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
목적지에 도착한 시우는 산 중턱에 위치한 황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산 중턱에 위치한 거대한 황거는 산 자체를 깎아 만들어 뒤편으론 깎아지는 절벽이 위치해 있었고, 사방으로 넓게 퍼진 담벼락과 화려한 모양의 건물들은 야토가미가 일왕의 위세에 못지않게 대단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듯했다.
더구나 황거의 중앙에 선 대궁은 황금빛으로 화려하게 빛나고 있어서 어두운 밤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황거 곳곳에 켜진 조명에 비추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저게 다 금이라 이건가? 돈 좀 들였겠군.”
시우의 목적지가 야토가미의 본부인 황거라는 이야기를 하자 노인들은 대경실색하며 시우를 뜯어말렸다.
황거의 존재하는 오오가미는 인간이 아니라는 말과 함께 그곳에 들어가서 살아 나온 사람은 없다는 그들의 말에도 시우는 자신의 의견을 꺾지 않았다.
시우의 그런 모습에 노인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황거에 대해 속속들이 알려 주었다.
황거는 일본 전역에 퍼진 신사들로부터 귀기를 모으고 재생산하여 전국에 재배치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황거에 기거하는 오오가미는 그 전체 시스템의 코어 역할을 하며 동시에 일본 전역을 지배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시우가 의아하게 생각했던 일본 전역에 펼쳐진 결계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거대한 에너지를 담으려면 흔한 금속 가지곤 안 되었겠지.”
알게니하 대륙에선 마정석과 마법진이라는 희대의 물질과 마법이론이 있었기에 인간은 마법을 쉽게 활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에너지를 가두고 재생산하여 활용하는 마법진이라는 개념이 없는 불모지와 같은 지구에서 이 정도의 시스템을 만들어냈다는 것 자체는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시우는 아마도 이 시스템 자체를 만든 것이 자신이 본 창백한 인상의 사내일 것이라 추측했다.
그 정도의 법사가 아니고선 생각조차도 해볼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만나 보면 알겠지.”
웃음을 짓는 시우가 완드를 왼쪽 손바닥에 댄 후에 끌어당기듯 쭉 뻗자 그의 왼손에선 하얗고 가느다란 빛의 줄이 쭉 뻗어 나왔다.
처음 가늘었던 줄들은 점점 그 크기를 키우더니 손바닥만 한 마법진으로 변형되었다.
동시에 생성된 마법진들이 빛을 내면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황거의 하늘엔 커다란 마법진이 생성되고 그 안에서 갑주를 착용한 거인의 손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거인의 손][오버 더 아머]
콰콰콰콰쾅쾅쾅쾅.
지축을 흔들고 건물이 부서지며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건물을 빠져나온 인간들이 황거 밖으로 뛰쳐나가자 거인의 손은 더욱 강하게 건물들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소환][어스 골렘]
대리석 돌로 만들어진 바닥에 산산이 부서지고, 그 안에서 4m에 육박하는 거대한 크기의 골렘들이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총 여섯 마리의 골렘들은 황거 곳곳을 찾아다니며 건물과 조형물들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골렘들이 날뛰기 시작하자 황거에선 다시금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번엔 인간의 비명 소리와는 다른 찢어질 듯 날카롭고, 쇠를 긁는 듯 끔찍한 목소리들이 대부분이었다.
꺄아아아악!
끄으으으윽!
까악! 까악! 까악!
끔찍한 비명소리와 함께 나타난 것은 바로 요괴들이었다. 각종 동물과 귀신의 합성체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요괴들이 순식간에 골렘들을 뒤덮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퍽! 퍽! 퍼퍽! 퍼퍼퍽!
흙먼지 날리는 소리와 함께 골렘들의 모습들이 움푹 파이거나 떨어져 나갔지만 골렘들은 전혀 타격을 입지 않는지 계속 건물을 부수고 있었다.
일부의 요괴들이 시우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악!
맨 처음 까마귀 얼굴에 지장을 든 인간 형태의 요괴가 시우를 죽일 듯 지장의 끝으로 찔러 들어 왔지만, 시우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맘껏 날뛰어. 여긴 네가 눈치 볼 사람 같은 거 없으니까.”
시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우의 날개에서 거대한 액체가 뿜어져 나와 까마귀 요괴를 덮쳤다.
꺄아악! 까악!
그물에 걸린 듯 날개를 퍼덕거리지 못한 까마귀 요괴는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고, 검은 액체는 그 기괴하고 끔찍한 입을 벌려 까마귀의 몸을 씹어 먹기 시작했다.
“치, 침입자다! 침입자가 나타났다.”
지난 60년간 한 번도 침입을 당해 보지 못했던 야토가미의 무사들은 기습적인 침입에 당황한 모습을 숨기지 못했다.
“그동안 편했지?”
제대로 옷가지도 갖추지 못하고 튀어나온 무사들은 사방에 떨어지는 거인의 손과 골렘들이 던지는 돌덩이를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우는 불 난 집에 기름을 붓듯 다시금 소환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소환][다크 나이트]
야토가미의 무사와 비슷한 복장을 한 다크 나이트들이 황거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군이라 생각했던 그들은 곳이어 다크 나이트들의 거침없는 공격에 속속들이 피해를 입으며 발악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적이다! 얼굴이 검은 놈들은 모두 적이야!”
귀검사와 귀갑사가 한 팀을 이뤄 다크 나이트를 막아섰지만, 갑작스런 기습에 머리를 잘리기 전까지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 다크 나이트를 막아서는 것은 그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방화는 침략자의 기본 소양이잖아? 경험 많아서 알지?”
시우의 완드가 다시금 왼손바닥을 집었다가 쭉 늘어뜨려 졌다.
[파이어 볼]
그의 완드를 타고 나온 빛나는 줄은 금세 크기를 키워 손바닥만 한 마법진을 만들어냈고, 마법진들에선 쉴 새 없이 파이어 볼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퍼펑! 퍼퍼펑! 펑! 펑! 펑!
사방으로 날아간 파이어볼은 황거 곳곳을 누비며 건물의 외벽과 지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불, 불이야!”
“불을 꺼! 대궁에 불이 번지면 안 된다!”
황거 곳곳이 불타오르자 황거의 중심에 있는 대궁은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거 꽤 마음에 드는 장면인데?”
시우가 자신이 만든 장관을 구경하듯 지켜보고 있을 때.
대궁의 꼭대기 층에서 백의를 걸친 중년의 사내가 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우는 자신을 노려보는 강렬한 적의를 감지하고 대궁의 꼭대기를 바라보며 웃었다.
“반가워 오오가미. 기습당하는 건 처음이지?”
* * *
쿠쿠쿠쿠쿵!
거대한 방망이가 밭을 갈 듯 태백 삼십 육검의 검진의 한쪽을 쓸고 지나갔다.
“크아악!”
“커헉!”
여덟의 무인이 방망이에 맞아 자갈돌처럼 튕겨 나가며 한참을 날다 바닥에 굴렀다.
검진은 순식간에 무너지려 했고, 나루카미를 직접 상대하던 무인 둘이 꽁꽁 언 얼음이 되었다가 산산 조각나버렸다.
“재진!!”
삼십 육검의 수장인 장명호가 목이 쉬도록 소리치자 주변에서 삼십 육검의 검진을 배워왔던 예비 삼십 육검 무인들이 검진에 합류했고, 무너져 가던 검진은 다시금 자리를 잡았다.
슈우우우웅!
검진을 갈랐던 방망이가 이번엔 허공에서 대지로 방망이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커다란 방망이가 자신들을 산산 조각내려는 듯 내리치고 있음에도 검진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무인들은 아득한 고통을 참아 내기 위해 눈을 질끈 감았다.
쾅!
커다란 충격음과 함께 의외로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않은 무인들은 고개를 돌려 방망이를 막은 존재를 바라보았다.
남궁혜자의 가냘픈 검이 거대한 오니의 방망이를 가볍게 걷어 내는 것을 보며 탄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정신 차려! 너희들의 상대는 나루카미다!”
장명호의 외침에 무인들은 다시금 고개를 돌려 검진을 펼치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한 간격을 두고 오니의 방망이가 금방이라도 검진을 때려 부술 듯했지만, 무인들은 온전히 나루카미에게만 집중을 한 채로 계속 검을 휘둘러야 했다.
웅 웅 웅.
커다란 방망이가 휘둘러 질 때마다 바람이 휘몰아치고 모래가 휘날렸다.
태백신보를 펼친 남궁혜자는 귀신같이 오니의 뒤편으로 돌아가 발목을 자르고 무릎을 공격한 후 곧장 오니의 목을 베었다.
크아아아악!
오니의 목이 떨어지자 무인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우아아아아아!”
하지만 환호는 오래가지 않았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소용돌이 속에서 다시금 새로운 오니가 등장한 탓이다.
음양귀와 오니, 카라스텐구의 형상을 한 거대한 요괴들은 한국 상계의 무인들의 기세를 꺽기 충분했다.
그들의 움직임과 커다란 덩치는 귀력을 상대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느끼게 했다. 더구나 한 마리를 처치할 때마다 끊임없이 나오는 거신요괴단은 악몽 그 자체였다.
“피해라!”
음양사가 소환한 요괴들을 상대로 하던 상계의 무인들 위로 카라스텐구의 입에서 뿜어낸 불길이 그들을 삽시간에 집어삼켰다.
요괴들도 불길에 포함되었지만 불길이 지나간 길에 요괴들은 조금도 상처 입지 않았다.
“피해!”
“끄아아악!”
“무, 물!”
요괴들과 달리 카라스텐구의 불길을 피해내지 못한 이들은 끔찍한 고통과 함께 몸 에 붙은 불을 꺼트리지 못했다.
“아쿠아 볼!”
그때 전장터에 어울리지 않는 청아한 목소리의 음성이 울렸다.
그리고 그 뒤로 그녀와 비슷한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여성들이 일제히 외치기 시작했다.
“아쿠아 볼!”
“아쿠아 볼!”
“아쿠아 볼!”
허공에 눈에 보이지 않는 수분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금세 물방울로 변했고, 물방울들은 그 몸집을 순식간에 키워 불타고 있던 무인들의 몸 위로 떨어졌다.
“아쿠아 볼!”
불길로 가득 찼던 일대는 축축하게 젖을 만큼 많은 양의 물이 떨어져 내렸고, 카라스텐구에 대한 피해는 생각보다 적었다.
무인들의 고개가 야토가미의 진영 왼편으로 쏠렸다.
그곳엔 눈이 돌아갈 만큼 아름다운 자태의 여성이 의연하게 서서 야토가미의 무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원, 적을 척살하라.”
한세아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류신을 가리키며 명령하자.
그녀의 뒤로 정령을 거느린 미화관의 전투원들이 튀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어깨 위엔 각자의 정령들이 소환된 상태였다.
* * *
음양귀를 피해 귀검사를 상대하던 소빈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질퍽하게 느껴졌던 대지는 어느새 끈적한 뻘처럼 변해 소빈의 발을 묶기 시작했다.
귀검사 하나의 목을 찌른 검을 뽑아낸 소빈이 얼굴에 튄 핏물을 닦으며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이미 그녀의 발은 무릎까지 땅에 박힌 뒤였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음양귀가 말라비틀어진 긴 손가락을 뻗으며 소빈의 몸을 잡으려 했다.
음양귀가 소빈을 잡으려는 순간 소빈의 검이 음양귀의 손을 절단해 버렸다.
꺄아아아악!
비명을 지른 음양귀는 손가락이 잘린 손을 당긴 채 다른 손으로 소빈을 찌부러트릴 듯 내려치기 시작했다.
쉬이이이이이익.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커다란 바람과 함께 음양귀의 옷이 휘날렸다.
바람의 미약한 힘은 음양귀의 주먹질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바람과 함께 실려 온 것은 그보다 더 예리하고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쿵.
소빈을 내려치던 음양귀의 주먹이 바닥에 떨어졌다.
동시에 음양귀의 팔과 다리, 목이 연달아 잘리며 음양귀는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채 서서히 고꾸라졌다.
쾅!
커다란 충격음과 함께 무너진 음양귀의 몸 위로 우빈이 싱긋 웃으며 등장했다.
“누나 실력이 많이 줄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