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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투 다크위저드-52화 (5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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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혜자는 시우의 이야기에도 과연 운기요상을 해도 될지 고민이 되었다. 운기를 펼치는 도중 피해를 받으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힘을 회복하지 못하면 이곳에 뼈를 묻어야 한다.’

그렇게 죽을 각오로 펼친 운기요상술이 끝나고 제법 기운을 회복한 남궁혜자는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말을 잇지 못했다.

“보살님. 저자는 대체 누굽니까?”

시우가 남긴 포션으로 기력을 회복한 혜강이 남궁혜자의 곁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보타암과 상계의 고수들을 압도했던 백면궁의 존재들이 시우라는 한 존재로 인해 낙엽처럼 쓸려나가고 있었다.

“나도 잘 모르겠네. 우빈이의 친구라는 것과,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밖에…….”

“마법이라…… 저 또한 마법을 본 적이 없어 잘은 모르겠지만 저 모습은 그저…….”

말을 하던 혜강이 머뭇거렸다.

상대를 잔인하게 공격하고 생존자는 남겨두지 않는다.

시체를 삼켜 버리는 괴생명체와 커다란 몸체로 인간을 찢어 죽이는 거인. 그 모습을 보고 도망가는 이도 놓치지 않는 집요함까지. 세상에 어떤 인간이 저런 식의 전투를 할 수 있을까.

“……악마…… 같군요.”

“…….”

남궁혜자는 혜강의 이야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보타암과 태백 정가의 생존자들은 누구도 입을 열지 않은 채 작은 탄식만을 내뱉으며 시우의 전투를 바라보고 있었다.

백면궁의 무인들 모두가 정리되고, 궁주만이 허탈한 표정으로 시우의 앞에 섰을 때. 시우의 모습이 변하고 그의 손엔 검은색의 검이 들려 있었다.

“서, 설마…… 검술도 쓸 줄 안다는 건가?”

남궁혜자는 놀라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한순간도 그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력을 끌어 올렸다.

“뭐 하는 짓이냐?”

괴인의 모습으로 변한 박거산의 이마에 혈관이 터질 듯 꿈틀거렸다.

“왜 이 자세 벌써 까먹은 거야?”

검을 든 시우가 기수식을 펼치자 단박에 그 자세를 알아본 박거산의 쩌렁쩌렁하게 고함을 내질렀다.

“나를 능멸할 셈이냐!!”

시우가 보인 기수식은 다름 아닌 천요검법.

힘을 위해 인륜을 저버리고 인간의 모습마저 버렸던 박거산을 놀리듯 시우는 천요검법의 기수식을 펼쳤던 것이다.

“내가 장난을 치는 것 같아?”

시우의 몸으로부터 무인이 펼치는 살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이윽고 시우의 검에는 검기가 어렸고, 그 검에선 천요검법 특유의 괴이한 검명이 울렸다.

끼아아아악!

“무공으론 야토가미의 힘을 당해 낼 수 없다.”

“자신들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 알려 주지.”

시우가 백면궁의 신법으로 박거산에게 다가갔다. 한 마리 말처럼 바닥을 박차고 나서는 시우의 모습에 박거산이 이를 악물고 검강을 줄기줄기 뽑아내었다.

끼아아아아악!

펑! 펑! 펑! 퍼퍼펑!

박거산에게서 쏘아진 검강이 열두 개로 나뉘며 시우에게 쇄도했지만, 종이 한 장 차이로 검강을 모두 피해낸 시우는 곧장 천요검법의 초식을 펼쳤다.

겨우 검기가 어린 천요검법이 자신에게 펼쳐지자 박거산은 그마저도 코웃음을 치며 무시하려 들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검기의 끝에서 묘한 빛들이 일렁거리더니 각각이 분리되어 서로 다른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끼아아악!

끼아아아악!

끼아아악!

세상이 비명으로 가득 찬 듯 박거산의 정신을 아득하게 채웠다. 곧바로 당장이라도 압살시켜버리는 듯한 거대한 살기가 사방을 가득 메웠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커다란 살기에 물 흐르듯 흐르며 지하수처럼 끊임없이 흘러나오던 내공들이 뚝뚝 끊기고 세상은 검게 변했다.

저벅, 저벅, 저벅.

박거산은 자신의 뒤로 들리는 발소리에 눈을 뜨고 천천히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검강에도 상처 나지 않아야 할 무적의 신체가 칼날에 깊게 파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동시에 천천히 아득해져 가는 정신을 부여잡고 시우에게 물었다.

“무슨 검법이냐?”

“천요검법.”

“본 궁에 이런 검법은 없다.”

“내가 살짝 손을 봤지.”

푸칵!

상처 사이로 뒤늦게 피가 줄줄이 흘러내렸다. 쏟아지는 피를 보면서도 박거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진정…… 본궁의 무공이란 말이냐?”

알고 있었지만, 박거산은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다.

검로와 초식 괴이한 검명까지 조금 색다른 모습이긴 했지만, 기억이 시작되기 전부터 익혀왔던 백면궁의 무공이 맞았다.

누구보다 더 확실히 그것을 알고 있던 박거산의 얼굴은 더더욱 절망적이었다.

“이…… 이 힘이 본궁의 힘이었다니…….”

“대단한 힘을 가지고도 알아보지 못했으니 누굴 원망할 것도 없겠지. 스스로나 저주해라.”

시우가 차갑게 돌아서며 말했다.

쿵.

쓰러진 박거산은 죽을 때까지 경악에 찬 표정을 풀지 못하고 그렇게 죽었다.

* * *

마법 때문에 잔뜩 뒤집어쓴 핏물을 씻어낸 시우가 다크 사이트를 불러들였다.

“그만 먹어. 악성이 강해지면 귀찮으니까.”

끄아아아악!

시우의 명령에 반항하던 다크 사이트는 이내 끌려가듯 시우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시체들 사이에서 생존자를 찾아 헤매던 다크 데몬과 보타암과 태백 정가의 생존자를 지키던 다크 나이트도 마법진 안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시우가 남궁혜자에게 다가가자 남궁혜자가 시우를 보며 놀란 표정을 숨기지도 못하고 말했다.

“너는…… 정말 보면 볼수록 놀랍구나…….”

“그런가요.”

“검은 어떻게 익힌 것이냐?”

남궁혜자는 시우가 쓰는 압도적인 파괴력의 마법에 놀라기도 했지만 박거산에게 선보인 검술에 더더욱 놀랐다.

단지 검기를 두른 검이었지만, 그 찰나 시우가 보인 검법엔 남궁혜자도 겨우 감만 잡은 현묘하고 깊은 심득의 묘리가 숨겨져 있었다.

한 가지에 정통하기도 어렵거늘, 이제 약관도 되지 않은 아이가 검법에도 깊은 깨달음이 있다는 것에 남궁혜자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던 것.

“그저 흉내 내는 정도입니다.”

시우는 과거 천살지존의 무공들을 수습한 후, 우빈을 통해 상계의 존재를 알고 무공에 깊이 심취한 적이 있었다.

마침 그가 가지고 있던 천살지존의 무공은 간단한 장법마저 살기가 넘실댈 만큼 파괴적인 무공이었지만, 그 깊이는 시우의 학자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만큼 현묘했다. 그 과정에서 극의의 단계라는 자연검에 대한 개념을 깨닫고 그것을 천요검법에 적용시켰던 것.

무공을 본격적으로 익힌 적은 없지만, 마나라는 존재에 대한 진리를 깨달은 시우에게 개념을 활용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이야기는 나중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남궁혜자가 자신의 품에 안긴 우빈을 보며 걱정스레 말했다.

“상태는 어떻습니까?”

“네가 준 그 요상한 약으로 호흡은 많이 좋아졌다. 허나…….”

남궁혜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단전이 완전히 파괴되어 평생을 모은 내공이 산산이 흩어졌다. 아마 평생 무공은 다시 익히지 못하리라.

“제가 많이 늦었군요.”

“너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네가 오지 않았다면 이곳에서 살아남은 사람은커녕. 한국 상계는 그들의 손에 넘어갔겠지. 네가 한국 상계를 살린 것이다.”

“공치사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부상자들을 먼저 살펴야겠습니다. 혹시 상처가 중한 분 계십니까?”

시우가 그렇게 일어서며 부상자에게 다가서려 하자 생존자들이 두려운 듯 뒤로 물러섰다.

무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한 행동에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시우의 파괴적이고 기괴하며 잔인한 신위를 본 무인들은 본능적으로 시우의 존재를 두려워했던 것.

“무인이란 것들이 간덩이가 작아가지고 뭘 두려워하는 것이냐!”

남궁혜자가 뒤에서 그 꼴을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고, 시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마침 제가 부른 사람들이 온 것 같으니. 그들에게 맡기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시우가 완드를 들어 허공을 그었다.

세상을 감싸고 있던 투명한 막이 한 꺼풀 벗겨지듯 만쇄진이 사라지자. 차들의 엔진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한세아가 시우에게 다가왔다. 만쇄진 안으로 들어선 한세아는 처절한 전투의 현장을 목격하곤 근심 어린 표정으로 시우에게 물었다.

“시우 님! 괜찮으신가요?”

“난 괜찮아. 부상자들을 먼저 봐줘.”

“네. 알겠습니다.”

세아의 지위에 미화관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하나둘 환자들을 살폈다. 응급 환자는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고, 경미한 부상을 입은 자들은 그 자리에서 응급처치했다.

“이 사람들은 누구냐?”

“저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미화관을 이끄는 한세아 관주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검후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시우 님을 모시고 있는 한세아라고 합니다.”

남궁혜자를 단박에 알아본 한세아가 예의 바르게 인사하자 남궁혜자의 입가엔 작은 미소가 어렸다.

“너도 신기한 기운을 가지고 있구나. 시우와 같은 힘을 가졌더냐?”

“아니오. 시우 님에 비하면 한 참이나 부족한 다른 힘입니다.”

“네가 정가에 들어오지 않으려던 이유가 있었구나. 정인이더냐?”

남궁혜자의 이야기에 시우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고, 한세아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호호호.”

그 사이 소빈이 다가왔다. 그녀의 표정은 종잡을 수 없는 복잡함으로 가득했다.

“증조할머니. 괜찮으십니까?”

“……수고했다. 소빈아. 아까 나서지 않은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소빈이 다시 만쇄진 안으로 들어온 것을 알고 있던 남궁혜자는 소빈이 나서지 못한 일로 죄책감을 가질까 먼저 말을 꺼냈다.

“…….”

말이 없던 소빈은 조용히 시우를 향해 깊게 고개를 숙였다.

“모두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당연한 일을 한 겁니다. 그보단 어서 부상자를 먼저 옮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

현장은 빠르게 수습되어 갔다.

부상자들을 모두 병원과 정가로 옮기고, 한세아는 시우를 보고 씩씩거리며 따지려던 전혜성을 붙잡고 남은 시체들의 처리와 마을 봉쇄 등을 논의했다.

태백 정가에서 현민과 일부 정가 인원들이 나왔지만, 정가의 부상자를 수습하기에도 버거웠기에 이쪽 일에 정통한 한세아가 전체 현장을 지휘하며 상계와 국정원의 입장을 조율해 완벽하게 현장을 수습했다.

이 일로 상계(上界)의 인물들에게는 시우라는 존재와 미화관의 한세아라는 존재를 강렬하게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 * *

어둠이 내린 밤.

태백 정가의 연무장엔 소년이 홀로 검무를 추고 있었다.

홀쭉한 볼살과 퀭하니 들어간 눈동자. 검을 휘두를 때마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과 다리.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소년은 초췌한 모습으로 연무장의 조명에 기대어 검초를 이어갔지만 내력이 받쳐주지 않은 초식은 그저 검을 휘두르는 것 이상도 이하도 되지 않았다.

태백 정가의 한편에서 어둠에 몸을 숨긴 채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정형진의 눈동자는 안타까움을 가득 담고 있었다.

“몇 시간 째 저러고 있는 것이냐?”

뒤편에서 들리는 여성의 음성에 정형진은 돌아보지 않고 조용히 답했다.

“벌써 여섯 시간 째입니다.”

남궁혜자는 형진의 옆에 선 채 우빈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 몸도 성치 않은 녀석이 무리 하는구나.”

“상심이 클 것입니다.”

백면궁과의 전투로 우빈은 내공을 잃었다.

정형진은 그 처절한 전투로 인해 수없이 많은 사망자들이 생겼고, 그 안에 우빈이 포함되지 않은 것에 하늘에 감사했다.

하지만, 며칠 만에 깨어난 우빈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평생을 무공을 익혔던 그가 하루아침에 내공을 잃는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이 수족을 잃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방법이 없겠습니까? 중국 본토엔 망가진 단전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저 전설로서 내려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 실체를 확인한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

“그럼 어찌해야 하는 겁니까?”

“……무공을 익히지 못하는 삶도 삶이다.”

“……전, 그 말을 어떻게 우빈이에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검을 휘두르던 우빈이 힘에 부친 듯 발악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악!”

그렇게 필사적으로 검을 휘두르다 종국엔 힘에 부쳐 검을 떨구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 울음소리가 태백 정가 곳곳에 울렸지만, 섣불리 나서서 우빈을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정형진이 결국 참지 못하고 나서려 할 때 남궁혜자가 그의 어깨를 다잡았다.

“그만두거라. 우빈이도 무인이다.”

“……정말, 정말 방법이 없는 것입니까?”

남궁혜자는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슬프지만 지금은 우빈이 말고 다른 걱정을 해야 한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중국에서 연락이 왔다. 이번 백면궁의 행보에 동행한 인물이 야토가미의 차기 오오가미가 될 사람이었다고 하더구나.”

남궁혜자의 음성에 씁쓸함이 가득했다. 음양술과 귀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기에 야토가미 안에서도 범상치 않은 지위를 가졌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시우의 손에 죽은 그가 야토가미의 차기 오오가미가 될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자신도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슬픔에 잠겨 있던 정형진의 표정이 순식간에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 그럼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신으로 추앙받는 차기 오오가미를 죽였으니 이를 명분 삼아 야토가미가 본격적으로 움직일 거라 하더구나.”

“중국에선 이번에도 도와준다는 이야기는 없었습니까?”

“…….”

남궁혜자의 침묵이 정형진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은 한국 상계를 하나로 모아야 한다. 이번엔 백면궁과 같은 바보 같은 짓은 해선 안 되겠지.”

“……알겠습니다. 바로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정형진은 몸을 돌리려다 우빈을 다시 바라보았다. 오열하며 흐느끼는 우빈을 위로할 시간조차 없다는 것에 정형진은 이로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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