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다크위저드-113화 (113/200)

113

도쿄 지요다 구.

야스쿠니 신사.

존재만으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기 충분한 이 건물 안으로 이토는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들어섰다.

그의 마음이 무거웠던 건 제국이었던 일본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가진 미천한 이들에 대한 죄의식 때문은 아니었다.

국제적 논란 속에서도 일본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그것을 이토는 ‘무사의 정신’이라며 되려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의 마음이 무거운 것은 몇 달째 야토가미의 답이 들려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국과의 불화는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다케시마에 대한 영유권 주장에 더불어 초계기 위협 사건과 혐한 시위에 대한 불똥으로 재일한국인들이 부상당하면서 이에 유감을 표시한 한국과 불화는 무역 단절에까지 다다르고 있었다.

여기에 과거 역사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난은 날로 강해져 국제 사회에서의 일본의 발언권을 흔들리게 만들 정도였다.

종전 후 60년.

다시금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명분을 쌓아 왔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야토가미의 답변이 들리지 않아 이토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도 야토가미의 허락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었다.

상계의 힘은 초월적이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고 기술이 발전해도 그저 인간에 머무는 자신들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의 힘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건 마치 개미와 인간의 싸움처럼 절대로 넘볼 수 없는 절대적 영역이란 것이 있었다.

“어디까지 따라올 셈이냐!”

자신을 따라오는 수행원들을 신경질적으로 물리친 이토는 커다란 크기의 신사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사방의 불이 꺼져 있음에도 이토는 환한 불이 켜진 것처럼 쉽게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향했다.

비밀 통로 안 계단을 걸어 내려가기 시작한 이토는 계단이 끝날 즈음 구두를 벗고, 양복 상의를 벗어 한쪽에 잘 개 두었다.

그리고 계단이 끝나는 부분부터 바닥에 엎드려 절하는 자세로 천천히 기어가기 시작했다.

내부에 들어선 이토는 순간 움찔하며 기어가던 움직임을 멈췄다.

내부의 조명이 평소보다 훨씬 밝았던 것이다.

마치 대낮처럼 밝은 조명 아래서 이토는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다 다시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인 체 이동해야 하는 이토는 양옆으로 놓인 빈 방석의 숫자를 세며 자신이 멈춰야 할 곳을 가늠하다 다시 한번 멈춰 섰다.

‘뭐, 뭐냐….’

총리가 되고, 이 방에 들어선 뒤로 숱한 시간 동안 빈 방석 위로 누군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이토는 살짝 고개를 돌려 반대쪽을 보았다.

그곳에도 누군가 빈 방석을 채우고 앉아 있었다.

‘혹… 사, 사천신인가….’

멈춰 서서 고민하던 이토는 자신의 어깨 위로 섬뜩한 기분이 드는 것을 느끼고는 화들짝 놀랐다.

‘허, 헙!’

숨이 막혀 오고 체한 듯 속이 답답했다.

‘내, 내가 무슨 생각을….’

오오가미가 분노한 것이라 생각한 이토는 다시금 바닥을 기어 목적한 곳까지 다다른 후 멈췄다.

그리고 오오가미의 분노를 지우기 위해 평소보다 더욱 우렁차게 외쳤다.

“야토가미의 성실한 일꾼이자 오오가미의 미천한 종. 이토 신조가 오오가미께 인사 올립니다!”

“…큭.”

이토는 순간적으로 귓가에 들린 웃음을 참는 소리에 자신이 뭔가를 잘 못 들은 건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하지만 이내 온몸을 옥죄는 살기가 사라지는 느낌에 오오가미의 분노가 가라앉았다 생각한 이토는 다행이라 생각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신이시여! 인고의 시간 끝에 모은 신의 군대가 전 세계의 위선자들에게 비난당하고 배척당하고 있습니다. 주제를 모르고 날뛰는 한국은 다른 위선자들의 도움을 받아 신의 군대를 모욕하고 신의 종인 저희들을 능멸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종들은 괴로움 속에 죽어가고, 이 땅은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습니다.”

이토는 목에서 피가 터질 것처럼 크게 외쳤다.

“신의 것을 탐한 저 큰 대륙의 배덕자들은 자신들이 모든 땅의 주인인 양 행세하며 전 세계를 손아귀에 넣으려 계략을 꾸미고 오오가미 신의 축복으로 풍요를 노리는 자들은 매일매일을 오오가미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그들을 처단하시어 저희 종들의 구원하시옵소서.”

이토는 감정이 격화된 듯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바닥에 머리를 가져다 댔다.

“쟤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그때 끔찍한 목소리 대신 앳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글쎄요. 아마 자신의 상황을 최대한 비관적으로 명시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은데요?”

그리고 방석이 있는 공간에서 청아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거 쟤들이 먼저 잘못한 거잖아?”

“그것에 대해서 별로 반성하지 않는 것 같은데요.”

“흠….”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이토는 상당한 혼란을 느끼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곳엔 오오가미 대신 앳된 얼굴의 청년과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방석 위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웃기는 놈이네. 잘못은 지가 하고 왜 우릴 비난하는 거야?”

“원래 나쁜 놈들이 그렇잖아요.”

이토는 너무 놀라 고개를 들다 뒤로 넘어갔다.

“웨, 웬 놈들이냐!”

이토는 너무 놀라 손을 부르르 떨면서 오오가미의 자리에 앉아 있는 청년에게 손가락질했다.

청년은 귀찮다는 듯 손을 휘 휘두르자 이토의 손가락이 꺾여선 안될 방향으로 꺾였다.

“끄아아아악!”

이토가 손가락을 부여잡고 바닥에 뒹굴었다.

“엄살 그만 피우고. 난 최시우라고 해.”

시우의 입에서 최시우란 이름이 나오자 이토가 겨우 고개를 들어 그를 봤다.

“최, 최시우? 한국 상계의 최시우?”

“오! 나를 알아? 나 꽤 유명한가봐?”

시우가 한세아를 보며 그렇게 묻자 한세아가 싱긋 웃어 보여주었다.

“네, 네가 여긴 왜! 이, 이곳은 우리 야토가미의 …끄아아악!”

말을 잇던 이토가 다른 손가락을 부여 잡으면서 비명을 질렀다.

“예의가 없네. 우리나라에선 이런 걸 싸가지가 없다고 하는데. 싸가지가 없는 놈은 어떻게 고치는지 알아?”

“…….”

“멀쩡한 손가락이 없을 때까지 모두 부러뜨려 놓는 거야. 그럼 근본 없는 놈도 성인군자가 된다니까.”

시우의 섬뜩한 말에 이토는 최대한 비명을 죽이면서 겨우 몸을 추스렸다.

“좋아 이제 좀 싸가지가 생긴 것 같네.”

“다, 당신은 누구지? 이곳은 우리 오오가미 님의 …끄아아아악! 왜!”

세 번째 손가락이 반대로 꺾인 이토는 금방이라도 혼절할 것 같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머리는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깨어 있었다.

“내가 네 친구냐? 당신? 손가락이랑 발가락을 다시 못 써봐야 네가 정신을 차리지?”

“크…윽…. 내가 누군 줄 알고….”

총리로서 자존심과 평생 아수라장을 헤쳐 왔다는 자부심은 그를 쉽게 꺾이지 않게 만들었다.

“끄아아아악!”

하지만

“끼야아아악!”

“비명을 여자애처럼 지르네요.”

“다 늙은 노인네가 끼아악이라니. 추하군.”

그 대단한 자부심과 자존심은 손가락 다섯 개가 꺾일 때 함께 꺾여 나갔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토는 한쪽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이제 좀 대화를 할 만큼 예의를 갖췄네.”

시우의 음성에 몸을 부르르 떨던 이토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 어찌 된 것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어찌 된 것 같아?”

시우의 물음에 이토가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보았다.

싱글거리며 웃고 있던 시우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퍽!

이토 신조의 머리가 바닥에 깨질 듯 처박혔다.

“오오가미에게 하던 것 이상으로 예의를 차려야 할 거야. 그는 이제 이 세상에 없으니까.”

“크으윽.”

이토 신조의 머리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오오가미를 비롯한 야토가미의 뿌리를 뽑았다. 이 세상에 더 이상 그들의 존재가 나타나는 일은 없을 거다.”

“저, 정말입니까?”

이토는 이번에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앉아 있을 거라 생각해?”

시우의 차가운 음성이 들려 이토는 입을 다물었다.

“…….”

“앞으로 일본 상계는 한국 상계의 지배를 받을 거야. 그게 뭘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지?”

“…!!!”

이토의 온몸이 긴장으로 가득했다.

“원치 않는다면 저항해도 돼. 물론 그 대가는 혹독할 거야.”

이토의 온몸으로 예의 그 살기가 엄습했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쏘아진 살기에 이토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했다.

“저, 저희가 뭘 하면 될까요?”

“글쎄, 잘 생각해봐. 가장 먼저 뭘 해야 하는지.”

“며,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토의 말이 끝나자, 장내에 서서히 빛이 들기 시작했다.

환한 빛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토의 눈까지 멀게 만들 듯 빛나다 한순간 사라졌다.

“시, 시우 님?”

인적이 느껴지지 않음에 천천히 고개를 든 이토는 내부에 아무도 없음을 알고 털썩 주저앉았다.

잠시 주저앉아 있던 이토는 어떤 생각이 든 듯 번쩍 일어나 신사 밖으로 향했다.

“초, 총리님!”

신사 밖으로 튀어나온 이토의 모습에 대경실색한 경호원이 이토에게 다가가며 그의 상태를 살폈다.

이토는 그의 손을 뿌리치며 외쳤다.

“내각 정보실에 연락해라 당장!”

* * *

일단의 무리가 어두운 숲길을 걷고 있었다.

맨 앞에 선 청년의 뒤로 여러 인원이 말없이 걷고 있을 때.

청년 뒤에 섰던 가냘픈 몸매의 여인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가 어떻게 행동할 거라 생각하세요?”

“우선 확인부터 해 보겠지.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저항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대가를 치루 게 해줘야지. 혹독하게.”

시우의 음성엔 단호함이 잔뜩 담겨 있었다.

“탄압하거나 약탈 따윈 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가 지배자이고 누가 피지배자인지는 확실히 알 수 있도록 만들어 놔.”

“알겠습니다.”

한세아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일본의 작은 무력단체 들에서 연락이 오고 있어요. 시우 님을 뵙고 싶다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지?”

시우가 무덤덤하게 이야기했다.

“네.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시우를 비롯한 기습조들은 다시금 말없이 길을 걸었다.

이윽고 숲이 끝나고 숲 밖으로 긴 해안가가 나왔다.

해안가 끝엔 커다란 크루즈가 불을 켠 채 출항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 오셨다!”

누군가의 외침에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지?”

시우가 의문스런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던 이들을 바라봤다.

그러자 수백은 될 법한 인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새로운 신께 인사드립니다.”

포로로 지내던 이들, 그들의 후손들, 야토가미에 핍박받던 이들까지 모두 가릴 것 없이 시우에게 예를 표하고 있었다.

“일어나세요.”

시우의 예를 갖춘 말에 사람들이 의문스런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앞으로 가짜 신 노릇 따위를 하거나 그것에 휘둘리는 사람은 없어야 할 겁니다.”

피어를 섞은 음성이 그들의 머릿속을 울리자 그들은 마치 신의 경고를 받은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신을 신이라 부르지 않으면 무엇으로 불러야 합니까?”

“최시우. 그게 제 이름입니다.”

사람들은 더욱 혼란스런 표정이었다.

“그, 그럼 저흰 누굴 믿어야 합니까?”

“자기 자신. 그리고 옆에 있는 동료와 가족.”

그렇게 말한 시우가 사람들을 지나쳐 크루즈로 다가갔다.

한연맹의 무사들이 일렬로 도래해 시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분들까지 이러실 겁니까?”

무사 하나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시우 님. 한국으론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시우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가자. 한국으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