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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투 다크위저드-100화 (100/200)

100

시우는 혼자서 쓸 수 있는 객실을 배정받았다.

배정받았다기보단 강제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 잡혀 있던 포로들을 구출하는 작전에 이용되는 중형 크루즈는 내부에 최신 의료 장비와 최고 실력의 의료팀을 갖추고 있었고, 그 외에도 편의 시설을 위해 많은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혹시 모를 야토가미의 추격을 걱정하여 시우는 크루즈로 함께 이동하기로 결정되었고, 일반 무인들이 기거하는 작은 객실에서 묵으려 했지만 지원팀과 태백 정가의 무인들은 한사코 VIP실에 시우를 집어넣었다.

강제로 배당받은 VIP실은 꽤 넓고 쾌적했지만 시우는 시설을 이용하며 휴식을 취하기보단 다른 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7서클…….”

지구에 돌아와서 마법을 다시 익히긴 했지만, 예전의 수준만큼을 끌어올릴 생각은 없었다.

알게니하 대륙에서의 삶은 생존게임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끝없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야 했다.

하지만 평화로운 지구에서의 삶에 수반되는 마법이란 그저 일상생활에 조금 도움이 되는 정도라 생각했을 뿐. 맹렬하게 힘을 되찾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상계에 대해서 알게 되고, 상계의 세력들과 싸우게 되면서 시우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힘을 되찾을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이군.”

아공간에서 꺼낸 책은 어린아이 몸통만큼 커다랗고 어른의 허벅지만큼 두꺼웠다.

지구에서라면 몇 권이나 분리해서 만들 만큼 방대한 내용이었지만 마법적으로 처리된 책은 종이 한 장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이렇게 맹렬하게 익혔던 시절도 있었나.”

커다란 책은 시우가 알게니하 대륙에서 7서클에 오르기 위해 그동안의 지식을 총합하여 정리한 것이었다.

7서클의 단계는 지난 6서클의 단계와는 차원이 다르다.

6서클이 인간의 단계라면 7서클부터는 인간 이상의 단계를 말한다.

그동안의 익혀 왔던 마나의 특성들이 사라지고, 그 특성을 초월할 수 있게 된다.

특성을 초월한다는 것은 마나의 초월의 초입에 들었다는 뜻이 되고, 그때부턴 인간의 단계를 넘어가는 것을 이야기했다.

7서클에 오른 마법사를 알게니하 대륙에서 대(大)마도사라고 칭송했다.

빈번히 7서클의 마도사와 비교되는 것이 오러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소드 마스터였지만 7서클의 가지는 의미는 소드마스터와는 조금 달랐다.

소드 마스터가 ‘영웅’이라면.

대 마도사는 ‘군단’이 된다.

7서클의 오른 마도사는 왕국 수준의 국가가 가진 무력의 절반 정도의 파괴력을 혼자서 낼 수 있게 된다.

이는 7서클의 마도사를 보유하는 것과 보유하지 않는 것에 큰 차이를 부여하고, 결국 국력의 차이로 이어졌다.

그랬기에 역사상 ‘제국’으로 불렸던 국가들에는 7서클 이상의 마도사가 꼭 존재했다.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니까.”

옛 생각에 잠기어 책을 읽어 내려가던 시우의 귓가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다름 아닌 아직 병상에 누워있어야 할 정현미였다.

* * *

목발을 짚고 겨우 걸어온 듯 정현미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시우가 건네는 찻잔을 받는 정현미의 손은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시우는 말없이 차를 마시며 기다렸다.

그렇게 한참을 보낸 후에야 정현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빈이는 그렇다 치고…… 소빈이에게 왜 무공을 알려 준 건가?”

현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 시우가 입을 열었다.

“우빈이의 동작을 보고 잘 못 된 길로 가려 하기에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도와준 것 뿐입니다.”

“할머니에게 다 들었네. 자네가 가르쳐준 그 무공은 천하에 비교할 수 없는 상승 절학이라 하던데.”

“그래서 다른 이에게 가르쳐 주지 말라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그 무공을 통해 소빈은 더 높은 곳을 향할 수도 있네. 그리고 그로 인해 태백 정가는 더욱 강해질 수도 있음이지.”

“그게 잘못된 겁니까?”

“난 자네가 나와의 대화에서 소빈에게 깨달음을 줬다고 생각하네.”

“저를 너무 높이 평가하시는군요.”

시우의 말에 정현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동안 눈 앞을 가리고 있던 안개를 걷어내고 나니 누구보다 확실하게 자네를 볼 수 있게 되었네. 자넨 아마 내가 만난 그 누구보다도 높은 위치에 닿았던 사람이 분명하네.”

“매일 싫은 기색을 보이시다 갑자기 이러시니 불안하네요.”

시우는 말과는 달리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찌하여 이렇게 베푸는가? 아니 어찌 그럴 수 있는가?.

“그저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준 것뿐입니다. 전 제가 뭔가를 필요로 할 때 그것을 가져 보지 못했거든요.”

“단지 그뿐인가?”

“또 전우이지 않습니까? 함께 싸운 전우를 위해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런가…….”

정현미가 멍하니 시우의 말을 중얼거리다 이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동안의 행동을 용서해 주게.”

정현미가 고개를 푹 숙였다.

“미워하지 않았으니 용서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일어나십시오.”

“자네가 용서해 주지 않는다면, 난 남은 생을 살아갈 자신이 없네.”

정현미의 음성은 절절했다.

시우는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용서하겠으니 이만 일어나십시오.”

시우의 말에도 정현미는 일어서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가 죗갚을 치르고 나면 자네에게 내 목숨을 바치겠네. 부디 받아주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아닐세.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내 스스로가 부끄러워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네.”

시우는 딱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엎드려 있던 정현미의 몸이 둥실 떠오르며 의자에 앉혔다.

“선의와 용서란 무조건적으로 당사자에게 갚을 필요는 없습니다. 더구나 그것을 원하지 않을 때는 더더욱 그렇고요. 우빈이 고모님께서는 태백 정가에서 해야 할 일이 많지 않으십니까. 만약 정 불편하시다면 전쟁으로 죽은 사람들을 위해 할 일을 해주십쇼. 저에겐 우빈이 고모님의 목숨보단 그런 가치가 더 필요합니다.”

시우의 이야기를 듣던 정현미의 음성이 가늘게 떨렸다.

“정말 그것으로 되겠는가?.

“제가 진정 바라는 건. 그런 것입니다.”

시우는 고개를 돌려 객실 밖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멀리 바다 위에는 어업을 하는 배들이 별처럼 밝은 빛을 비추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이 무의미하게 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저항이 결국 우리의 자중지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시대의 역사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선 죽은 이들을 위해 일을 해야 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시우의 말을 듣던 정현미는 다짐하듯 말했다.

“죽은 이들을 위해 해야 할 일.”

“네. 제가 바라는 건 그런 것입니다.”

객실로 돌아가는 정현미를 배웅하고 시우는 갑판으로 나왔다.

밤이 깊었기에 갑판에 오가는 사람은 없었다.

파티를 위해 밝게 켜두던 조명은 모두 꺼졌고, 사방엔 바다를 헤치며 나아가는 크루즈의 파도 소리만이 가득했다.

하늘을 올려 보자 서울의 하늘에서 볼 수 없었던 수많은 별들이 시우의 눈에 들어왔다.

“밤하늘은…… 알게니하 대륙이 좀 더 아름다운 것 같네.”

시우의 손안에서 파란빛이 일렁이며 나타났다.

파란빛은 지구인들이 알 수 없는 언어로 누군가의 이름을 쓰고 그의 얼굴을 그리며 둥실 떠올랐다.

바람에 일렁이는 파란 빛은 천천히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갔다.

‘전쟁으로 너무 많은 이들이 죽었다.’

그의 손안에서 또 다른 이름과 얼굴이 새겨 졌다.

지금 크루즈의 한쪽을 개조하여 만든 영안실에 존재하는 이였다.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죽겠지.’

또 다시 새로운 이의 이름과 얼굴이 그의 손안에 나타나 하늘로 날아갔다.

빛들은 마치 반딧불처럼 줄줄이 유영하며 별을 향해 날아가듯 어두운 밤하늘로 날아갔다.

오랜 칩거 생활을 마치고 알게니하 대륙으로 나온 시우는 매일 매일이 전쟁이었다.

잘못된 풍습을 고치고 자신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전 대륙을 상대로 싸웠다.

세력을 일구고 왕국을 세우면 싸움을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풍족한 시우의 왕국을 질시한 타 왕국들의 침략으로 전쟁은 멈추지 않았다.

처음엔 생존을 위해, 그다음엔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그다음엔 어떠한 이유도 모른 채.

끊임없이 싸우고 죽이면서 시우가 느낀 것은 단 하나.

‘세상에 인간이 존재하는 한 평화란 없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시우에게 전쟁에 대한 슬픔이란 없다.

그러나 이제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사람들을 기억하며 혼자만의 추모제를 지내고 싶었다.

“아름답네요.”

청명한 파도 소리 못지않은 청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린 곳엔 소빈이 반짝이는 눈으로 시우가 날린 룬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몸은 괜찮으세요?.

“네. 시우 님 덕분에.”

소빈은 천천히 시우의 옆에 다가섰다.

그리고 밤하늘의 바람을 타고 천천히 날아가는 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에 새겼다.

“태백 정가의 사람인가요?.

“죽은 전우들입니다.”

“…….”

시우의 말에 소빈이 말없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녀의 가슴에 새겨졌다.

처음엔 분노였고, 그다음엔 동경이었다.

그가 그녀의 마음에 이토록 오래 머무는 것은 단지 그의 강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특별한 사람.’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고 처음 당황스러웠던 마음은 점점 그를 알아가면서 안도로 바뀌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이었고, 자신을 바라봐 주지도 않는 나쁜 사람이었지만 그를 마음속에 담게 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마음이 밤하늘에 날린다.

따뜻한 말 같은 거 할 줄 모르고, 태도도 항상 불량하여 다른 이들의 오해를 쌓게 만든다.

적들은 분노하고 아군들도 때때로 그의 행동에 이맛살을 찌푸리곤 한다.

하지만 진짜 그의 마음은 다르다.

그의 마음이 지금 밤하늘에 이토록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마법사들만의 추모식 같은 건가요?”

푸른빛들의 숫자가 점점 더 많아져, 갑판부터 시작해 밤하늘에 닿는 은하수가 만들어진 것 같았다.

“마법사들은 사후 세계를 믿지 않습니다.”

알게니하 대륙은 신의 존재가 지구보다 훨씬 가까웠다.

그럼에도 마법사들 중의 대부분은 신을 믿지 않았다.

사후 세계에 관한 무증거와 세계의 불합리함은 신의 부재를 주장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신이 존재한다면 이런 불합리한 세계 따위는 만들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

“하지만 그럼에도 마법사들은 누군가의 죽음에 이런 추모 마법을 행하곤 했습니다. 그게 사후세계를 믿어서인지. 자기 위안을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요.”

시우는 알게니하 대륙에서 추모 마법을 쓴 적이 없었다.

아니 사후 세계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면 내 영혼은 어디로 가야 하지?

이런 생각이 시우를 사후세계로부터 언제나 눈 돌리게 했다.

이방인으로 알게니하 대륙에 떨어져, 평생을 이방인으로 대륙을 떠돌았다.

그의 존재는 언제나 특별했다.

한때는 괴물, 한때는 신.

그의 영혼은 언제나 안식을 몰랐고, 외로움이란 고독 속에 갇혀 살아야 했다.

그런 자신이 죽어서도 돌아가야 할 곳이 없다면……

그것만큼 시우를 괴롭게 하는 생각이 없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 했던 게 아닐까요? 함께 했었던 기쁨이, 다신 볼 수 없다는 슬픔으로 느껴져, 지식과 지혜를 넘어서…… 믿음과 신념을 넘어서…… 그저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그렇게 했던 거 아닐까요?”

소빈의 이야기를 듣는 시우는 자신이 날려 보낸 푸른빛들을 바라봤다.

‘그들이 그리워서 추모하는가, 이제 갈 곳이 있기에 추모하는가.’

문득 시우는 머릿속엔 알게니하에 두고 온 인연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그의 왼손에서 알게니하에 두고 온 이들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더 많은 빛무리들이 하늘까지 닿은 은하수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발을 뻗으면 은하수를 밟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들은 누구인가요? 이들도 전쟁에서 죽은 이들인가요?”

지구인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모습을 한 이들의 얼굴이 떠오르자 소빈이 물었다.

“아뇨, 아직 살아 있지만, 이젠 볼 수 없는 이들이에요. 그리운 얼굴들이네요.”

추억에 잠긴 듯 빛이 형상한 얼굴들을 바라보는 시우의 눈가엔 그리움이 가득했다.

한참을 시우를 바라보던 소빈이 작게 말했다.

“……해요.”

추억에 잠겨 있던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던 시우가 천천히 소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좋아해요. 시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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