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
시우를 치기 위해 대기하던 한라검문과 해도문은 각문의 문주가 사라진 후, 혼란에 빠져있었다.
“그러니까! 갑자기 사라졌다니까!”
“문주님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이동한 게 아닙니다. 그냥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정신없이 각자의 문에 전화를 걸어 현 상황을 설명해 보았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전화 상대방은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을 믿지 못하고, ‘제대로 본 것 맞냐?’ ‘약 먹었냐?’ 등등의 질문만 해댈 뿐이었다.
그런 의미 없는 시간이 한참이나 지난 후에.
촤아아악!
공간을 찢으며 엄청난 양의 핏물과 함께 한종수와 장만재가 중상을 입은 채 나타났다.
“문주님!”
“문주님!”
두 개의 문파의 문도들은 번개같이 다가가 문주들의 상태를 살폈다.
그들의 눈에도 문주들의 상태는 결코 양호하지 않았다.
허공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한라검문과 해도문의 문도들이 모조리 검을 뽑고 살기를 뿌렸다.
창! 창!
“네놈이 문주님을 이렇게 만든 것이냐!”
“감히 이따위 짓을 하고도 상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냐!”
세아를 한 손에 안은 시우가 천천히 바닥에 내려앉았다.
“시작은 그대들이 먼저 했지?”
시우의 말에 해도문의 대표로 보이는 이 하나가 나서며 말했다.
“갈! 감히 문주님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냐!”
“푸훕!”
시우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웃음은 거기에 멈추지 않은 채 모든 이들이 정적에 잠길 만큼 길게 이어졌다.
“휴우. 그래. 네놈들의 뻔뻔함은 알겠다. 그래서 어찌하겠다는 것이냐? 나랑 붙어 보겠다는 것이냐?”
시우가 피어를 잔뜩 섞어 이야기하자 그에 압도된 해도문과 한라검문의 문도들이 벙어리가 되었다.
“!!…….”
“너희들의 소중한 문주를 빨리 진료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단전이 부서지는 바람에 너희의 생각보다 더 빨리 죽을 수도 있다.”
“!!!”
문도들이 문주들의 내력을 살피곤 대경실색하여 외쳤다.
“지금 당장 옮겨야 합니다.”
“이대로라면 문주님께서…….”
시우 앞에서 검을 겨누던 무인들이 어찌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하고 있을 때.
시우가 입을 열었다.
“복수는 다음에 해도 늦지 않지만, 지금 늦으면 문주들의 목숨을 보존하기 힘들 것이다. 그만 가라.”
시우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문도들이 문주를 챙겨 장내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긴장이 풀린 세아가 겨우 한숨을 돌리며 마법으로 사방에 흩어진 핏물을 지우고 있는 시우에게로 다가갔다.
“시우 님, 왜 저들을 놔주신 거죠?”
“관주는 내가 살인귀라도 되길 바라나?”
세아는 고개를 저었다.
처음 한라검문과 해도문이 그들 앞에 나타났을 때만 해도 세아는 이곳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한종수와 장만재를 압도하는 수준을 넘어 애들과 장난하는 듯한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환희와 동시에 그의 압도적인 파괴력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만쇄진 밖으로 나온 수십 명의 무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조차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의 무위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며 기대하고 있었던 찰나였다.
“그건 아닙니다만, 시우 님께서 후환거리를 남겨두신 게 아닌가 걱정이 되어 그렇습니다. 한번 기습을 했던 자들이 두 번째와 세 번째엔 그러지 않을 거라 생각되지 않아요.”
“일부러 살려 둔 거야. 내 생각에 저들은 쓸모가 많을 것 같거든.”
“저들과 협력이라도 하실 생각이신가요?”
“아니, 그럴 리가. 하지만 도움이 될 방법은 있지.”
“그게 뭔가요?”
“첫째, 망가진 단전을 어떻게 고칠 수 있는가?”
“아!”
시우의 말에 세아는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깜짝 놀랐다.
방금까지 태백정가의 우빈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다. 망가진 단전은 시우의 힘으로 고칠 수 없다는 이야기. 그것에 대해서 슬퍼하고 걱정했던 참이었다.
그제야 세아는 시우가 일부러 문주들의 단전을 부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만약 단전을 고칠 방법이 있다면 중국과 관계가 깊은 한라검문과 해도문의 문주들이 망가진 단전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돈과 무력 그리고 연줄까지 가지고 있는 그들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단전을 고치고 무력을 되찾으려 할 것이 분명했다.
부자들이 중병에 걸려도 가난한 자들보다 생존률이 높은 이유와 같았다.
“두 번째는, 저들을 야토가미와 싸우도록 만들거야.”
“어떻게요?”
단전을 부순 이유를 겨우 이해한 세아는 그들이 야토가미와 어떻게 싸우게 만들지에 대해선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시우 또한 굳이 이야기할 생각은 없었는지 싱긋 웃을 뿐이었다.
* * *
혹시나 옷에 핏물이 묻어 있지 않을까, 몇 번이나 마법으로 옷과 몸의 오염물을 씻은 시우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벌써 퇴근하실 시간인가?’
좁은 집안의 불은 모두 켜져 있었고, 주방에선 맛있는 음식 냄새가 풍겼다.
“아들! 어디 갔다 이제 와!”
김서영이 앞치마를 두르고 시우에게 추궁하듯 물었다.
“아…… 스터디를 잠깐 하고 왔어요.”
“그래? 얼른 옷 갈아입고 오렴. 저녁 먹자.”
평소보다 훨씬 높은 엄마의 하이텐션에 영문을 알 수 없는 눈으로 민서를 바라봤다.
민서 또한 웃음을 참을 수 없는지 씰룩거리는 입술로 답했다.
“아빠 스카웃 되셨대!”
“스카웃?”
“응! 그것도 엄청 탄탄하고 복지 좋은 중견기업이라고 하던데? 그쵸 아빠!”
소파에 앉아있던 최창호도 짐짓 아닌 척은 하지만 입가의 미소가 계속 어려있었다.
“그래, 이 아빠가 일하던 업계에선 꽤 알아주는 회사란다.”
요리하던 서영이 결국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예전에 너희 아빠가 헤드헌터에게 이력서를 보냈는데. 글쎄 이 바보 같은 헤드헌터가 너희 아빠 서류를 잃어버렸다가 뒤늦게 전달했다지 뭐니! 그리고 회사에선 너희 아빠 이력서를 보자마자 바로 전화했대. 혹시 다른 곳에 갔을까 봐. 오호호호호.”
서영이 웃는 모습을 보며, 시우도 함께 따라 웃었다.
‘관주가 말한 깜짝 선물이란 게 이거였나?’
세아와 헤어지기 직전 세아는 자신이 선물을 준비했다는 소리만 하고 가버렸다. 실체 없는 선물에 별 기대 하지 않았던 시우는 좋아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세아가 신경을 많이 썼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럼, 앞으로 치킨 집은 어떻게 해야 하죠? 어머니 혼자 하시긴 힘들잖아요.”
“그것도 팔기로 했단다. 사실 전부터 팔라는 이야기는 있었는데 이제 겨우 자리 잡혀가는 가게를 팔 수도 없고 관두면 할 것도 없어서 계속 거절했더니 그쪽에서 권리금을 잔뜩 올려 줬지 뭐니.”
아마도 세아가 했으리라. 시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세아는 시우와 함께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상계와 미화관에서 나온 수익의 일부를 시우에게 주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달리 쓸 곳도 없었고, 세아가 챙기지 않아도 돈은 차고 넘쳤기에 굳이 받으려 하지 않았지만 세아는 일부러 시우의 통장을 만들고 매달 그 통장으로 돈을 집어넣었다.
이렇게 세아는 여러 방면으로 항상 시우를 챙겼다.
“잘됐네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시우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엄마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니야. 그동안 너희들이 삐뚤지 않고 잘 자라주어서 다 그 덕분이야.”
“엄마 왜 갑자기 울어.”
아빠의 퇴직과 첫 사업의 실패로 가장 맘고생을 많이 했던 건 엄마인 서영일 것이다.
장성해가는 자식들의 뒷바라지는커녕 경제적으로 휘청대는 가정상황 때문에 자신도 중심을 잡기 어려웠건만, 그 어려운 시절 시우는 한 차례의 흔들림도 없이 중심을 단단하게 잡고 있었다.
“시우야 고생 많았다.”
시우가 돈을 벌거나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항상 차분한 모습으로 퇴근한 자신들을 위해 밥을 차려 놓고, 학교에서 힘든 일이 많았음에도 흔들림 없이 공부하고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자식은 부모에게 엄청난 힘이 되어 주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더 할 수 있다. 시우의 부모는 시우를 보며 매일 그렇게 생각했다.
자식이 부모에게 의지가 되어 준다는 것은 이런 것일 거라고 서영은 생각했다.
시우를 안아주는 엄마 서영의 품은 따뜻했다. 이제는 다 커서 부끄러움이 많을 나이지만 시우는 이런 부모와의 스킨십을 절대 거절하지 않았다. 가족의 소중함이란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지난 생의 외로움으로 뼈저리게 느꼈었다.
“엄마 나는! 나도 고생 많았잖아!”
민서가 애교를 떨며 엄마와 시우 사이에 들어오자 온 가족이 웃음을 터트렸다.
시우는 활짝 웃는 가족들의 얼굴 면면을 보며 다짐했다.
이 행복에 조금의 오물이라도 튀기려 하는 놈들이 있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만약 세상의 멸망을 댓가로 한다 할지라도 주저하지 않겠다고 조용히 다짐했다.
* * *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인 김윤성은 무거운 눈꺼풀을 껌벅거리며 피로감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그럼 일본이 동북아 패권을 놓고 다시금 전쟁을 벌이겠다는 이야긴가?”
근래에 들어 일본의 도발이 잦아 졌다.
독도 영유권 주장이야 예전부터 이어져 온 것이었고, 위안부 부정이나 징용 부정은 이제 너무 자주 반복되어 피해자인 한국 국민들도 그들의 뻔뻔한 행태에 무덤덤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자국 어선을 구출하기 위해 출동한 해경과 해군에게 초계기를 통한 위협 비행등의 행위는 사실 이해 불가할 수준의 도발이라고 느껴졌다.
이런 무책임한 도발에 각 외교 전문가들과 군사 전문가들은 서로 다른 주장을 내놓으며 의견의 혼란을 빚었다.
그러던 중에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던 것.
“본격적인 전쟁까진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현대 사회니까요. 하지만 만약 일본에 적대하는, 경계하는 의견을 가진 주요 인물들이 모두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는 곧 100년 전의 악몽을 다시금 되풀이 하는 겁니다.”
“…….”
처음 대통령이 되었을 때, 전임 대통령은 자신을 밀실로 데려가 이 눈앞의 중년 사내를 소개했다.
국정원의 ‘초자연현상 연구팀’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팀을 운용하고 있는 이 자는 언제 어느 때나 대통령과의 특별 면담권을 가진다고 하였다.
처음 그 이야기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비분강개한 김윤성은 곧이어 그 허투루 보이는 자가 보이는 모습에 넋을 잃었다.
준비해 놓은 강철 파이프를 손쉽게 자르고 벽을 타고 오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상계의 역사에 대해 몇 시간이나 설명을 해 주었고, 김윤성도 몇 시간이나 계속 질문을 하였다.
그렇게 몇 번이나 현실과 꿈을 구분하기 위해 확인을 한 후에야 상계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처음 상계의 존재를 알게 된 뒤로 김윤성은 뭔가 세상을 다시 사는 사춘기 남자처럼 뭔가 일이 생기지 않을까 기다렸지만 특별 면담권이 쓰이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후에야 김윤성이 기다리던 면담권이 쓰였지만 그 내용은 결코 김윤성이 원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어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
“상계와의 통로를 다시 열고 그들을 지원해야 합니다.”
“그들은 이미 몇 십 년이나 정부와 소통을 끊지 않았나.”
“지금 야토가미와 가장 적대하는 세력이 정부와 말이 통하는 자입니다.”
곽동원은 서류를 내밀었고, 김윤성은 서류를 넘기던 중 한 사람의 이력을 보고 놀란 눈으로 물었다.
“이 아이는 아직 고등학생 아닌가?”
“네.”
“학생에게 전쟁에 나가라고 하다니 절대 안 될 말일세.”
“상계의 상식은 일반의 상식과 다릅니다. 그 아이가 야토가미와 가장 적대하는 세력의 리더입니다.”
“이 아이가 말인가?”
“네.”
김윤성은 서류를 보고 한 동안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이 아이를 한번 만나보고 싶군.”
김윤성의 말에 곽동원의 얼굴이 검게 물들어갔다.
상계의 인간들은 현실 인간에게 고개 숙이는 것을 죽도록 싫어한다. 실제 힘을 가진 자신들이 사회 제도 안에서만 권력을 휘두르는 그들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
“자리를 마련해 주겠나?”
“……네. 한번 마련해 보겠습니다.”
곽동원은 만남이 무산될 것을 예상해 최대한 중의적인 표현을 쓰면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