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다크위저드-39화 (39/200)

< 39 >

요란한 제트 엔진음과 함께 등장한 것은 가와사키 중공업이 개발한 군용 수송기 가와사키 C-2였다.

최대 탑재량 37.600KG. 순항속도 마하 0.8 항속거리 6500KM에 달하는 대 전쟁급 전략 수송기인 가와사키 C-2는 세계에서 오직 일본 항공 자위대만을 위한 기체였다.

‘야토가미의 위세가 대단하다 들었지만··· 이정도 일 줄은···.’

박거산은 벌어진 입을 야토가미의 애송이가 볼까 얼른 다물었다.

수송기 두 대는 비행을 준비하며 수송기 내부에선 군복을 입은 사내 들이 나와 백면궁 일행을 향해 손짓하였다.

박거산이 말하기 전에 배동혁이 먼저 나서 입을 열었다.

“저희는 정식으로 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이 몸이 다 준비 해놓았으니 걱정 마시오.”

청년이 먼저 몸을 움직여 한쪽 수송기에 타고 음양사들은 절반씩 나뉘어 수송기에 올랐다.

배동혁이 어찌하면 좋겠냐는 뜻을 담아 바라보자.

박거산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법 제 49조의 3항에서는 ”검사는 피의자에 대하여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선도···. “교수의 목소리에 학생들은 학구열에 불타며 단 한글자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빛내며 집중하고 있는 때에, 지혜만은 자신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인 신비롭게 아름다운 반지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피식 피식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줄 몰랐다.

“···혜 학생. 지혜학생!”

교수가 지혜의 이름을 부르자 그때야 정신을 차린 지혜는 집중하고 있는 척 해보았지만 이미 학생들과 교수의 시선은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는 상태였다.

“집중이 잘 안되나 본데. 유류분권에 대해서 말해 볼까?”

“어···.”

당황하는 지혜의 모습에 교수는 고소하다는 듯 웃음을 지어보았다. 제 아무리 전구의 수재중의 수재들을 모아 놨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고등학교 수준의 수재다. 대학의 공부는 전혀 다르니까.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경고만 준 뒤 다시 수업을 들어가려는 찰나. 지혜의 청명한 목소리가 강의실에 또렷하게 퍼져나갔다.

“1~3순위 상속인에게만 적용이 되는 권리입니다. 1순위 상속인이 있는 경우, 2~4 순위 상속인은 상속권 자체가 없기 때문에 유류분권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1순위 상속인은 법정 상속분의 1/2, 2순위와 3순위 상속인은 법정 상속분의 1/3을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정확한 지혜의 답변에 교수는 일순 말문이 막혔다. 이제 막 법학개론을 떼기에도 이른 시간임에도 지혜는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어, 좋아요. 뭐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교수의 말에 학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강의실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홍쥐! 웬일이야 멍 때리다 교수님한테 찍히기도 하고.”

정연이 지혜에게 다가오며 살갑게 굴었다. 두 사람은 오티 때 만나 친해진 뒤로 학교에선 단짝처럼 지냈지만 정연이 남자친구를 만들고 지혜에게 알바가 늘어나면서 부쩍 만나는 일이 줄었었다.

“너무 더워서 그런 가 정신이 약간 멍 하네.”

“내가 봤을 때 넌 남자를 만나야해. 양기 충전이 필요하다니까.”

정연은 지혜의 가슴과 허리라인을 쓸어내리며 능글맞게 이야기 했다.

“하지 마.”

“이 멋진 몸매를 이렇게 썩혀두다니 넌 너 자신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이러지 말구 너 소개팅해라. 의과대학 제일 잘나가는 오빠가 너한테 관심 있다니까 한번 만나봐.”

“됐어. 나 남자친구 있어.”

“진짜?”

“응”

두 사람의 대화에 새로운 사람이 끼어들었다.

“그게 누구야? 나도 궁금한데?”

갑자기 끼어든 놀라는 소리에 정연과 지혜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고, 그곳엔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는 강철호가 은은한 향수 냄새를 풍기며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철호 선배!”

“안녕하세요.”

본래 말광 량이 기질이 다분한 정연도 철호 앞에선 얌전한 요조숙녀로 변했다.

모델처럼 훤칠한 키에 누구나 돌아볼만한 조각 같은 외모. 수재들 사이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릴 정도의 뛰어난 두뇌와 판사와 검사를 줄줄이 배출한 법조계에 알아주는 명가의 자제라는 빛나는 배경까지.

서울대에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 지혜라면 그녀에게 가장 어울릴만한 남자는 강철호였다.

“나도 궁금하네. 우리 법학부 간판 미녀를 대체 어떤 나쁜 놈이 훔쳐 간 건지.”

“그런 거 아녜요. 선배.”

철호의 짓궂은 질문에 지혜가 웃으며 답했다.

“진짜 얘기해봐. 누구야? 나 모르게 재벌 2세 만났어? 연예인이야?”

“그냥. 그냥 좀 특별한 사람.”

“엥?”

“시험도 끝났겠다. 우리 집 가서 놀지 않을래? 소혜 너도.”

“너희 집?”

우빈의 말에 소혜가 조심스레 시우의 눈치를 살폈다.

“응. 시험 끝났으니까 소혜 너도 괜찮지 않아?”

“뭐··· 크게 상관없긴 한데.”

“그래. 그럼 우리 집에 가자. 할아버지가 맛있는 거 준비해주실 거야.”

우빈이 그렇게 말했지만 시우는 냉담하게 대답했다.

“너희 요즘 특훈 한다 하지 않았냐?”

“아···. 그거 좀 하루 쉬고 싶어 그러지. 그리고 너 증조할머니가 좀 오래.”

“난 왜?”

“나야 모르지.”

두 사람의 대화에 소혜가 끼어들었다.

“시우가 너희 증조할머니도 알아?”

“어? 어··· 그렇지. 내가 워낙 시우랑 절친한 사이잖아. 음하하하하.”

“······언제부터? 아무튼 난 못가. 오늘 선약 있어.”

“뭐? 무슨 선약?”

“여자친구 만나러 가야 돼. 중간고사 때문에 한 동안 못 봤거든.”

“여자친구?!”

“여자친구?!!!”

두 사람이 동시에 빽하며 소리를 지르자 시우가 무슨 짓이냐며 쳐다보았다.

소혜는 그제야 자신의 톤이 높았단 걸 깨닫고 무표정하게 고개를 돌렸지만 볼터치를 한 것 마냥 볼가에 붉은 기운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우빈은 아직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너 여자친구 있었어?! 언제? 누구? 아니 그 전에 너 우리 학교에서 대화 나누는 사람도 없잖아!”

시우는 우빈의 말대로 학교에서도 여전히 말이 없었다.

이경구 사건으로 뭍 여학생들의 관심을 조금씩 받기 시작한 시우였지만, 시우는 오히려 말수가 적어지고 독서에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유일하게 대화를 나누는 여자는 소혜뿐이라. 소혜는 알게 모르게 득의양양 했었다.

“우리 학교 안 다니니까.”

“헙! 설마 다른 학교 여학생?”

“······.”

소혜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시선도 주지 않은 체 두 사람의 대화를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어디? 영석 여고? 성신 여고? 아님 풍신고?”

“서울대학교.”

“대, 대, 대학교? 여대생?! 연상?!”

우빈의 과도한 언성에 지나가는 학생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었다.

“흥분 좀 가라앉히지? 연애 안 해봤어?”

“어, 어떻게 만났는데? 언제부터 사귀었는데? 원래 알던 누나야? 혹시 교회에 다니면서 만난 누나야?”

우빈은 그 어느 때보다 시우가 더 궁금해 졌다. 그가 마법이라는 대단한 힘을 쓰고, 혼자서 태백정가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보다. 그의 여자 친구가 대학생. 그것도 서울대학교를 다니는 여대생이라는 것이 쉽사리 믿기지 않았고 그 여자 친구를 어떻게 만든 것인지 너무도 궁금했다.

“그냥 길가다가.”

많은 부분이 생략된 시우의 이야기에도 우빈은 많은 것을 알겠다는 듯 대답했다.

“헙!!! 허, 헌팅?!! 대학생을? 그것도 고딩이?!”

잦은 전학을 다니면서 바람의 전학생 놀이를 즐기며 여학생들의 백마 탄 왕자님이 되는 놀이를 즐겨하던 우빈 이었지만, 사실 그는 집안의 여건상 변변한 연애 한번 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랬기에 시우가 여대생을 그것도 헌팅으로 만나고 있다는 것이 마법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놀랍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니까 증조할머님께는 다음에 간다고 전해 드려.”

“야, 나 오늘 너 따라 가면 안 되냐?”

“데이트 하는 데 니가 왜 끼어?”

“여자친구한테 친구 한명만 데려 오라고 하면 안 돼?”

“집에 가서 특훈이나 해.”

두 사람이 투닥 거리는 동안 한쪽에서 소혜가 차가운 기운을 풍기며 말했다.

“나 일 있어서 먼저 가볼게.”

“소혜야. 우리끼리라도 떡볶이 먹으러 가자.”

“미안. 중요한 과외가 있어서.”

소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그런 소혜의 행동에 우빈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왜, 저러지? 어디 아픈가?”

“······.”

시우는 우빈을 보며 고개를 절레 저었다.

본래 약속 장소로 향하려던 시우는 지혜의 메시지를 받고 한남동의 한 건물로 들어섰다.

입구 주차장엔 고급 수입차들이 주차되어 있었고, 간판도 작아 잘 눈에 띄지 않는 레스토랑이었다.

입구 안으로 들어서자 은은한 음악과 고급스러운 장식들이 조화롭게 인테리어 되어 있었다. 교복 차림의 시우가 안으로 들어서자 깔끔한 차림의 매니저는 실례를 범하지 않고 이름을 확인한 후 시우를 안내했다.

‘지혜 취향이 아닌데?’

엄청난 양의 보상금은 지혜를 시간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었다. 수업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법학부를 다니며 시간을 분단위로 쪼개어 과외 활동을 하던 지혜는 시우를 만난 이후 모든 것을 그만두고 공부와 연애에 매진했다.

시우를 만나는 지혜는 그 동안 놀지 못하고 연애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한을 풀 듯 놀이동산을 시작으로 각종 데이트코스를 다녔지만 한 번도 필요 이상의 비용이 지불되는 이런 레스토랑에 온 적은 없었다.

매니저가 문을 열어주자. 방 안에는 지혜 말고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어! 시우야!”

세 사람은 친분이 있는 듯 즐거운 대화를 하고 있었고, 시우가 들어서자 지혜가 번쩍 일어나 아기처럼 시우에게 안겼다.

“혼자가 아니네?”

시우가 묻자 지혜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미리 말 못해서 미안. 같은 학부 친구랑 선배님이셔. 인사해.”

“안녕하세요.”

시우가 차분하게 인사하자 정연은 놀라는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야! 홍쥐! 너 고삐리랑 사겨?!”

정연의 말에 지혜가 볼을 빨갛게 물들이며 시우에게 말했다.

“미안해. 말을 막하는 친구라. 악의는 없으니까. 오해해지마.”

“얘, 너 그거 잘하니?”

“야! 너 조용히 안 해!”

시우는 입가에 미소를 짓고. 정연과 아까부터 득의양양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철호를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홍지혜 남자친구 최시우라고 합니다.”

철호는 홍지혜를 처음 만났던 날을 잊을 수 없었다.

서울대에 들어오는 신입생들이 그렇듯 모두가 얼굴에 자부심을 가득 담고, 자신들의 찬란한 인생길에 첫발을 내딛은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온갖 치장을 하고 왔을 때.

지혜만이 혼자 수수한 패딩 차림으로 참석했다.

수능이 한참 지났음에도 피로에 절은 얼굴 꼿꼿하게 굳어 있는 자세. 졸린 듯 자꾸만 감겨지는 것 같은 눈꺼풀까지. 그럼에도 철호의 눈은 지혜에게서 떼어지지 못했다.

아니 철호 뿐만 아니었다. 법학부 남학생들과 서울대에 다니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수한 옷차림으로 자신을 숨기고 있는 지혜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마치 천국에서 지상으로 떨어져 아무것도 모른 체 흙먼지를 뒤집어 쓴 천사 같았던 지혜는 화장과 성형으로 만들 수 없는 본연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그런 지혜의 아름다움을 금세 알아 차렸다.

많은 경쟁자들이 학부에도 학교에도 거리에도 널렸지만, 지혜에게 어울리는 건 자신뿐이라고 철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혜는 술자리와 미팅에 전혀 참석 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면 쏜살같이 강의실을 박차고 나가는 것은 한 주에 몇 개씩이나 잡혀 있는 과외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쉬는 날에도 교우관계나 애인을 만들기보다 공부에 매진하는 것은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철호는 더욱 지혜가 탐나기 시작했다.

서울대. 든든한 집안 배경. 연예인이었던 어미니에게 받은 아름다운 외모와 우월한 유전자까지. 철호가 원하는 여성이 철호에게 넘어 오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혜는 달랐다.

말이라도 걸라치면 미안한 듯 바쁘다고 가버리고, 메시지를 보내보아도 형식적인 답장 외에는 다른 답장은 없었다.

유일하게 말이라도 좀 하는 정연을 통해 들은 바로는 지혜의 생활은 아슬아슬한 경계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중이고, 지금은 인간관계를 고려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기라는 것이었다.

철호 또한 그런 지혜의 이야기에 더 이상 어떤 것도 시도해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부터인가 더 이상 과외를 가지 않고, 전공 수업 대신 교양 수업 신청이 늘면서 동아리를 들어가 볼까 기웃거리는 지혜를 보며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다.

웃음이 많아졌고, 자세가 더욱 당당해졌다. 지혜를 모르던 사람들도 지혜가 지나갈 때마다 지혜의 이야기를 했다.

이때다 싶어 지혜에게 접근하려 했지만 지혜는 이미 남자친구가 생긴 후였다.

“이것도 먹어.”

지혜는 자신의 음식을 시우에게 양보하며 말했고, 시우는 그저 말없이 먹기만 했다.

철호는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느라 고생을 했다.

처음 지혜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이야기에 많은 걱정을 했다. 혹시라도 정연의 말처럼 재벌가의 자제라던가 본격적인 연예인이라던 지하는 것들.

지혜라면 그런 그들에게 부족하지 않은 상대로 보일 것이었고, 그렇다면 골치가 아플 거라 생각했지만, 상대는 평범. 아니 자신의 기준에선 조금 부족해 보이는 고등학생이었다.

“지혜야, 박교수님 시험 족보는 구했어?”

“아, 아뇨. 그 동안 교우 관계가 엉망이라. 더구나 얘는 공부 하고는 담을 쌓았잖아요.”

“말리지 마라. 난 1년 동안 절대 공부 안하겠다고 다짐한 사람이야.”

“내가 구해줄까? 후배한테 넘겨준 족보 있는데. 복사해달라고 하면 줄 거야.”

“정말요? 그럼 좋죠.”

“선배 나도! 나도!”

“넌 공부 안 한다며?”

“그래도 학교는 다녀야지.”

철호는 처음부터 계속 대화의 주제를 학교로 한정지었다. 시우를 생각한 지혜가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돌리려 하면 수려한 말솜씨로 대화의 주제를 가져왔고, 자연스레 시우는 말없이 음식만 먹는 처지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철호는 벌써부터 시우에게서 지혜를 뺏어올 작전을 실행하고 있었다.

< 39 > 끝

ⓒ 진(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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