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5
여인의 얼굴을 가진 요괴는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며 먹잇감을 찾는 듯 장내의 사람들을 소름끼치는 눈동자로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이, 이건. 야토구미가 만들어낸…….”
100여 년 전 야토구미와 실제로 전투를 벌여 봤던 남궁혜자는 그 존재를 누구보다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조로구모라고 하더군요. 이렇게 빙글빙글 돌다 거미줄로 사람들의 목을 잘라내더군요.”
조로구모는 시우의 말대로 시범을 보이듯 빙글빙글 돌다 보일 듯 말 듯 한 거미줄을 뽑아내었다.
“네가 만들어 낸 것이냐?”
“그냥 흉내만 내본 겁니다. 다른 것들은 어떻게 소환하는 지 어떻게 움직이는 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자네는 예전에 본가의 무공도 똑같이 따라 한 적이 있었지?”
정순지가 강렬했던 시우와의 첫 대면을 기억해 내며 말했다.
“네. 이것도 그때의 그것과 비슷한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야토가미의 힘을 쓸 수 있다는 것이냐?”
남궁혜자의 말에 시우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제가 가진 능력의 특성 중 하나일 뿐입니다. 제가 태백 정가의 무공을 똑같이 따라 할 수는 있어도 그 무공의 본질은 파악하지 못하는 것처럼. 야토가미만의 비전이 없다면 이 힘을 기르거나 활용하는 것은 힘듭니다.”
“네가 백면궁의 궁주에게 썼던 검법은 천요검법이 분명하지? 그건 어떻게 얻어 낸 것이냐?”
“시우가 검도 쓸 줄 안단 말입니까?”
정순지가 놀라며 물었다.
“그래, 것도 제법 높은 수준의 검술을 부리더구나.”
정순지는 남궁혜자가 이야기하는 ‘높은 수준’이라는 말에 더욱 놀랐다. 그녀의 밑에서 수십 년 동안 검을 배워온 그도 그녀에게 한번 듣지 못 한 후한 평가였다.
그녀는 본래 무공의 경지에 대해선 누구보다 높은 기준을 가진 사람이었다.
뜻이 높고, 타고난 재능이 적지 않으며, 누구보다 더 많이 노력한다. 100세가 넘어 한국 상계의 최고 실력자라 불리는 그녀지만 아직도 그녀는 모두가 잠든 새벽마다 홀로 연공실에서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검후(劍后)라는 이야기를 듣는지도 몰랐다.
그러니 그녀가 말하는 ‘제법 높은 수준’의 검술을 부리는 시우의 실력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그저 따라 하는 수준일 뿐입니다. 또 말이 샜군요.”
시우가 미소 지으며 말하자 흥분해 이야기하던 정순지가 헛기침하며 앞으로 쏠렸던 몸을 뒤로 당겼다.
“천요검법은 백면궁의 무인들의 머릿속에서 뽑아낸 겁니다. 같은 방법으로 야토가미의 비전을 뽑아내려 했지만, 특이한 금제가 걸려 있어 못 뽑아냈습니다.”
“안타깝구나. 그들과 똑같은 힘을 쓸 수 있다면 그들에게 대항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들과 같은 힘을 쓰려면 수십 년의 수련이 필요하니까요. 대신 더 편한 해결책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시우는 주머니에서 나이프 하나를 꺼내어 남궁혜자에게 건넸다.
시중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레저용 나이프에는 흑색의 룬어가 새겨져 있었다.
“기를 담아 투척하실 수 있으시지요? 저 녀석을 향해 한번 던져보시겠어요?”
“소용없다. 놈들에겐 검기가 통하지 않아.”
시우가 시키는 대로 나이프에 기를 불어 넣었지만, 소용없는 짓이라 생각했다.
야토가미의 무서운 점은 그들이 두 개의 힘을 써서가 아니라 귀력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것에 있었다.
냉정히 말하자면 그들이 쓰는 무공의 수준은 잘 봐줘야 일류와 이류를 오가는 수준.
하지만 그들이 귀력을 사용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들의 기괴하고 음산한 요괴들의 힘은 인간의 목숨을 손쉽게 앗아간 반면 그들을 향한 인간의 힘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휘두른 것처럼 요괴들의 몸을 허무하게 지나쳐 가버릴 뿐이었다. 검기든 검강이든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꺌꺌꺌꺌꺌꺌.”
안 좋은 옛 기억에 신경질 적으로 나이프를 던진 남궁혜자의 두 눈이 조로구모의 비명과 함께 부릅떠졌다.
“꺌꺌꺌…… 꺄아아악!”
“……헙! 어, 어떻게?”
남궁혜자의 손을 벗어난 나이프가 정확하게 조로구모의 미간을 뚫고 박혀 들어간 것이다. 조로구모는 괴로워하는 듯 사방을 마구 날아다니다가 파스스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챙그랑.
조로구모가 사라지고 나이프가 바닥에 떨어지며 금속성 소리를 내자. 그제야 사람들이 모두 정신을 차렸다.
“이 정도면 야토가미에 대한 해결책이 되겠지요?”
나이프를 집어 드는 시우가 미소 지으며 묻자 태백 정가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우가 보여준 해결책으로 인해 사람들은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우선은 보타암과 서천군에서 발생한 부상자와 생존문파들을 모두 태백 정가가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백면궁과의 일전에 참전했던 대부분의 중·소 문파들이 두 번의 전투로 대부분 소속 무인이 죽거나 중상을 입어 각자의 힘으론 회생마저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그나마 인원을 보존하고 뒤늦게 싸움에 참전했던 문파들은 한라검문과 해도문을 따라가 버린 상황이라 뿔뿔이 흩어지는 것보다 한곳에서 힘을 모으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 것이다.
더불어 태백 정가는 싸움 이후에 각 문파의 재건을 돕겠다. 약속했고, 이는 사람들에게 더 큰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러는 한편 야토가미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를 준비해야 했는데, 이것이 쉽지 않았다.
시우가 만든 나이프는 하급 아티팩트 수준의 마법적 기술이 녹아든 마법 무구였고 하나하나 시우의 마무리가 없인 그저 특이한 문양이 새겨진 예쁜 쓰레기에 불과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아는 시우의 연구소 주변의 땅을 추가로 매입해 중규모의 공업소를 지어 시우가 필요한 물건들을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하기로 했고, 자금은 태백 정가와 미화관이 절반씩 부담하기로 했다.
시우는 추가로 야토가미의 힘을 막을 수 있는 방어구 제작도 생각해 보겠다 이야기했고, 이에 태백 정가의 사람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을 했다.
이야기가 일단락되자 시우는 남궁혜자와 정순지, 정형진만을 따로 불렀다.
남궁혜자와 정순지는 야토가미를 상대할 수 있다는 기쁨에 기분이 좋았지만 정형진의 표정엔 수심이 가득했다.
“……그래, 우리만 따로 보자고 한 이유가 무엇이냐?”
“우빈이 때문입니다. 아까도 보이지 않더군요.”
우빈의 이야기가 나오자 정형진의 고개가 절로 수그러들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우빈이는 더 이상 무인이 아니네. 그 아이도 이제는 그걸 받아들였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니 오랜 시간이라 할 수도 없다. 아직도 우빈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중일 것이다.
지금도 모두가 잠든 새벽이면, 우빈이 머무는 곳에서 작은 흐느낌과 절규에 찬 비명이 들려오는 것을 알고 있는 형진의 마음은 무거웠다.
“그럼 더 이상 태백 정가의 사람도 아닌 건가요?”
정순지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정가의 사람이란 건 변함이 없지. 하지만 무공이 없는 채로 우빈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그럼 우빈이를 제가 데려가도 되겠습니까?”
“어딜 데려간다는 말인가?”
“아, 표현이 좀 이상했군요. 우빈이를 제 사람으로 만들어도 되냐는 말이었습니다.”
“우빈이를 데려다가 어쩌려고?”
“우빈이에게 힘을 되찾아 주려고 합니다.”
정순지와 남궁혜자가 놀라며 물었다.
“힘을?”
“무공을 말인가? 그게 가능한가!”
정형진은 시우를 뚫어질 듯 쳐다봤다.
“말해보게. 우빈이에게 무공을 되찾게 도와줄 수 있는가?”
“죄송하지만, 망가진 단전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새로운 힘은 줄 수 있습니다.”
“새로운 힘?”
세 사람의 눈동자가 격하게 떨렸다.
우빈은 태백전과 동떨어진 별관에서 머물고 있었다.
태백 정가의 연무장과 가장 동떨어진 별관은 과거 소빈이 학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순지가 배려해 만든 곳이었다.
소빈이 대학에 들어간 뒤로 우빈이 열심히 사용하길 바랐지만, 공부에 관심이 없었던 우빈이 별관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 가끔 손님맞이를 위한 사랑방으로 쓰였었다.
하지만 우빈이 무공을 잃은 후부터 우빈은 이 별관에서 상주하며 별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마치 공부라는 귀신에 씐 사람처럼 매일매일을 별관에서 지냈고, 별관은 곧 우빈의 거처가 되었다.
별관 안으로 들어선 시우의 눈엔 커다란 책상에 앉아 미동도 없이 공부에 집중하고 있는 우빈의 뒷모습이 보였다.
별관 곳곳엔 책과 문제집이 널브러져 있었는데, 대부분 중학교 수준의 교과서와 문제집이었다.
시우가 문제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중학교 2학년 수준의 수학 문제집이었지만 우빈이 푼 문제집은 절반이 겨우 넘는 정답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문제집 곳곳엔 우빈의 눈물 자국이 공부 또한 우빈에게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열심히 하네.”
시우의 말에 우빈은 그제야 시우가 들어 온 것을 알고 고개를 들었다.
“왔어?”
“공부는 잘돼 가고?”
“……확실히 내 길이 아니라는 건 알겠어.”
우빈의 말에 시우가 피식 웃었다.
“그럼 네 길을 가야지 지금 뭘 하는 거야.”
시우가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우빈은 그 미소에 답해 주지 못했다.
“…….”
고개를 돌린 우빈은 시선을 중학교 2학년 때 배우는 영어 교과서로 돌렸다.
“고맙다는 얘기를 아직 못했어. 가족들과 사람들을 구해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부탁할게. 야토가미는 무서운 적이라고 했으니까. 부디…… 사람들을 지켜줘.”
우빈이 그렇게 이야기하며 공부를 하는 척하자 시우가 차가운 음성으로 물었다.
“이렇게 포기하는 거냐?”
“…….”
우빈이 대답하지 않자 시우는 더욱 냉정하게 말했다.
“너는 네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누군가에게 맡기는 걸로 만족하는 거야?”
필기하던 우빈의 손이 우뚝 멈췄다.
“처음 나를 만났던 날. 내 뜻대로 되지 않을 거라며 천령개를 내려치던 건 그저 쉬운 길을 가기 위한 선택이었던 거냐?”
펜을 쥔 우빈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내가 사람을 잘 못 봤네. 겨우 이 정도에 포기할 녀석인 줄 알았으면 그냥 그때 죽게 내버려 두는 건데.”
“네가 뭘 알아!”
우당탕
결국 우빈이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내질렀다.
우빈의 움직임에 의자가 뒤로 한참이나 날아갔다.
“너처럼 잘난 놈이 뭘 알아. ……가족 같은 정가 사람들이 강대한 적을 향해 뛰어들 때 그저 멀찍이 서서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내 심정을 알아? 내 무력함으로 눈앞에서 소중한 사람들이 죽어 갈 때 지켜만 봐야 하는 내 심정을 아냐고!”
우빈은 억울했다.
평생을 익혀온 무공이었지만, 실제로 어딘가에 쓸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일반인보다 뛰어난 신체 능력과 무공으로 좀 더 편안하고 우월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생각뿐.
하지만 백면궁과의 일전은 그 생각을 산산 조각내고도 남았다.
자신이 힘을 가진 이유가. 무공을 익혀온 이유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지키기 위해서!’
가족을 지키고 친구를 지키고, 더 나아가 자신의 신념과 자신이 믿는 정의를 지킨다. 하지만 그 깨달음을 얻었을 땐, 이미 손안에 쥐고 있던 모래 먼지처럼 산산이 흩어졌다.
그리고 다시는 힘을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이 감당할 수 없는 절망과 납득할 수 없는 부조리함을 우빈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포기하는 거냐?”
“……뭐?”
“무공을 잃었다면 다른 힘을 찾을 생각은 없는 거냐? 무공 없이 너 자신만의 방식으로 싸울 생각은 없는 거고? 그렇게도 안 된다면 외공이라도 익힐 생각은 없는 거냐? 넌 단지 쉽고 편한 길만을 가길 원했던 거 아니냔 말이다.”
“……!!”
시우의 말에 우빈은 뒤통수를 강하게 맞은 기분이었다.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우빈을 보며 시우는 담담하게 말을 했다.
“난 망가진 단전을 되돌리는 법 따윈 모른다, 하지만 네가 사랑하는 것들을 네 손으로 지키고 싶다면, 끝까지 싸우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때 연락해라.”
시우는 그렇게 이야기하곤 별관을 나가버렸다.
우빈은 시우가 나간 뒤에도 한참이나 멍하니 서서 시우의 말을 대뇌이고 대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