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
“으윽. 빌어먹을.”
적포 괴인이 흙거죽을 일으키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거인의 손에 극심한 부상을 입은 듯, 그의 거대한 몸은 끔찍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이상한 잔재주를 부리는 놈이 한국에 있다는 소리는 들었다.”
괴인이 고통을 털어내듯 몸을 털자. 그의 뼈마디가 다시 붙으며 일그러진 어깨와 팔이 다시금 부풀기 시작했다.
“네놈이 바로 그놈이구나.”
대웅전 지붕에 있던 괴인이 바닥에 있는 괴인 옆에 서며 말했다.
하지만 그 둘의 이야기에도 시우의 시선은 한쪽에 짐짝처럼 쌓인 시신들에 가 있었다.
그 시신들은 다름 아닌 보타암에 모여든 무인들의 시신이었다.
“네놈들이 한 짓인가?”
“켈켈켈. 어린놈이 버르장머리가 없구나. 그래. 네놈이 우릴 단죄라도 할 참이냐?”
“단죄? 무슨 소릴 하는 거냐? 난 이미 너희 백면궁 놈들을 이 세상에서 지우기로 결정했다.”
“큭큭큭. 오만하구나. 그깟 잔재주로 우릴 상대할 수나 있겠느냐?”
“무인이라는 것들이 혀가 길구나. 아니 이제 무인이라 부를 수도 없는 건가?”
“닥쳐라!”
시우의 비아냥거리는 말에 괴인들은 바닥을 차며 시우와 혜성에게 달려들었다.
시우의 마법을 본 이상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들은 우선 혜성을 인질로 삼아 시우에게 압박을 줄 참이었다.
검을 들고 선 혜성은 눈으로 쫓을 수도 없이 빠르게 달려오는 괴인들을 상대로 꼼작 달싹 할 수 없었다. 혜성 그녀도 명색이 무인인지라 상대와 자신의 실력 차에서 오는 압박감을 느꼈던 탓이다.
‘어, 어쩌지?’
쾅!
복잡한 머리 탓에 꼼작 못하고 있던 혜성은 커다란 충격음으로 정신을 퍼뜩 차렸다.
그녀의 정면엔 방금 전 괴인을 땅속에 처박았던 거인의 손이 나타나 혜성 앞에 다다른 괴인을 막아주고 있었다.
“네놈들의 목표는 내가 아니었나?”
“네 앞가림이나 잘해라!”
땅바닥에 처박혔던 괴인이 시우 앞에 나타나 맹렬한 속도로 검을 내리쳤다.
화르륵!
괴인의 검이 시우의 목을 자르려는 그 순간 시우의 몸이 시뻘건 불길로 변하며 괴인의 몸을 태우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시우가 다시 나타난 건 혜성의 뒤에서 였다.
혜성을 한 팔로 안은 시우는 남은 괴인에게 마법을 날리며 뒤로 물러섰다.
[다크 픽]
[다크 파이어]
[윈드 커터]
시우 등에게 달려들려던 괴인은 바닥에서 치솟는 섬뜩한 날카로운 송곳들에 움찔 몸을 피하고 동시에 괴이하게 타오르는 다크 파이어와 맹렬하게 회전하며 날아드는 윈드 커터를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 어떻게?”
뒤로 물러선 시우는 정신 못 차리는 혜성을 내려두고, 그녀 주위로 만경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잠깐 들어가 있어요. 끝나면 꺼내줄 테니까.”
시우의 말과 함께, 혜성은 시우가 점점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곧이어 타오르는 불길에 타는 냄새를 풍기는 괴인과 시우의 마법을 피하는 괴인까지. 모두 사라지고 혜성의 주변엔 보타암의 타버린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네놈. 제법 재미난 재주를 가졌구나.”
혜성을 만경진 안으로 넣어 버린 시우가 괴인의 말에 비웃으며 완드로 복잡한 마법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제법? 당최 그 정도 머리로 무공은 어떻게 익혔는지 궁금하구나.”
[다크 자벨린][온 더 파이어]
시우의 앞엔 손바닥만 한 크기의 복합 마법진 수십 개가 생성되었다.
동시에 복합 마법진에선 뜨거운 불길에 타오르는 검은 색 창이 튀어나와 괴인들을 향해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쒜엑!
“이따위 잡술에 우리가 당할 것 같더냐!”
공기를 가르며 화살처럼 쏘아지는 검은 창을 괴인들은 가벼운 움직임만으로 피해가며 시우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맨 처음 불에 온 몸이 타올랐던 괴인도 겨우 불길을 잠재우고 시우에게 다가갔다.
[다크 자벨린][온 더 파이어][엑셀러레이트]
시우의 완드는 더 빠른 속도로 마법진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뒤이어 마법진에서 쏘아지는 검은 창의 속도는 기존의 두 배 가까이 빨라졌다.
핑!
눈으로 쫓을 수도 없이 빨라진 검은 창의 속도에 괴인이 결국 검을 들어 날아오는 창을 흘리려 했다.
쾅!
하지만 엄청난 충격음과 함께 괴인의 어깨에 주먹 만 한 구멍이 뚫려 버렸다.
“큭!”
“왜 내가 잡술이라는 말에 화를 안 내는지 아느냐?”
“······.”
“네놈 말대로 이건 내가 가진 힘에 비하면 잡술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시우의 말에 어깨가 꿰뚫린 입술을 물었다. 이대로라면 승산이 없다 생각한 그는 불에 탄 괴인을 향해 전음을 날렸다.
-내가 방패막이가 되겠다.
그 말과 함께, 불에 탄 괴인이 어깨가 뚫린 괴인 뒤로 몸을 피했다.
일직선상의 궤도가 완성되자 어깨가 뚫린 괴인은 괴랄한 음성을 내뱉으며 앞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검기가 어린 그의 검이 검은 창의 궤도를 바꾸며 시우에게 돌진했다.
쾅! 쾅! 쾅! 쾅! 쾅!
어깨, 팔, 허벅지, 복부. 검은 창이 스치고 지나간 괴인의 신체에서 폭포수 같은 핏물이 솟구쳤다.
“흐아악!”
동료를 방패막이로 뛰어들었던 불에 탄 괴인이 쓰러지는 괴인을 밟고 시우에게 뛰어 올랐다.
분노로 가득한 그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시우를 양단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었다.
푹푹푹푹푹!
그때, 뒤에서 날아든 검은 창들이 괴인에게 꽂히며 괴인을 고슴도치처럼 만들어 버렸다.
“끄아아아아악!”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땅에 떨어진 괴인이 비명을 내질렀다.
시우는 차갑게 괴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놈들이 피한 다크 자벨린이 어디 갔을 거라 생각한 거냐.”
괴인들을 지나쳐간 검은 창들은 빠르게 날아가다 자석에 이끌리듯 궤도를 바꾸어 괴인들에게 다시 짓쳐 들었던 것.
시우는 검은 창에 꿰뚫려 다시금 불에 타는 고통을 느끼고 있는 괴인은 둔 채 서서히 창에 꿰뚫린 상처를 회복하고 있는 괴인을 향해 다가갔다.
“끈질긴 생명력을 보니 꼭 바퀴벌레 같구나.”
“크으. 제법 이다만 이정도론 우릴 막을 수 없다.”
“저승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라. 네 동료들을 곧 보내 줄 테니.”
단박에 마무리를 하려는 시우의 행동에 괴인이 여유를 부리며 입을 열었다.
“크크크, 도망친 생존자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고 싶지 않으냐?”
“···어디로 갔는지 아느냐?”
“우선, 저 잡술을 해제······ 크아아악!”
괴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검은 창 하나가 날아와 괴인의 무릎 뼈를 박살내며 파고들었다. 동시에 그는 살이 타오르는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참을 수 없었다.
“크허헉! 이, 이러고도 생존자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하하하. 일면식도 없는 생존자들이 나랑 무슨 상관이겠느냐. 내 목적은 네놈들의 씨를 말리는 것인데. 그냥 네놈에게 헛된 희망을 줘 본 것이다.”
“빌어먹을 개 같은···.”
시우가 손을 번쩍 치켜들자 허공에 부유하던 검은 창들이 뇌전처럼 내리 꽂혀 괴인의 온 몸 구석구석을 헤집어 놓았다.
“크아아아아악!”
고통스러워하는 괴인을 보고 한쪽에 산처럼 쌓여 있는 시체를 본 시우가 차갑게 말했다.
“이따위 짓을 해 놓고 살겠다는 희망을 품어? 사탄이 부끄러워 쥐구멍에 숨겠구나.”
시우는 다크 자벨린의 불을 꺼 버리고, 괴인들의 몸이 회복될 시점에 맞춰 계속 검은 창을 꽂아 넣었다.
[메모리 랍]
딱 죽지 않을 만큼의 생명을 연장해 놓은 시우는 쓰러진 그들의 몸 위로 검은 색 마법진을 각각 소환시켰고, 검은 마법진에선 촉수들이 튀어 나와 죽어가는 괴인들의 오공을 파고들었다.
시간이 촉박했던 만큼 마법은 거칠었다. 괴인들의 구멍을 파고든 촉수들은 핏물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괴인들은 온 몸이 꿰뚫릴 때보다 더 격하게 움직였다.
한참을 괴인의 머릿속을 휘젓던 촉수들이 회수되며 마법진으로 사라지자. 시우는 검은 창을 꽂아 넣어 괴인들을 마무리 짓고, 다크 사이트를 펼쳐 괴인의 사체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어디로 갔는지는 알려주지 않은 건가?”
태백 정가의 일행이 어디로 갔는지 고민하던 시우는 자신이 무언 갈 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그 여자.”
시우가 뒤늦게 깨닫고 허공을 내려치자 만경진 안에서 전혜성이 튀어 나왔다.
“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 괴물들은?”
주변을 휘휘 둘러보던 혜성은 괴인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놀라며 시우에게 물었지만, 시우는 답변 대신 자신이 궁금한 것을 물었다.
“아까 그쪽 국정원 소속이라고 했죠?”
“어? 어··· 그런데?”
“혹시 태백정가 사람들이 어디 있는지 알아요?”
“태백 정가? 그 사람들이라면 정가에 있겠지.”
한가한 혜성의 답변에 시우는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되면 직접 찾아야 하는 건데. 그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우빈의 급박한 음성으로 유추했을 때. 그리 긴 시간이 남아 있는 거 같진 않다.
더구나 보타암의 시신에서 본 그들의 잔혹성은 단순히 한국 상계(上界)를 지배하거나 패자가 된다는 정도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살아 있는 자를 하나도 남기지 않겠다는 거겠지?’
상대와의 거래를 생각하지 않는 자들이 포로를 남기지 않는다. 지금 백면궁의 행동이 그러했다.
“얘! 아까 그 괴물들 어디 간 거야? 혹시 도망 간 거야?”
“없앴어요.”
“네가? 너 혼자?”
혜성은 말하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혹시 여기 쳐들어온 사람들 어디로 갔는지 알아요?”
“응? 글쎄, 나도 상황 수습하러 온 참이라···. 사실 지켜보기만 하려고 했던 건데···.”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 시우는 지체 없이 몸을 돌렸다. 그때 혜성이 급하게 입을 열었다.
“얘 너 어디 가려고 그러니?”
“찾으러 가야죠. 지금 태백 정가의 사람들이 위험에 처한 거 같으니까.”
“······너 혼자?”
시우는 더 이상 답하지 않고 보타암 밖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 어딘 줄 알고 가려고 하는 거야?”
혜성이 시우의 손을 잡자 시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슬슬 귀찮아 지는 데. 도움 줄 거 아니면 방해하지 말죠? 한 시가 급한데.”
자신도 모르게 은은하게 살기마저 흘리자 혜성은 바짝 긴장했다.
“어디로 간지는 모르지만 예상은 해 볼 수 있어.”
“···어딘데요?”
“알려 줄 테니 같이 가. 혼자 가는 건 위험해.”
“알았어요. 어디로 갔는데요?”
“그건 모르겠고. 여기서 충북 서천까지 밤새 무선 통신망이 단절되었다는 신고가 계속 들어왔데. 시간대 별로 따져보면 어제 저녁 보타암 일대에서 시작된 통신망 단절이 오늘 서천까지 이어 졌으니 아마 그 경로가 그들이 지나간 곳이 아닐까?”
얘기를 듣던 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경진의 특징 중 하나가 외부와의 세계를 단절함과 동시에 일대 통신망을 마비시키는 것이었다. 충분히 근거 있는 이야기였다.
시우가 비행 마법을 시전 해 몸을 허공에 띄웠다.
“자, 잠깐! 나도 같이 데려가야지!”
“얼른 가게 비행하세요.”
“무, 무슨 소리야 난 날줄 몰라!”
“그럼 어쩔 수 없네요. 혼자 갈게요.”
“너, 너 약속 위반이야!”
“어차피 할 일 많으시잖아요. 이거 수습 하셔야죠.”
시우가 완드를 휘두르자 만쇄진이 분쇄되며 보타암의 시체들이 현실세계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럼 다음에 뵙죠.”
“야! 그렇게 갑자기 가버리면!”
시우는 혜성의 말을 뒤로 하고 공기를 가르며 순식간에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 46 > 끝
ⓒ 진(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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