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9
퍼퍼펑!
새로운 기류를 만날 때마다 시우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압축된 공기가 터져나갔다.
공기 역학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간의 신체로 날기 위해 유체 동역학에 가장 유리한 모양으로 공기의 층을 압축시켜 둘렀지만 다크 사이트가 제멋대로 뻗어 나온 날개로 가속도를 더하면서 계속해서 작은 소닉붐을 생성시켰다.
일본의 해상 자위대와 초계기의 레이더를 피해 동해를 건너던 시우의 눈에 저 멀리 일본의 본토와 그 위로 뜨문뜨문 인적의 증거인 불빛들이 비쳤다.
시우는 속도를 줄이고 항구를 지나쳐 도시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결계 외에는 별다른 방해물은 없는 건가?”
류신은 놀랍게도 일본 전역에 퍼져 있는 각종 신사들을 이용해 본토 전역에 방어용 결계를 쳐 놓았다.
우습게도 일본에 비한다면 한국과 중국의 주술적 한계는 명백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단위 술법이나 마법에 대비해 국토방어를 위한 결계를 설치해 놓았다는 점이 시우로 하여금 놀랍게 만들었다.
“만에 하나, 십만의 하나에 대비하여 준비하는 건 마법사들이나 그러는 건 줄 알았는데 말이야.”
최대한 소음을 줄이고자 다크 사이트까지 들어가게 했지만, 힘을 키우면서 점점 제어가 힘들어지는 다크 사이트는 무슨 냄새를 맡은 건지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들어가 있어! 아직 네 차례는 멀었다고.”
크르르릉!
다크 사이트는 으르렁거리듯 울며 좀처럼 들어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망할 놈 같으니. 7서클에 올라서면 그때 너는…….”
시우의 말이 이어지기 무섭게 다크 사이트가 부채꼴로 변하며 시우의 뒤통수를 보호했다. 그와 동시에 다크 사이트로 커다란 충격이 울렸고, 급작스런 공격에 대비하지 못하였던 시우는 그대로 곧장 산속으로 추락했다.
콰콰쾅!
수십 그루의 나뭇가지들을 부수고 땅바닥에 추락한 시우의 몸은 검은 코트가 단단히 감싸고 있었다.
캬아아아.
다크 사이트가 ‘거 보라는 듯’ 이를 갈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래, 고맙다. 내가 미처 너의 깊은 뜻을 몰랐네.”
시우가 고개를 들자 하늘엔 여덟의 커다란 흰털을 가진 족제비가 부유하며 붉은 빛무리를 흘리는 눈으로 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냐 그 귀신같은 얼굴을 한 놈의 작품이냐?”
시우가 다시금 비행마법으로 날아오르려 하자 족제비들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며 사방에서 절삭음을 냈다.
스걱 스걱 스걱 스걱.
“이런 미친!”
[거인의 손][오버 더 아머]
수십 년을 자라온 거목들이 순식간에 잘리며 우르르 시우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시우의 양편에서 생겨난 마법진에선 갑주를 걸친 거인의 손이 튀어나와 떨어지는 나무로부터 시우를 보호했다.
커다란 충격음과 함께 흙먼지가 비산하고, 커다란 나무 뭉치에 파묻혀 시우의 모습이 완전히 가려지자 족제비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천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다크 체인]
그때 쇠사슬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나무 뭉치 사이에서 수십 개의 검은 체인들이 폭죽처럼 쏘아져 나가 족제비들을 구속하기 시작했다.
촤르르르르.
족제비들은 급하게 위로 상승하며 칼로 만들어진 자신들의 꼬리로 다크 체인을 끊어 내려 연신 꼬리를 휘둘렀다.
쿠르르.
“그따위 것에 잘릴 쇠사슬이 아니다.”
나무 뭉치가 흩어져 내리며 시우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의 손에 들린 완드의 움직임이 멈추지 않았다.
[윈드 커터][다크 파이어]
시우의 주위로 생성된 8개의 마법진에서 각기 8개의 검은 불을 머금은 바람의 칼날이 촘촘한 나뭇가지를 피해 족제비들에게 날아갔다.
서겅!
족제비들은 자신의 몸이 바람의 칼날에 잘려나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지 더욱 버둥대었고, 그때마다 바람의 칼날이 남기고 간 검은 불을 더욱 빠르게 피어 오르게 만들었다.
하늘을 비행하던 족제비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바닥으로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캬아아아!
다크 사이트가 시위하듯 소리를 질렀다.
“그래, 가서 쳐먹어라.”
시우가 인상을 쓰며 이야기하자 다크 사이트는 자신의 몸을 쭉 넓혀 떨어지는 족제비를 받아먹으려는 것처럼 그 해괴한 입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 귀신 얼굴을 한 놈이 준비한 것이겠지?”
족제비들은 각기 보이지 않는 미세한 줄기로 엮인 실을 몸에 달고 있었다.
그 실의 방향은 이곳으로 오기 전 확인 했던 신사로부터 시작되고 있었고, 족제비는 그 신사에서 에너지를 받아 일대를 방비하는 방어기제 같은 일을 했던 것이다.
“고대의 힘으로 현대의 개념을 실현한다. 이건가? 이런 건 배워둘 만하네.”
시우가 재밌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때, 한쪽에서 다크 사이트의 씹어 먹는 소리가 울렸다.
“젠장, 너 때문에 무슨 생각을 못 한다 내가. 그냥 흡수해!”
다크 사이트에게 일갈을 하곤 다시금 비행 마법을 준비하려는 그때 시우의 머리 위로 바윗덩어리 등이 떨어져 내렸다.
“이런!”
쿠르릉.
수 개의 바위가 육중한 충격음과 함께 시우가 있던 자리로 떨어지고 가까스로 피한 시우가 자신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지만, 방금까지 충격음을 내며 떨어졌던 바위는 온데간데없고, 대신에 찢어진 나뭇잎 몇 개만이 나풀거리며 날아다녔다.
“이건 또 뭐야?”
바위가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들자 나무들 사이로 이마에 나뭇잎을 붙인 너구리가 비웃는 듯한 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그 너구리들도 족제비와 마찬가지로 신사와 가느다란 끈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 귀신 얼굴…… 정신병자 아니야? 뭘 이렇게까지 준비를 해?”
시우의 얼굴은 황당함으로 가득했다.
* * *
쾅쾅쾅쾅쾅!
압착 프레스가 거대한 주먹의 모양이 되어 내려치듯 연신 대지를 흔들고,
“파이어 볼! 파이어 볼! 파이어 볼! 약화! 약화! 약화! 약화!”
사방에선 불길이 치솟아 오르며 나무로 만들어진 기둥과 서까래 등은 순식간에 썩으며 피어오르는 불길의 좋은 재료가 되었다.
“흔적도 남기지 마라! 파이어 볼! 파이어 볼! 파이어 볼!”
시우는 분풀이라도 하듯 타오르는 신사 위로 또다시 파이어 볼들을 내던졌다.
800년 전통의 숲의 신을 모셨던 신사가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신사 근처엔 이곳이 신사였다는 증거마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신사가 잿더미가 되어 버리자 더 이상 요괴는 튀어나오지 않았다. 아니 튀어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신사에 준비되어 있는 주술이 침입자를 감지하여 요괴를 보낸다는 것은 꽤나 귀찮은 일이었다. 결계 가까이 날게 되면 강력한 간섭에 마나의 흐름이 자꾸 끊겨 안전한 비행을 할 수 없었고, 충분히 낮게 날면 신사에서 요괴가 튀어나왔다.
모든 신사에 이런 요괴가 튀어나오도록 설치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선 꽤 많은 거리가 남아 있음에도 이렇게 강력한 요괴들이 튀어나올 수 있는 주술을 준비해 놓았다는 건 목적지에 갈 때까지 이런 일들이 반복된다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았다.
“이대로 돌아가야 하나.”
생각보다 꽤 많은 시간이 걸릴 듯했다.
“이, 이봐요!”
그때, 시우의 뒤쪽에서 일본어가 들렸고, 시우는 지체 않고 손안의 불덩이를 집어 그에게 던지려 했다.
“신사의 잔당이냐!”
“아, 아니요! 아니요!”
시우가 팔을 휘둘렀지만 다행히 불덩이는 노인을 향해 날아가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방어 자세를 취하던 노인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천천히 눈을 뜨며 시우를 바라봤다.
“이, 이건 당신이 이렇게 한 겁니까?”
“당신은 누구지?”
시우가 기이한 눈빛으로 노인을 보았다.
어깨까지 내려온 긴 수염과 확연하게 숱이 없는 머리털 깡마른 팔다리와 훤히 보이는 갈비뼈의 모양까지 도저히 산속에서 겨울을 나는 사람의 모습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호, 혹시 강호맹의 사람입니까?”
“내 말 못 들었나? 당신 정체가 뭐지?”
“우, 우리는 이 신사에 붙들려 있던 포로입니다.”
“우리? 포로?”
“그, 그래요. 60년 전에 야토가미에 의해 이곳에 끌려 왔습니다.”
노인의 말과 함께, 그의 뒤로 그와 비슷한 행색의 노인들이 하나둘 숲의 그림자 속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설마, 전쟁포로로 끌려와 아직까지 잡혀 있던 겁니까?”
“……우, 우리는 한국 상계의 무인들이었습니다. 야토가미에게 징집당해 60년째 이곳에서 노역하고 있었습니다.”
노인의 말에 시우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시우가 얼굴을 굳히자 노인들은 꽤 두려워하는 얼굴로 시우를 바라보았다.
시우가 그런 노인들의 감정을 금방 알아차리고 작게 미소 지으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실례했습니다. 어르신들. 전 한국에서 온…… 최시우라고 합니다.”
“하, 한국에서 말입니까?”
노인들은 서로 수군거리며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60년간 한국 상계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겁니까? 왜 아직까지 이곳에 계신 거죠?”
“아, 아닙니다. 한국 상계와 중국 강호맹은 예전부터 계속 우릴 구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쪽도 보다시피 이런 해괴한 주술과 야토가미의 능력을 생각하면…….”
처음에 포로로 잡혔을 때만 해도 금방 돌아갈 수 있을 거라 희망이 가득했지만 거듭되는 구조대들의 허무한 죽음과 막강한 야토가미의 능력에 점점 그 희망도 버려가던 참이었다.
단지 죽기 전에 고향땅을 밟아 보고 싶다는 마음만이 남아 있었건만 그건 절대 이뤄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그들이었다.
“그랬군요. 혹시 어르신들 외에도 더 많은 분들이 계신 겁니까?”
노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시선을 나누었다. 맨 처음 시우에게 말을 걸었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전국에 걸쳐 신사 전체에 우리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
시우가 기가 찬다는 듯 탄성을 내질렀다.
노인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호, 혹시 한국 상계가 새로운 힘을 가지기라도 한 겁니까?”
노인은 간절한 희망을 담아 얘기하는 것처럼 말했다.
시우가 처음 나타날 때부터 숙소에서 나와 그의 신위를 보던 그였다. 여타 다른 무인들과 달리 요괴들을 순식간에 요리하고 끊임없이 소환되는 요괴들을 손짓 몇 번으로 불태워 버리고 삼켜 버렸다. 그리고 종국에 자신들의 손과 발에 족쇄를 걸고 있던 신사까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 절대적이고 강력한 힘이 노인들에게 잃었던 꿈을 되살리게 만들고 있었다.
“그건 아닙니다. 전 개인적인 작은 기연을 얻어 이런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노인들의 표정이 급격하게 실망으로 물들었다.
“저, 정말 안타깝네요. 그런 힘을 한국 상계가 가졌다면 그렇게 강력했다면 저희들은…… 저희들은…… 다시금 고향 땅을 밟아 볼 수 있었…….”
말을 하던 노인이 울음을 터트렸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르고 너무 무감하게 살았던 탓에 잊었다고 생각했던 감정이 작은 기대와 함께 다시금 무너지자 메말랐던 눈물을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
그의 울음은 금방 전염이 되어 다른 노인들에게 퍼져나갔다.
“어르신들 그만 고정하십시오. 아직 끝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네?”
“지금 한국에선 야토가미와 한국 상계의 무인들이 전면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야, 야토가미가 다시금 침략에 나선 겁니까?”
노인들은 공포스런 얼굴로 물었다.
“네. 그들이 다시금 야욕을 드러냈고, 저희는 지금 다시 싸우는 중입니다.”
“그, 그럴 수가…… 아아!!”
노인이 끝내 바닥에 너부러지며 그 앙상한 손을 흔들며 애통하다는 듯 바닥을 쳤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의 한국 상계는 그리 약하지 않습니다.”
“야, 약하지 않다니요?”
“야토가미의 힘에 대한 분석과 대응법은 모두 준비했습니다.”
시우의 말에 노인들의 시선이 시우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귀를 쫑긋 세우고 아이 같은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이번 전쟁에서 이기는 건 우리입니다. 야토가미는 제가 세상에서 지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