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
맹소현은 심각한 표정으로 품속에서 부적 다발을 꺼내어 허공에 흩뿌렸다.
작은 미풍에도 나불거리는 부적은 꽃잎처럼 흩날리다가 검지와 중지를 모으고 주문을 외우는 맹소현의 음성에 반응하여 불길을 품기 시작했다.
신기한 것은 화르륵 타올라야 정상인 부적들이 불꽃을 품은 채로 형태를 유지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불붙은 부적은 강형산과 단청의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맹소현의 움직임에 장혜란도 함께 움직였다. 그녀는 부적을 이어 붙인 것 같은 긴 부적을 꺼내어 자신의 눈을 가리는 두건처럼 부착했고, 그녀의 눈가를 뒤덮은 부적은 그녀의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처음 보는 형태예요. 다행히 환영이나 환상을 일으키지는 않아요.”
“다행이라고? 살기가 점점 숨쉬기 힘들 정도로 진해지는데?”
“이런 형태는 처음이라, 야토가미의 만쇄진이랑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요.”
“해진은 가능하겠어?”
“시간을 벌어 주세요.”
장혜란은 열 명의 주잔단원들과 함께 진을 파괴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고, 맹소현은 나머지 주작단 열과 함께 전투 준비를 마쳤다.
“제길. 누구냐! 모습을 드러내라!”
강형산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검을 꺼내 들었다.
그의 외침에 대답이라도 하듯 발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등장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합니다. 혹시 몰라서 조치를 좀 했는데, 놀라셨나요?”
교복 차림의 시우와 우빈의 등장에 강호맹의 인원들은 꽤 놀라는 눈치였다.
조사로 시우가 어리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체감하는 것은 좀 달랐다. 특히나 이런 당황스런 상황에서 그를 만날 것이라곤 그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바였다.
“지금 뭐 하자는 것이냐? 우리와 제대로 붙어 보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느냐?”
“꽤 많은 인원을 데려오셨기에 따로 공간을 만든 것인데 불편하신가요?”
“이따위 살기를 풀풀 풍기는 진에 우리를 가둬 놓고 그저 공간을 만든 것뿐이라고?”
강형산의 말에 시우가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진 내부의 살기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반대로 한참이나 해진을 위해 진을 분석하던 장혜란과 주작단은 당황스런 얼굴로 시우를 바라볼 뿐이었다.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데, 저 때문에 오신 거 맞으신가요?”
진 내부에 살기가 사라지자, 여유를 가진 강호맹의 인원들은 시우의 물음에 서로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너에게 볼일이 있어 왔다.”
“설마 중국으로 오라던가 함께 가자던가 하는 그런 말은 아니겠죠?”
“…….”
강형산이 말을 잇지 못하자 단청이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소제. 저는 백호 3단의 부단주 단청이라고 합니다. 소제가 최시우 군 맞습니까?”
“네.”
“들은 것보다 더 많은 재주를 가지고 계시군요.”
“저에 대해 듣고 오셨다고요?”
“소제가 특별한 술법에 능통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중국에서 예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러시군요. 어떤 볼일 때문에 오신 거죠?”
“저희와 함께 강호맹이 있는 중국으로 가주었으면 합니다. 함께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단청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던 시우는 아쉽다는 투로 이야기했다.
“그러면 좋겠지만, 저 또한 이곳에서 할 일이 많아 함께 가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또 아실지 모르겠지만 야토가미와 중대한 일전을 벌이는 중이라.”
“소제께서 아실지 모르겠지만, 중국 상계는 한국 상계에 몇십 배나 되는 커다란 규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야토가미와의 일전은 저희와 함께 하는 것이 소제께도 훨씬 더 도움이 될 겁니다.”
“그다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아니니 걱정은 거두어 주셔도 될 것 같군요.”
단청과 시우의 이야기를 듣던 강형산이 결국 참지 못하고 화를 터트렸다.
“애송이, 네놈에게 뭔가 선택권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냐?”
시우는 강형산을 바라보다가 단청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만 돌아가시는 게 어떨까요? 보다시피 학생의 신분으로 다른 일까지 해야 해서 바쁜 몸이라.”
“이놈!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이냐!”
강형산의 일갈에 단청이 결국 대화를 이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부터 하는 행동이 마음에 안 드네.”
“난 강호맹의 백호 3단 단장 강형산이다. 네놈은 그저 우리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될 뿐이다.”
“아까부터 강호맹, 강호맹, 더럽게 떽떽거리는구만, 실력도 없는 놈들끼리 모여서 집단을 이루면 뭐라도 될 줄 아나 보지?”
시우가 태도를 바꾸어 껄렁하게 이야기하자 강형산의 얼굴이 타오를 듯 붉게 물들었다.
“이놈! 감히 강호맹을 모욕하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기파마저 섞인 그의 음성은 진 내부를 쩡쩡하게 울리고도 남았지만, 시우나 우빈에겐 아무런 감흥이 없어 보였다.
“야토가미가 무서워 처박혀 있던 주제에 뭔가 좀 변할 거 같으니까 기어 나온 거잖아? 그런 주제에 뭐가 그렇게 당당해?”
“맘을 바꿨다. 맹에선 멀쩡하게 데려오라 했지만, 팔다리 정도는 잘라 데려가도 되겠지.”
강형산이 노골적으로 살기를 풍기며 나아가자 백호 3단의 단원들도 일제히 검을 빼 들었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시우가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기자 이전보다 더한 살기가 그들의 살을 파고들 듯 진하게 풍기기 시작했고, 무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기를 끌어올려 호신경을 펼치기 시작했다.
“네놈들을 이 진 안에서 평생 썩게 만들 수도 있어.”
진 내부의 풍경일 순식간에 바뀌더니 건물과 도로는 사라지고 녹림이 우거진 산속 숲으로 변했다.
단청이 딱딱한 표정으로 장혜란을 바라보자 부적으로 눈을 가리고 있던 장혜란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제법 재주가 있다만 네놈 혼자서 우리 강호맹 전체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냐?”
“그걸 왜 걱정하지? 그때쯤엔 당신들 모두 여기서 서로를 잡아먹으며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을 텐데.”
시우의 말에 강호맹의 인원들은 싸늘한 공포를 느껴야 했다. 진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구할 수 없는 이곳에서 서로를 잡아먹는 끔찍한 지옥만이 예정된 결과였다.
-진정 나갈 방법이 없습니까?
단청이 장혜란에게 전음을 보내자 장혜란은 아무렇지 않은 척 해진을 하며 답했다.
-안돼요. 무슨 방법을 쓴지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진이 아니에요. 분석하고 파악하고 해진을 시도할 즘엔 계속 변하고 바뀌어 살문과 활문을 구분할 수 없어요. 아니 애초에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우리가 사용하는 기문둔갑을 기초로 한 그런 진이 아니에요. 최대한 설득해서 나갈 방법을 찾아봐야 할 거 같아요.
-알겠습니다.
단청은 재빨리 상황을 강형산에게 전달하며 우선 나가서 생각하자 이야기했고, 달리 이곳을 빠져나갈 재간이 없던 강형산은 그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단주, 그만하시게. 우리가 이곳에 싸우러 온 것은 아니지 않은가.”
“흥!”
강형산이 볼 것 없다는 듯 뒤로 물러서자 단청이 앞으로 나서며 포권을 취했다.
“소제께 무례하게 군 점은 제가 대신 사과하겠습니다. 또한 뜻이 그럼을 알았으니 더 이상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말이 통하는 분이 있어 다행이군요.”
“소제가 중국으로 올 순 없지만, 이곳에서 함께 야토가미에 대항하는 방법도 있지 않겠습니까?”
“뭐, 서로 배려하는 차원에서 도울 방법이 있다면 그것도 좋겠군요.”
“잠시 조용한 곳에 가서 얘기를 좀 나눠 봄이 어떨까요?”
단청의 말에 시우가 선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우가 주머니에서 완드를 꺼내어 허공에 마법진을 그린 후 완드를 휘두르자 마법진이 깨어졌다.
그와 동시에 녹림이 우거졌던 사방이 무너지듯 사라지고 건물과 도로, 사람과 소음이 들려 왔다.
“조용한 카페라도 갈까요? 한국엔 카페가 널려 있음……!!”
시우가 말을 하며 몸을 돌리려는 찰나 강형산이 구궁보를 펼치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매화검법을 펼쳤다.
챙!
은은한 매화향을 풍기며 시우의 사방을 점하던 검이 우빈의 검에 턱 하니 막혔다.
시우의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우빈이 나선 것이다.
“이 무슨 비겁한 짓이요!”
우빈의 일갈에도 강형산은 지체하지 않고 두 사람을 향해 검격을 흩뿌렸다.
“사술을 쓰는 자에게 예를 차릴 것 같더냐!”
“무슨! 엄연히 마법이라는 힘이요!”
“자세한 이야기는 맹에 가서 듣겠다!”
“호락호락 넘어갈 줄 아시오!”
“태백정가의 검으로 감히 화산의 검을 상대하려 하느냐!”
강형산은 매화검법으로 우빈을 상대하는 한편, 남은 손으로 죽엽수와 매화장법을 사용하여 시우를 몰아쳤다.
맹소현 또한 부적을 사용하여 강형산을 돕기 시작했다.
수십 장의 부적을 허공에 흩뿌린 수결과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고, 수십 장의 부적은 춤을 추듯 시우의 사방을 점하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불꽃으로 변화한 부적들이 시우에게 날아들자 시우 또한 완드를 휘둘러 공격마법을 펼쳤다.
[아이스 볼]
허공에 생겨난 수십 개의 아이스 볼이 부적을 향해 날아들려 했지만, 시우의 사방을 점한 부적들이 만들어낸 투명한 막에 막혀 냉기로 화해 버렸다.
반면에 불로 변한 부적들은 부적이 만든 막을 거치지 않고 시우에게 격중했다.
퍼버버벙
폭발음과 함께 시우가 수 미터나 날아가 버렸다.
“시우야!”
시우가 날아가는 모습에 검격이 엉킨 우빈의 몸에도 상처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빈이 급한 마음에 발길을 돌려 시우에게 다가가 보려 했지만, 강형산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제길.”
우빈이 벨트의 기를 끌어 올려 검격을 펼치려 했으나 강대한 매화검법에 당해낼 만한 검은 막대한 내공이 필요했다.
미량의 기밖에 생성하지 않는 벨트는 벌써부터 한계를 드러내며 내공을 뚝뚝 끊기 시작했고, 제대로 펼치지 못한 검법 때문에 강형산의 검을 막아 내지 못하고 결국 왼팔에 큰 상처를 입으며 뒤로 밀려났다.
“크흑.”
“정가의 직계라 꽤 실력이 있을 줄 알았더니만, 이건 뭐 중국 상계의 낭인만도 못한 허접쓰레기였구나.”
우빈이 검을 고쳐 잡고 다시 일어서려 할 때 그의 머릿속을 울리는 음성이 들려 왔다.
-그동안 익힌 건 나중에 엿 바꿔 먹을 거냐?
우빈의 고개가 휙 돌아가며 부스스한 먼지를 풍기며 날아간 시우를 바라보았다.
먼지를 뚫고 일어서는 시우의 온몸에는 언제 걸쳐 입은 것인지 검은색의 코트가 걸려있었다.
-그동안 수련이 그리 힘들지 않았나 봐? 급박한 순간에 자동으로 안 나오는 거 보니까?
시우의 말에 우빈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연검을 익히기 위해 시우가 준비한 훈련은 인간 위에 존재한다는 무림인이라도 쉽게 견뎌낼 수 없는 훈련이었다.
더구나 깨달음을 기초로 하는 자연검을 이론상의 이해만으로 익히기 위해 고문과도 같은 훈련을 견뎌 왔던 그였다.
우빈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자 심장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시우는 우빈의 상태를 보곤 순식간에 수 개의 마법진을 만들어 내었다.
[윈드커터]
[파이어 볼]
[프리즌 노바]
세 개의 마법이 중첩되어 펼쳐지자 시우를 감싸고 있는 막을 때리면서 사라졌다.
시우는 투명한 막 안에 갇혀 불덩이 속에 싸였다가 얼음이 내리는 서리 안에 갇혔고, 종국에는 막에 튕겨 나온 윈드 커터에 머리카락과 교복 일부가 잘려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거듭된 타격에 부적들이 하나 둘 찢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종국에 작은 파쇄음 함께 막이 부서져 나가자. 시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수십 개의 마법진을 소환해 맹소현과 주작단을 향해 퍼부었다.
퍼퍼퍼퍼펑
수십 개의 파이어 볼과 프리즌 노바 윈드커터가 작렬하며 주작단 일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맹소현과 주작단원들도 쉬지 않고 부적을 흩뿌리기 시작했고, 두 사람 사이엔 마치 폭죽 전쟁이라도 하는 듯 화려한 불꽃이 터져 나왔다.
강형산은 주작단의 피해가 점점 심해질 것을 예상하고는 자하신공마저 끌어올려 일검에 시우를 제압하려 했다.
은은한 보라색의 기가 유형화 되어 상형산 어깨위로 타오르듯 일렁거렸다.
“하앗!”
구궁보에 이어 자하강기로 펼쳐지는 매화검에선 더 이상의 은은한 매화향은 없었다.
태산이 무너지는 것처럼 압도적인 파괴력으로 시우의 사지를 짓이기려 떨어지는 검에 시우는 그저 보기만 할 뿐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챙!
강형산의 검이 시우의 몸에 닿기 직전 두 사람 사이로 끊어질 듯 미미한 검기를 두른 검이 파고들며 강대한 힘의 자하강기를 막아냈다.
강형산은 검기를 두른 검과 마주하는 순간 거대한 태산을 향해 강기를 뿜어 낸 것처럼 허탈함 감을 느껴야 했다.
아무리 강한 힘으로 때려도 부서지지 않는 단단한 금강석을 전력으로 내려친 사람처럼 해소되지 못한 자하강기가 다시금 손을 타고 내부로 흘러들어오는 역류 현상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크윽!”
뒤로 세 걸음이나 물러난 강형산이 고개를 들어 우빈을 바라보았다.
그의 기세에 변함은 없었다. 느껴지는 기의 힘도 미미하고 검에 두른 기도 언제 끊어질지 모르게 겨우 형태만 유지하고 있었다.
“이건 태백정가의 검이 아니구나.”
강형산이 부서질 듯 이를 갈며 말했다.
“운이 좋아 기연을 얻었소.”
“그 검의 이름이 뭐냐?”
“천살지존검!”
사태를 지켜보던 단청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