천살지존검이 맞아.’
실제 시우가 펼치는 천살지존검과는 사뭇 달랐지만, 그가 펼치는 검은 분명 천살지존검이 맞았다.
우빈은 발을 기민하게 놀리면서 동시에 한 손에선 강대한 권력을 품은 주먹을 내뿜고 다른 손으론 날카로운 수기를 쏘아냈다.
권과 수의 잔영이 사내를 뒤덮었다.
-어리석은.
사내는 뒤로 물러설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곧장 우빈의 요혈을 향해 검을 뻗었다.
사내의 검이 뻗어 나갈 때마다 수기와 권기가 안개처럼 사라졌다.
“크윽!”
우빈은 사내의 검을 피해 필사적으로 발을 놀렸지만, 날카로운 사내의 검은 우빈의 걸음보다 더욱 빨랐다.
푸욱!
살이 찢겨 나가는 소리와 함께 우빈의 왼팔이 허공을 날랐다.
잘린 어깨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기민하게 움직이던 왼팔은 아직도 허공에서 퍼덕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끝이구나.
사내의 말에 기세가 꺾인 듯 보였던 우빈이 악다구니를 썼다.
“누구 맘대로 끝이야!”
어깨의 혈을 짚자 순식간에 피가 멎었다.
우빈은 바닥을 차고 올라 잘려나간 자신의 왼팔을 잡고 검처럼 쥔 채 팔을 사내에게 겨누며 말했다.
“이제야, 공평해졌네. 무기 없이 싸우는 건 좀 그렇잖아.”
백발 사내는 처음으로 당황한 듯 움찔거렸다.
시우의 오른 손에서 다섯 개의 마법진이 뻗어 나갔다.
[윈드 커터][온 더 파이어]
[프리즌 노바][커싱 오브 포이즌]
[다크 자벨린][아더라이즈 아이스]
[헬 버스터]
[거인의 손][오버 더 아머]
수십 개의 불을 품은 윈드 커터와 독을 품은 프리즌 노바 다크 자벨린과 헬 버스터 거인의 손 등이 화산파 장로전의 노인들에게 쏟아져 나갔다.
퍼퍼퍼퍼펑!
콰콰콰쾅!
지축이 흔들리고 하늘에선 불비가 쏟아져 내린다.
장로전의 고수들이 줄기줄기 뿜어 대는 검기와 강기의 다발은 시우의 마법을 상대하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마법 이펙트는 충돌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장점이 있었지만, 오랜 시간 수련과 대련으로 흔들림 없는 경험을 쌓은 장로전의 고수들에게까지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시우의 왼손에서 마법진 세 개가 뻗어 나갔다
[엘리멘탈 이펙트][라이트 세이버]
빛의 검이 시우의 의지를 따르듯 조익경을 향해 짓쳐 들어갔다.
천살지존검의 깨달음을 품은 라이트 세이버는 절정을 넘어선 조익경을 몰아세웠다.
살기 가득한 검초 하나하나가 조익경 뿐만 아니라 그 뒤에 선 화산의 문도들을 위협했다.
“뒤로 물러서라!”
“하지만….”
“어서!”
조익경이 일갈하자, 화산파의 무인들이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더 이상 걸리적거릴 것이 없자. 조익경의 행동이 더욱 적극적으로 변했다.
[화산신검][매화천홍]
흰색의 매화들이 사방으로 흩날리다, 일순간 적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바람을 타고 흩어지듯 떨어지는 매화들은 라이트 세이버와 닿는 순간 엄청난 공명음을 울리며 허공에 충격음을 전했다.
펑! 펑! 퍼퍼퍼퍼펑!
적매화와 라이트 세이버의 부딪침으로 땅거죽이 뒤집히고 모래 먼지가 사방으로 날렸다.
적매화와 함께 라이트 세이버가 사라지자, 조익경은 시우를 기다리지 않고 몸을 날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다구리는 너무 심한 거 아냐!”
“우린 체면과 위신 모든 것을 걸었지.”
“그래도 좀 적당히 하라고!”
[거인의 손]
시우의 손에서 뻗어 나온 마법진이 거인의 손을 뽑아내며 조익경을 밀어내려 했다.
총알처럼 날아드는 거인의 손 두 개를 피해낸 조익경은 세 번째로 날아오는 거인의 손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화산신검][매화점점]
조익경의 검에는 작은 바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 작은 바람은 다른 이들의 눈에 비치는 그 순간부터 맹렬히 회전하며 사방의 모래 먼지를 휘감아 가루로 만들었고, 검에 닿는 모든 것들을 순식간에 분쇄하였다.
거인의 손이 튕긴 파편들이 사방을 날아다니며 암기처럼 공격해 들어오지만 조익경의 검은 강렬한 믹서기처럼 그에게 날아드는 파편들마저 가루로 만들었다.
폭풍의 크기가 사람 몸통만큼 커지자 조익경은 바로 거인의 손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미미하지만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조익경의 검을 본 시우는 곧장 수인을 맺어 거인의 손을 재조작했다.
[거인의 손][야토가미의 술]
시우의 수인이 펼쳐짐과 동시에 조익경의 검 끝이 거인의 손에 닿았다.
“!!”
엄청난 파괴력을 예상하고 호신강기를 일으키던 조익경은 당금 일어난 사태에 크게 당황하였다.
거인의 손이 마치 유령처럼 자신의 몸을 지나가고 있었다.
시우는 곧장 장로전의 노인들에게도 마법을 흩뿌렸다.
[윈드 커터][야토가미의 술]
[프리즌 노바][야토가미의 술]
[다크 자벨린][야토가미의 술]
[헬 버스터][야토가미의 술]
노인들에게 쏘아진 마법들은 노인들의 검기와 강기를 뚫고 계속 쏘아져 나가다가 급선회하여 장로전의 뒤통수를 노렸다.
노인들은 사방으로 검풍을 일으키고 강기들을 쏘아내며 마법들을 무효화시키려 했지만, 그들의 행위는 모두 헛된 바람에 불과했다.
그 모든 것들을 유령처럼 피하여 장로전의 노인들에게 다가간 마법들은 그 자리에서 실체화하며 피해를 더욱 크게 키웠다.
퍼퍼퍼퍼퍼펑!
“크아악!”
“커흑!”
장로전의 피해에 시선이 팔린 것일까.
조익경이 결국은 거인의 손에 공격을 허용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대단해. 사실 이건 혁련무궁 그자를 대비한 마법이었거든.”
“이것은 마치… 야토가미의 공격 같군.”
조익경이 입가에 흐른 핏물을 닦으며 말했다.
“얘기 못 들었나? 야토가미의 뿌리를 뽑은 게 바로 나야.”
“그런가? 점창의 일이 과대평가 된 것은 아니었군. 아니, 확연하게 과소평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군.”
조익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털었다.
우우웅.
그의 검에서 작은 진동음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뿐이다.”
시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뭔가 해결책이라도 있나 보지?”
“내가 스스로의 직위를 파면하고 폐관동에 들어간 이유는 야토가미를 상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그런 내가 폐관동을 나올 수 있었던 이유가 뭐라 생각하는가?”
“…그거야 보면 알겠지!”
시우의 손에서 마법진이 흩뿌려졌다.
예의 장로전을 패퇴시켰던 그 마법들이었다.
[윈드 커터][야토가미의 술]
[프리즌 노바][야토가미의 술]
[다크 자벨린][야토가미의 술]
[헬 버스터][야토가미의 술]
수십 개의 마법들이 조익경에게 쇄도한다.
조익경은 검을 앞으로 내밀며 시우를 향해 튀어 나갔다.
[화산신검][매화단령]
조익경의 검 끝에 닿은 마법들이 안개처럼 가루가 되었다.
마법의 이펙트도 함께 사라졌다. 그의 검 끝에 닿은 모든 것들이 자잘하게 소멸되었다.
조익경의 검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곧장 시우의 미간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시우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지만, 장로전의 노인들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조익경의 검이 시우의 미간에 닿기 직전.
작은 바람이 조익경의 검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그 작은 바람은 거부할 수 없는 위력을 가지고 그대로 장로전을 향해 쏘아 내었다.
“크아악!”
조익경의 검에 장로전 노인 중 하나가 팔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번엔 내가 목숨 구해준 거다.”
작은 바람을 일으킨 새로운 목소리가 장내에 울렸다.
시우의 입가에 다시금 미소가 지어졌다.
“늦었잖아!”
“나도 필사적으로 나온 거라고.”
시우의 시선이 닿는 곳에 우빈이 자신의 검을 들고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