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5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살 떨리는 광폭한 기세에 무인들은 저마다 무기를 챙겨 연무장으로 달려왔다.
아직 야토가미의 악몽이 가시지 않은 그들에겐 혁련무궁의 기세는 끔찍한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열심히 달려온 그들은 연무장에 닿기 전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살기에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네놈들이 견식할 만한 것이 아니다. 돌아가라.”
망토 사내들은 연무장을 중심으로 사방을 에워싸고 살기를 줄줄 흘리며 다가오는 무인들을 막아섰던 것.
천년마교의 정예중의 정예만이 들어 갈 수 있는 암흑호천대의 대원들의 무위 또한 한국 상계의 무인들이 받아 낼만한 것이 아니었다.
상계의 무인들은 침입은 아닐 거라 안심하는 한 편 망토 사내들의 안쪽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싶었지만 날카로운 살기를 뿌리는 암흑호천대를 무시하고 들어갈만한 간담이 있지는 않았다.
“혁련교주가 다시 돌아왔느냐?”
남궁혜자가 정순지와 함께 다가서자 망토 사내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남궁혜자를 바라보았다.
“계집.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
“이 놈이 감히! 이 분이 누군지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정순지가 버럭 화를 내며 검을 뽑으려 하자, 남궁혜자가 정순지를 막으며 말했다.
“마교 애송이, 한 번만 더 함부로 입을 놀리며 어떤 후한이 있더라도 네놈은 이곳에 뼈를 묻게 될 것이다.”
망토 사내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려는 순간.
남궁혜자가 태백기를 펼치며 한 순간에 망토 사내의 살기를 거둬냈다.
“큭…….”
망토 사내는 남궁혜자의 기파에 머리에 쓰고 있던 망토까지 벗겨지며 겨우 버텨 냈다.
“남의 터전에서 싸움을 하려면 관전 정도는 허락해야지.”
남궁혜자가 그리 말하며 연무장 내부로 들어갔지만, 망토 사내는 남궁혜자와 정순지를 막지 못했다.
다른 무인들이 눈치를 보며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망토 사내는 다시금 신색을 회복하고 살기를 줄기줄기 뿌리며 접근을 막았다.
무인들은 하는 수 없이 연무장이 보이는 건물 옥상으로 옹기 종이 모이기 시작했다.
“……누, 누가 이길까?”
누군가의 질문에 어떤 무인도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상대는 중국 무림 사에 기록될 만큼 최강의 무공을 자랑하는 마교의 교주.
다른 하나는 한국 상계의 신성으로 떠오르며 야토가미를 박살낸 다크 위저드.
누구 하나 승리를 점칠 수 없는 치열한 상대였다.
그렇게 모두들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안력을 돋우고 있을 때.
한쪽에 선 소빈 또한 두 손을 꼬옥 모으며 안력을 돋우고 있었다.
‘지지 마세요.”
“저, 저기! 저건 뭐지!”
누군가의 탄성과 함께 사람들의 시선이 연구소로 향했다.
“그냥 싸우기도 뭐한데. 내기 하나 하는 게 어때?”
“이길 생각까지 하는 것이냐?”
“뭐 어때. 의미 없는 싸움만큼 재미없는 것도 없잖아.”
“뭐 마음대로 하거라.”
“진 사람이 이긴 사람 명령 들어주기.”
시우의 말에 혁련무궁의 눈썹이 들썩였다.
“왜? 싫어?”
“본좌에게 ‘명령’이라는 단어를 쓰다니.”
“그만큼 절대적이라는 거지. 만약 목숨을 내놓으라 한다면 목숨까지도 내놓는 거야.”
“어차피 목숨은 이긴 자의 것이니 생사 여탈권을 주자는 것이냐?”
“그렇지.”
“마음대로 하거라. 네놈의 목숨 따윈 본좌에게 하잘것 없겠지만.”
“그래. 그럼 공증을 해 볼까?”
시우의 말에 혁련무궁이 천마후를 터뜨렸다.
“갈! 본좌를 뭐로 보는 것이냐!”
사방에서 연무장을 바라보던 무인들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끔찍한 악몽과 함께 내공이 흩어지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오! 약속은 절대 어기지 않겠다 이거지?”
“맘을 바꿨다. 오늘 이 자리에서 네놈의 목을 가지고 돌아가겠다.”
“어디 열심히 해 보라고! 빌리언트!”
시우가 완드를 치켜들며 빌리언트를 외치자.
연구소에서 은빛의 파츠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척척척척!
네 개의 파츠는 각각 팔뚝과 정강이를 보호하는 부분 갑옷으로 이루어졌다.
은빛 파츠들이 그의 몸을 감싸자 어깨를 시작으로 검은 액체와 같은 것이 코트로 변하며 시우의 몸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다 끝난 것이냐?”
“시작하자고.”
시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혁련무궁의 신형이 연무장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찰나의 시간 차를 두고 시우의 신형도 사라졌다.
쾅! 쾅! 쾅!
지축을 흔드는 거대한 폭격 음이 연무장 허공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옥상에서 시우와 혁련무궁의 대결을 지켜보던 이들은 거대한 풍압과 폭발음만을 듣고 있을 뿐. 그들의 신위를 쫓아가지 못했다.
퍼퍼퍼펑!
허공에서 불의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뒤이어 검은 마기가 줄기줄기 생성되어 사방의 건물들로 향했다.
콰콰쾅!
건물들이 부서지며 유리창이 떨어져 내렸다.
뒤이어 연무장의 곳곳이 파이고 파이며 흙더미를 사방으로 뿌렸고, 여전히 두 사람의 신위를 뒤쫓을 수 없었다.
펑!
쾅!
폭발음과 함께, 처음으로 신위를 나타낸 건 시우.
시우는 건물의 외벽에 처박힌 채로 모습을 드러냈다.
입가에 핏물을 닦은 시우는 곧장 몸을 다시 세워 혁련무궁을 향해 날아갔다.
퍼퍼퍼펑!
연무장 위는 마치 전쟁이라도 터진 것처럼 폭발이 연속되고, 무형의 귀신을 쫓듯 마법의 화살과 창들이 어지럽게 허공을 맴돌았다.
“저, 저기 있다!”
시우가 잠시 몸을 드러낸 곳은 연무장에서 한참이나 높이 떠오른 허공.
인간의 도약으로 불가능한 곳까지 날아간 시우는 곧장 몸을 숨긴 채 대신 갑주를 걸친 거대한 주먹을 소환해 냈다.
[거인의 주먹][오버 더 아머]
쾅!
마법진을 뚫고 나타난 거인의 주먹은 지상으로 내리꽂히다 엄청난 폭음과 함께 으스러지며 사라졌다.
시우가 자주 쓰는 마법이기에 거인의 주먹에 대해 알고 있던 무인들은 이제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거인의 주먹이 부서지는 모습을 보며 아연실색했다.
“대, 대체 어느 수준의 결투인 거지?”
퍼퍼퍼퍽!
거인의 주먹이 부서지며 사라진 대신, 이번엔 혁련무궁이 연무장 바닥을 박살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쿨럭!”
핏물을 한바탕 내뱉은 혁련무궁은 다시금 검을 고쳐 잡고 연무장 위를 뛰어올라 신위를 감췄다.
그 뒤로 이어지는 결투도 일반 무인들이 쫓아갈 법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보는 대부분의 것은 결투의 잔여물.
폭발음이나 파괴음이나 부서지는 시우의 마법과 흩어지는 혁련무궁의 마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이 전투의 잔여물에 시선이 쏠린 사이.
허공에선 거대한 검은 구체가 점점 크기를 키워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존재를 모르던 이들도 구체가 풍기는 거대한 압력에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고, 달도 아니고 마법도 아닌 것 같은 구체를 멍하니 바라보던 무인들은 남궁혜자의 말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모두 피해라! 엄청난 폭풍이 일 것이다!”
남궁혜자가 심각하게 이야기하자 무인들은 저마다 옥상을 건너 연무장에서 더 멀리 떨어졌다.
이윽고 거대한 구체가 연무장을 집어삼킬 만큼 커지자. 시우가 구체 밑에서 몸을 드러냈다.
“마지막이다!”
시우의 두 손이 구체에 닿는 순간 구체가 절반으로 줄어들며 그대로 혁련무궁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연무장에서 모습을 드러낸 혁련무궁은 거대한 구체가 크기를 줄이며 더욱 커다란 압력체로 변한 걸 깨닫고는 입술을 질끈 물고 검을 사방으로 뿌리기 시작했다.
“천하제멸!”
검강을 뽑아 든 천마의 검과 시우의 구체가 부딪치는 순간.
일대의 공기가 사방으로 밀려나고 진공 상태를 만들어 무인들의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뒤이어 오는 폭발음과 몸을 날려 버릴 정도의 강한 압력을 동반한 바람.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연무장은 물론이고 연무장 일대의 건물들 일부가 부서지고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모래먼 지가 날렸다.
“호, 호신강기를 펼쳐!”
콘크리트 조각은 물론이고 쇠파이프와 날카로운 유리까지 모든 것들이 사방으로 날리며 연무장 일대는 완전 전쟁터로 변했다.
투툭툭.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건물 잔여물들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모래 먼지가 가라앉자 사람들은 그제야 조심스레 연무장을 향해 눈을 돌릴 수 있었다.
그곳에 단단한 콘크리트로 지반을 다지고 대리석으로 마무리한 연무장의 흔적은 없었다.
오연히 선 한 사람과 한쪽 무릎을 꿇은 한 사람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 * *
일본에 포로로 잡혀 있는 상계 사람들의 구출 작전은 첫 번째 성과를 냈다.
총 서른 명의 인원이 태백 정가가 전세를 낸 배를 타고 한국으로 입항했다.
60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그들의 감회는 새로웠다.
꼼짝없이 일본에서 노예로 살다 죽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시우가 신사들을 파괴하고 한국 상계를 동원해 그들을 구해 내자 그들은 어떻게 시우에게 감사함을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하염없이 시우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에게 시우는 말했다.
“한국 상계는 여러분들의 희생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시우의 그 말은 절망의 세월을 보내왔던 이들뿐 아니라.
한국 상계에서 함께 싸웠던 이들의 가슴을 더 크게 울렸다.
이후로 미화관에 입관을 신청하는 이들이 더욱 많아졌다.
한국 상계로 돌아온 포로들은 각자의 뿌리를 찾았지만, 일부만이 그들의 후대를 찾았을 뿐 나머지 인원들은 본래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평범한 민간인이 된 이들도 있었고, 후대가 끊겨 갈 곳 없는 이들도 많았다.
대부분이 노인들로 이뤄진 이들이었기에 달리 갈 곳도 없었던 그들은 시우의 연구소에 거처를 마련하여 남은 생을 보낼 수 있도록 조치하였고, 원하는 이들은 나가서 살 수 있도록 원조를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일들에 엄청난 금액의 돈이 필요했지만, 태백 정가와 미화관이 각자 지원하고 시우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보석을 내놓으면서 돈의 문제는 크게 대두되지 않았다.
“왜 이렇게 비싸게 구는 것이냐? 이 늙은이의 소원 하나 이뤄주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것이더냐!”
남궁혜자의 말에 시우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안 바쁘십니까? 전 하루가 모자라서 지금 잠도 못 자며 일을 하고 있는데?”
시우의 연구소 한편에 마련한 집무실.
시우는 대부분의 일을 한세아에게 일임하였지만, 한세아는 가장 중요한 일에 대해선 시우의 결제를 받는 것을 고집했다.
때문에 시우는 원치 않는 엄청난 양의 업무에 투입되었고, 학교생활과 일상생활 거기에 더불어 상계 생활까지 시간을 초 단위로 아껴가며 사용하는 중이었다.
과거 대마법사에 올라 제국을 건설하고 황제 노릇까지 한 그였어도 지금의 과다한 업무는 꽤 버거운 것이었다.
더구나 틈틈이 야토가미의 귀술을 뽑아내는 연구까지 하고 있었기에 시우의 피로는 극한에 다다르는 중이었다.
그런 시우를 괴롭히는 또 다른 존재가 지금 시우의 옆에서 잔뜩 짜증을 내고 있었다.
“혁련 교주와의 결투는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시간에 이 할미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더 낫지 않더냐!”
그것은 다름 아닌 남궁 혜자였다.
이전에도 시우의 능력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남궁혜자는 혁련무궁과의 결투 이후로 한 시도 시우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시우와의 대련을 부탁했다.
“그러니까 말씀드렸잖아요. 혁련교주와의 결투는 사실 대련이라기보다 전투에 가까웠다고. 제 능력 이상의 힘이었다니까요.”
“그러니까 이 할미도 그런 결투를 원한다 하지 않느냐!”
혁련무궁과의 결투는 남궁혜자의 명령으로 불문에 부쳐졌다.
결투를 관전한 무인들은 시우의 신위에 놀라면서도 강호맹의 최강자라는 혁련무궁을 꺾은 시우에 대한 경외심을 감추지 않았다.
거기에 대한 부작용일까. 혁련무궁과의 결투 이후로 남궁혜자는 하루도 빠짐없이 시우를 보채고 있었다.
“다시 말씀드릴게요. 제 본연의 실력인 마법과 천살지존검만으로 싸웠으면 제가 철저하게 졌을 겁니다. 혁련교주는 저보다 아득히 높은 수준의 실력을 가졌어요.”
“그럼 어찌 이길 수 있었던 것이냐?”
“제가 전투 전에 착용한 파츠들 있죠? 그건 알머스트라는 대(對)전쟁용 마법사 슈트의 일부분입니다. 그걸 끼면 마법사들은 기사 이상의 기량으로 전투를 치를 수 있고요. 아시다시피 이 땅에 깔아 놓은 마법진들 있지요? 빌리언트를 통하면 이 마법진 안은 저의 절대적인 공간이 되는 겁니다. 그걸 이용해서 이긴 겁니다. 제 본연의 실력이 아니라고요.”
“어쨌든 이긴 건 이긴 거지 않느냐?”
“만약 이곳이 아닌 곳에서 그와 붙었다면 이기지 못했을 겁니다. 그게 제가 아직 중국으로 넘어가지 않는 이유고요.”
“어찌 되었든 나는 너랑 붙어 보고 싶구나. 네가 혁련교주를 상대했던 그대로.”
“하아.”
포기를 모르는 남궁혜자의 말에 시우가 결국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시, 시우 님!”
그때, 한세아가 헐레벌떡 집무실로 들어섰다.
“응?”
“일본에서 일이 터졌어요.”
“무슨 일인데?”
“구출조가 야토가미에게 공격당했습니다.”
“뭐!”
시우와 남궁혜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