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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야토가미의 전력이 남아 있는바, 야토가미와 대적할 수 있는 무인들을 중심으로 구조대를 모집할 예정입니다.”
야토가미와의 일전이 어느 정도 수습된 후 한국 상계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이들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주된 논의는 전후 처리와 관련하여 시우를 통해 알게 된 일본 포로의 구출 이야기였다.
“그런 이들이 있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니……. 대체 우리는 그동안 무얼 한 건지.”
남궁혜자의 말에 정순지가 위로했다.
“아무도 몰랐습니다. 너무 자책 마세요. 어머니.”
“그래. 구조대는 어떤 이들로 모집할 생각인가? 우리 태백 정가가 돕도록 하지. 아니. 내가 이끄는 게 낫겠군.”
“감사합니다. 저도 생각하기론 미화관과 태백 정가분들께서 나서주시는 것이 제일 안전하겠다 생각했습니다.”
곽동원의 말에 한쪽에 서 있던 정현미가 말했다.
“아직 전후 처리가 완벽하게 되지 않았어요. 벌써부터 그들을 구하러 간다는 건 무리 아닌가요?”
상대적으로 괜찮다고 하지만 태백 정가의 피해도 막심했다.
나루카미를 상대하기 위해 태백 정가의 정예로 구성된 태백 삼십육검 대부분이 죽었고, 지금은 후위들도 극심한 부상을 회복 중이었다.
“물론 그 점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분들의 존재를 알게 된 이상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서…….”
“어차피 야토가미는 이번 전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어요. 아마도 그들에게 행사하는 영향력도 작아질 거고, 그들도 그전보단 훨씬 자유로운 몸이 될 거예요. 차라리 그들 자력으로 도망치는 이들 위주로 돕는 게 어떻겠어요?”
정현미의 말에 달리 반박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한국 상계 전체의 피해 또한 막심했던 것.
그때 시우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들의 존재를 안 이상 어떤 상황이라도 그들의 구출을 우선해야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시우의 말에 정현미가 인상을 찌푸렸다.
담담히 이야기한 시우가 고개를 돌려 정현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그들을 곧장 구출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우릴 위해 목숨 바쳐 싸우려 하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모든 건 상황을 봐서 행동해야 하는 거야. 앞뒤 가리지 않고 날뛰는 건 애들이나 하는 짓이고.”
정현미의 날카로운 말이 장내를 싸늘하게 만들었다.
그 기운의 중심엔 한세아가 있었다.
그녀는 싸늘한 미소로 정현미에게 말했다.
“정가의 정현미 님 말을 조심해서 사용해 주시죠. 겉으로 몇 살로 보이든 저희 미화관을 이끌고 한국 상계를 승리로 이끈 시우 님이십니다.”
“누굴 따르건 당신들 마음이지. 나까지 그걸 따라야 할 이유가 있나?”
“기본적인 예의를 부탁드리는 겁니다.”
“어디 술집 마담이었던 것이…….”
정현미의 말에 장내의 기운이 순간적으로 압축되고 폭발할 듯 퍼져나갔다.
“다시 한번 말씀해 보시죠.”
기운의 근원은 시우.
그는 다른 이들의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노골적인 기운을 정현미에게 쏘아 붇였다.
“이, 이따위 짓을 하고도 태백 정가가 가만히 있을 거 같더냐…….”
시우는 고개를 돌려 남궁혜자를 바라보았다.
남궁혜자는 한숨을 쉬고는 시우를 말렸다.
“그만하거라.”
그녀의 말에 정현미를 구속하던 기운들이 한순간 풀어지고 정현미는 숨을 몰아쉬기 바빴다.
“하아, 하아, 하아. 감히…… 네가 태백 정가를 무력으로 시위하는 것이냐?”
“그만!”
정현미의 말이 이어지기 전에 남궁혜자의 일갈이 정현미의 입을 막았다.
“네 무례를 공개적으로 사과하거라.”
“하, 할머니.”
“언제까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스스로 안에 갇혀 살 테냐? 네가 함께 사선을 넘었던 동료를 욕보이고, 스스로를 위안한다고 네 자존심이 되살아나기라도 하는 것이냐?”
“…….”
이번 전투에서 가장 경미한 부상을 입은 건 미화관의 전투원이었다.
특히나 한세아는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태백 정가가 제대로 상대하지 못하던 나루카미를 상대로 한참이나 혈투를 벌였고, 한국 상계 무인의 피해확산을 막은 혁혁한 공로가 있었다.
그에 비해서 태백 정가는 남궁혜자의 현장 지휘 외에는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모든 것이 끝난 후엔 한국 상계의 태산북두가 태백 정가에서 미화관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았다.
단순히 말뿐만이 아니라, 이번 사태로 인해 터전을 잃거나 소속이 불분명해진 자들이 미화관에 입관하는 것에 대해 묻고 다닌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네.”
정현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사과를 했지만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은 남궁혜자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시우의 말이 맞다. 우린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을 잊고 있었어. 우리에겐 몇 달에 불과할지 모르는 짧은 시간이라도 그들에겐 억겁과도 같은 긴 시간이 계속되고 있을 뿐. 여력이 아예 없다면 모를까 구할 수 있다면 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남궁혜자의 말에 곽동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 또한 지금 움직이는 것이 무리라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려움을 딛고 우리가 이 일을 해낸다면, 한국 상계 전체에 더욱 커다란 결속을 가져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우리의 힘을 더 키우는 계기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곽동원의 생각에 한국 상계는 그동안 너무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100년 전 야토가미가 아시아를 지배했을 때도 한국 상계의 피해가 컸던 것은 서로가 서로의 위치를 납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비슷비슷한 크기의 세력들이 서로 난립하여 하나의 세력으로 응축되지 못했기에 작전은 중구난방이었고, 전투는 언제나 패배의 연속이었다.
해방 직후에도 한국 상계는 잃어버린 자신들의 힘의 회복에만 열을 올리며 서로가 서로의 경쟁상대가 되었다.
선의의 경쟁이란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만, 단절된 경쟁이란 폐쇄라는 틀에 갇혀 발전을 잊고 경쟁만이 남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시우라는 새로운 인물이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상계를 이끌기 시작했다.
확실하게 최시우라는 인물을 상계의 지도자로 인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들 은연중에 최시우만이 장차 한국 상계를 이끌 인물이 될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을 통해 최시우는 자신과 미화관이라는 자신의 세력만 챙긴 것이 아니라 여타 다른 세력들을 모두 받아들였다.
더불어 그들에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힘을 나눠주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으며 힘없는 이들이 기대어 올 때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 주었다.
장차 한국 상계는 지난 100년간의 과거를 잊고 새로운 체제로 바뀔 것이며 그 체제의 중심에는 시우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체제에 대한 다른 이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했다.
단순히 더 강한 세력의 등장이 아닌 모두를 포용할 수 있고 지휘할 수 있는 강하면서도 넓은 세력의 등장.
이것이 곽동원이 바라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구출 작전은 피해를 예상하더라도 강행할 수밖에 없다.’
진정한 강대국은 포로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수천 명의 아군의 희생을 감수한다.
포로로 죽는 것은 집단의 포기 때문이지만, 아군을 구하기 위해 죽는 것은 군인으로서 전사로서 죽는 것이었다.
이런 인식이 모두에게 박혀 들면, 소속 인원들은 자신의 세력을 위해 언제나 목숨을 바친다.
자신들이 살아만 있다면 세상 어디라도 구하러 온다는 확신이 결국은 충성심으로 변환되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는 현실세계건 상계건 그런 것이 없었다.
구출 작전에 대해 처음 시우에게 들었을 때, 곽동원도 극렬히 반대했지만, 시우가 하는 이야기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자신 또한 안전한 쪽에 앉아 평안을 기대하고만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
그렇게 시우의 이야기에 정신을 바짝 차린 후에야 이번 작전이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과연 열여덟짜리의 머릿속에서 나온 이야기가 맞는 건가?’
곽동원은 아무것도 모른 척 자리에 앉아 있는 시우를 보며 내심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은 강호맹에 관한 일입니다. 강호맹에서 육존출맹을 선언하고 저희 한국 상계에 회담을 요청해왔습니다.”
“육존출맹!”
곽동원의 이야기에 장내의 있는 인물들이 경악에 가까운 반응들을 보였다.
“육존출맹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지 않았던가?”
“쉬쉬하고 있지만 한 번 있었습니다. 30년 전 우현성 지역 합병 때 강호맹은 육존출맹을 선언하고 우현성 침략에 최선봉에 섰었습니다.”
우현성은 과거 공화국 국가였던 카르타고국의 자치 행정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계기로 중국에 편입되었다.
자국 내 치안에 관한 이야기라곤 했지만 카르타고국의 저항 세력인 카르타고국 자치 대원들과 민간인들이 200만 이상 사살당했고, 카르타고국은 우현성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전례가 있었다.
“육존출맹이 선언되었다는 것은 강호맹이 한국을…….”
정형진이 말을 잇지 못하고 흐렸다. 아직 야토가미에 의해 입은 상처도 채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강호맹까지 온다는 것은 한국 상계의 종말을 선언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회담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설마 그런 과격한 발상을 할 일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강호맹과 한국 상계는 오랜 시간 동맹을 이어온 관계인데요.”
“단순히 회담을 요청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봐도 무관하겠지만, 육존출맹까지 선언했다는 것은 조금 다른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동맹인 강호맹을 믿지 못한다면 대체 누굴 믿어야 하는 거지? 그리고 그 의도라는 것이 뭐라 생각하는 거지?”
정현미가 표독스럽게 곽동원을 몰아세우며 물었다.
“……아마도 최시우와 야토가미의 힘에 관한 것이겠지.”
장내의 인원들의 시선이 남궁혜자에게 몰렸다.
남궁혜자는 그것도 모르냐는 투로 말했다.
“강호맹은 이번 전쟁에 참여하길 바랬다. 하지만 우린 그걸 반대했지. 그런데도 그들은 억지로 참여하려다 큰 피해를 입었다. 전쟁은 우리의 승리로 끝났고, 우리가 새로운 힘을 가질 것에 대해서 강호맹은 경계하고 있는 것이겠지.”
“제 생각도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마도 강호맹은 이번 회담으로 꽤나 큰 것들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육존출맹이란 그런 과정 속에서 자연히 압박할 수 있는 무력시위 카드이겠지요.”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히 시우에게 몰렸다.
살아남은 대부분의 음양사들은 모두 시우의 통제하에 빌리언트가 만든 수감 시설 안에 갇혔다.
무인들이라면 누구나 야토가미가 가진 힘에 대해 호기심을 품을 법도 했지만, 귀기를 상대할 무기를 가지고 있어도 그들을 제어할 방법을 모르는 무인들은 야토가미의 무사들과 음양사들을 가둬 놀 수 없었다.
그랬기에 이전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야토가미의 힘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시우밖에 없었다.
그에게 선택권이 가는 것은 누구에게도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불필요한 싸움을 나서서 할 필요는 없겠지만, 필요 이상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줄 필요 또한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대화로 풀어 보도록 하죠.”
시우의 말에 곽동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의제가 나왔지만 희의는 크게 역동적이지 않았다. 다들 머릿속엔 육존출맹이란 네 글자의 단어가 무겁게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