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각종 첨단 의료기기와 수술 도구가 놓인 커다란 방.
2층에는 거대한 창문과 함께 수술실을 관조할 수 있는 방이 위치했고, 시우의 일행들 대부분은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수술 준비실에서 수술복을 입던 시우가 생사신의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물어보지 않았군.”
생사신의 또한 수술복을 입으면서 말했다.
“조형원입니다. 원이라 부르십시오.”
“최시우다.”
형원은 고개를 끄덕인 뒤 물었다.
“외상 수술 경험은 있으십니까?”
“시체 해부는 많이 해봤지.”
수술실 침대에 누워있던 우빈이 시우의 말을 듣고 불안한 듯 이야기했다.
“나 그냥 한국 가서 수술받아도 되는데. 그렇게 급한 것도 아니고.”
시우가 고개를 저었다.
“우린 이제부터 원이 동생을 구하러 가야 해. 불완전하더라도 전력이 될 사람이 필요하다고.”
“그러니까, 불완전하다는 게 내 몸을 이야기하는 거잖아.”
형원이 말을 거들었다.
“걱정 마세요. 혼자서 수술해도, 성공률이 45%나 됩니다.”
형원의 말에 우빈이 일어나서 몸에 붙은 기기들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아냐, 생각해보니까. 난 그냥 완전한 상태에서 수술받는 게….”
시우가 우빈의 이마를 탁 치자 우빈이 정신을 잃은 듯 다시금 침대에 누웠다.
“야이… 개… 놈아… 나 가지고 실험하지… 마라고….”
우빈의 절박한 음성은 천천히 잦아들다 결국 눈을 감고 말았다.
“우빈의 말대로 한국에 가서 수술해도 된다. 네 누이를 생각하면 그게 더 안전하겠지.”
시우의 말에 형원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연구소를 나서는 순간. 누이의 목숨이 위험한 것은 똑같습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조금이라도 전력이 될 만한 사람을 대동하는 것이 낫겠지요.”
형원의 말에 시우가 대견한 듯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런 시우를 보며 형원이 말했다.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뭐지?”
“만약 누이를 구하지 못하면, 저도 그 자리에서 죽여주십시오.”
“….”
“그리고 그 대가를 강호맹에게 받아 주십시오.”
형원이 결심한 듯 단호하게 이야기 했다.
수술실의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 있던 대기실의 사람들도 하나 같이 시우를 바라보았다.
“그럴 일은 없을 거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확실하게 그 대가를 받아 주마.”
시우의 말에 형원은 안도한 듯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형원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강호맹의 최상층 회의실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연구소 일대에 배치한 녹림의 무인들이 모두 당했소. 그리고 상태는 꽤 심각한 듯 보이오.”
“모두 죽었다는 말이오?”
정산명이 놀랍다는 듯 말했고, 장송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모두 죽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과 다를 바 없게 되었소.”
“그게 무슨 말이오?”
“모두들 실어인이 되었다 하오.”
“실어인?”
“말을 잃고 이지를 잃은 채, 24시간 악몽을 꾸는 듯 계속 괴로워한다고 하오.”
“대체 무슨 일이오….”
이야기를 듣던 계상학이 나섰다.
“자파의 술법가와 의료 전문가들을 동원해 조사를 해봤소. 아마도 강력한 저주에 걸린 듯 보이오.”
“저주?”
“끊임없는 식탐과, 부족한 운동량에도 불구하고, 실어인이 된 이들은 하나같이 내력과 체중이 줄고 있소.”
“먹고 있음에도 계속 말라간다는 말이오?”
“그렇소.”
“그럼….”
정산명이 불안한 듯 이야기하자. 계상학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최시우 그자의 마법의 일종일 거라 생각하오.”
“삼백 명을 다 말이오?”
평생 무공만을 익혀오고 무공의 세계 안에서만 살아온 그들에게 마법의 메커니즘이란 쉽사리 이해되는 학문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그들이 느끼는 공포감은 더욱 컸다.
“자파의 술법가들이 이야기론, 그 저주는 정 반대되는 힘으로 중화시키거나 시술자의 의지에서만 중화시킬 수 있다 하오.”
정산명이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말했다.
“그럼 앞으로 우리는 그자의 손에 죽는 무인들뿐만 아니라. 그자의 손에 저주를 받는 무인까지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오?”
단순히 전투로서 인명이 죽는 것과 후유증을 남기고 사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만약 치료 방법까지 없는 저주라면 더더욱 큰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불가의 힘은 제마(除魔)와 멸사(滅邪)에 효능이 있지. 놈의 저주는 마(魔)에서 비롯되는 바. 정순한 정신을 가진 자가 제압하려 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한동안 비어 있던 자리를 채운 혁련무궁의 말에 정산명이 반가운 어투로 말했다.
“그렇다면, 도가 제자인 자파의 문도들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거요?”
“잡스런 도기 따위가 본교의 어린 아해들을 제압한 적이 있기나 하더냐? 저 땡중한테 부탁이나 해라.”
혁련무궁의 말에 정산명의 얼굴이 종잇장 구겨지듯 찡그려졌다.
잠자코 상황을 자켜 보던 장송계가 물었다.
“교주가 보기엔 어떻소? 그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소?”
장송계의 말에 혁련무궁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뭘 떠보는 것이냐?”
“그의 수준이 얼마나 되느냐 말이오.”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것이지?”
“….”
장송계는 뻔히 알고 있는 이야기에 대해서 묻지 못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꼈다.
“놈이 중국에 직접 발을 디뎠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겠느냐, 자신이 있다는 말이겠지.”
“그렇다 해도 원하는 것을 줄 수는 없소이다.”
“알고 있다. 그래서 본좌도 돌아온 것이다.”
“믿어도 되겠소?”
장송계의 말에 혁련무궁이 콧웃음을 쳤다.
“웃기는군. 태극조사 장삼봉이 네 말을 들었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났을 것이다.”
“난 농담하는 것이 아니오. 강호맹은 창설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소. 역대급 피해를 맞았지만, 아무것도 밝히지 못했고, 그에게 억지로 명분을 씌워 상계의 인원들을 동원중이오. 그리고 그 안에 우리의 치부가 여실히 드러나 있소.”
장송계의 말에 혁련무궁이 짜증스럽다는 듯 혀를 찼다.
“본좌가 이곳에 다시 돌아온 이유가 뭐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느냐.”
장송계는 한참이나 말없이 혁련무궁을 바라봤다.
“….”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소. 이제부터는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소. 반대가 있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요.”
“….”
“….”
“….”
모두를 한번씩 돌아본 장송계가 결국 선언하듯 말했다.
“지금부터 최시우를 비롯한 한연맹의 인원들은 강호맹의 척살 1호 대상이오. 이 시간 이후로 맹은 모든 전력을 이용하여 그를 제거할 것이오.”
* * *
“여길 지금부터 봉합할 겁니다.”
형원이 개복시킨 우빈의 복부 안의 단전 부근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건 내가 하지.”
시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형원을 옭아맸던 검은 촉수들이 솟아오르며 아공간에서 포션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색색의 포션들은 뚜껑을 열고 스스로 나와 형원이 가리킨 곳을 향해 스스로 부유하며 날아갔다.
그 기이한 광경에 형원은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포션들이 서로 뒤엉켜 상처 부위를 감싸자 상처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다음은?”
“네? 네. 다음은….”
시우의 보조는 형원의 수술보다 더욱 빨랐다.
형원은 여지껏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 완벽하게 수술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한편 대기실에서 수술 장면을 바라보던 남궁청의 얼굴은 풀어질지 몰랐다.
“괜찮으냐?”
정현민이 남궁청을 바라보며 물었고, 남궁청은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때로 현실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제가 아는 강호맹은 그런 곳이 아닙니다.”
정현민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구나.”
정현민의 말에 남궁청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이윽고 결심한 듯 남궁청이 입을 열었다.
“전 돌아가 보겠습니다.”
정현민은 그를 보며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다. 너에게 서운함 같은 건 느끼지 않으니 걱정 말거라.”
남궁청은 대기실을 나가는 길에 소빈과 마주쳤다.
“미안하다. 소빈아.”
소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해해요.”
“그래.”
남궁청은 말을 끝으로 대기실을 나갔다.
소빈은 남궁청이 나간 곳을 바라보다 수술실을 다시금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복잡함이 감돌았다.
“…으, 아, 안돼.”
우빈은 악몽을 꾸는 듯 몸을 뒤척였다.
이윽고, 잠에서 깨어난 듯 우빈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가 있던 곳은 여전히 수술실이었고, 시우와 형원은 수술 도구를 정리하는 듯 보였다.
“끄, 끝난 거야?”
우빈은 수술 가운을 풀어 헤치며 자신의 몸을 더듬거렸다.
“미안하다. 역시 우리끼린 무리였어.”
시우의 말에 우빈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거봐… 내가… 그냥 한국에서 받는다니까.”
“대신, 팔과 다리를 개조했어. 팔은 로켓 펀치처럼 날아갔다 되돌아오는 기능까지 넣었고, 다리에는 초당 100발의 연사가 가능한 기관총을 삽입했어. 앞으로 내공 같은 건 필요 없을 거야.”
시우의 이야기를 듣던 우빈의 얼굴이 아연실색 해졌다.
“미, 미친새….”
우빈은 자신의 손과 발을 만졌다.
“왜, 이기어검이랑 같은 수준의 로켓펀치를 가지는 건데. 그건 무인들의 꿈 아냐?”
“야이 개새….”
우빈은 팔을 내밀며 시우가 장착했다는 로켓펀치를 쏘아 보려 했지만 팔은 움직이지 않았다.
우빈의 그런 모습을 보며 형원이 키득 거리며 웃었다.
“수술은 성공했어요.”
“뭐?”
“아니, 성공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입니다. 전 이런 방식으로 수술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럼, 로켓 펀치는?”
우빈의 말에 형원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만약 제가 시우 님께 방법을 배우면 장착시켜 드릴게요.”
시우가 수술복 가운을 벗으며 말했다.
“내공을 일으켜봐.”
“버, 벌써? 아직 회복도 안 됐는데?”
형원이 시우를 치켜세웠다.
“아마 수술한 느낌도 들지 않을 거예요. 현대 의학으로 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수술에 가까웠으니까.”
“새로 재생한 조직 때문에 당김은 있을 거야. 그래도 다 회복 했다고 보면 돼.”
“다시 단전을 가지게 된 걸 축하드려요. 아마 상계에 무인들 중에 우빈님보다 더 튼튼한 단전을 가진 사람은 없을 거예요.”
우빈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우빈이 형원에게 다가가 그를 안았다.
“고마워. 앞으로 그냥 형이라고 불러.”
“형?”
시우가 혀를 차며 말했다.
“무인의 생명을 되돌려 준 사람한테 형이라고 부르라니 은혜를 모르는 놈이네.”
감동에 찬물을 끼얹는 시우의 말에 우빈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넌 나중에 두고 보자. 로켓펀치?! 앙!”
형원은 우빈의 말에 다시 한 번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연구소를 떠날 준비를 마친 형원을 보며 소빈이 물었다.
“짐은 그게 다예요?”
형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곳에서 제 것이라곤 이것밖에 없었어요.”
그가 슬쩍 보인 백팩은 내용물마저 부실 한 듯 절반밖에 차 있지 않았다.
하지만 형원의 얼굴은 그 어느 때 보다 개운해 보였다.
우빈이 형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그의 허리에 은색으로 만들어진 벨트를 매 주었다.
“이건, 시우가 나를 위해서 만들어준 거야. 앞으로는 필요 없을 것 같으니까. 너 줄게.”
자신의 허리에 채워진 벨트를 본 형원이 씩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형.”
우빈도 형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짜식.”
“준비 다 됐나?”
시우가 일행들을 향해 물었다.
형원부터 시작해 김준상의 팀원들까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연구소를 나가는 순간부터 끝없이 싸우게 될 거야.”
시우의 말에 형원이 죄책감에 사로잡힌 듯 고개를 떨궜다.
“누구의 탓이라고 돌리고 싶다면, 그건 내 탓으로 해. 모든 건 내가 결정한 일이니까.”
시우의 일행은 아무도 형원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저 시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호맹이란 놈들이 사람 목숨을 담보로 저 어린애의 인생을 철저히 유린했어. 저 녀석의 아버지의 아버지도 마찬가지고. 단지 저 애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저런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저질러 왔겠지. 자신들의 힘을 위해.”
시우는 일행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놈들과 하하호호 거리며 평화롭게 지내고 싶은 맘 없어. 이곳을 나가는 순간, 나에게 덤벼드는 놈들은 모두 지옥을 맛보게 해줄 생각이야.”
시우가 손을 휘두르자 푸른색의 워프 포탈이 열렸다.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리로 들어가면 돼. 바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포털이니까.”
시우의 말에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던 김준상이 입을 열었다.
“맹주님. 빨리 가면 안 됩니까. 맹주님 방학도 얼마 길지 않은데?”
김준상의 말에 일동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시우는 포탈을 없애면서 외쳤다.
“좋아. 가자! 놈들에게 지옥을 맛보여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