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3
“잠깐만, 너 8반 김소혜 맞지?”
매점에서 돌아오던 김소혜는 일단의 여학생들이 자신들의 앞을 막아서자 한숨부터 내 쉬었다.
“어, 나 바로 들어가 봐야 하니까 줄 거 있음 빨리 줘.”
소혜가 귀찮다는 듯 손을 내밀자. 여학생 무리의 중간에 선 한 학생이 편지와 초콜릿이 담긴 상자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안에…… 내 전화번호 적었거든. 꼭 전해줘. 언제든 연락하라고.”
“걔 여친 있어. 서울대 다닌대.”
“뭐?!”
소혜가 비아냥거리듯 말하고 가버리자, 선물을 건넨 여학생은 금방이라도 울 듯했다.
이런 귀찮은 일이 반복된 것은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나서부터였다.
체육대회 이후로 몇몇 여학생들이 시우에게 말을 걸거나 다가가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시우는 대화를 나누기는커녕 귀찮은 듯 눈앞에서 이어폰을 낀 채 읽던 책에 집중하기 바빴다.
그런 일들이 몇 번 반복되자 마음의 상처를 입은 여학생들은 다시금 시우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시우가 여학생들의 미움을 받게 되자, 남학생들도 다시금 슬금슬금 시우를 노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사람이 바뀐 것처럼 미친 듯이 공부하던 우빈이 더 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고, 퍼클들도 병원에 입원한 상태라 평화로웠던 교실은 시우라는 공공의 적이 생겨나자마자 우두머리가 없는 무주공산으로 변해버렸다.
8반의 일부 여학생들이 시우를 싫어하자 그 여학생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남학생들이 시우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야, 이 존만아, 조세형 안 나오니까. 학교 다닐 만하지?”
시우가 왕따 당할 때 몇 번 시우를 때려봤던 경험이 있는 김민수가 나섰다.
김민수가 좋아하던 여학생이 시우에게 말을 걸다 무시당하고 그 분노를 김민수 앞에서 풀어내자 김민수가 곧장 시우에게 다가갔다.
“야! 사람이 말하면 들어!”
짝! 짝!
김민수가 연속으로 시우의 뺨을 때리자 마침 반에 들어온 소혜가 버럭 소리 질렀다.
“뭐 하는 거야! 시우 가만히 내버려 둬!”
“반장 넌 짜져 있어. 어디 거렁뱅이 왕따 새끼가 사람 말을 무시해!”
다시금 시우의 뺨에 김민수의 손바닥이 작렬하려 할 때. 시우가 번쩍 일어나며 민수의 목을 잡아챘다.
“컥! 컥!”
갑자기 숨이 막힌 김민수가 시우의 손을 양팔로 마구 내리쳐 봤지만 시우의 손은 떨어질 줄 몰랐다.
이윽고 시우의 손이 서서히 하늘로 치솟아 오르자 김민수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달아올랐다.
한 손으로 사람을 들어 올린 것도 놀라운 데 더 놀라운 것은 김민수의 얼굴이 빨갛다 못해 시퍼렇게 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꺼억! 컥! 크어어억!”
바닥에서 발이 떨어지자 김민수는 마구 발광을 해 보았지만 시우의 손은 마치 단단한 바위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뭍에 나온 미꾸라지처럼 파닥거리던 김민수가 서서히 힘이 빠졌는지 물 먹은 걸레처럼 축 늘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영화 속 시체들을 연상시킨 여학생들이 소리를 질렀다.
“꺄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시우의 손이 민수는 바닥에 쓰러졌고, 시우는 쓰러진 민수의 머리를 두어 번 밟아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다.
“히이이이이이익!”
부족한 산소를 빨아들이기 위해 김민수는 필사적으로 숨을 쉬었다. 그리고 순간적인 과호흡과 혈류의 변화로 인해 구토가 올라왔고, 필사적으로 숨을 쉬는 것과 구토를 해야 하는 김민수는 처참한 꼴을 보이며 바닥에 구토를 내뱉었다.
“커헉 커헉 커헉!”
필사적으로 숨을 쉬고 있는 김민수를 향해 시우가 차갑게 이야기했다.
“내가 힘이 없어서 맞고 있었던 게 아니야. 네 말대로 집에 돈이 없어서 돈 좀 벌려고 그 짓을 감내했던 거지. 대학 등록금까지 다 준비한 내가 너 같은 거한테 계속 맞아야겠니?”
김민수가 정신이 없어 보이자. 시우의 손바닥이 김민수의 뺨을 후려쳤다.
찰싹!
살같이 뜯기는 고통에 정신이 번쩍 든 김민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 아니, 아니야. 미, 미안해.”
“바닥 깨끗이 닦아라. 수업 시간에 냄새나면 또 구토할 줄 알아.”
김민수는 자신의 옷에 튄 토사물을 씻어 내기도 전에 바닥 튄 토사물부터 다 치워야 했다.
그 일이 있은 뒤 시우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전에 시우를 괴롭혔던 남학생들은 혹시나 과거의 일로 자신에게 복수하지 않을까 시우를 피해 다니기도 했다.
당최 종잡을 수 없는 매력을 뽐내는 시우의 모습에 더욱 깊이 빠져든 학생들도 많았지만 더 이상 시우에게 접근하는 여학생은 없었다.
그렇게 다시금 자신이 원하는 조용한 생활로 돌아갈 줄 알았던 시우는 다시 한번 학교 전체를 놀라게 만들었다.
전교 1등.
어쩐 일인지 중간고사에서 전교 석차를 차지했던 학생들 대부분의 성적이 뚝 떨어지자 학교 내에서 돌던 시험지 유출 소문은 확신이 되었지만 시우의 성적은 치솟아 올라 전교 1등을 차지했다.
이 일로 시우는 다시금 여학생들 사이에 선망의 존재로 떠올랐다. 심지어 잔인하게 김민수를 때려눕혔던 일까지 미화되어 시우는 부당한 폭력에도 굴하지 않는 남자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학생들과의 대화는 일절 없었다.
그나마 시우와 평범하게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소혜뿐이었다.
처음엔 시우와 소혜가 사귀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지만 소혜의 적극적인 부정으로 그 소문은 금세 사그라졌고, 대신에 소혜는 여학생들의 메신저가 되어 편지나 선물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거 어떤 여자애가 너 주래. 연락 기다리겠다고.”
이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두꺼운 영어 원서 책을 가져다가 읽고 있는 시우의 책상에 던지듯 초콜릿 상자와 쪽지를 내려놨다.
시우는 예의 그 무감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됐어. 필요 없다 그래.”
“몰라. 네가 전화해서 얘기하던지.”
시우는 두꺼운 책을 덮고, 받은 초콜릿 상자를 열어 초콜릿을 하나 먹고는 소혜에게 권했다.
“맛있네. 먹어봐.”
“됐거든!”
소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분노를 시우에게 쏟아 냈지만, 시우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어쩐지 소혜는 그런 시우를 볼 때마다 더 약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소혜가 시우를 어떻게 혼내 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그때.
허락받지 않은 손이 시우와 소혜 사이를 가르며 초콜릿 상자에 손을 댔다.
“웬 초콜릿이야?”
소혜는 불청객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 외쳤다.
“정우빈!”
“앗! 깜짝이야. 왜? 이거 먹으면 안 돼?”
우빈은 초콜릿을 입에 가져가려다가 멈칫하며 물었고, 소혜는 그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애써 참으며 말했다.
“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며칠째 학교도 안 나오고!”
“그냥 정리 좀 하느라고. 잘 지냈어? 반장?”
바보 같은 웃음을 짓는 우빈이었다.
학교로 돌아온 우빈은 그대로였다.
더 이상 미친 듯이 공부도 하지 않고, 수업 시간엔 곯아떨어져 잠자기 일쑤였다.
성격과 행동도 예전의 그 우빈으로 돌아왔다.
다만 그 예의 촐싹맞음은 사라져서 소혜로선 그것이 좋은 것인지 안 좋은 것인지 잘 판단되지 않았다.
“……오늘은 떡볶이 먹으러 가자고 안 하네?”
우빈이 하굣길에도 입을 떼지 않자. 소혜가 궁금함을 참지 못해 먼저 물었다.
“어? 반장 우리랑 떡볶이 먹으러 가고 싶어?
“뭐? 아니거든! 나 학원가야 하거든!”
“에이, 그렇구나. 떡볶이 먹으러 가자 하고 싶지만, 요즘은 나도 바빠서.”
“뭐 한다고 그렇게 바쁜데? 보니까 다시 공부도 안 하더만.”
“……뭐, 체육 특기생으로 대학 가려면 다시 몸 만들어야지?”
우빈과 소혜의 대화에 시우도 끼어들었다.
“나도 바빠 오늘 누굴 좀 만나기로 했거든.”
“누구? 여자친구? 넌 선생님 얘기도 못 들었어? 우리 이제 고3이야. 한참 집중해야 할 때 연애에 정신 쏙 빼놓고 대학 갈 수 있겠어?”
소혜가 따발총처럼 말을 뱉어내자 우빈과 시우가 놀란 표정으로 말없이 소혜를 바라봤다.
“……뭐, 뭐?! 그냥 난 걱정되어 한 얘기야!”
“반장, 이번에 시우 전교 1등 했다며?”
“여자친구 만나러 가는 거 아닌데? 여자친구 요즘 시험 기간이라 바빠.”
우빈과 시우의 말에 소혜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 아님 말고! 어쨌든 난 간다!”
소혜는 재빨리 자신을 태우러 온 차를 찾아 뛰어갔다.
“오늘 그분 만나러 가는 거지?”
“너도 갈래?”
“……친구 만나러 가냐?”
“뭐 그렇게 어려운 자리도 아니잖아?”
“……됐다. 난 얼른 가서 수련하련다.”
* * *
밤늦은 시각.
김윤성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오랜만에 얻은 여유를 즐기며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
대통령이 된 이후로 제대로 마시지도 못했던 탓일까. 겨우 한 잔을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몸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평소의 이 시간대라면 한참 참모진들과 중차대한 사건을 두고 나라를 움직이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하나하나 가벼운 사안이 없었고, 쉬운 사안들이 없다.
자신의 결정이 몰고 오는 파장을 예상하고, 그것의 피해를 최대한 줄여야 했다.
그랬기에 대통령이 된 자신에게 24시간은 너무도 부족했다.
그럼에도 자신은 휴가까지 내고 참모진과 가족들을 갖가지 명목으로 청와대에서 내보낸 후 한 존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사람인가?”
“어떤 부분에서 말씀하시는 겁니까?”
김윤성의 반대편엔 중년의 사내가 앉아있었다.
“그냥…… 자네와는 달리 마법을 쓴다고 했지?”
“……노파심에서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혹시라도 마술사를 대하듯 ‘간단한 마법을 보여 달라’는 둥에 말은 하시면 안 됩니다.”
“자네 아직도 그 일로 꽁해 있나?”
김윤성은 곽동원의 이야기를 듣다 믿을 수 없다며 무공을 보여 달라고 했고, 곽동원은 김윤성이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서커스 광대처럼 장풍과 검기 등을 보여주어야 했다.
특히나 초상비를 보여 달라며 볼펜 꽂이에 꽂힌 볼펜 위에 섰던 것은 곽동원으로 하여금 초상비를 펼칠 때마다 트라우마로 고생하게 만들었다.
“무인에게 재주를 보여 달라고 하는 것은 정치인에게 얼마나 정직한지 보여 달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치인의 정직함은 흥미롭지 않지만 자네의 재주는 꽤 흥미롭지 않나.”
김윤성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어떤 사람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상계의 인간들은 그저 보이는 그대로 대하시면 안 됩니다.”
“상계. 상계라……. 그건 자신들이 더 높은 곳에 있다는 뜻인가?”
“……언제부터 그렇게 불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자네를 질책하는 건 아니네. 다만 신기할 뿐이지. 내가 만나는 이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생각하는데. 그 위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또 한 번 높낮이가 생겨난다는 것이 재밌어서 그러네. 결국 인간은 인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곽동원이 대답하지 못하자, 김윤성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피식 웃음을 내뱉었다.
삐이이이이이잉!
그때, 집무실의 불이 꺼지며 붉은빛이 켜졌다. 그리고 동시에 울리는 비상벨.
“이건 무슨 소린가?”
취임한 지 벌써 3년이나 지났지만 처음 듣는 비상벨 소리에 김윤성이 물었다.
그리고 비상벨을 들은 곽동원 또한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대통령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곽동원은 즉시 김윤성을 이끌어 단단한 콘크리트 벽면을 등졌고, 동시에 무전을 날렸다.
“상황 보고 바람. 무슨 일인가?”
-적색 1호, 적색 1호! 적의 습격입니다.
“적이라니!”
-그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으아악!
비명 소리와 함께 무전기에선 콰지직 소리가 울렸다.
김윤성은 딱딱해진 표정으로 곽동원을 바라보았지만, 곽동원의 표정 또한 김윤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