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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아악!”

조로구모가 사방을 날아다니며 투명한 거미줄을 쏘아 낼 때마다 강호맹의 무인들의 팔과 다리가 두부처럼 썰려 나갔다.

조로구모를 피해 최대한 몸을 숙이면 규키가 정면으로 돌진하며 피해를 입혔고, 요괴들을 피해 도망치면 야토가미의 귀검사와 귀갑사들이 귀검을 휘두르며 강호맹의 무인들을 속절없이 베어갔다.

“젠장! 주작단! 주작단은 뭐 하는 거야!”

“지금 진을 해진(解陣) 하기 위해 전 인원이 붙어 있어요!”

강호맹이 야토가미를 상대하는 방법은 주작단원과 일반 무인과의 합일로 이뤄진다. 일반 무인을 상대할 땐 평범한 무기로 상대해도 되었지만, 물질을 그냥 통과해버리는 요괴들을 상대할 때는 주작단의 보조가 필요로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원이 해진을 위해 붙어 있는 사이 무인들의 숫자는 더욱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빌어먹을! 일단 귀검사를 위주로 공격하라!”

강형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무인들이 궁신탄영의 수법으로 재빨리 이동하여 귀검사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귀검사들을 상대하기 위해 무인들이 움직이자 빈틈을 타고 귀갑사들이 주작단원들에게 달려들었다.

“꺄아아악!”

“커흑!”

“으흑!”

백호단의 무인에 비해 현저하게 무공 수준이 낮은 주작단원들은 해진을 위해 힘을 모으느라 미처 귀갑사들의 검을 피하지도 못하고 속절없이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주작단원의 인원이 줄어들수록 해진의 속도는 점점 늦어졌고, 이대로면 지리멸렬하다 모두 죽는 수밖에 없었다.

“강 형!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제길!”

욕지기를 내뱉은 강형산이 강기를 내뿜으며 순식간에 귀검사 하나의 목을 베어 넘겼다.

귀검사 하나를 베어 넘기고 뒤로 물러나려는 순간 강형산은 귀검사의 목에서 피가 한 방울도 배어 나오지 않는 것에 더욱 질겁했다.

“젠장! 대체 뭐야!”

인간이라면 당연하게 피를 내뿜고 장기를 가지고 있다는 강형산의 상식을 비웃듯 잘린 단면에선 무저갱의 것과 비슷한 검은 액체만이 흘렀고, 그것이 강형산을 더욱 공포스럽게 만들었다.

“강 형! 이들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인간이 아닌 듯해요!”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일단 주작단원들을 보호해서 최대한 빨리 진을 빠져나갑시다!”

치고 빠지는 것이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전투 와중엔 공격하는 것보다 후퇴하면서 일어나는 피해가 더 큰 것이 당연했다.

“백호단! 모두 주작단을 보호하라!”

강형산의 말에 귀검사와 검을 맞대던 백호단원들이 주춤거렸다. 지금처럼 절박한 상황에서 강형산의 이야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움직여! 이대로 다 죽고 싶으냐!”

내력을 담은 외침에 백호단원들이 바짝 긴장하며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백호단원의 피해는 더욱 커졌다.

“크아악!”

“다, 단주님!”

백호단원들의 수가 줄어갈수록 카가미의 웃음소리는 만쇄진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있었다.

“크하하하하하 빠져나갈 수 있을 성싶으냐!”

카가미가 거대한 검을 휘두르자 허공에 붉은색의 괴조가 나타나 순식간에 백호단 일부를 채어 하늘로 높이 떠올랐다.

“제길! 해진은 언제 되는 거냐!”

“조금만…… 조금만…….”

“우리가 다 죽은 다음에 할 참이냐!”

강형산의 채근에 맹소현은 강형산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적군보다 죽이고 싶은 아군이란 말은 이럴 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붉은색의 괴조가 목이 잘려나간 강호맹 인원의 시체를 바닥에 뿌리고 다시금 내려앉으려 할 때 장혜란이 외쳤다.

“됐어요! 만쇄진을 뚫었어요!”

만쇄진이 풀리자 검은 바다 위로 수없이 빛나고 있던 배들이 항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더불어 언제 도착한 것인지 맹의 인원들이 검을 뽑아 들고 전투에 가세하였다.

“크하하하하! 제법 재주들이 있구나.”

“카가미! 강호맹의 검을 받아 낼 자신이 있느냐!”

“우습구나, 얼마든지 데려와 보거라!”

붉은 머리의 카가미는 야토가미의 무사들과 함께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어딜 가느냐!”

“진짜 싸움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크하하하하.”

그들의 뒤를 쫓으려 몇몇의 맹의 인원들이 쫓아가자 어김없이 요괴들이 튀어나와 순식간에 무인들의 목숨을 빼앗았고, 강호맹은 더 이상 카가미를 쫓을 수 없었다.

“빌어먹을…….”

강형산이 사방에 죽어 있는 백호단과 주작단의 시체들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하지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 *

야토가미에 대비한 전략회의는 SNH의 주최로 시우의 연구소가 위치한 지역의 한 건물에서 시행되었다.

새롭게 지어진 건물에선 특유의 화학 약품 냄새가 아직 은은하게 남아 있었지만 그것에 불만을 표하는 이는 없었다.

회의에는 한국 상계와 정부를 대표하는 이들이 참석했다.

처음 입을 연 것은 한때 국정원의 골방 신세였다가 이제는 SNH의 수장이 되어 한국 상계 전체를 관리하는 입장이 된 곽동원이었다.

“이미 야토가미와의 전쟁이 피할 수 없는 본격화 된 과정에서 그들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올지에 대해선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이미 2차례의 침략을 통해 그들이 현대 과학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귀공을 통해 침략할 가능성이 있지만 전면전의 경우 대단위 인원이 상륙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았을 때. 해안을 통한 침략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에 현 SNH 팀에 소속되어 있는 팀들은 물론 각 문파의 도움을 받아 인적 정보망을 개설하였습니다.”

“백면궁 사건 때에는 인적 정보망을 맹신하다 기습을 당했었다. 그 점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

남궁혜자의 말에 혜강이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 문제는 그들과의 전면전을 어디서 치룰지 입니다. 본래라면 태백정가와 보타암을 노릴 것이라 예상해 볼 수 있겠지만, 현 상황에선 그들이 목표로 하는 바는 조금 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겠지.”

남궁혜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에 가만히 앉은 시우를 바라봤다.

저 어린아이가 상계에 등장하고 나서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태백정가 내부에서도 이미 맹주의 지위를 잃어버린 일로 인하여 시우에게 불만을 품은 이들이 몇몇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작은 불만에 지나지 않았다. 현재는 거대한 적을 정면으로 상대해야 하는 위기에 처해 있었고, 그 적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시우가 유일했다.

“우리가 어린 시주에게 빚이 많습니다.”

혜강이 허허로운 웃음을 보이며 시우를 바라봤다.

시우 또한 작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네. 모두 예상하신 바대로 적은 이곳으로 올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그리하여 전투 가능 인원들을 한곳으로 모으는 것에 대해서 어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

“…….”

곽동원의 말에 혜강과 남궁혜자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두 사람은 한때 자신의 터전을 지키고자 하다가 극심한 피해를 입은 적이 있었다. 그런 과오를 반복해서 벌일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의 터전을 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정가를 비워둘 수는 없어요. 그게 상계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말하지 않아도 잘 알겠죠?”

정현미가 냉랭한 음성으로 이야기하자 곽동원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린 이미 백면궁과의 일전으로 똑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습니까? 전력의 분산은 적에게 도움만 줄 뿐입니다.”

“하지만……!”

“그만!”

정현미의 말을 끊은 남궁혜자가 고개를 들며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우리 또한 경험으로 배운 바가 적지 않다. 자네 뜻대로 하게나.”

“할머니!”

“그만해라! 정가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이 무에 그리 중요하더냐. 백면궁과의 일전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이냐? 그때 그들이 보타암이 아닌 태백정가를 먼저 치려 했다면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보타암이었을 것이다.”

남궁혜자의 일갈에 정현미는 고개를 숙였다.

“정가의 건물과 땅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가란 정가에 속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어디서든 정가의 뜻을 세운다면 그곳이 정가다. 겨우 눈에 보이는 사소한 것 때문에 중요한 것을 잊지 말거라!”

남궁혜자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그 부분에 대해서도 시우 님께서 조치를 취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곽동원의 말에 남궁혜자와 정가의 사람들이 기대 어린 눈빛으로 시우를 바라보았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정가와 이번에 참석하는 무문들의 주위로 진을 설치하려 합니다. 야토가미에도 음양사들이 있어 유명무실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피해를 줄이는 데에는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호오. 그때 정가에 펼쳤던 그런 진 말이냐?”

“제가 없이 펼쳐야 하기 때문에 그런 진은 펼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야토가미가 펼치는 진들보다는 훨씬 괜찮을 거라 생각합니다.”

시우의 말에 남궁혜자가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정도만 되어도 충분하지.”

상황이 정리되자 곽동원은 말을 이어 나갔다.

“다음은 중국 강호맹에 대한 겁니다. 최근 강호맹이 한국에 다녀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먼저 미리 알고선 알려드리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되었네. 아직 자리도 잡지 않은 단체 아닌가. 그 정도 일은 우리에게 맡겨도 되네.”

“강호맹이 중국으로 돌아갔다고 들었는데. 그 이상의 불필요한 충돌은 없었습니까?”

“글쎄, 나도 그게 의문이야. 저 아이를 잡으러 갔던 녀석들이 엉망이 되어 돌아갔거든. 그렇게 쉽게 물러날 줄은 몰랐는데.”

실상을 알고 있던 우빈이 한쪽에서 혀를 찼다.

“그 건에 대해선 제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시우가 입을 열었다.

“그게 참말이더냐? 허허허.”

시우의 이야기를 들은 남궁혜자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간 강호맹의 핍박 속에서 자신과 자신의 본가. 남궁세가 또한 당한 것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강호맹과 야토가미가 서로를 의심할 수도 있겠군요.”

“최근에 야토가미의 야가미가 중국 상계를 침범한 것을 생각하면 단순히 의심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네요.”

한세아의 이야기에 곽동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번 전쟁이 더욱 쉽게 풀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두 세력이 양패구상할 가능성은 없을 까요?”

“그것까지는 아마 힘들 것 같습니다. 수는 중국 강호맹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야토가미의 귀공이 있는 점을 생각하면 강호맹 또한 전면전을 어떻게든 피하려고 할 겁니다. 그보단 동맹을 통해 함께 야토가미를 대적하는 쪽이…….”

“아니요. 그건 반대합니다.”

시우가 곽동원의 의견에 반대하며 나섰다.

“강호맹의 그간 행적으로 보아, 그들이 공통의 적을 두고 싸운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더구나 한라검문과 해도문을 통해 그들이 이익을 얻으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야토가미와 저희의 일전이 끝난 다음에 우리가 걱정해야 할 건 오히려 강호맹입니다.”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선 최선의 방법을 찾자면 강호맹과 함께 하는 것이 최선일 듯 싶습니다.”

“스스로 쟁취하지 못한 승리는 언제나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했습니다. 앞으로의 승리는 그런 대가 없이 만들어 낼 겁니다.”

“우리가 야토가미를 상대할 무기와 방어구들로 방비하고 있다 하지만 절대적인 숫자에선 확실히 밀리는 감이 있습니다. 한라검문과 해도문이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을 상대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남의 힘만 빌려선 제대로 된 힘을 갖출 수 없죠.”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세아가 말을 보탰다.

“저희 미화관을 비롯한 태백정가와 보타암의 많은 분들이 이미 준비를 마쳤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이제 와서 도움을 줄지도 안 줄지도 모를 상대를 끌어들이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그래. 강호맹은 예전부터 자신들의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엔 일절 끼어드는 법이 없었다. 그들이 우리를 순순히 우리를 돕겠다 말하는 것조차도 그 안에 어떤 의도가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하는 와중에 그들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남궁혜자까지 그렇게 이야기하자 곽동원도 더 이상 자신의 의견을 밀어붙일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일단은 저희 팀에서 최대한 빨리 인원을 선발해 중국 쪽에 정보원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시간이 흐르면서 회의가 계속되었지만, 피로를 호소하는 이들은 없었다.

모두 초롱초롱하게 눈을 반짝이며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귀를 쫑긋 세우며 곽동원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