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4
종로구 청와대로 1번지.
전국에서 가장 높은 땅값을 자랑하는 서울 종로구. 민간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장소가 있다.
대한민국 최고 결정권자가 기거하는 곳. 그렇기에 암살이나 침투에 대비하여 청와대로 접근 가능한 도로와 산책로는 평시에 막혀 있다.
거기에 더불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비행 금지 구역 선포까지 되어 있는 곳에 당당하게 괴조를 날리고 그 위에 우뚝 서 있는 자가 있었다.
기이할 정도로 코가 긴 사내는 은은한 조명이 밝히고 있는 청와대를 내려 보고 있었다.
“이 정도로 대비가 안 되어 있다니. 1세기 전의 일이 교훈이 되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우스운 것인가.”
카가미는 자신의 말에 대답해줄 만한 자가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타국으로의 출정은 오랜만이었다. 특히나 평화의 시대가 오고 더 이상 힘을 쓸 만한 곳이 없어지자 뼛속부터 무투파였던 카가미는 혼란과 전쟁을 간절히도 바라왔다.
그랬기에 이번 출정을 간절히도 바랐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방어 술법은커녕 그 흔한 방어진조차 펼쳐져 있지 않은 청와대를 보며 기가 빠진 느낌이었다.
경호원들 중에는 몇몇 상계의 인간들이 보이지만 과연 그들이 자신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총 오백의 인원 중 오십의 인원만을 따로 선별해 데려왔다.
자신이 타고 있는 작은 괴조의 등에는 오십의 인원이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출정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저들을 다 데려가는 것 자체가 너무 과한 게임이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오오가미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한 그였다.
“가라! 오오가미의 뜻이 지나갈 길을 만들어라.”
“네.”
오십의 인원은 한 사람인 것처럼 동시에 대답하고 괴조 아래로 뛰어내렸다.
쿵! 쿵! 크악! 억!
두꺼운 집무실 문 너머로 불안감을 조성하는 비명과 충격음이 계속 울렸다.
곽동원은 오늘 오기로 한 최시우가 어떤 방식으로 이곳에 들어올지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이 기억났다.
‘설마 정문으로 들어오는 건가?’
미리 상세한 이야기까지 나눴어야 했다는 것을 자책하며 곽동원은 재빨리 무전을 날렸다.
“최시우라는 학생인가? 그렇다면 들여보내라 하지 않았나!”
-치, 칙! 치치칙!
“이봐! 듣고 있어?”
-……닙니다. 상대……
“뭐라고?”
-치칙, 아군이…… 아닙니다. 일본 쪽 인거 같습니다. 치칙.
‘일본이라고?’
곽동원은 온몸에서 피가 쪽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현 상황 자체가 한국과 일본 상계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아 있다고 하지만 다짜고짜 청와대라니? 상계와 상관없는 인간계의 최고 권력자를 건드려서 과연 좋을 일이 뭐가 있던가.
결국 일본은 상계전쟁을 빌미로 한국에 본격적인 압제를 재현할 셈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들의 입장에선 기습과 침입을 통한 최고 권력자를 확보하는 것이 효율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곽동원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니기미 이럴 줄 알았다. 이럴 줄 알았어!’
상계와 정부의 교류가 없는 것 중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를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이런 상황일 것이다.
이미 1세기 전에 한국이 아직 한국이기 전에 똑같은 일이 일어났었다.
그때는 상계와 왕가의 교류가 탄탄했음에도 야토가미의 절대적인 무력에 밀려 수치스러운 일을 당했었다.
그리고 1세기가 지난 후에 똑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때를 대비해 상계에선 태백정가가 대표로 비상 대기조를 만들어 놓았지만 이미 코앞까지 다다른 그들을 생각해 볼 때 과연 이것이 효과적인 비상 대기조인지는 의문이었다.
‘시발!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겠지’
곽동원이 단축번호 0번을 눌러 통화를 시도했다.
통화음이 한번 울리기도 전에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적색 1호. 적색 1호. 넘버원이 위험하다. 상대는 야토가미로 예상된다.”
최대한 간결하게 상황을 설명하자. 상대도 효율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알겠습니다.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는 끊겼다.
이제 문제는 태백정가에서 사람들이 올 때까지 자신과 청와대의 대원들이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문이 덜컥 열리고, 경호처장과 경호원으로 위장한 상계 무인이 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의 손에는 접이식 검이 하나씩 쥐어져 있었다.
“대통령님 괜찮으십니까?”
경호처장의 물음에 김윤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 대체 무슨 일인가?”
“아직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팀장님. 어떻게 할까요?”
경호처장은 곽동원과 안면이 있는 듯 자연스럽게 물었다.
“퇴로 확보는?”
“벌써 놈들이 점거해 버렸습니다.”
“남은 인원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일본 쪽이면 ……야토가미가 확실한가?”
곽동원의 물음에 경호처장이 딱딱하게 답했다.
“……얘기로 들었던 그대로였습니다.”
“제길. 대통령님. 일단 여기서 탈출해야겠습니다.”
“어디로 말인가?”
“일단,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도망치면 더 이상 쫓아오진 않을 겁니다.”
“민간에 피해가 가진 않겠나?”
“상계와 민간은 서로 침범하지 않는다는 불가침 조약이 있습니다. ……그게 잘 지켜지지 않아서 그렇지만. 하지만 그들도 대놓고는 쫓아오지 못할 겁니다.”
“그래, 그렇게 하세.”
곽동원이 김윤성을 업고 경호원이 창문을 열고 의자를 가져다주었다.
그때, 문 틈으로 그어 들어온 작은 지네가 문을 막고 있던 경호처장의 발치로 움직여 빠르게 커지기 시작했다.
“히이이익! 떨어져! 떨어져!”
경호처장의 발을 타고 올라 순식간에 커지기 시작한 지네는 수백 개의 발을 마치 족쇄처럼 경호처장의 몸에 박아 피를 흘리게 하고 그가 검을 휘두를 수 없게 몸을 옥죄었다.
“싫어!!!”
경호처장의 절규가 집무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동안 이미 몸이 커질 대로 커진 지네가 경호처장의 머리를 그대로 씹어 삼켰다.
콰드득, 콰드득, 콰드득.
지네는 순식간에 경호처장의 온몸을 씹어 삼키고 바닥에 핏자국만을 남겼다.
그 끔찍한 광경을 지켜보던 경호원은 애써 검을 치켜세워 지네를 겨누고 있다가 종국엔 참지 못하고 구토하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에에엑.”
지네가 다음 목표를 정하고 다가가려는 찰나 문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긴 붉은 머리에 코가 유달리 긴 장신의 사내가 경호원 하나의 목을 들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 * *
“저 독서실 다녀올게요.”
작은 가방을 메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시우가 말하자 과일을 준비하던 김서영이 쪼르르 나오며 말했다.
“이 시간에 무슨 독서실이야. 좀 쉬어야지.”
“내일 어차피 쉬는 날이고 이제 예비 고3이 아니라 진짜 고3이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웃는 시우를 보며 김서영은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들이 사랑스러웠다.
과외는커녕 학원도 다니지 않고, 매일 독서실에 다니며 교육열이 서울 시내에서 손가락에 꼽힌다는 경쟁률 치열한 중곡 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해냈다.
한 날은 시우의 방을 청소하기 위해 들어갔다가 산처럼 쌓인 문제집들과 박스 가득 채워져 있는 다 쓴 볼펜들을 보며 시우가 얼마나 독하게 공부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아들을 위해 뭐라도 해주고 싶은 김서영의 마음과는 달리 시우는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사이에 부쩍 커버린 것 같았다.
그것이 엄마로선 못내 아쉬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래. 적당히 하고 들어와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면 나중에 힘드니까.”
그런 아들이었기에 아들이 하겠다고 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알겠어요. 먼저 주무세요.”
그렇게 집을 나온 시우는 독서실이 아닌 아파트 옥상으로 향했다.
외부인 출입을 금지하기 위해 자물쇠가 걸려 있었지만, 블링크로 막힌 문을 통과해 들어간 시우는 가방을 열어 곽동원이 준비한 정장을 꺼내 입었다.
“쓸데없는 격식.”
살짝 혀를 차며 옷을 갈아입은 시우는 완드를 휘둘러 워프 마법진을 생성했다.
마법진이 바닥에 완성되고, 미리 파악해둔 좌표로 이동하려는 찰나. 워프 마법진이 불발되며 사라져 버렸다.
“뭐야?”
[워프]
다시금 워프 마법진을 생성한 시우.
그의 발아래 마법진이 생성되었고 빛을 뿜어냈지만 이번에도 산산이 흩어지며 사라져 버렸다.
“뭐지?”
좌표를 파악하기 위해 패밀리어를 보내 알아본 청와대의 주변엔 워프 마법을 막을 만한 기본적인 방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그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이번 대화가 잘 풀린다면 청와대 주변에 방어 마법진을 설치해 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하지만 워프 마법은 목표 좌표의 큰 간섭이 있는 듯 계속 캔슬되는 상황이었다.
“뭔 일이라도 있는 건가?”
귀찮았지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기에 시우는 곧장 아파트 옥상 아래로 몸을 던졌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시우의 몸이 서서히 투명해지고, 그의 등에선 검은 날개가 솟아 나왔다.
“들어가 있어! 오늘은 사냥하러 가는 거 아니니까.”
시우의 핀잔에도 다크 사이트는 어쩐 일인지 더욱 날개를 펼치며 시우를 재촉하는 듯했다.
“피 냄새라도 맡은 거냐?”
고개를 갸웃거리던 시우는 그대로 속도를 내 곧장 청와대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슈우우웅.
커다란 공명음이 시우의 뒤를 쫓았다.
집무실로 들어선 사내는 지내의 머리인지 꼬리인지 알 수 없는 부분을 쓰다듬으며 창문을 넘어가려 곽동원의 등에 업혀 있는 김윤성을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코노야로. 일국의 군주 된 자가 도망이라니. 본 제국에선 어린 아해들도 전쟁에 지면 할복하는 시늉이라도 한다. 이 수치를 모르는 조센징들아!”
쉬이이이익!
사내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곽동원이 넘어서려던 창문 밖에선 커다란 너구리가 몸을 빙그르르르 구르며 곽동원을 향해 날아들었고, 곽동원은 그것을 피하기 위해 다시 집무실 안으로 뛰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콰지직! 펑!
방탄유리로 제작된 창문이 틀 채로 깨지며 파편이 곽동원과 김윤성을 덮쳤다.
너구리 요괴가 굽혔던 몸을 펼치고 제 주인을 찾아가듯 뒤뚱뒤뚱 사내에게 향했고, 갑작스레 난입한 너구리에 정신 못 차리는 무인은 검을 너구리에게로 겨누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뒤뚱거리며 사내에게 향하던 너구리는 자신을 향해 검을 겨누는 사내를 보곤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제자리에서 꼬리를 휙 돌리며 한 바퀴 돌더니 사내에게로 향했고, 영문을 모르던 무인은 갑자기 숨이 턱하고 막히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시작으로 검을 들고 있던 손이 툭 잘려나가며 떨어지고, 발과 무릎, 허리와 목이며 가릴 것 없이 쌓아놓은 블록이 부서지는 것처럼 무너져 내렸다.
투투툭.
무인은 그 흔한 비명 한번 질러 보지 못하고 죽었다.
김윤성은 이 현실감 없는 장면들에 최대한 이성을 잃지 않으려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야토가미가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한국과 전면전이라도 벌이겠다는 것인가!”
곽동원의 입에서 유창한 일본어가 튀어 나왔다.
“오오가미의 뜻을 전하러 왔거늘 일국의 군주라는 자가 이다지도 추한 모습을 보이다니. 감히 오오가미의 뜻을 전달받을 자격조차 없다!”
“저자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일본 상계의 우두머리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거 같습니다.”
“이다지도 과격한 행동이라니 이건 전쟁 선포가 아니고 무엇인가?”
김윤성이 황당한 표정을 감출 수 없이 말했다.
그때 사내의 입에서 유창한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늙고 추한 군주여. 그대는 우리와 전쟁을 할 자격조차 없다.”
“무슨!”
“오오가미는 다시금 동북아시아를 지배하실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그 발판이 되는 것뿐이다.”
“2차 세계 대전의 전범 국가가 다시금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 것인가? 세계가 그것을 허락하겠는가!”
“늙고 추한 데다 어리석고 순진하기까지 하군. 구식 전쟁 따위는 이제 일어나지 않는다. 각국의 상계만이 서로의 힘을 조율할 뿐. 1세기가 지난 시간 동안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그대들에겐 악몽의 역사가 반복될 뿐이다.”
곽동원은 붉은 머리의 사내가 조금만 더 쓸데없는 이야기를 해주길 바라고 또 바랐다.
그나마 태백정가의 무인들이라도 오면 대통령을 피신시킬 수 있는 시간이라도 벌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런 곽동원의 바람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그저 전언만을 전달하란 명령이 있었지만, 이토록 시시한 상대라면 그럴 가치조차 없겠지. 그대의 목을 가지고 오오가미에게 돌아가야겠다.”
사내가 지네와 너구리를 두고 천천히 대통령과 곽동원에게 다가갔다.
곽동원은 접이식 검을 곧추세워 대통령 앞에 섰다.
‘이런 시이이이발!’
그의 머릿속엔 자신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생각이 떠 올랐다. 상계 수준에서 겨우 일류에 턱걸이한 그가 초절정 고수들도 두려워한다는 야토가미를 상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 다만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라면 대통령이 죽기 전에 태백정가의 사람들이 오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죽음을 각오한 곽동원이 자신의 모든 내력을 끌어올리려 할 때였다.
쾅! 콰쾅!
청와대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거대한 진동이 울렸다.
콰콰쾅! 쾅! 펑!
진동음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붉은 머리의 사내는 대통령에게 다가오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쾅!
부서진 문을 통해 날아든 귀검사가 벽에 부딪쳐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이미 숨을 거둔 듯 귀검사는 힘없이 바닥에 너부러졌다.
이윽고 귀검사가 날아든 문을 통해 정장 차림에 흑색의 검을 든 앳된 얼굴의 청년이 들어섰다.
“누구냐, 이 인간 이하의 짓거리를 하는 짐승들의 우두머리는?”
으르렁거리듯 낮은 음성으로 물은 이는 다름 아닌 시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