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베이징 정 가운데에 높게 솟은 강호맹의 건물은 베이징의 사는 이들조차도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현대식으로 꾸며진 내부와 일반적인 접객 로비를 지나 내부로 잠입할 수 있는 이는 얼마 없었다.
특히나 일반인들은 알지 못하는 상계의 무인들이 24시간 철통 경비하는 강호맹의 건물 보안은 현대 과학 기술로 감시되는 곳 이상으로 단단한 경비를 자랑하고 있었다.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로비를 지나 건물 내부로 잠입하면 경비가 극도로 취약해졌다.
더군다나, 강호맹의 지하에 마련된 감옥 시스템은 강호맹 내부적으로 미약한 죄를 저지른 사람들만 모아 놓았기 때문에 경비가 허술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한 명의 무인이 순찰을 마치고 이제 막 자리에 앉으려는 찰나였다.
“왜 이렇게 많이 들어오는 거지? 무슨 일이라도 있나?”
이제 막 새로 들어온 신입 죄수의 상태를 확인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린 무인은 갑작스레 마혈을 짚여 기절해 버렸다.
경비를 서는 무인을 제압한 인영은 조용하게 감옥 내부로 스며들었다.
보보마다 발자국 소리 하나 내지 않는 그는 방금 경비가 다녀간 감옥 앞까지 들어갔다.
“꺼지라고 했지! 필요 한 거 없다고!”
감옥 안의 죄수는 뭐가 그리 귀찮은지 베개 속에 머리를 파묻다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씨… 헉! 사, 사형.”
베개에 머리를 처박던 강형산이 감옥 밖의 인영을 확인하고 사색이 되어 바닥에 주저 앉았다.
“괜찮으냐?”
“…사, 사형. 어, 언제 나오셨습니까?”
강형산은 뭐가 그리 두려운 지 몸을 부르르 떨고만 있을 뿐이었다.
“단전을 잃었다 들었다.”
“…네.”
강형산의 대답에 인영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
그자의 짓이냐?”
“…네?”
“사부님을 그렇게 만든 그자의 짓이냐 물었다.”
인영의 질문에 강형산이 다시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네. 그놈 짓입니다. 최시우. 그놈이….”
“화산의 제자를 그리 만든 것도 그놈의 짓이냐?”
“네? 네. 화산뿐만이 아니라 중국 상계의 강호맹도들이 모두 그 자의 손에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은 저희를 탓하며 책임을 돌리기 바빴습니다.”
“알고 있다.”
강형산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사형께선 어찌 알고 나오신 겁니까?”
강형산의 앞에 선 인물. 그는 진문형의 대제자이자 강형산의 대사형 되는 화산독응 조익경이였다. 어린 나이부터 무공의 성취가 빠르고 오성이 좋아 같은 세대에서 그를 따를 자가 없었으며, 누구보다 높은 성취를 이뤘다.
화산파 내부의 모두가 다음 대의 문주로 조익경을 확실시하고 있었지만, 그는 자리보단 무공에 미친 사람이었다.
약관의 나이에 상계에 진출하여 무림을 돌고 강호맹의 활돌을 하며 야토가미의 힘을 느낀 후. 그는 빠르게 화산으로 돌아와 지고지순한 경지를 목적으로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
기간은 무제한, 만약 경지에 들지 못하면 나올 수 없는 폐관 수련을 자처하는 그의 행동에 화산 내부의 모든 선배들이 반대하였지만 그의 뜻을 꺽을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대제자 직위를 강형산에게 넘기고는 그렇게 폐관동에 들어가 버렸다.
그랬던 그가 이렇게 멀쩡하게 자신의 눈앞에 나온 것이었다.
“알고 나온 것이 아니다.”
“……네?”
“나오니 이리되어 있었다.”
강형산의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그렇다면….”
조익경은 답 없이 강형산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추, 축하드립니다. 사형. 화산의 홍복입니다!”
강형산은 자신이 감옥 안에 들어 있다는 것도 잊은 채 고개를 바닥에 박으며 몇 번이나 인사를 올렸다.
“축하는, 모든 일을 마무리 지은 후에 하자꾸나.”
“어, 어쩌실 생각입니까? 사형.”
조익경은 담담히 말했다.
“최시우, 그자에게 책임을 물어야겠지.”
“조, 조심하십시오. 사형. 그놈은 아주 괴상한 사술을 쓰는 놈입니다.”
조익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형산이 말 없는 조익경을 바라보는 순간 코끝으로 짙은 매화향이 풍겼다.
툭, 투툭, 투투툭.
그리고 동시에 강형산을 가로막고 있던 감옥의 쇠창살이 가루로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쇠창살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 흔적조차 모두 사라졌다.
“……!”
강형산은 놀람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직은 맹에 처분에 따르도록 해라. 그동안 사부님을 잘 보살피도록 하고. 모든 일을 제자리로 돌려놓은 후에 돌아오도록 하마.”
조익경은 말을 마치고 감옥을 나서기 시작했다.
강형산은 떠나가는 조익경의 뒷모습에 대고 절을 하기 시작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사형!”
내공을 잃었음에도 그의 목소리는 우렁차기 그지없었다.
* * *
공항에서 내린 시우는 곧장 차를 대절하기 위해 움직이려 했지만, 소빈이 나섰다.
“차를 가져오기로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녀의 말대로 조금 기다리자. 시우 일행 앞에 작은 미니버스가 멈춰 섰다.
미니버스 안에선 시우의 또래로 보이는 한 청년이 내리며 힘차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청년을 보자마자 우빈이 놀란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소빈, 우빈, 정현민과 인사를 나눈 뒤 청년은 시우에게 다가왔다.
“이분이 한연맹의 최시우 님이십니까?”
청년이 소빈을 보며 물었고, 소빈은 대답 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남궁세가의 남궁청이라 합니다. 짧은 여행이지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남궁청의 말에 시우가 의문감을 가졌다.
“이분은…?”
소빈이 나서며 말했다.
“말렸지만, 세가에서 기어코 보낸 사람입니다.”
“하하하. 사실 제가 가겠다고 땡깡을 좀 부렸습니다.”
태양혈이 불록 튀어나온 호남형 인상의 청년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그래도 멀긴 하지만 그래도 같은 혈육 아니겠습니까. 우빈이를 위해 움직이는 일에 세가가 가만히 있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다 생각했습니다.”
남궁청은 시우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시우 님에 대한 궁금증도 한몫했습니다.”
남궁청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시우 또한 더 이상 거절할 수는 없었다.
“괜한 불편을 끼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 생각 마십시오. 태백정가의 은인은 저희 세가의 은인입니다. 또한 미래의 한 집안사람이 될지도 모른다고 들었는데. 그런 말씀 하시면 섭섭합니다.”
“오빠!”
남궁청의 말에 소빈이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허페이시를 나와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는 운전하는 남궁청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그러면, 시우 님 혼자서 야토가미를 쓸어 버렸다는 이야기입니까?”
남궁청은 몇 시간이나 혼자 떠들었지만,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 입을 열었다.
그런 그의 이야기가 지칠 법도 했지만, 그 특유의 친화적인 대화법 덕분에 일행은 불편하기보단 외려 즐거운 여행길이 되었다.
“그건 아닙니다. 모든 분들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죠.”
시우의 겸양에 시우를 보는 남궁청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아직 약관이 되지 않은 나이에, 무공이 아니라 하지만 마법이란 힘으로 절대 힘을 발휘하고, 어린애답지 않은 생각과 행동력 등은 그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인간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우와 남궁청의 즐거운 대화가 계속되는 사이 미니버스는 목적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제 곧 목적지에 다다를 듯합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일반 도로를 타기 시작하자 주위의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허페이시가 찬란하게 빛나는 도시 문명의 반증이라면 이곳은 몇십 년이나 거슬러 올라간 과거의 중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나마 도로가 제대로 깔린 탓에 불편함은 없었다.
“속도를 줄여야겠군요.”
시우가 말하자 남궁청이 되물었다.
“네?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만.”
시우의 손에선 이미 마법진이 생성된 뒤였다.
“적들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미니버스 위로 커다란 반투명의 장막이 생겨났다.
그 순간 거대한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미니버스 전체에 충격이 울렸다.
퉁!
바람 빠지는 소리는 그와 동시에 버스 뒤쪽으로 이어지며 이어 큰 폭발음을 울렸다.
쾅!
남궁청은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급작스레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이, 이게 대체.”
“이것 때문에 세가에 피해를 입힐까 걱정했던 겁니다.”
“가, 강호맹의 짓이란 말입니까?”
시우가 대답 대신 남궁청의 어깨를 두들겨 주며 밖으로 향했다.
“소빈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말씀드린 대로 이미 한연맹과 강호맹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예요. 우리가 중국에 직접 온 것은 전쟁터를 중국 상계로 한정하기 위해서였어요.”
“하, 하지만 인원이 너무 적지 않니? 이 인원으로 무슨 전쟁을…?”
남궁청이 정가와 세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나선 것은 큰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란 예상 때문이었다.
위험한 일이라면 한연맹의 맹주가 중국에 발 디딜 일 없을 것이고, 진정 위험함에도 이곳에 와야 한다면 겨우 열 명 남짓 인원으로 올 일이 없을 거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다만 그가 계산하지 못했던 것은 최시우란 남자의 머릿속 구조였다.
“저희 맹주님은 원래 그런 분이세요.”
소빈 또한 그렇게 말하며 버스 밖으로 나섰다.
“청이 너 이런 사태는 생각도 못 했나보구나.”
정현민 또한 그렇게 말하며 버스 밖으로 나섰다.
“형. 무리하지 마요.”
우빈 또한 그렇게 말하며 밖으로 나갔다.
김준상이 팀원들과 앞쪽으로 나와 남궁청에게 물었다.
“혹, 불안하시면 저희 팀원 한 명을 남겨 둘까요?”
김준상의 물음에 남궁청이 고개를 저었다.
“너무 무리하지 마십시오. 혹 힘드시면, 저희 쪽으로 몸을 피하시면 됩니다.”
김준상과 팀원들이 그렇게 말하며 밖으로 나섰다.
홀로 남은 남궁청은 자신도 모르게 자존심이 상했다.
같은 한 식구였기에 태백 정가에게 경쟁심 같은 것은 없었으나, 자신보다 훨씬 어린 연배의 먼 친척 동생들이 이런 급작스런 사태에 태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스스로의 모습이 못내 못나 보였다.
“하하, 나 이거, 세가 망신은 내가 다 시키고 있었군.”
남궁청은 의자 뒤편에 놓아둔 자신의 검을 꺼내어 들고 버스 문밖으로 나갔다.
자신감을 가지고 나간 것과 달리 버스 밖에 펼쳐진 장면에 남궁청은 넋을 잃고 말았다.
“이, 무슨….”
무인으로 보이는 수백의 인원들이 첩첩산중으로 버스 하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대부분 검과 도를 찬 이들이었고, 중간중간 부적을 들고 있는 도사들도 보였다.
“이건 너무 하는 거 아닌가?”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넋이 나간 남궁청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거, 별거 아냐, 예전에 야토가미랑 붙을 때는 진짜 말도 못 하게 무서웠다구.”
우빈이 의기양양하며 이야기하자. 정현민이 우빈의 뒤통수를 때렸다.
“긴장 풀지 말거라. 맹주가 있다 해도 강호맹은 쉬운 상대가 아니다.”
“…네.”
우빈의 이야기를 듣던 시우가 앞으로 나섰다.
그의 입에선 유창한 중국어가 흘러나왔다.
“우린 강호맹의 허락을 받고 생사신의를 만나러 왔다. 불필요한 충돌은 원치 않으니 맹에 확인 후 문을 길을 열어라!”
시우의 말에 잠시 뒤 털을 잔뜩 기른 중년의 거한이 앞으로 나섰다.
“이곳은 무인의 성지와 같은 곳이다. 동이족 따위가 들어설 수 없는 곳이니 돌아들 가라!”
거한의 말에 시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한국에서 온 것은 어떻게 알았지?”
“…!”
“애초에 우리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구나. 우리가 돌아간다고 하면 보내 줄 것인가?”
시우가 되물었다.
거한이 얼굴을 붉히며 입술을 씰룩거렸다.
“흥 뻔한 것을 물어보는구나.”
거한이 등 뒤로 맨 거도를 뽑아 들었다.
“네놈들이 갈 곳은 무덤 뿐이다!”
그의 말과 함께 삼백에 달하는 인원들이 자신들의 무기를 꺼내어 들었다.
금속성이 사방에 울려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괘, 괜찮은 거지?”
남궁청이 불안한 듯 말했지만, 대답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