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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투 다크위저드-97화 (9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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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악!”

마지막으로 정소빈을 보호하며 검을 세우고 있던 무인이 비명과 함께 날아가 널브러졌다.

목이 꺾인 그는 이미 숨을 거둔 듯 미동이 전혀 없었다.

“반드시 소가주를 보호해야 한다!”

처음 이 말을 한 정현미는 야가미에게 당한 공격으로 생사를 오가는 극심한 상처를 입었고, 정현미의 명령이 단순히 가족을 아끼는 마음에서 한 이야기가 아닌.

태백 정가의 명맥을 위해 진정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 무인들 또한 몸을 사리지 않고 야가미에 대항했다.

하지만 사천신의 하나인 야가미는 대(對) 야토가미용 무기를 갖췄다는 것만으로 상대할 수 있는 이가 아니었다.

나루카미 하나를 상대하는 것에도 태백 정가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음을 생각하면 구출조를 이루는 인원들만으로 야가미를 상대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어불성설이었다.

‘활로는…… 없는 건가.’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서 있는 정소빈 만이 팔에 난 상처를 쥔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쪽엔 두려움에 몸을 떨며 웅크리고 있는 포로들, 다른 한쪽엔 쓰러진 태백 정가의 무인들.

야가미가 만든 이 어둠은 어디가 산의 아래고 위인지, 어디까지가 땅이고 어디까지가 하늘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이 어둠 속에서 보이는 것이라곤 오직 기괴한 모양의 하얀 가면뿐.

이 하얀 가면이 어둠 속에서 나타날 때마다 무인들은 저항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야가미 약속 지킨다. 너희들 하나도 빠짐없이 목 부러뜨린다.”

뿌드득.

어둠 속에서 또 한 번 기괴한 소리가 울렸다.

야가미는 이렇게 부상당해 저항하지 못하는 무인들을 무작위로 재공격하고 있었다.

‘끝인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소빈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또다시 맞닥뜨린 스스로의 무력함.

이 무력함이 이제는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얼굴에 피 칠갑을 하고 나타났던 시우의 모습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흙먼지와 핏물을 잔뜩 뒤집어쓰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지만, 소빈이 그의 품에 안겼을 때 가장 신경 쓴 것은 자신의 심장소리가 혹여 시우에게 들리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재벌가의 영예에 절색이라 할 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그녀였기에 자라면서 많은 종류의 남자들의 대시를 받아왔었다.

재벌 2세부터 잘생긴 연예인들까지 많은 남자들이 있었지만, 그녀를 설레게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상계인으로서 태백 정가의 사람이라는 자부심과 다음 대의 명맥을 잇는 소가주라는 무거운 직책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런 그녀가 처음으로 마음에 담은 남자가 바로 시우였다.

물론 그런 그녀의 마음을 표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시우에겐 이미 여자친구가 있고, 너무나도 대단한 사람이었다.

더구나 연애라곤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사춘기 소녀같이 순수한 그녀가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곤 그가 가르쳐준 천살지존검을 열심히 익혀 칭찬을 들어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보고 싶은 것인가? 그에게 도움받길 원하는 것인가?’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위기 상황에서 생각한다는 게 한 남자의 모습이라는 것이 소빈 스스로에게도 놀라웠다.

“태백 정가의 소가주 남았다. 윗사람 책임져야 한다. 소가주 목을 뽑아 조선으로 보내준다.”

야가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 소빈이 허공에 다시 나타난 하얀 가면을 보며 검을 고쳐잡았다.

“당신 말대로 난 소가주예요. 태백 정가의 소가주는 상대가 야토가미라 해도 절대 호락호락 당하지 않아요. 내 목을 뽑고 싶다면 당신의 팔 한쪽 정도는 내놔야 할 겁니다!”

소빈의 주위로 기이한 기류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하얀 가면은 소빈의 말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공간 이곳저곳을 왔다갔다거렸다.

소빈은 가면에게 시선을 두지 않고 오직 허공의 일점만을 생각하며 검을 들었다.

그 순간 소빈의 주변으로 살기가 충전하여 어둠의 공간을 가득 채웠다.

포로들은 야가미의 공간 안에서도 한 번 느껴보지 못한 자욱한 살기에 놀라 숨을 멈췄다.

“소가주 이상한 검이다. 하지만 야가미 더 이상하다. 야가미 당하지 않는다.”

이곳저곳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던 하얀 가면은 소빈의 뒤로 나타나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하얀 가면이 소빈의 뒤로 다다랐던 그때.

소빈이 재빠르게 몸을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지존일로(至尊一路)!”

쑤악

하얀 가면은 다가오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소빈에게 끌려왔다.

소빈의 검과 하얀 가면이 맞닿는 순간.

야가미가 펼친 어둠의 공간이 끌어 당겨졌다가 반대편으로 쏘아져 나가며 하얀 가면을 가루로 만들었다.

펑!

소빈의 검이 향한 방향으로 어둠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며 어둠 밖 세상의 모습이 비쳤다.

구멍 밖으론 검은 나무들의 그림자와 하늘의 별빛이 보였다.

“하아 하아.”

아직 완성되지 않은 천살지존검을 억지로 펼쳤음인가.

소빈은 검을 지지대 삼아 한쪽 무릎을 꿇었다.

하얀 가면이 사라지고 어둠에 구멍이 뚫리자 포로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서, 설마. 야가미가 죽은 것인가?”

“저 젊은 처자가?”

“사, 살았다!”

“살았어!”

포로들은 소빈의 승리를 기뻐하며 서로 부둥켜 안다가 부상자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려 했다.

하지만 그때.

“야가미 죽지 않는다. 너희들 야가미 죽은 것에 기뻐했다. 너희들도 목을 뽑는다.”

포로들 사이로 나타난 하얀 가면이 그렇게 얘기하자 포로들은 대경실색하며 혼절하는 자도 있었다.

“야가미 조금 무서웠다. 소가주 이상한 검 쓴다. 하지만 이제 그 검 못쓴다. 힘이 없다.”

포로들 사이에 나타났던 하얀 가면은 어느새 소빈의 눈앞에 나타나 말을 걸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거예요.”

소빈은 부들부들 떨리는 발로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세웠다.

쐐액!

어둠 속에서 날아드는 거대한 송곳.

이 송곳에 태백 정가의 무인들이 저항하지 못하고 죽었다.

챙! 챙! 챙!

소빈은 처절하게 검을 들며 집중하지 않으면 느끼지도 못할 거대한 송곳을 막아내었다.

“야가미 약속 지킨다. 소가주 목 꼭 뽑는다.”

소빈은 바닥 나버린 내공 대신 진기를 끓어 올리기 시작했다.

무공을 배우면서 절대로 하지 말라고 배운 동귀어진의 수법.

설사 살아난다 해도 폐인이 될 수밖에 없는 금단의 수법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소빈의 주위로 다시금 기이한 기류들이 모여들자.

하얀 가면은 몸을 숨겼다.

“야가미 두 번 당하지 않아. 야가미는 바보가 아니다.”

목표가 되어야 하는 하얀 가면이 사라지자 소빈은 내부가 뒤틀리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끌어 올린 진기가 발산되지 못하자 내부가 진탕 되면서 목구멍으로 뜨거운 것이 억지로 쏟아져 나왔다.

울컥.

핏물을 한바탕 쏟아내자. 끓어 오르던 진기는 다행히 가라앉았다.

하지만 진기를 가라앉히자 온몸의 힘이 빠졌고, 소빈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야가미 소가주 목 뽑는다.”

소빈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하얀 가면이 다시금 나타나 소빈에게 다가가려 했다.

쿵.

대지와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어둠이 크게 흔들렸다.

쿵.

지진인가 생각했던 이들은 대지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울리는 충격음에 의아했다.

쿵.

소빈에게 다가가려던 하얀 가면 또한 고개를 돌려 어둠을 바라보았다.

퍼퍼펑!

어둠으로 가득 찼던 허공 일부가 사라지며 붉은 화염이 어둠 안을 밝게 비추었다.

화염이 가시고 어둠의 구멍으로 모습을 드러낸 자는 다름 아닌 시우였다.

“음침한 결계 때문에 찾는 데 한참 걸렸잖아! 야토가미에서 히키코모리도 받아주는 거냐?!”

“꽤 재미난 걸 생각해 냈네. 자신의 몸을 확장시켜 결계화 한다라…….”

시우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소빈을 발견하곤 그녀에게 다가갔다.

“괜찮아요? 많이 다친 거 같은데.”

시우가 입가에 목둘레에 번져 있는 핏물을 보며 물었다.

소빈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네. 괜찮아요. 감사해요. 이렇게 빨리 와주셔서.”

“오히려 제가 미안하죠.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 했어야했는데.”

시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때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송곳이 시우의 뒤편으로 날아들었다.

“저 저기!”

뒤늦게 송곳이 날아오는 것을 느낀 소빈이 놀라며 송곳을 가리켰지만 시우의 고개는 느릿하게 돌아갈 뿐이었다.

차창!

금속 긁히는 소리와 함께, 시우의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다크 사이트가 송곳을 막으며 소리를 질렀다.

크아아아악!

“시끄러워. 나를 삼키고 싶으면 그 정도 노력은 해야지.”

시우가 다크 사이트를 향해 핀잔을 주자 다크 사이트는 고개를 돌려 허공 속을 노니는 하얀 가면을 노려보다 시우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일단 이것들 먼저 드시겠어요?”

시우는 품속에서 포션들을 꺼내어 소빈에게 넘겨주었다.

“부상당하신 분들과 ……아…….”

시우는 한쪽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

시우는 말없이 포션들을 소빈에게 넘기고 고개를 돌려 하얀 가면을 보았다.

[파이어볼]

시우는 빙글빙글 허공을 돌며 자신을 보고 있는 하얀 가면을 향해 크기를 키운 파이어볼을 날렸다.

하얀 가면은 날아오던 파이어볼 앞에 모습을 숨기고 사라졌다.

어둠 속을 날아가는 파이어볼은 아무런 폭발음도 들리지 않은 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시우는 뒤이어 완드를 대충 휘두르며 프리즌 노바와 다크 자벨린 등을 날리며 하얀 가면을 맞춰 보려 했지만, 그때마다 하얀 가면은 모습을 감췄고, 마법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너 최시우. 나 너 알고 있다. 류신의 머릿속에서 봤다.”

“말을 이상하게 하는 놈이네. 외국에서 살다 왔냐?”

“야가미 일본에서 태어났다. 최시우! 너 나루카미 죽였다. 너 목 뽑는다.”

“머리가 모자란 놈인가?”

시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송곳이 날아들었지만 다시금 시우의 그림자에서 솟아난 다크 사이트가 송곡을 막아냈다.

“야가미 똑똑하다. 야가미 귀술도 쓴다!”

꺌꺌꺌꺌꺌꺌

크하하하하하

케헤헤헤헤

어둠 속에서 나타난 요괴들이 사방에서 시우에게 짓쳐 들었다.

“파이어…….”

시우는 완드를 휘둘러 동시에 파이어볼을 쏘아내곤 뒤이어 프리즌 노바와 다크 자벨린으로 요괴들을 분쇄해 버렸다.

퍼퍼퍼퍼퍼펑

번쩍이는 마법의 폭풍 속에서 시우의 숨겨진 마법들이 하얀 가면에게 쏘아졌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빛무리는 순간적으로 모든 이들의 시야를 가렸다.

하얀 가면도 그런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파이어볼을 막지 못하고 직격당했다.

퍼퍼펑!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하얀 가면은 잿더미가 되어 땅에 떨어졌다.

빠드득.

시우는 잿더미가 되어 떨어진 하얀 가면을 지그시 밟아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야가미, 똑똑하다. 야가미 최시우에게 당하지 않는다. 야가미 최시우보다 똑똑하다.”

어둠 속에서 하얀 가면은 다시 나타났다.

멀쩡하게 어두운 공간을 부유하는 야가미의 모습은 모든 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죽어도 죽지 않는 그를 과연 어떻게 상대할 수 있을까.

그러한 절망적인 현실에도 불구하고 시우의 음성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아냐, 내가 보기엔 모자란 놈 맞아. 모자란 놈이 아니라면 나를 만난 순간 바로 도망쳤겠지.”

공간을 부유하던 하얀 가면이 허공에 우뚝 멈춰 섰다.

“야가미 장난 안 친다. 야가미 최시우 찔러 죽인다! 밟아 죽인다! 찢어 죽인다!!!”

고막을 찌르는 듯한 음성이 어둠의 공간을 울렸다.

포션으로 내상을 다스린 소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의 공간에서 수없이 많은 날카로운 송곳들을 느끼기 시작했다.

‘위, 위험해.’

단 한 개만으로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던 송곳들이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습을 감추는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지 송곳들은 유형화되어 집중하면 실체가 언뜻 보일 정도였다.

그 많은 송곳들이 시우를 향하고 있었다.

“시, 시우 님!”

“죽인다! 최시우!”

소빈의 음성과 함께 야가미의 음성이 울리고 송곳들이 시우를 향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시우는 그런 것에 신경도 쓰지 않는 듯 두 손으로 뭔갈 꾸욱 누르고 있었다.

송곳들이 시우에게 닿으려던 그 순간.

번쩍!

시우의 손안에서 엄청난 밝기의 빛이 터져나가며 순식간에 어둠을 빛으로 바꿨다.

차차차차차차차차차창.

수십 개의 커다란 검은 송곳은 다크 사이트에 막혀 모두 부서져 버렸다.

시우는 어둠을 걷어 낸 빛무리 속에서 야가미를 찾았다.

하얀 가면 뒤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얀 가면과 한참이나 동떨어진 곳에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진 몸을 가진 사내가 퀭한 눈을 번쩍 뜨며 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너 그렇게 생겼을 줄 알았어. 음침한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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