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다크위저드-88화 (88/200)

088

밤사이 완전히 전소되다시피 한 황거의 흔적을 보며 야토 시의 시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감히 그 누가 천황의 위에 선 신의 거처를 이토록 처참하게 부술 수 있는지, 그들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신의 거처에 웬 난리야?”

야토가미의 호출을 받고 만사를 제쳐 놓고 달려온 건설업자들은 재빨리 황거 주변에 공사를 위한 준비를 하면서 의문을 놓지 못했다.

“그걸 내가 어찌 알아?”

부서진 담을 먼저 보수하라는 야토 시의 행정관의 이야기에 건축 자재를 준비하던 업자가 툴툴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어떤 미친놈이 대체 이런 짓을 한 거지? 폭탄이라도 준비한 건가?”

황거 곳곳은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처참하게 부서져 나가 있었다.

하지만 폭탄이 터졌다기엔 탄 흔적과 화약 냄새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만 일이나 해.”

자재를 준비하던 업자가 눈치를 줬지만 처음 입을 연 업자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렇잖은가? 우리야 야신의 존재를 알고 있다지만, 다른 이들은 대부분 그분의 정체에 대해서 모르고. 설사 모른다 해도 이곳은…… 범인들이 아무나 막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잖아.”

“……나, 참. 그만하라니까.”

자재를 체크하던 업자가 서류를 접으며 처음 입을 연 업자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다가오며 작게 입을 열었다.

“……간밤에, 큰 전투가 있었다더군.”

“전투? 야토가미와? 어떤 미친놈들이? 설마 중국 강호맹인가?”

“아니……. ……악마래.”

“악마?”

“그래. 내 사촌 조카가 간밤에 오용산에서 캠핑을 하고 있었거든. 그때 봤데. 황거를 짓밟고 요괴들을 잡아먹는 악마가 나타났다더군.”

“진짜? 왜 악마가?”

업자는 더욱 작은 소리로 가까이 다가와 말을 했다.

“신을 사칭한 것에 대한 천벌이라는 소리가 있어.”

“뭐!”

경악하는 이의 반응에 업자가 급히 입을 막았다.

“이봐! 거기 뭐 하는 거야?!”

황거 내를 순찰하던 음양사 하나가 수군거리는 업자의 행동을 보고 일갈하자 두 업자가 부리나케 도망쳤다.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음양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간밤의 전투로 야토 시 시민들의 불안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오오가미는 부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고, 사천신은 복귀를 하지 않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야토가미에 큰 위기가 올지도 몰랐다.

‘제길, 내가 사천신의 비결만 가지고 있었어도.’

음양사는 이런 혼탁한 위기에 기회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미천한 재능을 저주했다.

그때였다.

하늘의 빛이 그에게 내려치더니 순식간의 그의 머릿속에 세상 삼라만상에 대한 진리가 물밀 듯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허억! 이것은!’

세상의 이치부터 시작해 우주의 이치와 자연의 이치 모든 생명에 대한 생과 사 만물의 근본까지 모든 것들이 쉴 틈 없이 그의 남겨진 용량을 채우듯 꽉꽉 채워가기 시작했다.

‘좋아! 이것만 있으면 사천신…… 아니, 오오가미가 될 수도 있겠다!’

그의 몸은 모든 생을 통틀어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의 순간에 빠져있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희열과 환락이 그의 온몸을 가득 채웠지만 불안함은 없었다. 희열과 환락 속에서 그의 진리에 대한 깨달음은 점점 더 깊어져 갔으니까.

‘……그, 그만…….’

하지만 그 즐거움도 잠시 끝을 모르고 들어오는 방대한 양의 진리 때문에 자신의 의식이 점점 밀려나고 있었다.

물(物)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영(靈)의 세계에도 질량의 차이는 있는 법. 한정된 그릇 안에 무거운 질량의 것은 가라앉고 가벼운 것은 그릇 밖으로 밀려 나간다.

그의 자의식과 자아는 그가 받아들이는 진리에 비해 깃털만큼 가벼운 존재라 금방 새로운 주인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시작했다.

‘크윽! 으아아악!’

스스로가 사라진다는 엄청난 고통에도 이미 자리를 빼앗겨 버린 탓에 그의 몸은 아무런 움직임도 취하지 않았다.

대신 모든 것을 차지한 새로운 주인은 자신의 의식에 맞는 그릇을 새로이 구축하기 시작했다.

우드득 드드득 두득.

그의 얼굴과 머리 팔과 다리 몸통까지도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던 그것은 중구난방으로 뼈와 뼈를 이루던 것들이 분리되고 다시금 모여 기괴한 형상을 하다가 종국에는 전과 다른 형체로 완성되었다.

그 완성된 형체는 다름 아닌 류신이었다.

* * *

“크흑 컥! 커흑!”

바짝 마른 미라 같은 형상의 사내가 한쪽 팔을 잃은 채 연신 기침을 내뱉고 있었다.

기이하게도 그의 잘린 팔에선 계속해서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아주 조금씩이지만 사라진 살과 뼈들이 다시금 자라고 있었다.

“정벌은 실패했습니다.”

류신이 고개를 조아리며 이야기했다.

“최시우 때문이냐?”

미라 같은 형상의 사내가 입을 열자 들끓는 쇳소리가 내부에 가득했다.

“네. 그의 술법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놈을 잡을 방법은?”

“지금부터 방법을 찾아봐야 합니다.”

“지금부터 야토가미의 모든 전력을 최시우 하나로 집중해라. 그를 잡는데 어떤 힘을 써도 좋다.”

“알겠습니다.”

“그만 가봐라.”

미라의 사내는 피곤한 듯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그가 벌린 입으로 유형화된 귀기들이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그의 몸은 한 번씩 더욱 크게 꿀럭 거리며 잘린 팔을 더 빠르게 재생시키고 있었다.

류신은 방을 나가며 오오가미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을 닫았다.

* * *

“흐어어어엉!! 어디 있어! 나쁜 놈! 내가 죽인다!!”

황거 일대가 난리가 났다.

커다란 덩치의 보자기를 둘러쓴 이가 손에 잡히는 모든 것들을 사방으로 날리며 분풀이를 해댔다.

그를 말리려 다가서는 귀무사들은 가슴과 엉덩이가 서로 갈라지며 죽음을 맞이했다.

음양사와 귀무사들 마저 그 질리는 모습에 더 이상 다가서지 못하고 야토 시에서 나온 일반인들을 보호하기 급급했다.

“여기 오오가미 집! 누구도 망가뜨릴 수 없어!”

그가 비명을 지를 때마다 황거 전체가 들썩였다.

“그만하십시오.”

그를 말리는 차가운 음성에 보자기를 쓴 자가 고개를 돌려 감히 자신을 막아선 이를 바라봤다.

“류신!! 너 나빴다. 책임 못 졌다. 네 목 부러뜨릴 거다!!”

“그만하십쇼. 나루카미와 카가미가 모두 당했습니다.”

보자기의 사내가 방금까지 흥분하던 것을 잊고 멍하니 멈췄다. 그리고 퍼뜩 깨달은 듯 눈을 번쩍 뜨며 되물었다.

“나루카미!! 나루카미 좋다. 나한테 잘해준다. 근데 나루카미 없다!”

“그리고 오오가미께서 큰 부상을 입으셨습니다.”

커다란 보자기를 덮어쓴 사내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따라오십시오.”

류신은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야가미를 뒤로 하고 앞서 걷기 시작했다.

드르륵 탁!

오오가미가 회복하고 있는 모습을 본 야가미는 스스로 다다미방의 문을 닫고 다리가 풀린 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누가 그랬냐?”

“한국을 정벌하기 위해 갔던 야토가미의 인원들을 하나도 데려오지 못했습니다.”

“나루카미 못 돌아왔다. 류신 넌 돌아왔다!”

“나루카미의 희생이 없었다면 저 또한 그의 손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류신은 야가미의 의심의 눈초리에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나루카미 모두에게 잘해준다. 카가미는 나쁜 사람이라 잘 안 해 준다. 나루카미 죽인 건 누구냐? 최시우냐? 내가 죽이겠다. 내가 목을 부러뜨릴 거다.”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야가미가 간다 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겁니다.”

“야가미 강하다. 야가미는 강하다.”

“그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세상을 보고 세상의 기운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100년 전 우리가 내공을 사용하는 이들로 압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전혀 모르는 힘을 우리가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지금은 우리가 그들과 똑같은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무공 쓰는 녀석들 약하다.”

“더구나 그는 자신이 기거하는 곳 주변을 자신의 의지로 지배하는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 그를 죽인다는 것은 그의 손바닥 안에서 노는 것과 같을 겁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야가미 보고 싶다.”

류신이 야가미의 머리에 손을 대었다가 일정 시간이 지난 뒤 떼었다.

한참을 류신이 보낸 기억을 재생하던 야가미가 눈을 뜨고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하냐? 야가미는 방법 모르겠다. 류신은 알고 있다. 류신은 다 알고 있다.”

“방법은 있습니다.”

“뭐냐.”

“야가미님의 진기를 나눠주십시오.”

“야가미 진기 줄 수 없다!”

진기를 나눠달라는 류신의 말에 야가미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그의 목을 졸랐다.

“진기는 소중하다. 야가미의 힘의 원천이다. 줄 수 없다!”

“전 이번 전투로 상당한 양의 진기를 잃었습니다. 그를 상대하기 위해선 세상에 없던 새로운 수준의 술법이 필요하고 그 술법을 개발하기 위해선 제가 가진 진기로는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필요하냐.”

“4할이 필요합니다.”

“…….”

야가미는 대답 대신 류신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류신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야가미를 바라봤다.

“그거면 되는 거냐?”

“그리고 고(高)수준의 음양사도 10명이 필요합니다.”

“음양사 맘대로 해라. 야가미 필요 없다. 최시우 못 죽이면 류신 책임져야 한다.”

“알겠습니다.”

* * *

시우가 기거하는 저택 주변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연무장은 연구소 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연무장을 자랑했다.

특히나 이 연무장의 특징 중 하나는 에너지의 밀도가 다른 곳보다 몇 배는 높다는 것이었다.

세아의 말로는 정령을 수련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의 밀도가 높은 곳에서 하는 것이 좋다는 것 때문에 시우가 만들었다고 했다.

미화관은 시우의 연구소를 비롯하여 주변에 위치한 모든 건물의 권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어떤 세력의 사람들이 어떤 시설을 사용하더라도 제재하지 않았다.

무인들은 연구소 내의 많은 시설을 이용 중에 연무장에서 특히나 수련의 결과가 비약적으로 좋은 것을 느끼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무장을 사용해왔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일반인이라면 단순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압도적으로 많은 에너지의 양에 눌려 고통스러워할 연무장 위에서 한 인영이 쉼 없이 검무를 추고 있었다.

그녀의 검은 태산처럼 떠올랐다가 폭포처럼 떨어지고 들판의 부는 바람처럼 피어오르다가 꽃잎처럼 흐트러졌다.

검로 하나하나에 막힘이 없었으며, 초식 간의 간격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태백검법의 초식이 모두 끝나자 그녀는 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는 이번 전투로 자신의 이름을 상계에 확고하게 새긴 정소빈이었다.

아직 미처 회복하지 못한 몸으로 움직인 탓에 평소보다 더욱 힘들게 느껴졌다.

하지만 잠시도 병상에 차분하게 누워있지 못하게 한 것은 야토가미와의 일전 속에서 느낀 새로운 깨달음 때문이었다.

우빈의 검에서 본 새로운 단계에 대한 힌트.

그리고 찰나의 시간 동안 무아지경에 빠지며 펼쳤던 새로운 검.

그 검에 대한 느낌이 소빈을 잠 못 들게 하고 있었다.

소빈은 그날의 우빈의 검로를 다시금 차근차근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곤 천천히 우빈의 동작들을 따라 했다.

구결과 심득을 알 수 없기에 그저 동작만을 따라 할 뿐이었다.

내부의 내공은 움직이지 않았고 검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그녀의 검로 속에서 작은 미풍이 일기 시작했다.

그 작은 미풍은 검 끝을 따라 머물며 주변의 에너지를 밀어내기도 하고 끌어당기기도 했다.

허공을 베고 있을 뿐이었지만 설사 검 앞에 만년한철이 있다 해도 허공을 베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이 느껴졌다.

‘조금만, 조금만.’

검 끝에 머무는 미풍의 황홀한 감정에 빠져 깨달음을 얻기 직전.

천둥 같은 목소리가 그녀의 머릿속을 울리며 황홀경에서 그녀를 꺼냈다.

“지금 뭐 하는 거죠?”

나락으로 떨어지는 절망감 속에 눈을 뜬 그녀의 눈앞에 최시우가 차가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