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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투 다크위저드-38화 (38/200)

< 38 >

“제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려면, 재시험을 보는 수밖에 없겠죠?”

“당연하지.”

“그렇다면, 이번 시험에서 수학시험 만점 받은 학생들 모두와 함께 재시험 보겠습니다.”

시우의 이야기에 이경구는 당황하는 모습을 숨길 수 없었다.

“그게 뭔 소리야! 걔들은 원래 공부 잘하던 애들인데.”

“공부를 잘하던 못하던 만점 받은 게 문제라면, 만점 받은 학생들 모두를 의심해 봐야죠. 선생님이 이렇게 까지 부정행위를 주장할 정도면 제가 만점 받지 않을 걸 예상했단 얘기 아닌가요?”

“그, 그건 인마···.”

“거기에 더불어 전 이런 의심이 들더라고요. 저희 반 반장을 비롯해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 모두가 21번 문제와 23번 문제를 틀렸는데 그 친구들은 어떻게 맞혔을까? 혹시 시험문제를 미리 알고 있었던 거 아닙니까?”

“이 자식이!”

“21번 문제와 23번 문제는 대수학 개념이 들어간 고차원 응용문제를 냈다는 건 학생들에게 틀리라는 의도가 다분한 것이었는데, 일부 학생들만 정답을 맞혔습니다. 제 말이 의심스러우시다면, 그 학생들 중 한 명이라도 불러서 어떻게 풀었는지 물어 보시죠. 21번 문제와 23번 문제를 풀 수 있다면 저 혼자라도 재시험 보겠습니다.”

이경구는 말문을 열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판을 바꿔 상대를 압박한다.

알게니하 대륙을 정벌하고 제국을 세우는 것이 어디 무력으로만 가능하던가, 내외 실정을 담당하고 기득권으로 남아 있던 귀족들은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의 시우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온갖 모략과 계략으로 언제든 그를 제거하려 했고, 그들을 이겨내기 위해 강대한 무력은 물론 그들 이상 가는 모략가가 되어야 했다.

재미난 점은 적은 무력에 굴복했을 때보다 모략과 계략에 굴복했을 때 더 절망한다는 것이다. 외부의 폭력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회복이 되지만, 모략과 계략으로 꺾인 자존심과 짓밟힌 자존감은 그의 인생 끝까지 쫓아다니며 그를 괴롭힌다는 것이었다.

“지금 가서 불러 올까요?”

시험지와 답을 전달해 주긴 했지만, 그 학생들이 문제를 풀어봤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이경구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끝났네.’

90년 일생의 절반 이상을 귀족들과 심리싸움으로 보냈다. 대의명분을 가지고 시우를 휘두르려는 귀족들을 논리로 박살내고 그들의 재산을 뜯어냈다.

피와 살이 튀기는 전쟁보다 더 질척한 목숨을 건 말싸움을 해온 시우에게 나이 먹은 것이 직위라고 생각하며 도덕적인 척 위선을 떨어대는 이경구는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돼, 됐어. 그만 가봐.”

“그냥 가라뇨? 어디로요?”

“교실로 돌아가라고 자식아!”

“선생님 잊으신 게 있는데요?”

“뭐!”

“사과요.”

시우의 말에 이경구의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야 인마!”

“지금 제가 부정행위 하지 않았다는 걸 인정하신 거잖아요?”

“······.”

“그럼 사과 하셔야죠.”

이경구는 분을 참지 못하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때, 한쪽에서 지켜보던 교감 선생이 나서서 시우를 말렸다.

“이봐요. 시우 학생 이쯤 하면 됐어요. 그만 하고 교실로 돌아가요.”

“그렇겐 못하겠는데요?”

“뭐?”

교감이 나섰음에도 시우의 행동에 변함이 없자 다른 선생들도 하나 둘 시우에게 날카로운 눈빛을 날리기 시작했다.

“학생 상담실로 불러 저에게 의혹에 대해 물어 본 것도 아니고. 교무실로 불러 제가 부정행위 했다고 이야길 하셨죠? 교무실에 계신 선생님들이 다 들었고, 여기 있던 학생들이 다 들었습니다. 명예훼손죄와 모욕죄에 해당하는 일인데. 이게 그냥 넘어갈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끙. 이 선생. 얼른 사과하세요.”

“아니죠. 공식적으로 저에게 피해를 주셨으니 사과도 공식적으로 해 주시죠.”

“최시우 학생! 그만 해요! 저번 일도 그렇고 이번 일도 그렇고 시우 학생이 우리 중곡고에 얼마나 많은 피해를 줬는지 잊었어요?”

“그게 제 잘못입니까? 잘못된 것을 보고 들어도 고칠 생각 없이 피하기만 한 선생님들 잘못이죠. 제가 왕따 당한다고 이야기 했을 때도 빨리 나서 주셨으면 그런 일은 없었겠죠.”

교감도 더 이상 시우의 말에 대꾸할 수 없었다.

“끙, 그럼 어떻게 하길 바라는 겁니까?”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공식적인 사과문을 작성해서 게시판에 걸어 주세요. 기한은 3일 이내입니다.”

“이 새끼가 지금 날 뭐로 보고!”

이경구의 분노가 끝내 폭발해 버렸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이경구는 시우의 뺨을 후려쳤지만, 그의 손은 가볍게 시우의 손에 잡혔다.

“아악!”

시우는 손을 빼내려는 이경구의 손목을 부러뜨릴 듯 강하게 쥐며 한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었다.

“제가 오늘 교무실에서 한 이야기도 녹음 되어 있습니다. 3일 이내 이행 안 되면, 교육청은 물론이고 관심가질 만한 곳에 다 제보 할 겁니다. 이번엔 진짜 학교 한번 뒤집어 지겠네요.”

시우는 이경구는 내던지듯 그의 손을 던졌고, 이경구는 바닥에 너부러졌다.

“어우, 요즘 애들 너무 영악해.”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한탄 어린 말이 비참한 이경구를 위로해주진 못했다.

사과문은 다음날 정문 옆 게시판에 걸렸다.

자필로 작성된 이경구의 사과문은 근거 없는 의혹으로 시우에게 괜한 오해를 만들었고, 그로 인해 시우의 순수한 노력이 지저분한 의혹으로 변한 것에 대해 사과한다는 내용이 주였다.

더불어 이경구는 일신상의 사유로 사표를 제출했다.

공공연하게 떠도는 시험지 유출 건에 대해 학교 재단이 더 이상의 의혹을 없애고자 이경구를 압박했고, 이경구는 내부적인 책임을 지고 자진 사표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시우의 일이 알려지자 시우는 학교에서 일약 스타가 되었다.

교무실에서 선생들을 상대로 당당하게 대화하고 말로써 자신의 의혹을 벗은 것과 사과문까지 받아 낸 것에 대한 이야기가 전교에 가득 퍼졌다.

더구나 학생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던 시험지 유출이 시우의 일로 인해 더 이상 없을 것이라 예상되면서 시우는 학생들 사이에 영웅 같은 존재로 떠올랐다.

우빈과 함께 다니기에 우빈에 가려져 있던 시우의 진면목이 드러나자 여학생들이 하나 둘 시우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는 소혜에게 이유 모를 불안감을 안겼다.

시우가 자신의 성적표를 집에 가져가자 가족들은 다들 말을 잊었다.

맨 처음 입을 연 것이 민서

“오빠, 아무리 그래도 성적표 조작은 좀 너무 한 거 아냐?”

밉살맞은 민서의 말에 엄마는 민서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허튼 소리 하지마! 네 오빠가 그럴 사람이야?”

아빠는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잘했다’는 말 뿐이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눈물을 감추는 모습에 엄마도 감정이 격해졌는지 시우를 끌어당겨 안았다.

겉은 애여도 속은 노인인지라 엄마 품에 안기는 것이 여간 어색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시우는 어린애로 돌아가 엄마 품에 가만히 안겨 있었다.

“잘했다. 잘했어. 그 힘든 시기에. 넌 어쩜 이렇게 강하니.”

시우가 왕따를 당해 왔다는 걸 알았을 때. 늦은 밤 얼마나 그렇게 울었는지 모른다. 5천만 원이란 엄청난 액수의 보상금을 볼 때마다 내 자식이 그만큼 고통스러웠다는 것에 대해, 또 그만치 갚아 주지 못하는 약한 부모라는 생각에 가슴 응어리가 가득 차 있었다.

그런 아들이 그 괴로운 시간 속에서 공부를 해냈다는 것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남편의 실직과 창업의 고된 노동으로 하루하루가 힘든 그녀였지만 시우만 생각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그럼 오늘 소고기 먹는 거야?”

엄마 아빠가 울려고 하자 민서가 분위기를 쇄신시키기 위해 얘기했다.

“으이그! 넌 맨날 먹는 거 먹는 거 어떻게 한 배에서 나왔는데 이렇게 달라!”

“좋은 건 오빠가 다 가져갔나보지.”

엄마와 민서가 티격 거리자 시우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나가서 외식해요. 저도 소고기 먹고 싶어요.”

“힘을 합쳐서 적을 대비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화면 안에 머리는 삭발하고 하얀 수염을 길게 기른 혜광이 잠시 고민하듯 눈을 감았다 떴다.

“그렇다면 어디서 모이는 것이 좋을까요?”

“···그건.”

혜광의 이야기에 정형진이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정가가 정가를 떠날 수 없듯 저희 또한 사찰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 않으십니까.”

지지부진한 두 사람의 대화에 결국 성미를 참지 못한 남궁혜자가 형진을 밀치고 화면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야이 땡중아! 뭘 그렇게 머리를 굴리냐. 그냥 비워두고 올라와라. 그깟 사찰 내 다시 지어주마.”

“허허, 보살님께선 성미가 여전하십니다.”

혜광의 사람 좋은 웃음으로 그렇게 넘기자. 남궁혜자가 더욱 분노를 터트렸다.

“보살? 이 자식이 너랑 나랑 나이 차가 얼만데 보살?”

“할머님. 제가 얘기 하겠습니다.”

만나기만 하면 투닥 거리는 두 사람의 모습을 잘 아는 형진이 재빨리 끼어들려 했지만, 남궁혜자의 금남수에 제압되어 움직이지 못했다.

“넌 가만히 있어! 이놈아! 지금 사태가 그렇게 느긋한 사태가 아냐! 암흑회 놈들이랑 붙었던 본가의 아해의 말에 의하면 분명 알 수 없는 힘을 숨기고 있다고 했다. 중국에서도 일본의 움직임을 계속 주시하고 있고. 이렇게 뿔뿔이 흩어진 채로 상대했단 피해가 더욱 심각해 질 것이야.”

“···저 또한 풍문으로 들어 알고 있습니다. 야토가미와 손잡은 암흑회가 돌이킬 수 없는 힘에 손을 대었다는 걸. 하지만 보타암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저놈의 자존심이 문제다.

지금이야 서로 형제 같이 친하게 지낸다 하더라도 그 뿌리를 타고 올라가면 서로 경쟁하던 상대들이다.

각자의 후예들이 서로의 힘이 강하다 비교하는 것은 천년이 다 되어 가는 시간 속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속세의 많은 형제들이 도우겠다 나섰으니 그리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멍청한 땡중 같으니!”

남궁혜자는 결국 분을 참지 못하고 화면에 장을 날렸다.

노트북이 박살나면서 연결이 끊겨 버렸고, 남궁혜자는 분을 삭이지 못하는 듯 한동안 거침 숨을 내쉬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한국 땅이 중국처럼 그리 넓은 것도 아니고. 차로 가면 금방 갈 수 있습니다. 더구나 해방 이후에 보타암도 계속 힘을 길러 오지 않았습니까.”

“그걸 몰라서 이러겠느냐. 100년 전에도 힘은 있었다. 그럼에도 당했다.”

“어머니. 이미 세월이 많이 지났습니다. 100년 전과 똑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암흑회가 들어올 만한 모든 항구에 사람들을 심어 놨습니다. 설사 그럴 리는 없겠지만 비행기를 타고 온 다해도, 예전처럼 기습당하진 않을 겁니다.”

자식들의 계속된 말에 남궁혜자도 결국 화를 식힐 수밖에 없었다. 집 안의 가장 큰 어른인 자신이 불안감을 내비치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리라.

“그래. 알았으니 그만 가서 일 보거라.”

남궁혜자는 그렇게 얘기하며 혜강에 대한 분노를 곱씹고 또 곱씹었다.

사위는 어둠에 잠겼고, 불빛이라곤 도로 위에 부착되어 깜빡이는 작은 불빛 밖에 없었다.

한국으로 가기 위해 모든 전투 인원들이 항구에 모였던 백면궁은 한 통의 전화 때문에 발길을 돌려 이곳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쪽발이들···.”

금포를 입은 백면궁의 궁주 박거산이 이를 갈며 이야기 하자 흑포를 입은 층단주 배동혁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궁주님.”

“알고 있다. 들을 테면 들으라 해라.”

배동혁은 박거산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기에 입을 다물었다.

무려 반세기 넘는 시간이었다.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준비한 대업을 실행하기 직전 야토가미의 애송이는 전화 한통화로 백면궁을 이곳으로 이끌었다.

“오랜만이요. 박 궁주.”

자신들을 이곳으로 이끈 이가 어둠속에서 일단의 무리들과 함께 백면궁 앞에 나타났다.

맨 앞의 선 청년은 평범한 검은 색 기모노에 두 개의 일본도를 착용하고 있었고, 뒤에 이 열로 선 이들은 음양사들이 입는 다는 정의(淨衣)에 흰색 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였다.

“대체 무슨 급한 일이 있기에 이리 무례하게 군단 말이오.”

박거산의 엄숙한 음성에도 청년은 느긋하기 그지없었다.

“이 몸이 그대들의 일정에 동참하려 하오.”

“그게 무슨 소리요? 우리가 놀러 가는 줄 아시오?”

“궁주. 머리 없는 짐승은 자신이 가야할 길을 알지 못하오. 또한 때로 본능에 기대어 일을 저질러 버리기도 하오.”

청년의 말에 박거산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내 듣자하니 배의 목적지가 인천이었다고 하던데. 왜 적진 한가운데 들어가려 하셨오?”

“여주나 인천이나 어차피 상대해야 하는 건 매 한가지요.”

“쯧쯧. 내 이것 때문에 이렇게 온 것이오. 머리가 있어도 생각이란 걸 하지 못하니.”

으드득.

박거산은 청년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이를 물었다.

“당연히 아래에서부터 치고 올라가 퇴로를 확보해야 하는 것이 전투에 기본 아니오? 대체 반세기 동안 뭘 하셨나?”

“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요. 한국 지배는 우리에게 맡긴다 하지 않았소?”

“이런 박 궁주 뭔가 잘못 알고 있소. 한국 지배는 우리가 하는 것이고 관리를 당신들이 하는 것이오.”

박 거산이 배신감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듣자하니 한국에 재미난 사내가 있다던데. 귀능갑과 흑령갑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했다는.”

“······그자라면, 서울에 있소. 인천으로 가야 하오.”

“쯧쯧. 100년이 지나도 이리 발전이 없으니 한국 관리는 잘 하려나.”

“무슨 소릴 하고 싶은 거요?”

“오오가미의 오오가미께서 이런 말을 하시었소. 조센징을 잡을 땐. 가까이 있는 조센징부터 잡아라. 가까이 있는 조센징을 잡다 보면, 하나, 하나 나올 테니 차근차근 잡으면 된다고.”

배동혁은 더 이상 두 사람의 대화를 두고 보다 간 박거산이 폭발할 것 같아 재빠르게 끼어들었다.

“하지만 인천으로 가든 여주로 가든 배는 타고 가야 하는데. 어찌 저희를 이쪽으로 부르셨습니까?”

“아아, 그건 이 몸께서 배 멀미가 있어서.”

박거산은 이제 분을 참지 못하고 검을 빼들려 했다.

“그래서 이걸 준비했소.”

청년이 소매가 긴 팔을 휘두르자 어둠만 가득하던 곳에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빛이 켜지기 시작할 때마다 백면궁주 박거산과 백면궁의 무사들의 눈도 같이 커지기 시작했다.

< 38 > 끝

ⓒ 진(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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