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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투 다크위저드-106화 (106/200)

106

진문형은 분노하고 있었다.

천살지존검.

자신들이 잃어버린 강호의 절대무공.

잃어버린 무공이 엄한 이들의 손에 있다는 것도 화가 났지만 그 무공의 힘을 보자 화는 탐욕으로 바뀌었다.

‘반드시 한연맹과 최시우를 제거해야 한다.’

한국을 밟을 때 했던 다짐은 각오로 변했다.

“강호맹의 맹도들은 길을 열어라!”

진문형의 말에 때를 기다리던 무인들이 파도처럼 밀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장내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 * *

“여긴 어디지?”

어둑한 공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공간은 상하좌우의 구분이 없었다.

똑, 똑, 똑.

어둑한 공간 안에선 정기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의 소리만이 울렸다.

“이봐! 아무도 없어! 여긴 어디야!”

외침은 메아리로 퍼져나가며 공간을 크게 울렸다.

그 외침에 응답하듯 회색의 고브를 깊게 눌러 쓴 인형이 허공에 둥둥 뜬 채로 나타났다.

“여긴 어디야? 당신은 누구지?”

다크는 눈앞의 존재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가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 것이냐?

“내 질문에 대답이나 해. 넌 누구냐?”

회색의 로브를 입은 자는 팔을 슬쩍 휘둘렀다.

어둠으로 가득했던 공간 일부에 구멍이 뚫리며 그 안으로 작은 방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구멍 안으로 나체의 금발 미녀가 검으로 사내의 가슴을 연신 찌르고 있었다.

핏물이 사방으로 튀고 있음에도 미친 듯이 웃으며 검을 찔러대는 미녀의 모습은 기괴하고 공포스럽기 그지없었다.

그 장면을 보던 다크가 통증이 전해 오는 듯 가슴을 쥐었다.

“…난 죽은 것인가?”

단지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슬픔보다도 더욱 괴로운 것은 이세계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허락한 여인의 손에 죽어 간다는 것이었다.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꼈던 사람은 자신을 죽이고, 자신의 죽음에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하고 있었다.

죽음보다 더 아픈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정말 잔인한 세계야. 정말… 조금도 정이 가지 않는 잔인한 세계야. 이 세계는.”

지구에서도, 알게니하에서도 그가 안식을 취할 만한 곳은 없었다.

지구에서는 가세가 기운 집안의 장남이자 학교의 공식 왕따였고.

알게니하에서는 검은 머리를 가진 괴물이자 대륙의 공식 척살 대상이었던 다크 위저드였다.

그 긴 시간을 돌고 돌아 유일하게 기대고 사랑 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의 손에 잔인하게 죽었다.

최시우로 살았던 18년. 다크로 살았던 15년.

모든 생애동안 외롭지 않았던 때가 없었다.

“난 어디로 가지?”

-넌 갈 곳이 없다.

회색의 로브의 말에 다크는 공포로 질린 얼굴이 되었다.

“무, 무슨 소리야?”

-넌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지 않느냐?

다크의 입술이 떨렸다.

“이, 이곳에 떨어진 건 내 의지가 아니야.”

-그렇다 해도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닌 넌 이 세계의 명계에 다다를 수 없다.

“말도 안 돼….”

다크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버티지 못하고 주저 앉았다.

“신…. 신을 만나게 해줘. 나를 이곳에 데려 왔던 신…. 그를 만나게 해줘!”

-이미 만나 보았지 않느냐?

회색의 로브가 구멍을 가리켰다.

구멍 안에선 정체를 숨기기 위해 머리를 깍고 눈썹을 밀고 신전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다크가 보였다.

“신전에 갔던 건 저 때뿐이라고! 최소한 나에게도 세 번의 기회는 줘야 하잖아!”

-넌 이미 이 세계의 수 없이 많은 신들을 만났다.

구멍 안에는 다크를 실험했던 미친 마법사와 그를 샀던 귀족들, 좀비굴의 바텐더와 용병. 그리고 미쉘까지 모두 나타났다.

-넌 모든 순간 신에게 버림 받은 존재다.

다크의 입에선 자신도 모르게 한국어가 튀어 나왔다.

“씨발! 그럼 날 왜 이곳으로 데려온 거야! 이유가 있을 것 아냐!”

-신의 행위에 이유 따위는 없다는 것을 잘 알지 않는가. 한 낱 개미의 생사에 신경을 쓰는 인간이 없듯 신 또한 다르지 않다.

회색 로브의 말은 다크를 절망의 구렁으로 밀어 넣었다.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거지?”

구멍 안에서 미쉘은 여전히 죽은 다크의 가슴을 검으로 내려찍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도 갈 곳이 없는 난 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회색의 로브가 손을 휘두르자 구멍이 닫혔다.

다시금 공간은 어둠으로 가득 찼다.

-

갈 곳이 없는 너에게 허락된 공간은 이곳 뿐이다.

다크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넌 단지 이 공간 안에서 영원에 잠식 될 것이다.

다크가 무릎을 꿇은 채로 기듯 회색의 로브에게 다가갔다.

“안돼. 싫어. 더 이상 혼자 있고 싶지 않아.”

다크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래. 지옥의 가장 잔혹한 곳으로 보내줘. 그곳에서 벌을 받을게. 난 지구에서도 이 세계에서도 나쁜 짓을 많이 했으니까. 그 안에서 다른 죄인과 죽음에 필적하는 고통을 영원히 받을게.”

회색 로브의 형체가 사라졌다.

다크는 갑자기 사라진 회색 로브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너에겐 죄도 벌도 허락되지 않는다.

회색 로브는 다크의 뒤편에서 나타났다.

-신은 너를 버렸다.

회색 로브의 말에 다크가 어린아이처럼 울부짖었다.

“싫어!! 왜 나만! 나한테만 이렇게 잔인하게 구는 거야!”

다크는 다시금 기어서 회색 로브에게 매달리려 했다.

-신도, 미쉘도,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

다크는 벌떡 일어나 회색 로브를 쫓아갔다.

-알게니하의 대륙의 어느 누구도, 지구의 어느 누구도 너를 생각하지 않는다.

다크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가득 했다.

-넌 영원히 홀로 지낼 것이다.

회색 로브를 쫓던 다크가 결국은 힘이 빠지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영원 속에 잠기어라. 이방인이여.

회색 로브마저 사라지자 공간 안에는 다크만이 남았다.

“신이….”

다크는 바닥에 주저앉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신이… 인가…?”

그의 목소리는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묻힐 만큼 가냘팠다.

“신이 그런 존재인가?”

다크의 움직임도 숨소리도 점점 작아졌다.

* * *

퍼퍼퍼펑.

강기의 폭발과 함께 남궁혜자와 혜강이 수 미터를 뒤로 날아갔다.

“땡중! 괜찮으냐?”

바닥에 착지한 남궁혜자가 혜강을 돌아보며 물었다.

“전 괜찮습니다.”

강기가 뿜어내는 기파의 폭풍은 남궁혜자의 속을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팔을 하나 잃은 혜강이 받아내기에 버거웠음이 분명함에도 혜강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한연맹은 강호맹의 무인들에게 밀리고 밀려 연맹 부지 대부분을 내준 상태였다.

숫자와 무력의 압도적인 차는 한연맹의 기세와는 상관없이 그들을 물러서게 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가 큽니다. 이대로라면….”

혜강의 생각 또한 다르지 않은 지 걱정스런 얼굴로 말을 흐렸다.

한연맹에선 한세아를 비롯한 몇몇 존재를 제외하곤 이미 강호맹에게 크게 밀리고 있었다.

특히나 화산파의 문주이자 현 강호맹의 맹주인 진문형의 무력은 가히 압도적이라 할만하였다.

한연맹의 고수 세 사람이 동시에 달려들었지만, 진문형 한 사람을 상대하기 힘들었다.

만약 정소빈이 세 사람 중 하나가 아니었다면 벌써 한연맹이 밀리고도 나았을 것이었다.

“소빈이를 도와야 합니다.”

천살지존검의 무경이 압도적이긴 했지만, 수십 년 동안 최강의 자리를 유지해온 진문형의 무력을 넘어서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자연검이라는 특수한 검이 아니었다면 그와 정소빈이 검을 맞대는 것마저 불가능했을 것이 분명했다.

“알고 있다.”

혜강의 보챔에도 남궁혜자는 쉽사리 정소빈에게 달려 갈 수 없었다.

이미 많은 한연맹의 맹도들이 강호맹의 맹도들에게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빈이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일단은 맹도들을 보호해라. 땡중.”

소빈이 위험에 처하는 것은 싫었지만, 사적인 감정으로만 행동할 수는 없었다.

특히나 한연맹의 무인들은 강호맹의 무인들의 검에 쉽사리 고혼이 되고 있었던 탓이다.

“알겠습니다.”

혜강이 반대편으로 몸을 날리자 남궁혜자가 검을 고쳐 잡았다.

‘살아 있을 거라 믿는다.’

진문형을 상대하는 소빈을 한번 본 남궁혜자가 혜강의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남궁혜자가 몸을 날려 몰아치는 강호맹도들을 물러나게 할 요량으로 검을 흩뿌렸다.

콰콰콰콰콰쾅.

아스팔트를 깐 바닥이 뒤집히며 사방으로 파편이 날렸다.

심하게 밀리던 한연맹의 무인들은 잠시나마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녀의 검이 다시금 휘둘러지자 강호맹의 무인 십여명이 핏물을 뿌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와아아아아! 지금이다!”

한연맹의 무인들은 그 기세를 놓치지 않고 강호맹의 무인들에게 달려들었다.

남궁혜자는 한연맹의 무인들에게 한번 더 힘을 보태고 곧장 정소빈에게 달려가려 했다.

그녀의 검이 다시금 흩뿌려지는 순간. 한 자루의 검과 장력이 그녀의 검을 막아섰다.

창.

청명한 쇠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두 명의 청년이 남궁혜자의 앞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남궁선배님. 무당의 단청이라 합니다.”

“소림의 성현입니다. 아미타불.”

두 사람의 등장에 남궁혜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멀리 한국까지 소문이 파다했던 칠룡 중 수좌를 차지하는 두 사람이었던 것이다.

‘조금 늦겠구나.’

남궁혜자는 소빈을 걱정하며 두 사람에게 달려 들었다.

보라색의 매화가 나비처럼 흩날리며 소빈에게 달려들었다.

소빈은 유려하게 매화들 사이에서 춤을 추며 바람처럼 검을 휘둘렀다.

누군가 본다면 그래픽 효과가 뛰어난 영상을 보는 듯 아름다움에 취했겠지만, 실상을 안다면 긴박함을 늦출 수 없을 터였다.

천천히 움직인 소빈의 검이 매화 두 개를 소멸시키고, 세 번째 매화를 향해 검을 뻗었다.

하지만 강기로 만들어진 매화를 소멸시키는 것은 소빈에게도 큰 부담이었다.

세 번째 매화를 향하는 소빈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펑! 퍼퍼퍼퍼펑!

결국 매화를 소멸시키지 못하고 맞선 순간.

매화와 천살지존검의 격돌로 인해 거대한 폭발이 발생하고 압력에 밀려 뒤로 날아가는 소빈의 등으로 수 개의 매화가 작렬했다.

“커흑!”

바닥에 쓰러진 소빈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녀가 흘린 피는 그녀의 옷을 적시기 충분했다.

“남의 것을 훔친 대가가 그리도 큰 것이다.”

진문형이 서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이것은 허락을 받고 익힌 것입니다.”

소빈은 입가의 핏물을 닦으며 말했다.

“애당초 최시우의 것이 아니다! 우리 강호의 것이다!”

“남의 것을 자기 것이라 우기는 모습을 보니 숫제 도적의 모습과 다름이 없군요.”

“뭣이라…! 아직도 입만 살았구나!”

진문형이 일갈하며 검을 고처 잡았다.

그의 검에선 일척에 달하는 검강이 솟았다.

“어디 언제까지 그렇게 혀를 놀릴 수 있는지를 보겠다.”

진문형이 살기 등등하며 소빈에게 다가오고 있었지만, 소빈은 그저 서 있는 것이 다였다.

바로 그때.

파지지직.

파지직.

허공으로 괴이한 스파크가 튀기기 시작했다.

진문형은 본능적으로 한세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한세아는 강호맹의 맹도들을 상대하기 바쁜 상태였다.

‘서, 설마.’

진문형의 머릿속으로 불안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예감이 적중하듯 스파크가 더욱 크게 튀기 시작하더니 공간이 열리고 그 안에서 미라처럼 삐쩍 마른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퀭하니 들어간 눈.

뼈만 남은 듯 앙상한 팔과 다리.

부스스한 머리카락과 듬성듬성 자란 턱 주변의 털까지.

폐인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지만 모든 이들의 그의 정체를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맹주님!”

그는 다름 아닌 최시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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