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서울 모처의 호텔.
서울의 야경이 환하게 보이는 호텔 최상층 펜트하우스에는 한 사내가 살고 있었다.
야경을 바라보는 이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며 증오를 토해냈다.
“같잖은 한국 따위가.”
잔에 담긴 술을 한입에 들이킨 사내는 다시금 술을 따르면서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자신의 떨리는 손을 인지한 사내는 신경질적으로 술병을 내던졌다.
“내가… 내가… 겨우 그따위 놈한테….”
평생을 선택된 이들에게만 닿을 수 있다는 무공을 익혔다.
어지간한 술이 몸에 들어오면 몸 안에 잠재된 최상승 무공의 내공이 자연스레 움직이며 술을 해독한다.
이미 경지에 오른 그의 몸은 술로 몸을 망치려 해도 망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술잔을 드는 그의 손은 마치 말기 알코올 중독자의 손처럼 떨리고 있었다.
“크으….”
야경을 바라보는 검은 유리창으로 흐릿하게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폐인처럼 자란 턱수염과 머리카락. 예전의 깔끔하고 단정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사내는 다시금 신경질적으로 술잔을 유리창에 던져 버렸다.
쨍그랑.
강화 유리로 만들어진 호텔 내부의 창문은 흠집 하나 나지 않았고, 대신에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유리가 깨지며 파편이 얼굴에 튀었다.
작은 상처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크크크크. 꼴같잖군. 정말.”
자신의 꼴이 우스워 견딜 수가 없었다.
한연맹을 치기 위해 맹의 명령을 받고 나섰지만, 말도 안 되는 사술로 대부분의 동료를 잃었다.
자신은 겨우 살아나 맹의 지원 병력과 함께 다시금 한연맹을 치려 했건만, 돌아오는 대답은 자파의 문주가 독단적으로 병령을 움직여 맹에 피해를 끼쳤다는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에 피가 거꾸로 솟을 만큼 분노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맹의 사자에서 갑자기 범죄자가 된 그는 그 상황을 견딜 수 없어 맹의 감시를 피해 한국으로 숨어들었다.
맹도 그런 그의 상황을 이해하는 듯 감시의 눈초리가 강하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그렇게 한국에 진출한 속가 제자들의 회사에 들어와 생각을 정리한 후에야 자신들이 토사구팽당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더러운 위정자들….”
사내의 이가 뿌드득 갈렸다.
핏물을 닦아내는 그의 귓가에 누군가 문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사내는 신경질적으로 펜트하우스의 정문을 바라봤다.
커다란 크기의 문이 양쪽으로 열리며 올백 머리를 한 사내가 하우스 내부로 들어왔다.
사내는 그제야 다시금 야경을 바라보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불편한 건 없으십니까? 형님?”
올백 머리의 사내의 말에 술을 마시던 사내가 무뚝뚝하게 답했다.
“……무슨 일이냐?”
“형님 컨디션이 여전히 좋지 않으신 거 같아 들렸습니다.”
“지금은 심란하니 나중에 다시 와라.”
“그래서 제가 작은 이벤트를 하나 준비했습니다.”
“뭐?”
사내가 신경질적으로 돌아봤지만 올백 사내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오늘 손볼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저희 소속사 애가 부른 거 같은데. 이놈이 꽤 실력이 있더군요.”
“그딴 이야기를 왜 나한테 하는 거지?”
“그 녀석을 손볼 겸. 애들을 몇 보냈습니다.”
사내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올백 사내를 바라봤다.
“한동안 말썽부리지 말라고 이야기한 것 같은데?”
“말썽이나 될 일도 아닙니다. 아마 상계의 어딘가에서 외공을 좀 배운 모양인데 상계의 룰도 모르는지 망나니처럼 마구 뛰놀고 있더군요.”
올백 머리 사내의 말에 사내는 관심이 없는지 고개를 돌려 야경을 바라봤다.
“이 녀석을 데리고 놀다 죽일 생각입니다. 관심 없으십니까?”
“…….”
화가 많이 쌓이긴 했다.
그동안 죄 없는 물품과 술잔을 깨는 것이 수십 번.
올백 머리의 사내도 그걸 알기에 사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야경을 바라보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어디냐?”
* * *
“여기가 어디야?”
밴에서 내린 시우는 거한들의 손에 잡혀 손발이 묶인 채로 봉고에 태워진 시우는 한참을 암흑 속에서 움직이다 어느 한적한 시골 공터 같은 곳에 패대기 처졌다.
“여기가 어디냐고?”
칼자국 사내가 시우의 안대를 벗기며 말했다.
“네놈이 묻힐 장소지.”
“묻혀? 내가 왜?”
“주제도 모르고 까분 대가다.”
칼자국 사내의 말에 시우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그거 죗값이 너무 센 거 같은데?”
손발이 묶이고서도 전혀 두려움이 없어 보이는 시우의 태도에 칼자국 사내는 귀엽다는 듯 시우의 얼굴을 툭툭 쳤다.
“네놈은 사람 잘 못 건드렸어. 감히 홍메이 그룹을 적대해?”
칼자국 사내는 핸드폰을 꺼내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기 시작했다.
“어디다 전화 거는 거야?”
시우가 칼자국 사내에게 묻자 칼자국 사내가 말했다.
“너를 데리고 온 연놈들한테 보여주는 거지. 우리한테 거역하면 어떻게 되는지.”
“난 그런 거 싫은데.”
시우가 그렇게 말하자. 칼자국 사내의 핸드폰이 갑자기 스파크를 튀기며 터져버렸다.
“에이 씨. 뭐야! 염병할 한국 핸드폰.”
칼자국 사내는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손짓을 했다.
“다른 거 가져와.”
그사이 다른 조직원들이 서로 나서며 핸드폰을 내밀었다.
하지만 두 번째 핸드폰도 커다란 스파크를 튀기며 불이 붙었다.
“야…! 이거 뭐야! 다른 거!”
칼자국 사내가 돌아서며 버럭 소리를 지를 때. 달려오던 조직원들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떠지며 칼자국 사내의 뒤편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칼자국 사내 또한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그곳에 시우가 결박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아! 방금 이야기한 죗값 말이야. 그거 좀 마음에 드는 거 같아. 너희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도 죄책감 같은 거 안 가져도 되고 말이지.”
시우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 * *
목적지로 향하는 차 안에서도 사내는 연신 손에서 술을 놓지 않았다.
그가 술을 입에 대지 않을 때는 자신이 할 말이 있을 때뿐이었다.
“죽이지 말라고 해. 반응 없는 상대를 건드리는 것만큼 재미없는 것도 없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올백 머리 사내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싱글거리며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를 걸 때마다 통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아마 준비해 놓느라 바쁜가 봅니다.”
올백 머리 사내가 눈치를 보면서 이야기했지만 사내는 그의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는 듯했다.
사내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야경을 보며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려 했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문파 내외부로 엉망이 되어 가고 있었다.
본 산에선 계속 그에게 돌아오라는 말을 하고 있었지만, 맹에선 그에게 수배를 내렸다.
이번 일에 대한 가장 큰 책임자로 자신과 사부가 지목되었던 것.
사부는 적의 사술에 당해 큰 부상을 입었지만 제대로 된 치료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사부는 이번 일에 책임을 묻고 맹 내부의 감옥에 들어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땐 가슴으로 피눈물을 흘리는 기분이었고 세상이 거꾸로 도는 느낌이었다. 당장에 맹으로 돌아가 위정자들을 모두 일거에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그조차 할 수 없는 자신의 미비한 힘에 굴욕적으로 좌절할 뿐이었다.
다행이라면 맹과 본산 내부에서도 이번 일에 대해서 최대한 함구하고 있었기에 속가제자가 운영하는 회사에까진 이야기가 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해야 했지만,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지금의 이 사태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연맹을 비롯해 한국 상계의 인간들은 그동안 감히 중국 상계와 연계된 회사에 저항 할 수 없었다.
‘아마도 한국 상계 내부에 뭔가 이야기가 돈 것이겠지.’
한연맹 내부에서도 쉬쉬하고 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비열한 승리를 암암리에 자랑스러워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여파로 이런 미꾸라지들이 날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얼마나 남았지?”
사내가 자신도 모르게 살기를 내뿜었다.
그의 어깨에서 보라색 연무가 피어오르며 술 냄새가 차 안을 가득 메웠다.
올백 머리의 사내는 그 보라색 연무를 보며 연신 감탄했다.
“금방 도착합니다. 어이! 속도 좀 올려!”
검은색 리무진은 속도를 높여 서울 외곽을 빠져나갔다.
“도착했습니다.”
기사의 말에 올백 머리의 사내가 창밖을 바라봤지만, 사위는 불빛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밤이었다.
“이 자식들이 조명을 키워 놓으라니까. 형님 제가 먼저 나가 보겠습니다.”
사내는 답이 없었고, 올백 머리 사내는 먼저 움직였다.
“이봐! 아무도 없나! 한 실장!”
자주 보던 차들은 분명 둥근 원형을 이루며 공터에 주차되어 있었지만, 인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창고 안으로 들어가려던 올백 머리의 사내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당신이 강형운인가?”
강형운은 자신의 이름을 쉽게 부르는 앳된 목소리에 내공을 끌어 올리며 살기를 분출했다.
“잡스런 살기를 내뿜는 걸 보니 강형운이 맞나 보네?”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와 함께 갑작스레 차들의 조명이 들어왔다.
조명이 집중된 곳엔 한 실장을 비롯한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조직원 십여 명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걸터앉은 앳된 얼굴의 청년.
다름 아닌 시우였다.
“네놈은 누구냐?”
“네가 죽이라고 명령한 사람.”
“네놈도 상계 인간이겠지?”
강형운이 쓰러진 실장들과 조직원들을 보며 물었다.
“꽤나 실력이 있는 건 알겠다만 상대를 잘못 건드렸다. 우리가 누군지 아느냐?”
“근본 없는 개잡놈에 나이 어린 여자를 때리는 쌍놈이라는 건 알겠더군.”
“풋. 푸하하하하.”
시우의 말에 강형운이 웃음을 터트렸다.
“뭐가 그리 웃기지?”
“알량한 실력을 가지고 으스대는 꼴이 우스워서 그런다.”
시우가 깔아뭉개고 있던 조직원들의 등에서 몸을 일으켰다.
“꽤나 자신의 실력을 자신하나 보네.”
“실력으로 보여주마.”
자세를 잡는 강형운의 주먹에 매화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그는 속가제자로서 절기를 모두 전해 받지 못했지만, 매화권 하나만큼은 제대로 배웠다. 그리고 그것으로 지금의 이 자리까지 올라설 수 있었다.
“주먹질에 꽤 자신이 있나 보네.”
자세를 잡는 강형운의 앞에서도 시우는 긴장감이 없었다. 그저 천천히 강형운에게 다가갈 뿐이었다.
차에서 기다리다 지친 사내는 차에서 내려 천천히 불빛이 켜진 공터로 향했다.
공터에선 강형운이 매화기를 일으켜 매화권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떤 상대인지 궁금하던 차였지만 두 사람은 이미 격돌을 하고 있었다.
강형운의 주먹과 상대의 주먹이 맞부딪쳤다.
펑!
주먹과 주먹이 맞닿는 둔탁한 충격음이 아닌 기와 기가 맞붙는 공명음이 장내를 울렸다.
공명음과 함께 모래 먼지 바람이 사내의 눈을 잠시 가렸다.
그사이 끔찍한 비명을 내질러졌다.
“크아아아악!”
매화권은 검의 명가라는 화산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하는 권술이었다. 아마도 매화권에 맞붙은 상대의 팔과 어깨는 평생 제대로 쓰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예상과 함께 사내가 고개를 돌렸을 때. 손을 쥐고 넘어져 있는 것은 강형운이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눈으로 상대를 바라봤을 때. 사내는 기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 너. 강호맹의 검 쓰는 놈 아니냐?”
시우는 정말 반갑다는 눈빛으로 강형산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