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다크위저드-34화 (34/200)

< 34 >

“야토가미가 그렇게 무서운 존재 입니까?”

암흑회 정보원의 머리에서 뽑아낸 정보 덕분에 시우는 야토가미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단면적인 정보로 그들의 힘에 대해선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시우의 질문에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그 정적이 한참이나 진행 된 이후에야 남궁혜자가 입을 열었다.

“우리 상계(上界)의 힘은 고대 중국에서 시작되어 우리를 거쳐 일본까지 전달되었다. 물론 그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에게서 그 힘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지. 어쨌든 그 무구한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대륙과 한반도에는 무수히 많은 무공의 고수들이 나고 사라졌다. 무공은 때론 발전하기도 하고 퇴보하기도 했지만 그 본질은 언제나 변하지 않았지.”

남궁혜자가 아득히 먼 옛날을 더듬어 보듯 허공을 바라보며 이야기 하다 이내 날카로운 눈빛으로 시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일본은 달랐다. 그들은 우리가 전통을 이어오는 동안 자신들 안에서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힘을 만들어 냈고 ······그 힘을 가지고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우린 힘 한번 쓰지 못하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끔찍한 세월이었지.”

남궁혜자의 이야기를 알고 있던 정가의 사람들도 무거운 침묵을 이어갔다.

“어떤 류의 힘이기에 단일 세력으로 그 많은 사람들을 상대할 수 있죠?”

“그들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힘을 쓴다. 하나는 공력(功力).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귀력(鬼力).

“호오, 귀신의 힘을 쓴다는 말입니까?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 거죠?”

시우의 물음에 남궁혜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우리도 모른단다. 그저 그자들과 대적하여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가 구전으로 내려올 뿐. 기본적으로 상계(上界)는 서로간의 교류가 없으니까. 어쨌든 야토가미가 중국 대륙에 발을 내딛었을 때. 그들에 대적하던 중국 상계(上界)의 세력 여섯 개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만약 일본의 패전 선언이 없었다면, 각 상계(上界)의 모습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거네.”

“안타깝지만, 우린 그저 그들을 기다릴 수밖에 없네.”

“만약 야토가미가 이곳에 발을 디디려 한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시우의 물음에 순지가 무겁게 답했다.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

순지의 말에 남궁혜자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걱정 말거라. 그런 일이 있다면 중국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시우는 당장이라도 암흑회 본진으로 찾아가 백면궁에 기거하는 개미새끼 한 마리까지 모두 지워버리려 했지만 야토가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을 바꾸었다.

야토가미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건 시우에게 그건 두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어쨌든 시우에게도 그들을 상대할 만큼의 힘을 갖는 시간이 필요했다.

‘어차피 암흑회는 나를 찾으러 올 수밖에 없으니까.’

암흑회는 자신이 안배해 놓은 선물을 받고 나면 기를 쓰고 올 것 이고 그때까지 시우는 그동안 게으름 피웠던 서클 올리는 것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암흑회에 대한 대비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우선 상계의 사람들을 모으고 준비를 해야겠지. 암흑회가 한국에 돌아오려 한다면 가장 큰 세력인 우리와 보타암을 노릴 것이 분명하니. 아참 보타암은 아느냐?”

“대충 들어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 가장 오래된 상계(上界)의 세력 중 하나라고요.”

“얼마 전까지 상계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 몰랐던 것 치곤 정보가 많구나.”

“정보가 곧 힘 아니겠습니까?”

시우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왜 벌써 가려는 것이냐?”

남궁혜자의 말에 시우가 말했다.

“소혜도 집으로 돌려보내고, 저도 이제 집에 가봐야죠.”

“그 민간인 아이 말하는 것이냐? 그 아이라면 주술사가 오기 전엔 돌려보낼 수 없다.”

“기억 조작이라면 저도 꽤 할 줄 압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시우는 우빈을 불러 태백전을 나갔다.

시우가 나간 뒤 정순지가 남궁혜자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어머니?”

“아직 모르겠다만, 가까이 두어 손해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무사들을 뽑아 시우의 가족을 지키도록 하려무나. 가족을 애틋하게 생각하는 것 같으니.”

“알겠습니다.”

소혜는 몽롱한 정신으로 잠에서 깼다.

주기적인 전자 신호음과 까끌거리는 모포의 감촉에 자신이 누워있는 곳이 낯선 곳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일어났어?”

처음 소혜에게 말을 건 것은 우빈이었다. 그 옆으로 시우가 말없이 소혜를 보고 있었다.

“괜찮아? 갑자기 쓰러져서 걱정 많이 했어.”

우빈의 말에 소혜는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자신이 쓰러진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다.

“내가 쓰러졌다고?”

“응, 집에 가는 길에 갑자기 쓰러져서 응급실로 왔어. 기억 안나?”

“머리가··· 지끈거려.”

“의사 선생님 불러 올게. 잠시만 있어.”

우빈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시우가 다가가자 소혜가 시우에게 물었다.

“혹시··· 우빈이 많이 다치지 않았어?”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분명 우빈이 다치는 것 같은 장면을 본 것 같은 데. 꿈이었나? 너무 생생했거든. 등에 큰 상처가 나고 피를 흘리고.”

“반장. 공부를 너무 많이 했나보네. 우빈이 봐. 멀쩡하잖아.”

시우가 간호사들과 시시덕거리고 있는 우빈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니, 뭔가 정말 생생했는데.”

우빈이 다시 돌아오자 시우가 우빈을 돌려 세우며 교복을 들어 등허리를 보여주었다.

갑작스런 행동에 우빈이 깜짝 놀랐지만,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등을 보고 소혜는 더욱 혼란스런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자. 아마 피곤이 쌓여서 그런 걸 수도 있어.”

“그, 그런가···.”

병원의 연락을 받은 소혜의 부모님은 곧장 병원으로 달려왔고, 부모님의 금지옥엽 딸이었던 소혜는 부모님의 성화로 며칠간 강제로 병원에 입원 할 수밖에 없었다.

미화관

정·재계의 주요 인사들만이 출입할 수 있고, 자격이 되지 않는 다면 예약대기만 몇 개월씩 기다려야 할 정도로 성황리에 장사가 잘 되는 곳이었지만, 오늘은 한 사람의 중요한 손님을 위해 모든 영업을 중지한 상태였다.

미화관의 대문으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년이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최시우님.”

대문 앞으로 정렬해 있던 직원들이 시우를 향해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한세아가 단정한 한복차림으로 서 있었다.

“이런 환대는 좀 부담스러운데요.”

“지난번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자격이 있는 분에게 그에 걸 맞는 대접을 해드리는 것이 저희 미화관의 규칙입니다.”

“어째 저번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은 거 같군요.”

“후훗, 들어가실까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방 안엔 두 사람이 먹기엔 과도한 양의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시우는 차려진 음식을 먹었지만, 세아는 그저 옆에서 시우의 밥상 시중을 들 뿐이었다. 식사가 마무리 되자, 음식상이 나가고 작은 다과상이 들어왔다.

세아가 찻잔에 찻물을 따르자 두 사람의 대화는 시작됐다.

“지난 번 전투 중에 사망한 자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유족들에게 충분한 보상과 연금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것으로 납득하던가요?”

“전투 중에 사망한 인원의 동료들이 유족들을 또 따로 챙기고 있습니다. 자세히 이야기 할 순 없었지만 헛된 죽음으로 만들지 않겠다. 약속했습니다.”

“결국 상계(上界)에 발을 들이겠다는 이야기군요.”

“네. 소녀, 지난번의 일로 오랫동안 고심했습니다.”

“그게 뭐죠?”

세아는 입가의 미소를 지우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녀의 생각과 달리 상계의 힘이란 상상이상으로 거대했습니다. 더구나 한국 상계(上界)가 일본이나 중국에 비하여 낮은 위치를 갖는 걸 생각하면 수백 년을 이어온 상계의 힘 앞에 저희는 미약한 존재일 뿐이고요.”

시우는 조용히 찻잔을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제가 모든 것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냥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세상엔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나을 때도 있으니까.”

“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올라가길 바라게 되었습니다.”

“왜죠?”

“몰랐다고 해서 그들의 힘과 권력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시우는 세아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힘과 권력을 얻는 건 힘든 일이다. 괴로운 일이고 어려운 일이다. 조금 편하게 안주하며 산다면 힘과 권력이 없어도 사는 것에 지장이 없겠지만, 그렇게 쌓아올린 공든 탑은 언제나 힘과 권력이 있는 사람 앞에 아슬하게 쌓아올린 젠가 타워처럼 무너진다.

“하지만 어떻게 상계(上界)에 들어갈 힘을 얻을 생각이죠? 상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에 굉장한 거부반응을 보이던데요.”

시우의 말에 세아가 활짝 웃어 보였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상계(上界)에서 적을 두지 않고 있으면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계신 분이 누굴지.”

“저를 얘기하는 거라면 이미 거절했죠.”

“네. 시우님께선 미화관의 사람이 되어 주실 수 없다 했지요.”

고개를 숙였던 세아가 고개를 들고 시우의 두 눈을 똑바로 처다 보았다.

“그렇다면 미화관이 시우님의 것이 된다면 어떠실까요?”

시우가 세아의 말에 물었다.

“내 것이 된다?”

“저를 포함한 모든 직원들의 생사여탈권과 미화관이 가진 모든 자산을 시우님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미화관 정도의 대단한 집단이 스스로 한 사람의 밑에 들어가려 하는 이유는 뭐죠?”

태백정가와의 정반대되는 행동에 시우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물었다.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겉보기에 자신은 18살의 고등학생일 뿐이다.

태백정가를 쓸어버릴 힘을 가지고 있지만, 태백정가는 그것을 직접 보기 전까진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세아는 태백정가에 비교해 훨씬 작은 정보를 가졌음에도 시우에 대한 평가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시우님의 보이지 않는 진정한 힘의 크기는···.”

암흑회와의 일이 있은 후로, 세아의 모든 생각은 시우를 향해 있었다. 그가 보인 능력 그의 성격, 그의 생각 등등. 눈에 보이는 정보들을 기준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들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고성능 컴퓨터와 같은 그녀의 두뇌가 내린 결론이 바로 이것이었다.

“미화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볼수록 놀라운 여자다. 상대를 과대평가하지도 과소평가하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 가진 정보를 바탕으로 진리를 꿰뚫는다. 그녀가 상계(上界)에 목을 매는 건 어쩌면 당연한 본능인 것 같았다.

“재밌는 제안이지만, 거절하죠. 전 세력을 만들고 상계에 관여할 생각이 없으니까.”

“혹시 저희를 믿지 못하셔서 그러신가요? 그런 거라면 어떤 방법을 써서든 저희를 제약하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런 게 아니에요. 내가 부하를 두면, 그들을 보살펴야하고, 지켜 줘야하고, 키워 줘야하고, 위해 줘야하고, 책임 져야 하니까. 그게 귀찮아서 그런 거죠.”

세아는 시우의 말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우님께서 언제든 사라지라 하실 때 사라지고 나타나라 하실 때 나타나겠습니다.”

완전한 복속의 의지까지 드러내는 세아의 태도에 시우는 더 이상 그녀의 뜻을 거절할 수 없었다.

거기에 괜한 짓이긴 했지만, 어쨌든 자신의 가족을 지키다 죽은 사람들의 대가도 치르려 했었다. 부하를 두는 걸 원치는 않았지만, 한세아 같은 인물을 자신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시우의 입장에서도 썩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후회할 거예요. 내 사람이 된다는 건 꽤 힘든 일이니까.”

“제가 판단한 바론, 시우님 사람이 되어서 저희가 손해 볼 일은 없을 겁니다.”

“아까 미화관 전체라고 했는데. 그 모든 사람들을 상계(上界)로 들일 생각인가요?”

“미화관에서 일하는 이들은 모두 고아입니다.”

“고아?”

“네. 모두 고아원에서 자라 오직 미화관만이 집이고 가족인 사람들만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론 세력을 만들기 위해 가장 좋은 체제인 거네요?”

“미화관이 취급하는 정보는 사람 목숨 하나 둘과는 바꿀 수 없는 무거운 것입니다. 함부로 외부인을 들일 수는 없습니다.”

“좋아요. 그렇게 까지 각오가 되었다면 딱 한 가지만 얘기하죠. 명령은 절대적이에요. 그 어떤 명령에라도 불복은 인정할 수 없어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론 소녀에게 말씀을 편하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시우님께서 저희에게 거리를 두는 것 같아 불편합니다.”

“좋아. 난 그쪽을 뭐라 부르지?”

“세아야~ 라고 불러주시면 어떨까요?”

“···관주라고 부르면 되겠네.”

“후훗,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암흑회를 쓸어버릴 생각이야. 하지만 일본엔 야토가미란 단체가 있어서 들어가선 안 된다고 하네.”

“그럼 야토가미에 대해서 파볼까요?”

“아니. 어차피 그들은 만날 때 되면 만나게 될 테니까. 그보단 관주가 해줘야 할 일이 있어.”

“뭔가요?”

시우는 예의 그 호주머니에서 나올 수 없는 크기의 특이한 모형체를 꺼내었다.

축구공 정도의 크기에 모형체는 투명색의 수정구와 그 수정구를 받치고 있는 나무뿌리 모양의 받침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걸로 뭘 해야 하나요?”

세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시우를 바라봤다.

시우는 대답대신 수정구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 움직였다.

그러자 투명한 수정구의 내부가 조금씩 색깔이 스며들면서 수정구 내부에서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방 내부엔 세아가 간접 조명으로 켜 두었던 촛불들이 하나씩 날아와 수정구 위에 둥둥 떠오르기 시작했다.

모인 불꽃은 종국에 사람 모양으로 변해갔다.

온 몸이 불에 타오르고 있는 아주 작은 소인의 모습이었다.

세아가 경악을 금치 못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시우는 가볍게 말했다.

“우선 힘을 길러.”

< 34 > 끝

ⓒ 진(JIN)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