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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가 내민 책에는 천요검법의 형과 식 구결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특히 형을 표현하는 그림은 상세하게 그려져 어린 아이라도 보면 금방 따라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는 마법사의 일생을 살며, 연구와 기록에 매달렸던 시우의 경험이 표출 된 것이다.
마법이란 학문을 지구인의 입장에서 다가섰던 시우에게 고대의 마법서적들과 연구서들은 추상적인 뜬구름 잡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철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던 마법은 심도 깊은 연구와 개발이 미진했고, 당대의 마법사들은 그저 내려오는 법칙을 따르는 것을 정도라 여기며 그 법칙을 변형하거나 비트는 것은 마법에 대한 불경을 저지르는 것으로 취급 하였다.
하지만 시우는 그런 마법세계의 흐름에 따를 필요가 없었다.
이(異) 세계의 이방인으로서 그리고 다크 위저드의 길을 걷는 자로서 이미 시우는 아웃사이더 중에서도 외면 받는 존재였으므로 그는 지구의 방식으로 마법을 연구하고 비틀어 자신만의 신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시우는 뛰어난 마법사이자 연구자였다.
“일전에 습격해왔던 놈들의 머릿속에서.”
“···괜찮을 까요? 상계(上界)의 무인들은 자신들의 무공이 외부로 퍼져나가는 것을 죽는 것보다 더 싫어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만약 저희가 익혔다는 것을 알기라도 한다면···.”
세아의 걱정에도 시우는 가볍게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상관없어. 백면궁은 상계에서 완전히 사라질 테니까. 죽은 자들은 불만을 얘기하지 못하는 법이지.”
“그래도, 상계의 다른 세력들이 백면궁의 무공을 익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텐데요.”
백면궁의 무공은 과거 한국에서 삼대 세력을 구축할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가졌다. 백면궁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그들의 무공을 익히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의 이야기였다.
시우는 그런 세아의 걱정에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관주는 상계(上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싶은 거지?”
“네?”
“상계(上界)의 다른 이들 눈치나 보면서 살고 싶어서 그렇게 상계에 들어가려 했나?”
“······그건 아닙니다.”
세아는 시우의 말에 번쩍 정신을 차렸다.
세아가 미화관의 모든 것을 걸고 상계에 들어가려는 것은 힘을 얻기 위함이었다. 자신들을 지킬 수 있는 힘. 힘을 가진 자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그런 힘.
힘이 없는 자는 어떤 것도 지킬 수 없다. 억울하고 분한 일을 당하고 정의롭지 않은 상황 앞에서도 힘이 없는 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랬기에. 자신을 지키고 자신이 믿는 상식을 지키기 위해 힘을 갈구 하는 것이었다.
“강자는 약자가 자신을 좋아하건 싫어하건 상관 하지 않아. 눈치를 보는 건 약자들이나 하는 짓이지. 내 밑에 있으면서 다른 누군가의 눈치를 볼 생각 따윈 하지 마.”
“알겠습니다.”
시우의 말에 세아가 깨달은 든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시우는 흡족한 미소로 말을 이어 나갔다.
“내공 심법은 일부러 적지 않았어. 이제 와서 익히기엔 너무 늦었고 특정 내공 심법을 익히게 되면 정령을 부리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앞으로도 내공 심법을 익힐 생각 따윈 하지 마.”
“하지만 시우님, 상계(上界)에선 내공 심법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검법만을 익힐 거라면 현대 무술을 익히는 것이 더 효율적일 텐데요?”
“아니, 현대 무술은 에너지 방출에는 효율적이지 않아. 앞으로 상대해야 할 자들은 주로 ‘기’를 사용하는 자들일 텐데. 그 앞에서 호신술을 쓸 수는 없잖아?”
“그럼 저희가 내공심법을 익히지 않고도 ‘기’를 쓸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지금 사용하는 자연 에너지. 그걸 이용할 거야.”
“자연 에너지를 내공처럼 쓸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자연 에너지는 포괄적인 각각의 에너지 집합체야. 통상 에테르라 하는데. 마나보다 효율성은 떨어져도 범용성은 따라갈 수 없지. 그리고 이걸 이용해 정령술과 검법을 함께 익히는 거야.”
“그게 가능한 겁니까?”
“관주는 그것만 알아둬. 아주 끝내주는 사람한테 줄을 섰다는 거.”
미화관 소속 김준상은 얼마 전 동료를 잃었다.
전쟁이 터진다 해도 쉽게 죽지 않을 거라 믿었던 강한 동료이자 형제들이었기 때문에 상계(上界)의 무인들의 손에 속절없이 죽음을 맞이한 것은 김준상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렇게 며칠이나 동료들의 죽음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 한세아가 김준상에게 말했다.
“계속 그렇게 좌절만 하고 있을 건가요? 도망칠게 아니라면 다시 일어서요.”
세아는 그렇게 자신의 계획과 목표를 말해 주었다.
상계(上界).
인간 이상의 존재들이 사는 곳.
김준상은 다시는 무력하게 소중한 사람들을 잃지 않기 위해 세아를 기꺼이 따라 나섰다.
그리고 지금은 죽을힘을 다해 시우에게 상계(上界)의 인간들과 대적할 수 있는 힘을 익히고 있었다.
“단순히 검을 강하게 휘두르는 게 아니라고! 힘은 나중에 에테르를 통해 얼마든지 실을 수 있어. 지금은 검로를 완벽하게 따라가는 것과 연계에만 신경 쓰란 말이야.”
검은 색의 장검을 든 시우가 전력을 다해 천요검법을 펼치던 김준상의 검을 가볍게 처냈다.
신장의 크기로 보나 근육의 밀도로 보나 김준상의 검이 훨씬 무겁게 느껴졌음에도 시우는 김준상의 검을 장난치듯 걷어내고 있었다.
“너희는 나중에 정령과 연계해서 검을 써야해. 검술이 먼저 체화되지 않으면 정령은 있으나 마나한 존재밖에 되지 못할 거야.”
“네!”
김준상은 그렇게 대답하고 천요검법을 처음부터 다시 펼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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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화관의 대원들은 시우의 연구소에 온 뒤부터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수련에 매진했다.
새벽에 일어나 오전 내내 수정구에 손을 댄 채 정령을 소환함과 동시에 에테르를 모으는 훈련을 하고, 점심 이후부터는 끝없는 체력훈련과 검술 훈련의 연속이었다.
미화관 자체를 지키는 인원과 대기인원 정도의 가족을 지키는 인원까지 대부분의 미화관 전투 대원들이 빠진 상태였기 때문에 훈련을 받는 인원수는 16명에 불과했고, 이는 시우로 하여금 한 명 한 명 집중 케어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특히나 인간의 한계에 다다른 체력훈련은 그들이 군대에서도 받아 보지 못할 절도로 살인적인 수준의 것이었다.
더더욱 무서운 것은 군대에선 탈진하거나 상태가 좋지 않으면 곧장 쉬는 시간이나 의무대에 갈 수 있는 시간이 있었지만, 시우의 관리감독 아래선 그런 것들이 용납되지 않았다.
첫 3일 째에 벌써 오바이트를 하고 몸에 무리가 간 대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김준상은 훈련보단 생존이 중요하다 생각하는 이였기에 곧장 쓰러진 인원을 데리고 병원에 가려 했지만, 시우가 그를 말리며 색색의 유리병에 든 포션 몇 개와 신체 회복과 관련된 몇 가지 마법으로 그들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게 만들었다.
그런 지독한 훈련 스케줄에 대원들은 치를 떨었지만, 누구 하나 훈련을 이탈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신 차려! 쉐도우 워리어조차 상대하지 못해서 상계(上界)의 무인들과 어떻게 대적하겠다는 거야!”
연구소 일대엔 그림자로 만들어진 인영의 모습이 검을 들고 미화관의 대원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정령과 자신의 검술이 하나라고 생각해. 형과 식을 따르면서 거기에 동반되는 힘이란 걸 깨달으라고!”
쉐도우 워리어가 김준상을 향해 달려들자 김준상은 천요검법을 펼치며 쉐도우 워리어에게 짓쳐들었다.
‘이프리트!’
그와 동시에 이프리트라 이름 지은 자신의 정령에게 의념을 보내자 허공에서 개의 형상과 비슷한 모양의 불의 정령이 튀어 나와 쉐도우 워리어를 향해 뜨거운 불길을 내뱉었다.
‘틈!’
쉐도우 워리어가 불길을 피해 뒤로 물러서자 김준상은 명치 부근에서 생성되는 에테르의 기운을 끌어 올려 쉐도우 워리어의 틈을 향해 파고들었다.
스걱!
날카로운 김준상의 공격에 쉐도우 워리어의 왼쪽 팔이 잘려 나갔다. 수백 번의 대련 끝에 이룬 첫 번째 성공이었다.
성공에 기뻐하며 고개를 돌린 순간 쉐도우 워리어의 검은 김준상의 목을 얕게 파고 든 체였다.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말라고 했지! 팔이 아니라 목을 자르기 전까진 끝난 게 아니라고!”
시우의 호통에 김준상은 말은 못했지만 억울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통상 팔이 잘리면 일반 적인 사람은 살 수 없습니다.’
물론 바보 같이 속마음을 꺼내는 일은 없었다.
“시우님. 다들 지친 듯한데 조금 쉬었다 하심이 어떨까요?”
“관주도 이틀 만에 제압한 쉐도우 워리어를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사람들이 손끝하나 어쩌지 못하는 데 쉴 틈이 어딨어?”
“후훗.”
한세아는 천요검법과 정령을 연계한 전투술을 익히기 시작한 이후로 단 이틀 만에 쉐도우 워리어를 제압했고, 지금은 쉐도우 워리어 세 마리를 동시에 상대할 정도로 실력이 늘어 있었다.
여자의 몸으로 이룬 대단한 쾌거였다.
“자! 다들 다시 일어나! 애초에 그 정도 실력으로 나 힘 좀 가졌네 하는 거 자체가 창피한 거라···.”
시우의 이야기가 이어지다 핸드폰 벨소리로 인해 끊겼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 시우는 액정에 뜬 처음 보는 전화번호에 고개를 잠시 갸웃 거리다 전화를 받았다.
통화가 연결된 핸드폰에선 낯익은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시우야!
“···? 우빈이냐?”
-도와줘! 이러다 우리 다 죽을 지도 몰라!
시우의 음성이 차갑게 깔렸다.
“너 어디야?”
< 43 > 끝
ⓒ 진(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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