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6
야토가미의 진형은 처참한 지경이었다.
대부분의 무사들이 죽음을 면치 못했고, 음양사들 또한 대부분 심각한 부상으로 전투를 수행할 수 없었다.
어차피 귀기가 제거된 이곳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내공을 사용하는 무인들의 검을 피하는 것뿐.
태백삼십육검의 검진 안에서 겨우 빠져나온 나루카미가 류신에게 말했다.
-빠져나갈 방법은 없어?
류신은 연신 시우의 마법을 받아 내며 말했다.
-없습니다. 최시우 저자가 펼쳐 놓은 술법은 이 일대를 자신의 지배하에 두고 있는 겁니다. 이곳은 곧 저자의 의지가 펼쳐지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뭐라도 해봐야 할 거 아냐? 오오가미 님께서 당했다고 하잖아.
나루카미의 말에 류신이 잠시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시간을 끌어 주시겠습니까?
-좋아, 오래는 못 끌어.
나루카미가 본 신의 귀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은 점점 거대해지더니 하얀색의 머리칼을 가진 거대한 설녀로 변했고, 하늘엔 어느새 짙은 먹구름이 가득하게 변했다.
사방엔 눈보라가 날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눈보라는 혹독한 폭풍으로 변하여 무인들의 시야를 감추기 시작했다.
“시간을 끌어 보겠다는 거냐?”
설녀로 변한 그녀의 주술은 이미 시우에게 무력하게 막힌 적이 있었다.
시우의 완드는 불에 관한 마법들을 펼쳐 그녀의 귀기를 더욱 빠르게 깎아 먹기 시작했다.
사방엔 불과 눈보라가 치열하게 다투고 그 뒤로 류신은 음양사들을 모아 커다란 주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저 뒤에! 뭔가가 온다!”
무인들의 외침에 시우는 그제야 류신의 모습을 발견하곤 나루카미를 무시하고 류신에게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어딜!”
나루카미 또한 시우가 위험한 인물임을 몸소 체험했기에 더 이상 그를 얕보는 과오는 저지르지 않았다.
그녀의 손끝에서 피어난 날카로운 얼음꽃들이 사방에 피어나며 시우의 목을 노렸고, 시우는 간발의 차이로 그녀의 공격을 피해내고 있었다.
“넌 기다리고 있어.”
시우의 손에서 뻗어 나간 커다란 불덩이가 나루카미의 얼굴에 직격하자 그는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얼굴에 붙은 불을 끄기 시작했고, 그 불을 모두 껐을 때 그녀의 주위론 다크 데몬 세 마리가 나타나 있었다.
“이 망할!”
나루카미의 비명이 사방으로 울렸지만 시우는 여유롭게 류신에게로 향했다.
“내뺄 생각이나 하다니 실망인데?”
십여 명의 음양사들에 둘러싸인 류신의 양손에선 하얀 빛무리가 빛을 내고 있었다.
“시우 님은 상당히 강하시군요.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래? 높게 평가해 주는 건 고마운데. 이제 와 그렇게 이야기하는 건 변명으로밖에 안 들리는군.”
[파이어 볼]
[윈드 커터]
[프리즌 노바]
시우의 완드 끝에서 마법들이 쏘아져 나가 류신을 공격했다.
퍼퍼펑!
굉음을 내며 폭발하는 마법들은 그들의 주변을 감싼 투명한 막에 의해 막혀 버렸다.
음양사들과 류신은 자신들이 준비하는 주문을 중간에 멈추지도 않았다.
“언제까지 그렇게 버틸 수 있는지 볼까!”
[거인의 손][오버 더 아머]
[윈드 커터][온 더 파이어]
[프리즌 노바][커싱 오브 포이즌]
시우의 공격은 더욱 매섭게 변했다.
그의 공격 하나하나에 그들이 모여 있는 진형의 모습이 흔들리기도 하고, 음양사 둘은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서 죽기도 했다.
하지만 류신은 멈추지 않았다.
시우 또한 그들을 놓아줄 생각 따윈 전혀 없었다.
백면궁과 함께 했던 청년을 비롯해 카가미등도 마지막엔 언제나 자신들의 모습을 버리고 도망치는 것에 여념이 없었다.
한 번도 그들을 놓친 적 없었기에 이번에도 그럴 생각은 없었다.
[타크 체인]
[타크 핸즈]
그들이 펼친 투명한 막 주위로 수십 개의 체인과 검은 액체로 만들어진 손들이 뻗어 나와 그들을 구속하기 시작했다.
“커헉!”
그때, 나루카미가 쓰러지며 피를 내뿜었다. 그녀의 가슴엔 다크 데몬의 부러진 뿔이 박혀 있었고, 다크 데몬은 쓰러진 나루카미의 숨이 거둬질 때까지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류신!”
나루카미가 절박하게 외치자. 류신의 손안에 든 빛의 무리가 더욱 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끝났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돌아가는 거냐!”
나루카미의 몸이 점점 줄어들며 류신을 보며 물었다.
류신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뒷일은 저에게 맡겨 두시기 바랍니다.”
“뭐야!”
류신의 말에 나루카미가 경악하며 그를 죽일 듯이 바라봤다.
시우는 류신의 주변으로 마법을 펼쳐 그가 도망갈 구석을 모두 막아 두었다.
“그렇게는 안 돼!”
“조만간 다시 오겠습니다. 시우 님.”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류신과 음양사들의 몸이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무너져 내렸다.
환한 빛무리가 그들이 있던 곳에 생성되어 하늘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시우는 잽싸게 펼쳐 놓은 마법들로 그를 잡으려 했지만 빛무리는 그 모든 마법을 뚫고 하늘로 상승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빌어먹을.”
시우는 사라지는 빛무리 안에서 류신의 존재를 느끼고는 그렇게 욕지기를 내뱉었다.
그렇게 야토가미의 류신만이 홀로 도망친 채 한국 상계와 야토가미의 전쟁은 끝이 났다.
* * *
태백 정가를 비롯한 보타암과 보타암과 함께했던 한국 상계의 무인들은 지금 축제 분위기였다.
수백 명의 무인들이 이번 전쟁에서 죽거나 심각한 부상을 당했지만, 야토가미의 피해는 더 컸고, 무소불위의 아시아 제왕으로 군림하던 야토가미를 상대로 한 승리는 그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했다.
전쟁에 대한 신속한 후속 처리도 그들이 슬픔에 잠겨 있는 시간을 단축하는데 좋은 계기가 되었다.
미화관은 막대한 자금을 풀어 사망자의 시체 수습과 더불어 부상자에 대한 치료에 돈을 아끼지 않았고 그들의 회복에 대대적인 지원을 했다.
태백 정가 또한 그에 뒤지지 않고 막대한 자원을 지원했다.
시우의 연구소가 위치한 건물들 대부분은 의료시설로 재빨리 변환되었고 그들의 치료와 회복에 중점을 두었다.
그중 가장 많이 활약한 것은 다름 아닌 시우였다.
시우는 마법을 이용해 시체들을 수습하고 부상자들의 회복을 도왔다.
그의 마법은 어느 곳에서나 필요한 것이었고, 시우 또한 그것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며칠의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일을 묵묵히 처리했다.
“시우 님.”
한세아가 시우를 부르자 한 참 마법을 부리며 시체를 수습하던 시우가 돌아보았다.
“관주. 왜 벌써 나왔지? 아직 회복이 다 되지 않았을 텐데?”
한세아는 나루카미를 상대하면서 제법 큰 상처를 입었던 터였다.
“시우 님 덕분에 이제 이렇게 움직일 수 있답니다.”
그녀가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회복하고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시우의 마법 덕분이었다.
“조금 더 쉬어. 내가 부린 마법은 회복이 아니라 임시방편에 불과하니까. 지금 무리하면 계속해서 후유증을 앓게 될 거야.”
“알겠습니다. 명심할게요.”
한세아는 걱정스런 얼굴로 시우를 바라보았다.
시우는 벌써 며칠째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 티는 내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은 피곤함으로 가득했다.
“조금 쉬시는 게 어떨까요? 시우 님.”
“난 괜찮아. 아직 힘든 사람들이 많고.”
“시우 님이 하지 않아도 다른 누군가가 할 거예요.”
시우의 연구소 근처엔 이미 국정원에서 파견된 인원들과 태백 정가에서 파견된 인원들이 가득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만 들어가.”
시우는 다크 나이트를 일꾼으로 부리며 직원들에게 일을 지시했다.
한세아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시우의 뒤로 다가가 그를 안았다.
“……관주. 무슨 일이야?”
시우가 조용히 물었지만 세아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너무, 무서웠어요.”
시우가 돌아서서 세아를 안아 주었다.
“괜찮아. 잘했어.”
시우는 다 끝났다는 이야기 말고 아무런 결과도 말하지 않는 이야기로 세아를 다독였다.
시우가 끝을 얘기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선 세아도 잘 알았기에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이미 상계에 들어온 이상. 언제나 생존을 위한 전투만이 계속될 것이다.
야토가미와의 전쟁에서 이겼다고 끝이 아니다. 아직 중국 상계가 남았고, 류신과 오오가미가 남아 있었다.
“관주님! 어! 여기 계시네!”
김준상이 한세아를 발견하고 다가오고 있었다.
시우가 그런 김준상을 보곤 손을 휙 젓자.
김준상의 몸이 퉁하고 수십 미터나 날아가 버렸다.
“어엇?! 과, 관주님!!!”
한참이나 시우의 품에서 울던 세아가 고개를 들자 시우의 옷에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
“헤헷, 죄송해요. 시우 님.”
“괜찮아.”
시우가 무뚝뚝하게 이야기했다.
“언제쯤 시우 님이 계시지 않아도 두렵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 누구도 두렵지 않을 만큼 힘을 가지게 되면. 그렇게 노력한다면 두렵지 않을 수 있을 거야.”
“전 아직 멀었네요. 그때까지 계속 곁에 있어 주실 거죠?”
“어딜 도망갈 생각이었나 보지?”
시우의 말에 한세아가 호호 웃음을 터트렸다.
* * *
회의가 시작된 지 한참이나 지났지만,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이가 있는 것도 아니었건만, 장내의 인물들은 혼자만의 생각에 빠졌다가 잠깐씩 다른 이의 얼굴을 보고, 그들도 깊은 생각에 빠져있는 얼굴을 보곤 다시금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 어떤 말로 누가 먼저 말을 꺼내어도 불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그들의 목을 죄고 있었다.
“흠흠. 결국 한국 상계가 이기고 말았소.”
“끄응.”
진문형의 말에 나머지 5인들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의 거만함을 가진 혁련무궁의 태도도 다르지 않았다.
“대체 한국에 들어갔던 놈들은 뭐 하고 있었던 건가?”
“그들 또한 야토가미와의 일전에서 크게 패했다고 하오. 문제는 그들이 한국 상계의 무인은커녕 그들과 대화 한 마디도 못 하고 도망쳤다는 것이 문제지.”
“멍청한 놈들.”
“그렇다는 건 결국 우리의 희생 때문에 그들이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 아니오?”
“한국 상계에선 우리가 자신들의 지역에 접근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소.”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이오?”
답답함을 찾지 못한 계상학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
진문형은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그동안 한국 상계는 강호맹에겐 신경 쓸 대상이 아니었다.
아시아를 두고 양분하는 것은 언제까지나 야토가미와 자신들의 일이었을 뿐이었다.
한국 상계의 수준은 중국 내의 한 개의 성에도 못 밑 치는 수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강호맹은 언제나 한국을 강호맹의 한반도 지부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하지만 야토가미와의 전쟁으로 인해 한국 상계를 다시금 평가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이러고 있을 시간이 있는 건가? 만약 한국 상계가 야토가미의 힘을 가지게 된다면?”
혁련무궁의 말은 회의의 참석한 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야토가미를 상대로 전면전을 벌이고도 이긴 것을 넘어서 그들이 야토가미의 힘까지 가지게 된다면?
아시아는 다름 아닌 한국 상계의 발아래 놓이게 된다.
그것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했다.
“그렇게 두고 볼 수만은 없소.”
진문형이 다짐하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강호맹 전체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육존의 출맹을 부탁하는 바이오.”
진문형의 말에 탁자를 중심으로 앉은 이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반대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