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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을 날고 있는 시우의 완드 끝엔 직경 2m에 달하는 거대한 불덩이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덩이는 금세 폭발할 듯 울렁거렸다.
키야야약!
그
때, 시우의 존재를 뒤늦게 파악하고 나타난 족제비들이 시우에게 바람칼을 날렸다.
족제비의 꼬리에서 생성된 바람칼이 공기마저 가르며 날카로운 절삭음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늦었어!”
시우는 지체없이 불덩이를 산 중 신사를 향해 던져 버렸다.
족제비 두 마리가 재빨리 방향을 바꿔 불덩이 아래로 몸을 던졌지만, 거대한 압력을 가진 불덩이를 이겨 낼 수는 없었다.
쾅! 콰콰콰콰쾅!
첫 번째 충격음에 이어 불덩이에 내재된 커다란 압력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불길을 치솟아 오르게 했다.
시우에게 달려들던 족제비들은 신사에 타오르는 불길과 함께 먼지처럼 사라져 버렸다.
포로로 잡혀 있는 노인들에게 자신들이 60년간 모아온 신사들의 위치와 규모 등의 자료를 받은 시우는 신사들의 위치를 정리했다.
신사의 위치가 제각각이었던 만큼 신사 하나가 포함하는 영역의 크기도 제각각이었는데, 시우는 그 신사의 영역들 사이 작은 틈 사이로 비행을 하며 신사를 계속 파괴하는 중이었다.
“내 작품을 보면 귀신 얼굴을 한 놈의 얼굴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
어둑한 밤하늘을 비행하는 시우의 완드 끝에 다시금 불덩이가 일렁이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 * *
시우의 연구소 일대에선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다.
비명소리가 사방에서 울리고 귀음을 내뱉는 요괴들이 허공과 대지의 구분 짓지 않고 날아다니며 귀기를 흩뿌렸고, 무인들은 그런 요괴들을 막아서기 위해 필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음양사들을 먼저 처라! 그들이 사라지면 요괴도 사라진다!”
정순지가 가장 앞서 태백 정가의 무인들을 이끌며 검을 휘둘렀다.
크아아아악!
물도 없건만 대지를 물 삼아 헤엄치던 바다뱀이 그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며 정순지의 머리를 순식간에 집어삼킬 듯 튀어 올랐다.
“태백압살(太白壓殺).”
종으로 내려치는 그의 검을 따라 검기가 세 줄기로 뻗어 내리며 바다뱀을 순식간에 삼등분으로 쪼개냈다.
당연히 무인의 검에 죽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바다뱀이 사방으로 몸을 꿈틀거리다 먼지처럼 사라졌고, 음양사들의 틈 사이에서 한 음양사가 가슴을 부여잡고서 바닥으로 쓰러져 내렸다.
틈이 비워진 사이 정순지의 내력을 가득 담은 태백신장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퍼퍼퍼퍼벙!
음양사들 일부가 칠 할의 내력을 담은 태백신장에 가슴뼈가 무너지며 즉사했지만, 금방 나타난 귀갑사들의 귀갑을 펼쳐 태백신장을 방어했다.
귀갑사가 정순지의 정면으로 돌진하며 동시에 사선에서 귀검사가 귀검을 길게 펼치며 정순지를 공격했다.
귀갑사와 귀검사의 검을 막아내고 있는 사이, 동료의 죽음으로 분노한 음양사가 요괴를 소환하여 정순지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크흑!”
태백신보를 펼쳤지만 마치 뻘에서 걸음을 옮기는 것처럼 바닥이 질척거려 움직임이 현저히 느렸다.
그리고 제대로 된 보법을 펼치지 못한 상황에서 귀검사와 귀갑사는 그 틈을 노리고 검을 찔러 들어 왔다.
“할아버지!”
가느다랗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정소빈이 얼마나 급박했는지 그를 비명처럼 부르며 검을 찔러 들어왔다.
푹푹!
화살처럼 찔러 들어온 소빈의 검이 귀갑사의 귀갑을 뚫고 귀검사의 검을 피해 그들의 척추와 심장을 꿰뚫었고, 둘은 순식간에 고혼이 되어 버렸다.
“괜찮으세요? 할아버지?”
마지막으로 태백신장으로 정순지의 발목을 잡은 음양사를 처리하자 정순지의 발은 족쇄를 푼 것처럼 자유롭게 풀려 나왔다.
“허허, 고맙다. 네가 날 구했구나.”
“조심하세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땀에 전 잔머리를 정리도 하지 못한 채 얼굴에 튄 핏물을 대충 닦아내는 소빈을 보며 정순지는 측은함이 느껴졌다.
자신의 대에서 제대로 처리하지 못 한 일이 결국은 후대까지 이렇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너도 검진에 들어가 있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태백 삼십 육검은 현 전투에서 야토가미를 상대로 가장 월등한 전투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야토가미를 상대로 검진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비웃는 사람들의 조롱을 뒤로하고 계속해서 검진을 갈고 닦아 왔던 태백 정가의 검진은 시우가 준비한 대(對) 야토가미용 무기를 든 후엔 무적의 위력을 뽐내고 있었다.
귀공을 익힌 것에 비해 무공의 깊이 정도가 현저히 낮은 야토가미는 전투와 초식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히 낮았다.
그들에게 무공이랑 귀공의 보조밖에 되지 못했고, 귀공을 기반으로 한 무공들의 대부분은 일격필살의 기준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장시간에 걸쳐 펼쳐지는 대단위 전투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공방일체의 형식을 유지하는 검진은 음양사들의 기습적인 공격에도 거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과거 시우도 꽤나 고전을 했던 것을 기억하면 귀공에 확실한 대비책을 가지고 있는 정가를 상대로 야토가미가 대응할 수 있는 것은 꽤 한정적이었다.
“아니요. 전 혼자서 싸우고 싶어요.”
백면궁과의 일전 이후로 정가에서 제일 많이 변한 사람을 꼽으라면 그것은 바로 우빈과 소빈일 것이다.
우빈이야 무공을 잃은 후유증이라는 계기가 있었지만 소빈이 변한 이유에 대해선 사람들도 잘 알지 못했다.
물론 다른 정가의 인원들도 백면궁과의 일전 이후로 달라진 면모를 보이긴 했었다. 게을리하던 수련도 성실히 임하고 수련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도 많이 변했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하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었다.
하지만 소빈만은 달랐다.
그녀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기본적인 의식주와 사회생활을 하는 시간 외엔 오로지 수련에만 맹목적으로 매달렸다.
정가의 사람들이 소빈에게 이유를 물어도 대답 없이 미소만 지었기에 그녀가 이토록 수련에 매달리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혈육인 순지 등은 소빈이 백면궁과의 전투에서 무에 대한 어떤 목표치를 가졌다는 것을 대략적으로 예상할 뿐이었다.
‘소빈이가 정말 많이 달라졌구나.’
자신을 보호하는 와중에도 그녀의 시선은 야토가미의 무사들에게서 벗어나지 않는 것을 보며 정순지는 진정 자신의 손녀가 많이 변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네 뜻이 그렇다면 편한 대로 하거라. 단 이 할애비를 두고 다치면 안 된다.”
걱정 어린 마음이 뚝뚝 묻어나는 정순지의 말에 소빈은 특유의 그 귀여운 웃음을 지어주며 다시금 전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전장을 바라보며 검을 고쳐 잡던 소빈은 문득 새로 쓰는 검이 손에 금방 익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자신의 손에 쥐어진 검을 바라보았다.
전에 쓰던 검보다 훨씬 가벼워졌지만 강도나 무게감의 밸런스는 더욱 좋아졌다. 한세아가 검을 건넬 때 시우가 특별히 신경 썼다는 말에 괜스레 가슴이 떨렸던 것도 있었지만 그보단 소빈의 시선은 이곳에 없는 시우의 모습을 허상으로나마 그려내고 있었다.
그의 전투 스타일. 과감하고, 과격하다, 못해 폭발적인 행동과 거침없는 파괴력까지 갖춘 일종의 예술로도 보이는 그 아름다움을 소빈은 전투 내내 쫓고 있었던 것이다.0마법과 검술은 결코 그 궤가 달랐지만 자신의 검으로 실현해 보고 싶다는 갈망이 그녀를 쉬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단전에서 끌어 올린 내력이 두 발로 뻗어 나갔다.
한 번의 망설임도 없는 태백신보가 펼쳐지며 그녀의 신형이 전장 곳곳에 그림자를 만들고 잘려나간 야토가미의 무사들의 몸에서 피 분수를 뿜게 만들었다.
* * *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저놈들이 무슨 짓을 했길래…….”
나루카미가 떨리는 음성과 울 것 같은 얼굴로 류신을 바라보며 말했지만 류신은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저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에 뭔가 비밀이 있나 보군요.”
“일전에 얘기한 제귀철이란 것 때문 아니야? 그건 속임수 일 거라며?”
나루카미가 뜨악한 얼굴로 류신을 바라봤다.
“중국과 한국의 어떤 역사 속에서도 제귀철이란 건 존재 하지 않습니다. 현대 과학으로 밝혀진 금속의 속성에서도 귀공을 뒤흔들만한 신물질은 발견된 적 없습니다.”
“그럼 대체 어떻게 저놈들이 하나 같이 우리 힘을 막고 있는 건데?”
“아마도 최시우 그자가 이 일과 관련되어 있겠죠.”
“……또 그놈이야? 대체 그놈이 무슨 재주로 우리 귀공을 상대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 낸 거지?”
“저도 그 정체가 참으로 궁금합니다. 어디서 그런 자가 갑자기 나타난 건지.”
“근데 왜 그놈은 모습을 안 드러내지? 주술사라 어디 숨어 있는 건가?”
“그건 아닐 겁니다. 제가 본 바론, 그자의 실질적 무력도 꽤나 대단했으니.”
“그러니까 아직 등장할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거야?”
나루카미의 주위로 푸른 냉기가 더욱 진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그런 자는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만.”
“그렇게 주인공이 되고 싶다면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지.”
류신과 한가하게 대화를 하던 나루카미가 스윽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을 따라 한국 상계의 무인들이 힘겹게 야토가미의 무사들을 상대하고 있던 대지에서 날카로운 얼음 송곳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파파파팍.
“피, 피해!”
“크억!”
“컥!”
날카로운 얼음 덩어리들이 치솟아 오르면서 십 수 명의 무인들이 순식간에 고혼이 되었다.
그들이 흘린 피는 얼음을 타고 흘렀고, 이윽고 대지를 붉게 물들였다.
나루카미는 본격적으로 전투에 돌입하려는 듯 전장의 중심으로 뛰어들었다.
“저자다! 저자가 야토가미를 이끄는 자다!”
나루카미가 전장에 뛰어들기 무섭게 한국 상계의 누군가가 발악하듯 외쳤고, 무인들은 일전에 약속한 대로 사람들을 끌어모아 나루카미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수십의 무인들이 죽어 나가며 나루카미 주변의 귀무사들과 음양사들을 처리했다.
뼈아픈 출혈이 생겼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나루카미는 단신으로 한국 상계의 무인들에게 둘러싸였지만 전혀 걱정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호호호, 겨우 너희들의 힘으로 나를 어찌하려는 것이냐?”
“태백삼십육검은 저 요망한 것을 처단하라!”
남궁혜자의 외침과 동시에 태백 삼십 육검이 나루카미의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진을 만드러낸 그들은 일전에 시우에게 펼쳤던 검진을 똑같이 펼쳐 나루카미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류신은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않는지. 무표정한 얼굴로 빠르게 손을 놀려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귀령소환]
[거신요괴단]
전장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처음 미미했던 바람은 금방 거센 바람으로 바뀌어 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 바람이 모이는 허공엔 커다란 소용돌이가 나타나 주변의 공기를 흡수하기 시작했고, 그 소용돌이 사이로 거대한 크기의 요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쿵. 쿵.
하나 같이 5층 빌딩만 한 크기의 몸체를 가진 요괴들의 등장에 그동안 자신들의 무기로 야토가미를 상대할 수 있다 생각하며 희망에 젖었던 한국 상계의 무인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류신은 그들의 종말을 예측하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어디에 있든 빨리 나와야 할 겁니다. 당신을 터전이 사라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