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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투 다크위저드-126화 (126/200)

126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아무리 강호맹이 악독하다 해도. 그렇게까지 할 리 없습니다.”

남궁청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강호맹은 중국 상계의 자존심이었다.

일부의 문파만이 모여 자신들의 힘을 키우고 상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뻗쳐 타 문파들을 억누르긴 했지만, 강호맹은 야토가미를 넘어 중국 상계 전반에 방해가 되는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명분과 실리를 모아 만든 연맹이었다.

맹에 소속되어 있는 세가들은 의무적으로 지원금을 내고, 무인들을 공급한다.

맹을 이루는 6개의 문파가 가장 많은 혜택을 받지만, 불의에 맞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도 그들이다.

그런 도덕적 마지노선이 있기에 그들의 횡행을 참아 온 것이다.

생사신의는 가만히 남궁청을 보았다.

“중국 상계의 분이십니까?”

남궁청은 대답 없이 생사신의를 바라볼 뿐이었다.

생사신의는 천천히 상의를 벗기 시작했다.

가냘픈 팔과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볼품없는 몸이 나타났다.

그리고 마지막 내의를 벗었을 때. 장내의 인물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헉!”

“저런….”

소빈이 차마 볼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생사신의의 작은 몸 심장 부근엔 인두로 지진 상처가 맹(盟)이라는 글자를 표시하고 있었다.

“이건 제 삶을 구속하는 증거이자, 맹이 제게 채운 족쇄입니다.”

남궁청은 한순간도 생사신의의 심장에 박힌 ‘맹’이라는 글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희는 ‘맹’이라는 글자 아래 인간 이하의 도구 취급을 받으며 살아온 존재입니다.”

시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가 안 가는데. 네 의술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기술에 불과할 뿐인데. 그걸 위해 그런 잔인무도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고?”

“그건 저희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생사심법 때문에 그래요.”

“생사심법?”

시우가 정현민과 소빈, 남궁청을 보았지만 그들도 처음 듣는 듯 고개를 저었다.

“생사심법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저희 조가의 직계가 아니면 내공이 모이지 않는 다는 점. 두 번째로 전대의 계승자가 후대의 계승자에게 내공을 전해 주지 않으면 제대로 된 치료를 할 수 없다는 점. 그렇기에 생사심법의 효능은 천하에 오직 한 사람에게만 이어지는 겁니다.”

“혈육인 두 명 이상에게 내공을 전수 해 주면 어떻게 되지?”

생사신의는 건조한 눈으로 시우를 바라봤다.

“생사신의에게 허락된 자손은 남아 한 명과 여아 한 명뿐입니다.”

“단전 치료에 쓰기 위해 너희들을 그렇게 다루었단 말인가?”

시우의 말을 들은 정현민은 담담하게 말했다.

“무인에게 단전이란 생명과도 같네. 단전을 지배하는 자는 결국 수많은 무인들을 지배할 수 있는 법이지. 강호맹이 단지 명분만으로 중국 상계를 지배하긴 힘들지 않겠는가.”

소빈은 생사신의에게 다가가 옷을 건네주었다.

생사신의는 얼굴을 붉히며 옷을 받아들어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제가 맹의 명령을 어기고, 치료해 준다면, 제 누이가 위험해집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도 이런 것 때문이고요.”

“….”

“믿기지 않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게 강호맹은 그런 곳입니다.”

남궁청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연구소를 박차고 밖으로 향했다.

생사신의는 남궁청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저 또한 먼 곳에서 오신 분들이고, 단전에 대한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도와드리고 싶습니다만….”

생사신의의 말에 소빈이 눈가의 눈물을 훔쳤다.

그녀의 손이 생사신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어린 나이에 고생이 많았네요.”

“어, 저….”

소빈의 손에 잡힌 생사신의는 당황하다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모습에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시우 님….”

소빈은 물끄러미 시우를 바라봤다.

시우가 혀를 찼다.

“이건 강호맹의 함정일 가능성이 높아요.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명분을 주고,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계의 인물을 움직이려는 겁니다.”

시우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었다.

“아마도, 단전을 치료하는 방법에 대해선 그들도 대안을 가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 유일하게 단전을 치료할 수 있는 쟤를 두고 간 거겠죠. 내 말이 틀리나?”

시우가 생사신의를 보며 물었다.

“….”

“솔직하게 이야기 해봐. 맹은 이미 다른 방법으로 단전을 치료하는 방법을 발견한 거 아니야? 그렇지 않다면, 단지 한 명을 위한 이렇게 거대한 연구소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는데.”

“1년 전. 한국에서 온 무인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연구 중이던 단전 회복술을 사용해 두 사람을 치료했고, 기존 단전의 80%까지 회복되었었습니다.”

생사신의가 이야기하는 두 사람은 아마도 한라검문과 해도문의 문주일 가능성이 높았다.

시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거봐요.”

시우의 말에도 불구하고 소빈은 여전히 짠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시우 님….”

시우가 생사신의를 바라봤다.

아직 약관이 되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에는 인생의 고난과 슬픔이 잔뜩 서려 있었다.

희망 없는 앞날,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

시우가, 생사신의에게 물었다.

“넌 어떻게 하고 싶지?”

“….”

생사신의는 답변이 없었다.

“1년 전에 80%였다면, 100%까지 도달하는 데 얼마 걸리지 않겠네. 그렇다면 그때는 이미 네가 필요 없는 거 아닌가?”

“….”

“그리고 네가 필요 없게 되었을 때. 맹이 결코 너희 자매를 그대로 내버려 둘리는 없겠지. 너희들은 강호맹의 수치니까.”

시우의 말에 생사신의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이미 연구소에서 모든 인원이 빠져나가면서부터 예상은 하고 있었다.

자신의 효용성은 여기까지라고, 그들이 빠져나간 뒤에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들의 손에 잡혀 있는 누이를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다. 설사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하늘 아래 중국 상계로부터 도망칠 방법은 없었다.

그는 결국 한국에서 온 손님들의 화풀이 대상이 되거나, 운이 좋아도 조금의 시간을 더 가지게 된 제거 대상에 불과했다.

“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 스스로 한 번도 무언가를 선택해 본적이 없으니까요.”

“이제 해야 할 거야. 지금의 네 선택이 네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테니까.”

“….”

“살고 싶지 않나?”

“살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왜 발악하지 않는 거지?”

“발악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테니까요.”

“너희 가문이 그런 치욕을 겪은 것은 그 생각 때문이다. 발악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그 생각.”

“….”

“발악하면 바뀐다. 상대는 나를 더 무서워하고, 나는 더욱 성장한다. 무의미해보이는 그 순간순간의 발악들이 결국 나를 바꾸고 내 인생을 바꾸는 거다.”

생사신의는 시우의 말을 그대로 들을 수 없었다.

강호맹은 거대하다. 그리고 그 뒤에 중국 상계는 더욱 거대하다. 그런 거대한 세력을 상대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좋아. 아직 어리니까. 너무 몰아세우진 않을게. 너에겐 두 가지 선택이 있다. 하나는 그냥 내게 기억을 빨린 후 이곳에 남아 죽음을 기다리는 거다. 강제적이었기 때문에 강호맹이 너와 네 누이에게 해코지는 하지 않을 거다.”

“….”

생사신의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지만, 별 말 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네 스스로 우리를 돕고 우리가 너를 도와 강호맹에게서 벗어나는 거다. 네 누이를 구하고, 너에게 자유를 주겠다.”

“하지만….”

“끝까지 들어. 이건 우리에게도 쓸데없는 일을 나서서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어쩌면 강호맹과의 관계를 그럭저럭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우리 스스로 차는 거야. 우리도 그만큼의 위험을 부담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고. 네가 위험을 감수하면 우리도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거다. 그리고 이건 모두 소빈 님의 배려에 따른 것이고.”

시우는 생사신의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

“결정해라. 남자라면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개척하는 거다. 이게 네 인생을 바꿀 유일한 기회가 될 테니 잘 생각해야 할 거다.”

생사신의는 연구소 한쪽 의자에 앉아 멍하니 머릿속으로 복잡한 계산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계산을 해봐도 명쾌하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고민은 며칠이 있어도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시우는 생사신의에게 1시간의 시간밖에는 주지 않았다.

“무엇을 걱정하고 있나요?”

소빈이 생사신의에게 다가와 말했다.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하게 될까봐 그렇습니다.”

생사신의의 고민을 잘 알고 있는 듯 소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의님은 무엇을 원하나요?”

“원하는 것이요?”

“네.”

생사신의는 문득 자신이 무언가를 바라면서 살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맹에서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만 하며 목숨을 부지해 왔다.

오직 하나뿐인 혈육에 대한 애틋함이 생길 때쯤 생이별하게 된 누이의 근황은 언제나 맹을 통해서만 전해 들었다.

그가 맹에 도움을 주면 맹은 누이에게 더 많은 편의를 제공한다.

그가 맹에 거부하면 맹은 누이에게 불이익을 선사했다.

그는 어느새 맹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인형이 되어 있었다.

“저는….”

생사신의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거리며 솟아올랐다.

그의 눈이 자신도 모르게 촉촉해 졌다.

“저는 자유를 원합니다.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소빈이 생사신의의 눈가를 닦아 주었다.

“그렇다면 원하는 것을 가지세요.”

“하지만….”

문득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는 것에 부끄러운 듯 생사신의가 눈물을 훔쳤다.

“강호맹은… 중국 상계는 무서운 곳입니다.”

소빈은 작은 생사신의의 키에 맞춰 한쪽 무릎을 꿇으며 그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방해되는 것이 두려움이라면, 도망쳐선 안 돼요.”

“….”

“두려움은 실체가 없어요. 싸우기도 전에 피하게 합니다. 맞설 수 없게 하고, 시도하지 못하게 합니다. 하지만 막상 부딪쳐 본다면 그닥 두렵지 않은 상대라는 걸 알 수 있어요.”

“만약 실패한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합니까?”

“그것이 두려워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결국 모두 빼앗기고 말거예요. 그리고 이건 신의님께만 말씀 드리는 거예요. 시우 님은 한 번도 실패하신 적 없어요. 이건 신의님의 각오를 묻는 것에 불과하답니다.”

생사신의는 궁금했다.

이 눈앞의 여자는 자신으로 인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이곳 연구소를 나가는 순간 수백, 수천의 적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노릴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자신을 말리기는커녕, 스스로 사지로 들어가려는 모습이 의아했다.

생사신의가 연구소 한쪽에서 컴퓨터를 만지고 있는 시우의 모습을 보았다.

괴팍하고, 흉폭하다. 정의라곤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고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강호맹의 인사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럼에도 이 눈앞의 여인이 신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 분이. 제가 원하는 걸 이뤄줄 수 있다는 말인가요?”

“신의님이 원하실 경우에만요.”

“저와 제 누이를 강호맹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다는 말인가요?”

“신의님의 각오가 되어 있다면요.”

“….”

생사신의는 한참이나 소빈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시우에게 다가갔다.

컴퓨터를 매만지며 남은 자료들을 찾던 시우가 심드렁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결정했냐?”

“저와 제 누이를 강호맹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세요. 어떤 짓을 해서라도.”

생사신의의 단호한 말에 시우가 한쪽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각오는 되어 있는 거냐? 앞으로 펼쳐질 길은 상상했던 지옥 그 이상일 거야.”

“네.”

생사신의의 표정은 더 없이 단호했다.

시우는 그런 생사신의의 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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