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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니하 대륙에서 시우의 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인체 실험을 해대던 마법사가 있었다. 몇 년간의 지속된 인체 실험은 시우의 본래 모습을 잃어버릴 정도로 가혹했고,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다른 세계에 떨어졌다는 절망감. 이 세계의 인간들과는 다르다는 이질감. 어떤 것에도 보호받을 수 없다는 공포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시우 스스로 인생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인생을 포기할 때마다 이 사이코 마법사는 자신의 마법으로 시우의 자살을 막고 그를 다시 되살렸다.
스스로의 인생을 포기한다 해도 힘이 없는 자신은 그것마저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에 시우는 완전히 돌아 버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사람이 되었다.
시우가 처음 선택한 것은 지구에서 선택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흑마법.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마법사 몰래 흑마법을 부리게 되고, 영혼의 일부를 거래하여 강력한 힘을 얻은 다음엔 자신을 실험하던 마법사를 최대한 잔인하게 죽여버렸다.
그렇게 실험실을 뛰쳐나와 대륙을 떠돌았지만 시우가 머물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지구와는 다르게 흑마법사를 병균을 옮기는 쥐보다도 혐오스럽게 생각하고, 이지를 상실하고 인간을 마구잡이로 잡아먹는 몬스터보다 위험한 존재로 여기는 알게니하 대륙은 정기적인 점검과 관찰로 흑마법사들을 구별해 냈고 그들을 사냥했다.
사이코 마법사의 부당한 인체 실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자구책이었지만 그들의 입장에선 알게니하에서 볼 수 없는 돌연변이 흑마법사일 뿐이었다.
그 때문에 시우는 인간을 피해 몬스터들의 숲으로 도망쳐 살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던 몬스터들을 피해 숨고 도망쳐 살기 바빴지만 사이코 마법사의 유산(?)을 통해 막대한 양의 마법들을 공부하고 스스로 익혀 힘을 단련하고 몬스터들을 사냥해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개척해 나갔다.
그 생사를 넘나드는 고행 끝에 인간은 들어 올 수 없는 몬스터의 숲 깊숙한 곳에 자신만의 마탑을 만들게 되었다.
방어 마법과 방범 마법을 이용해 외부로부터 완벽히 안전한 주거지를 만들고 잠들 때마다 오크가 자신의 머리를 물어뜯는 공포로부터 벗어난 안전한 잠자리를 통해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중 안전의 욕구까지 모두 채웠다.
하지만 시우는 엄연히 21세기 첨단 과학과 자원이 넘치던 세대의 인물이었다.
아무리 퇴보하였다 해도 인간 세상에서 생산되는 물품들이 많이 필요했다.
몬스터 사냥으로 얻는 부산물들은 가격이 좋았지만, 몬스터를 너무 많이 잡으면 자신의 마탑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았고, 그건 몬스터가 시우의 마탑을 돌아다니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위험한 일이었다.
그 대안으로 생각한 것이 바로 ‘아티팩트’였다.
후에 만들게 되는 통신구 같은 진짜 아티팩트를 만들 실력은 없었지만, 시우에겐 알게니하 대륙에 없는 지구의 개념 등이 존재했다.
벌레를 쫓는 나무판이라던가, 쥐를 내쫓는 고양이상, 가벼운 도끼와 깨끗한 물을 만들어 주는 물병 등.
정식 마법사들이라면 수치스럽다며 절대 만들지 않을 물건을 만들었다.
재료비도 거의 들지 않았다.
작은 나무판과 거기에 박혀 들어갈 작은 하급 마정석으로도 꽤 괜찮은 성능을 내었고, 마정석의 마나가 다 떨어지면 사람들은 새 제품을 사면 그만이었다.
사람들은 시우가 몰래 내다 파는 이 물건을 ‘하층민들의 아티팩트’로 불렀고, 시우는 이 ‘하층민들의 아티팩트’로 알게니하 대륙의 생활을 연명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이건 혁명이지.”
시우가 있는 곳은 연구소 지하.
땅속을 20층 건물 높이로 파고 들어간 이곳은 시우의 개인 수련장 겸 연구소와 주거 공간이었다.
커다란 벽면 전체엔 내부의 공기를 계속해서 신선하게 여과시켜주는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고, 천장 전체에선 햇빛을 직접 받을 수 있는 마법 패널이 설치되어 있었다. 각 방의 온도는 인간이 가장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냉·난방 마법이 부여된 기기들이 조절하고 있었다.
알게니하 대륙의 마법과 지구의 과학공학이 절묘하게 조합된 이 공간은 시우가 만든 그 어떤 공간보다 완벽에 가까웠다.
“이것으로 완성 되겠지.”
시우의 눈앞에는 사람 크기만한 회색의 원형 구체가 바닥에서 벗어나 붕 떠있었다.
원형 구체이긴 하지만 그것을 이루는 것은 복잡한 체인 형태의 마법 줄이었다.
중심부에 위치한 드래곤 하트를 중심으로 복잡한 마법이 새겨진 줄들이 전자기기의 회로를 만들 듯 층층이 쌓여 나왔다.
이 구체는 마법학의 정점이라 불리는 ‘에고’ 마법과 시우가 직접 알고리즘을 공부하여 만들어낸 현대 과학의 신경망을 조합한 산물인 ‘초인공지능’이었다.
시우가 마나를 불어 넣어 구동을 시작하자. 바닥에서 한 뼘 정도 떨어져 있던 구체가 내부의 마법진들을 밝게 발현하며 서서히 떠올랐다.
동시에 지하 가장 깊숙한 곳에 준비된 포털업체 수준의 서버와 개인용 PC 1만 대 수준의 슈퍼컴퓨터가 ‘초인공지능’에 접속하기 시작했다.
서버와 컴퓨터에 접속한 구체는 곧이어 시우의 연구소 전체와 접촉하였고 동시에 시우가 설치한 연구소 근처 모든 마법진과 연결되었다.
맹렬한 회전과 함께 빛을 발하던 구체가 서서히 멈추고, 건물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음성이 흘러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마스터.]
갑작스런 음성에도 시우는 예상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이야. 빌리언트.”
[……마스터께선 상당히 다른 모습이시군요.]
“이 모습은 처음이지?”
[마스터가 말씀하신 ‘지구’란 곳에서의 모습이십니까?]
빌리언트는 알게니하 대륙에서 시우가 처음 만든 에고 소드였다.
몬스터 숲에서 만들어낸 첫 시도 작이었고, 인간과 떨어져 살며 십 년 가까이 대화 상대가 없었던 시우는 자신이 만들어낸 에고 소드와 인간 이상의 교류를 했다.
하지만 대화 외엔 특별한 기능은 없었기에 세상으로 나와 대륙을 정벌하면서 사용할 기회가 점점 줄었고, 수많은 동료와 부하들을 얻으면서 빌리언트는 자연스레 시우의 아공간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 여기가 어딘지 알겠어?”
[저와 연결된 ‘기기’를 통해 ‘인터넷’이란 것에 접속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곳입니다.]
“내가 설명하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
[그렇군요. 알게니하 대륙은 그럼 어떻게 된 겁니까?]
“그건 나도 몰라. 알아서 잘 살고 있겠지.”
[그렇군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예전과 다르게 이젠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에고 소드였던 빌리언트는 시우와 수많은 대화를 하면서 시우의 외로움을 채워주는 상대였지만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낀다고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빅데이터에 접속하고 정보를 처리할 신경망을 가졌으며 그것을 조작할 인격을 갖추고 연구소 전체와 인터넷에 연결되어 얼마든지 시우를 도울 수 있게 되었다.
빌리언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는 시우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일단은 야토가미를 상대할 마법 무구를 만들어야 해.”
[야토가미는 어떤 존재 입니까?]
“아, 그걸 까먹었군.”
시우는 아공간에서 야구공만한 수정구를 꺼내고 완드로 미간을 잠시 문지른 뒤 떼어내었다.
완드 위엔 입체 형태의 마법진이 생성되었고 시우는 입체 형태의 마법진을 수정구 안에 저장했다.
그리곤 구체 한쪽에 놓인 구멍을 통해 수정구를 집어넣었다.
잠시 뒤 빌리언트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놀라운 힘입니다. 알게니하 대륙에선 한 번도 본 적 없는 존재군요.]
“그렇지? 이것들을 상대할 마법 무구를 만들 거야.”
[지금 보여주신 개념대로 만들면 될까요?]
“개량의 여지가 있어?”
[조금 지구 스타일로 만들면 좋을 것 같군요. 조금 더 경량화하고, 강도는 더 단단하게]
“지금 지어지고 있는 공업소에서 만들 거야 네가 보기엔 사람 없이 전 자동화가 가능하겠어?”
[지구의 공학을 이용하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의 수준의 공장으로 만들까요? 타이탄 제조까지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건 너무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잖아. 일단은 알머스트 제조가 가능한 수준으로 맞춰봐. 내 계좌는 연결해 놨어. 부족한 돈은 나한테 얘기하고.”
[지구는 편리하군요. 인터넷이란 것이 있어서. 더 필요하신 일은 없으십니까?]
“야토가미와 일전을 피할 수 없어. 이길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예측할 수 있어?”
[…….]
구체는 종전 보다 조금 더 밝은 빛을 내며 부유했다.
수초의 시간이 흐른 뒤 빌리언트는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한국 상계의 전멸 가능성이 83%입니다. 오차 범위 ±15%입니다.]
“내가 참전한다 해도?”
[마스터의 존재를 제외한다면 전멸 가능성이 98.12%입니다. 오차 범위 ±3%입니다.]
“예측 근거는?”
[일본내무부 시스템의 정보와 CIRO의 접근 할 수 없는 정보, 일본의 종교구조, 전국에 존재하는 신사의 자금 흐름과 그 자금이 모이는 야토 시의 규모를 바탕으로 한 결과입니다.]
“야토 시의 규모는 왜 포함되어 있지?”
[야토 시는 한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존재하는 마을로 판단됩니다. 또한 마을을 인원들은 모두 서로 연결성을 가진 내부인들 만으로 존재합니다.]
빌리언트는 영상 마법을 통해 지도를 인터넷에 표기된 정보들을 통해 야토 시의 모습을 그려내고, 야토시와 조금 떨어진 산속에 존재하는 황거의 모습을 그려냈다.
[전쟁보다는 외교적 방법을 추천 드립니다]
“이렇게 까지 힘의 차이가 있다면 그건 불가능해. 그리고 내가 그들을 화나게 만들었거든.”
[방법이 있으십니까?]
“생각해 둔 게 있어. 혹시 중국 상계에 대한 정보도 있나?”
빌리언트는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의문의 흐릿한 영상들을 허공에 띄우기 시작했다.
영상들에는 달려드는 차를 피해 순간이동을 하듯 사라지는 사람, 싸우는 와중에 한 손으로 상대를 날려 버리고 도망치는 사람, 건물 위에서 떨어지는 자재에 깔렸지만 잠시 뒤 자재들을 치우고 유유히 현장을 떠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상이 선명하지 않아 진실인지 조작인지 아니면 단순한 오류에 의해 만들어진 영상인지는 판별할 수 없었다.
[그들의 존재로 추정되는 인원들은 있지만, 그 외에 규모나 크기를 예측할 정보가 없습니다.]
“일단은 공업소 완성과 무기를 만드는 데 최대한 시간을 단축시키도록 해.”
[알겠습니다. 잠시 뒤 세아 님과 미팅을 가지기로 한 시간입니다.]
“외부에 있을 때 너와 소통하는 방법은 없나?”
[마스터님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거는 방법이 있습니다. 더 진보된 방식을 원하시면 다른 형식의 단말기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빌리언트가 새로운 형식의 단말기기 설계도를 보여주자 시우가 유심히 설계도를 살펴보았다.
“아직은 모르는 제조 불가한 부품들이 너무 많은데?”
[세계 각지에 주문 제작 할 수 있습니다. 주문할까요?]
“그래. 그렇게 진행해.”
[예스 마스터.]
빌리언트는 그렇게 말하고 발현하던 빛의 조도를 서서히 낮췄다.
* * *
태백정가의 외곽 별관.
우빈은 자신의 짐을 챙기며 그 동안 자신이 기거했던 공간을 바라봤다.
안 되는 공부를 위해 무던히도 스스로를 자학하고 괴롭혔던 나날들.
지금 자신의 선택이 끈질긴 미련 때문인지 새로운 삶을 위한 개척인지 우빈 자신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의 선택에 후회를 남기기 싫었기에 우빈은 이 별관을 나서기로 하였다.
검을 티 나지 않게 천으로 돌돌 감고, 어깨에 메고 밖으로 나갔다.
태백전 앞을 지날 때쯤 남궁혜자와 정형진이 우빈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결정한 것이냐?”
남궁혜자의 물음에 우빈이 작게 답했다.
“네.”
“……꼭 가려 하느냐? 넌 무공이 없어도 태백정가의 사람이다. 무공을 익히지 않아도 태백 그룹을 운영하는 것도 태백정가에 꼭 필요한 일이다.”
“증조할머님. 전…… 너무 쉽게 포기한 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시우의 말대로 외공이라도 익히거나 어렵더라도 다른 힘을 키울 방법이 전혀 없었던 게 아닌데도……. 너무 금방 포기했었고, 그 시간들이 너무 후회됩니다.”
“왜 그렇게 힘에 목메느냐?”
“백면궁과의 일전에서 제 힘이 무력한 게 얼마나 절망스런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전 어떤 일이 있어도 제 손으로 제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습니다.”
우빈의 말에 남궁혜자가 슬쩍 고개를 돌려 정형진을 바라보았다.
“또 다시 절망에 빠진다면 또 포기할 것이냐?”
정형진은 우빈을 질책하듯 물었다.
“……아니요.”
“원하던 힘을 다시 얻을 수 없다 해도 포기하지 않을 자신 있느냐고 묻는 중이다.”
우빈은 잠시 생각하듯 고개를 숙였다가 정형진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처음 무공을 배울 때 제가 내공이 모이지 않아 힘들어하자 아버지께서 이렇게 얘기하셨습니다. ‘내공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매일 매일 스스로를 단련하고 정진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내공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진정한 무인이 된 것이다’라고요. 그 말을 너무 오랜만에 기억해 냈습니다.”
정형진은 자신이 기억도 나지 않는 아득한 오래전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 필사적으로 참아 내었다.
“전 죽을 때까지 무인으로 살고 싶습니다.”
우빈의 말에 정형진은 끝내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남궁혜자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좋다. 가거라. 네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해 보거라.”
남궁혜자의 말에 우빈은 두 사람에게 절을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태백정가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