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
비행마법을 최대로 펼친 시우는 곧장 부모님이 운영하는 ‘자매치킨’으로 향했다.
흑포 사내의 이야기에 시우가 분노하긴 했지만, 사실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지혜와 성창파의 사건 이후로, 시우는 언제든 자신을 노리는 누군가가 자신의 가족을 볼모로 잡을 거란 예상을 하고 있었고 그에 대한 대비도 하고 있었다.
지혜에게 해준 것처럼 마정석을 사용해 아티팩트를 제작해 주면 좋았겠지만, 부모님 두 분다 일하는 동안 방해 된다고 액세서리를 전혀 착용하지 않았고, 유행에 민감한 민서 또한 한 가지 액세서리를 매일 착용하고 다니길 바라는 것은 사치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핸드폰에 마법진을 새기는 것.
마나를 충전시켜 놓을 매개체의 부제 때문에 매일 밤마다 각자의 핸드폰을 만지며 마나를 충전시켜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었지만, 가족의 안전을 생각하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행이 아무 반응 없었지.’
흑포 사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나감응으로 연결 시켜 놓은 마법진을 통해 세 사람 다 무사한 상태라는 것을 알았기에 흑포 사내를 마무리 짓고 나설 수 있었다.
자매치킨 입구에 다다르자, 특수부대 전투복을 챙겨 입은 것으로 보이는 이들 몇몇이 부상을 당한 채 가게 주변에 앉아 있었다.
“미화관에서 나오신 분들입니까?”
시우의 물음에 한쪽에 앉아 있던 사내가 일어서 말했다.
“네. 근데 지금···.”
사내는 지금 상황에 대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혼란을 겪고 있었다.
한세아의 명령으로 시우의 부모를 보호하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흰색의 도복과 비슷한 복장을 한 사내들이 ‘자매치킨’으로 들어가려 했고,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불문율을 깨고 그들 앞에 나섰다.
대부분이 특수부대의 출신으로 전투에 특화 되어 있는 사람들임에도 특이한 복색을 한 두 사람에겐 상대도 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두 명의 대원이 죽었고, 대부분이 전투 불능의 부상을 입었다.
자신들 뿐만 아니라 보호 대상이었던 시우의 부모의 목숨마저 위험한 상황에서 검을 든 남녀들이 나타나 흰색의 복장을 한 이들과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고, 싸움이 격화되기 직전 시우의 부모님과 함께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 기이한 일에 대해서 사내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곤란해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알고 있습니다. 잠시 몸을 추스르고 계세요.”
시우는 볼펜을 휘둘러 완드로 만들고 눈앞에 펼쳐진 만경진을 찢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시우의 기이한 행동을 지켜보던 사내는 입을 벌리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사내 옆에 앉아 있던 대원 하나가 사내에게 다가와 물었다.
“대장,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나, 나도 모르겠다. 사람이 사라지질 않나.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이 찢어지질 않나.”
공간 안으로 들어선 시우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열 댓 명의 태백 정가 사람들이 암흑회의 백면인 둘을 상대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상황에서도 태백정가의 사람들은 백면인들이 인질로 잡은 시우의 부모 때문에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시우야!”
우빈이 외치자 태백 정가의 사람들이 뒤편에서 오는 시우를 바라보며, 길을 터 주었다.
“수고했어.”
우빈을 바라보지도 않고 가볍게 인사한 시우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백면인들을 향해 걸어갔다.
“더 이상 다가오지 마라!”
백면인 하나가 시우의 어머니인 김서영의 목에 칼을 대고 외쳤다.
김서영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도 자신의 아들이 사지에 들어왔다는 놀라움이 더 컸다.
“시우야! 여기서 나가! 얼른 경찰서! 경찰서로 가!”
“잠시만 주무시고 계세요. 어머니.”
시우가 완드를 휘두르자. 김서영과 최창호가 무겁게 떨어지는 눈꺼풀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말로는 알아먹질 못하는 군.”
최창호의 목에 칼을 대고 있던 백면인이 그대로 최창호의 목을 잘라 내려 했다.
움찔.
하지만 그의 팔은 무언가에 속박된 듯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백면인이 자신의 팔을 바라보자, 어느새 검은색의 액체가 다리부터 시작해 몸과 팔을 감고 목까지 감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팔을 감은 검은 액체에서 시뻘건 눈알 하나와 송곳니로 가득한 이빨이 튀어나와 기괴하게 웃고 있었다.
“너희 같은 자들이 몇이나 이곳에 있느냐?”
시우의 물음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백면인들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직감했다.
“말 할 것 같으냐?”
“말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시우가 팔과 발을 향해 완드를 살짝 살짝 휘두르자 그의 팔과 다리가 부러지며 신경을 찢어 발겼다.
“크아아악!”
“다시 한 번 묻겠다. 한국에 들어온 암흑회 인원이 몇이나 되느냐?”
“본 궁의 궁도들은 대업을 위해 얼마든지 목숨 받혀···. 크아아악!”
시우의 완드가 다시 한 번 휘둘러졌고, 백면인은 두 팔과 두 다리가 서로 돌아가면 안되는 방향으로 돌아가 있었다.
“한국에 들어온 암흑회 인원이 몇이나 되느냐?”
“크으윽. 끄어어어억!”
고관절과 갈비뼈까지 모두 부러졌지만, 그 고통을 풀대 없는 백면인은 자신의 머리로 바닥을 찧으며 괴성을 내질렀다.
“먹어 치워라.”
시우의 말에 백면인의 팔에 돋아났던 입과 눈이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뱉으며 백면인의 팔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아그작. 아그작.
“크아아악! 끄아악!”
결연하게 입을 다물던 백면인은 자신의 손과 발에 조금씩 사라지는 고통을 끊임없이 느끼다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시우는 남아 있는 백면인을 향해 다가갔다.
“한국에 들어온 암흑회 인원이 몇이나 되느냐?”
백면인은 대답대신 혀를 오물거리고 있었다. 시우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완드로 그의 입을 가리켰고, 그와 동시에 굳게 다물었던 백면인의 입이 쩍 벌어지며, 이빨 모양의 독약 캡슐이 빠져 나왔다.
“한국에 들어온 암흑회 인원이 몇이나 되느냐?”
“날 죽인다 해도 원하는 정보는 얻지 못할 것이다!”
이후는 같은 과정의 반복이었다.
백면인들은 온 몸의 팔이 부러지는 고통을 한번, 그리고 온 몸이 물어뜯기는 고통을 한번 당한 후에야 숨을 거뒀다. 엄청난 고통에 몇 번이나 혼절을 했지만, 그때마다 시우의 완드가 휘둘러지며 백면인의 정신을 깨웠다.
주변이 정리되자, 시우는 자신의 부모를 한쪽으로 모은 후에 호주머니에서 주문서 하나를 꺼내었다.
그리곤 주문서를 찢기 직전 우빈을 향해 말했다.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시우의 말과 동시에 마법진이 빛을 발하며 세 사람의 모습이 만경진 안에서 사라졌다.
“방금 대체 뭐였니?”
“나, 나한테 묻지마. 나도 몰라.”
우빈은 그동안 시우의 정체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덤볐던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중이었다.
부모님을 집에 눕힌 시우는 약간의 정신 마법을 이용해, 기억을 흐릿하게 만들고, 새로운 기억을 덧붙였다.
두 사람이 피곤해서 집에 일찍 왔고, 안 좋은 악몽을 꾼 것으로.
이제 시간차를 두고 일어난 두 사람은 방금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선 정확하게 기억하지도 못할 것이다.
마무리를 한 시우는 다시금 주문서 한 장을 더 꺼내어 찢으면서 투덜거렸다.
“6서클에 올라야겠군. 귀찮네.”
시우가 오기 전까지 만경진 안에 갇혀 있던 태백정가의 사람들은 시우의 도움으로 만경진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시우님! 괜찮으십니까!”
만경진에서 나오자. 소식을 받고 달려온 세아가 시우의 몸을 확인하며 물었다.
“괜찮아요. 그쪽 피해는 어때요?”
“전투 중에 두 사람이 사망했고 다른 이들은 괜찮습니다.”
“저런···.”
시우가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 상황을 설명했던 사내를 보았다. 사내의 얼굴엔 수심이 깊었다.
아마 사내와 그의 대원들도 이런 상황을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대한민국엔 총이 없고, 그들은 특수 훈련을 받은 최상급 전사들이었다. 그런데도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현 세계에서의 상계(上界)의 힘이란 그런 것이었다.
“괜찮겠어요? 뭣하면 기억을 조절해 줄 수 있는데.”
시우의 말에 세아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앞으로 저들이 겪을 일에 비하면 이제 시작일 겁니다.”
“하지만 저쪽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시우가 태백 정가의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건 시우님께서 소개해 주시어요. 저는 결정을 했고, 저희 사람들은 저의 결정을 따라 올 겁니다.”
만경진을 빠져나온 우빈은 이곳에 세아가 나타났다는 것에 큰 혼란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처럼 시우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는 것에 더 큰 혼란을 느끼는 중이었다.
세아와 시우가 소빈과 우빈 앞으로 다가왔다.
시우가 소빈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직 시우와 껄끄러운 감정이 남아 있던 소빈의 태도는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시우도 그걸 알기에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은 이쪽 한세아씨의 사람들입니다. 한세아씨는 미화관이라는 정보단체를 운영하고 있고 저와 함께 일을 하는 분이십니다.”
“안녕하십니까. 한세아라고 합니다. 우빈님과는 구면이죠?”
세아가 웃음 지으며 이야기 하자 우빈은 아무 말 못하고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정가의 소빈이라고 합니다. 이번 일에 대해선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시우가 자신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선수를 친 만큼 소빈은 그에 대해 확실하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상계(上界)와 현실세계는 분리 되어 있어야 한다. 민간인에게 이 막강하고 거대한 힘이 들어나는 것은 언제나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았다.
“인정받을지 모르겠지만, 미화관에 대해선 제가 책임질 생각입니다. 그 동안은 어떻게 처리해 오셨습니까?”
“오래전부터 중국의 주술을 이용해 기억을 조작해 왔습니다. 주술이 안 통하는 사람들도 있기에 그런 경우는 상계의 사람이 되곤 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 정도라면 제가 충분히 책임 질 수 있습니다. 제가 아직 할 일이 남았으니, 이따 정가로 찾아가도 되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소빈과 대화를 마친 시우는 곧장 세아에게도 말했다.
“죽은 사람들에 대해선 어떻게 보상해야 하죠?”
“···그들은, 시우님의 책임이 아니니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사람들이니 제가 책임지는 게 당연합니다.”
“오늘 일에 대한 대가는 조만간 치루죠.”
그렇게 대화를 모두 끝낸 시우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몸에 투명 마법을 걸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퍼퍼펑!
일전과 똑같은 수준의 빠르기로 날아올랐고, 세아와 소빈 일행은 지상에서 날아드는 공기의 폭풍에 휘청거리는 몸을 바로 잡아야 했다.
“대체 저자는···.”
시우의 신위에 놀람을 금치 못하던 소빈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디 있냐.”
서울 상공에 몸을 띄운 시우는 까마귀 모양의 [패밀리어] 수 십 마리를 서울 상공 곳곳에 뿌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까마귀 떼의 출연에 사람들이 한 번 씩 눈길을 보내긴 했지만 다들 잠깐 불길하다는 기분만 받을 뿐 이상한 점은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시우는 그렇게 뿌린 패밀리어를 이용해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암흑회, 혹은 백면궁이라 불리는 이들의 존재.
시우를 잡기 위해 무사를 보냈지만, 단지 그들만 보냈을 리가 없다 생각한 시우였다.
패밀리어를 통해 [뷰 마나 포스]로 암흑회와 비슷한 패턴의 기로를 가진 무사를 찾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시우의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세 명의 존재가 확인 되었다.
“거기 숨어 있었더냐.”
시우는 처음 암흑회와 비슷한 기로를 가진 자를 향해 비행하기 시작했다.
박병철은 대로변에 숨어 통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몰살입니다. 몰살. 모두 죽었다고요.”
먼 발치에서 자신이 본 것들을 소상히 이야기 하는 박병철은 전화 상대방이 자신의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하자 답답한 심정을 내비쳤다.
“처음 보는 능력입니다. 만경진을 마음대로 들락날락 하고, 흑면당주를 집어 삼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했어요.”
몇 번이나 같은 이야기를 했지만, 상대방은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나 다시 물었다. 답답하지만 그 심정이 이해는 갔다. 자신 또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지 못했다면 믿을 리 없었을 것이다.
“네. 시체도 못 봤습니다. 만경진 안에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만경진이 해제 됐을 땐. 본 궁의 무사들은 없었습니다. 네. 자세한 이야기는 복귀해서 다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결국 계속 되는 질문에 지친 박병철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아직 자신의 뛰는 심장도 진정시키지 못한 상태였다.
‘누가 믿기나 할까. 두 눈으로 본 나도 믿을 수 없는데.’
혈면인과 흑면인이 모두 사라졌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몇 되지 않았고, 가장 높은 확률로 죽었거나 그와 비슷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 정답일 것이었다.
그 점이 믿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흑면인은 지난 세월 절치부심한 백면궁이 야토가미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낸 새로운 힘의 결정체였다.
일반 무사는 물론이거니와 상계에서 상좌를 차지하는 사람도 흑면인 앞에선 한낱 민간인에 불과할 것이었다.
그런 흑면인이 감쪽같이 사라졌으니 본 궁에서도 혼란스러워 하는 것은 당연했다.
어쨌든 지금은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본 궁에 복귀하는 것만이 박병철의 최우선 임무였다.
박병철은 암살과 잠행 전문답게 길거리의 사람들 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
조금 낡은 양복과 손때가 탄 숄더백, 뒷굽이 닳은 구두까지 누가 봐도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교통수단은 지하철과 광역 버스를 이용하고, 접선 장소까지 계속해서 옷차림과 용모를 바꾼다.
한국 상계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수 백 번 한국에 들락날락 거렸고, 단 한 번도 걸린 적 없었다.
그렇게 지하철 출입구로 들어가려는 찰나.
‘뭐지?’
갑자기 사방이 조용해지고 사람들의 집단이 만들어 내는 소음이 사라졌다.
섬뜩한 기분에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이 걷던 거리는 그대로였지만, 거리엔 사람도 자동차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정면엔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서 있었다.
“너, 넌···.”
소년의 얼굴을 본 병철은 두려움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소년은 다름 아닌 자신과 백면궁을 혼란에 빠뜨린 최시우였다.
“이렇게 까지 감격할 줄은 몰랐는데. 내가 많이 보고 싶었나봐?”
< 32 > 끝
ⓒ 진(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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