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
.
.
.
.
정우빈이 학교에 전학 온 뒤 첫날 보여준 화려한 퍼포먼스로 퍼클은 조용해졌다.
무슨 일 때문인지 다음날부터 정우빈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지만, 퍼클 패거리들은 자존심이 상한 탓에 한동안 조용히 지냈고, 소혜의 걱정이었던 시우에 대한 괴롭힘도 사라졌다.
괴롭힘이 사라져도 여전히 왕따를 벗어나지 못한 시우였지만, 소혜가 바라보는 시우는 좀 다른 모습이었다.
‘확실히 달라졌어.’
폭력 앞에서든 권력 앞에서든 굴복하고 주눅들은 인간들의 모습은 비슷하다. 아직 20년도 채 살지 않은 소혜지만 그런 인간의 유형은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시우는 폭력 앞에서 굴복하고 비굴한 모습을 보였지만, 일상의 모습에선 전혀 그런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건드릴 땐, 약한 모습을 보이고, 비굴한 모습을 보였지만 아무도 건드리지 않을 땐 자신이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잊은 사람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수업시간엔 한 번도 칠판에서 눈을 떼지 않고,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야자 시간에도 책상에서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주변에서 친구들이 시끄럽게 떠들거나 신나게 놀 때에도 그런 친구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보거나 혹시나 자신에게 피해가 오지 않을 까 걱정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공부. 마치 공부하는 기계 같은 모습이었다.
자신 또한 탑클래스 그룹과외며 SKY 대비반이며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숱하게 보았지만, 시우처럼 집중력이 뛰어나다 못해 강렬한 모습을 가진 이는 보지 못했다.
마치 비굴한 모습과 집중하는 모습 두 개 중 하나는 완벽한 연기를 펼치는 사람처럼 이질감이 들게 만들었다.
“뭘 읽고 있어?”
하루는 프린트 물을 나눠준다는 핑계로 저녁 시간에 두툼한 책을 읽고 있는 시우에게 다가가 묻자 시우는 말없이 책의 표지를 보여주었다.
‘대수학?’
영어로 표기된 제목의 책은 딱 봐도 고등학생이 볼 만한 책은 아니었다.
“이걸 왜 보는 거야?”
“그냥··· 머리 식힐 겸.”
소혜는 시우가 정신이 나간 게 아니면 자신을 놀리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시우에 대한 이미지가 예전만큼 나쁘지는 않았다.
어쩐지 그 무감한 성격은 쿨해보이기 시작했고, 집안 환경도 어렵고 왕따를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독기를 품고 공부하는 모습이 조금씩 호감으로 비춰졌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며 정신 차리려 할 때 쯤 조세형의 괴롭힘이 다시 시작되었다.
평소의 그 무감하고 덤덤한 성격의 시우가 비명을 지를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 앉는 것 같았다.
‘아, 안 돼. 우빈이 우빈이는?’
첫날 자신의 손을 잡고 시우를 구해주었던 우빈을 바라보았다.
며칠 만에 돌아온 우빈은 엉망인 꼴이었고, 그 때문인지 나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마지막엔 폭행당하는 시우를 보고 고개까지 돌려 버렸다.
참다 못한 소혜가 결국 나서고 말았다.
“그만해!”
조세형의 손을 잡은 것은 우빈이 아니라 시우였다.
조세형과 도재민을 비롯한 모든 학생들 앞에서 겁먹은 모습을 보이던 시우의 모습은 온데 간데없었다.
시우는 마치 사자가 눈앞의 가젤을 보는 듯 떨림 없는 눈동자로 조세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반대편에서 소혜는 정확하게 시우의 눈을 보고 있었다.
“허, 미쳤냐?”
“글쎄, 제정신인거 같은데?”
“제정신 아닌 거 같은데?”
조세형이 시우의 손을 뿌리치고 그대로 발길질을 내질렀다.
하지만 시우는 유려하게 피하며 조세형의 발을 딱 붙잡고 섰다.
퍼클 멤버들은 그 모습을 장난스럽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 최시우 쫌 하는데? 키키키”
“그러게, 최시우 운동 좀 했나봐?”
조세형은 시우의 손을 뿌리치기 위해 발에 몇 번이나 무게를 실었지만 시우의 손은 뿌리쳐지지 않았다.
“이거 안 놔 이 새끼야!”
“놔 줘야지. 근데 내가 맞은 게 있어서 그냥은 못 놔주겠네?”
“그게 뭔 개소리···흡!!!!”
퍽 소리가 나며 시우의 발길질이 조세형의 사타구니를 지나가고, 조세형은 난생 처음 겪는 아찔한 아픔에 흰자를 보이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조금 그렇게 기다리고 있어. 지금 경찰 부를 거니까.”
최시우는 조세형에게 붙어 안부를 물어보는 퍼클들을 보며 경찰서에 전화를 했다.
상황파악이 안되어 멍하니 시우만 바라보고 있는 소혜와 눈이 마주치자 시우는 가볍게 윙크를 했다.
김소혜도 반 아이들도 모두 현재의 상황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고 있었다.
물론 시우의 정체를 아는 우빈은 빼고.
경찰이 들이 닥쳤다.
8반 담임인 박성철은 사색이 된 체 시우를 다그쳤다.
“시우아 이런 일이 있으면 나한테 먼저 이야기 했어야지. 왜 일을 이리 크게 만들어!”
시우는 그 동안 쓰고 있던 가면을 완전히 벗어버린 후였다.
“얘기 했잖아요. 보름 전에, 일주일 전에, 전화로도 이야기 하고 문자로도 이야기 하고.”
“그럼 해결 할 때까지 기다렸어야지! 선생님도 최선을 다해서 해결 하고 있었다고!”
사건을 이렇게 크게 만든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을 요량으로 교감의 눈빛이 날카로워지자 박상철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럼 맞아 죽을 때까지 기다려요? 골이 빠개지고 가지고 있는 돈 다 뜯기고. 차라리 자살하는 게 낫겠다 싶을 때까지 기다려요?”
“야!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그리고 그렇게 심한 것도 아니였잖아!”
시우는 가방에서 진단서를 꺼내어 박성철과 경찰들에게 건네주었다.
대부분 4~5주짜리 상해진단으로 종합병원에서 정확하게 받은 진단이었다.
의사들은 진단서를 떼어주면서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어봤건만 담임이라는 자가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며 쓴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흠···. 이건 뭐··· 여지없이 확실한 증거네요.”
경찰이 머리를 긁적이며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했다. 학교에서 이런 일이 터지면 학교는 이미지가 실추되고, 교사들은 감봉 및 심하면 해직 처분까지 받게 된다.
시우가 당한 일이 당연하다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같은 공무원으로서 안타까운 것은 어쩔 수 없는 터였다.
“뭐가 확실한 증거라는 거예요!”
교무실 문이 열리며 카랑한 목소리가 교무실 전체를 울렸다.
조세형의 엄마 육성회장 곽희숙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중곡구에서 잘나가는 유명 건설업체 대표로 2선 도의원이고 다음 총선에서 여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 출마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그녀의 카랑한 목소리만큼이나 쩌렁한 위세를 부리고 있었다.
방만한 식생활로 뚱뚱한 몸매에 명품으로 잔뜩 치장을 하였지만 귀티는 전혀 나지 않는 전형적인 졸부 스타일의 중년 여성은 자신의 주름을 감추기 위해 보톡스를 맞았는지 화를 낼 때마다 눈썹이 일반인보다 2센 치는 올라가 더 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저게 우리 애한테 맞은 건지. 지 혼자 자빠져서 다친 건지 어떻게 아냐고요! 대한민국 경찰이 이딴식으로 마구잡이로 수사해요?!”
경찰한테 한차례 쏘아 붙인 곽희숙은 시우의 머리를 때리며 더욱 카랑카랑하게 소릴 질렀다.
“너 어디서 굴러먹던 개뼉다구야! 어디 근본도 없는 게 우리 귀한 아들 앞길을 막냐고! 네 부모 어딨어! 그 연놈들 당장 데려와!!”
경찰이 곽희숙을 막아 보았지만, 곽희숙은 마구잡이로 시우를 잡아 뜯었고, 그의 손엔 어느새 시우의 머리카락이 한 움큼이나 뜯겨져 있었다.
시우는 벌겋게 달아오른 볼을 살짝 만지며 자신의 액정이 깨진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증거라면 여기 있네요.”
시우의 핸드폰 안에는 단체로 시우를 때리고 있는 퍼클 멤버들과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시우의 모습이 보였다. 곽희숙도 영상 때문에 조금은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이, 이게 진짜라는 증거가 어딨어? 조작이야. 그래, 애들끼리 장난으로 찍은 거잖아? 그치 세형아! 이거 장난 식으로 찍은 거 맞지?”
시우의 핸드폰 영상에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 있던 조세형은 곽희숙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 쳤다.
“마, 맞아요. 이거 그냥 우리끼리 장난 식으로 찍은 거예요.”
“난 동의한 적 없는데? 그리고, 장난 식인데 왜 영상에서 내가 피를 뿜는 데?”
시우가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이야기 하자 곽희숙의 손이 날카롭게 휘둘러졌다.
짜악!
“이 새끼가! 감히 남의 아들 앞길을 막으려 들어? 너 대체 정체가 뭐야?!”
따귀에 고개가 돌아갔던 시우는 입안에 고인 피를 뱉으며 경찰에게 물었다.
“경찰 아저씨들 이거 보셨죠? 명백한 폭행 행위 맞죠?”
“어, 어머님. 진정 하세요. 이런 식이면 아무것도 해결 안 되요.”
“놔! 놓으라고! 저 근본도 없는 쌍놈의 새끼가 우리 아들 앞길을··· 놔!”
교무실은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 가고 있을 때. 다시금 문이 열리며 다시금 카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 손 당장 못 놔!”
도재민의 엄마 정혜련의 등장이었다.
“그분이 누구신줄 알고 감히 손을 대 대긴! 당신들 짤리고 싶어?”
정혜련의 남편은 중곡경찰서 부서장을 맡고 있었고, 중곡 고등학교에 출동한 경찰들은 처음부터 도재민이 부서장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형 어머니 괜찮으세요?”
“재민 엄마 저것 좀 어떻게 해봐! 지금 우리 아들들 인생 망치게 생겼어! 어떻게!”
“제가 해결할 게요. 이봐요. 그냥 학교에서 친구들끼리 싸운 일인데 경찰까지 출동할 일인가요?”
“저기, 사모님. 저희들은 신고를 받으면 일단은 출동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댁들이 보기엔 어떤 상황 같냐고! 그냥 친구들끼리 싸운 일로 경찰서까지 가야 할 일이냐고!”
중년의 나이 쯤 되 보이는 경찰은 대답은 못 한 채 퍼클 멤버들과 최시우를 번갈아 보았다.
명백하게 조세형, 도재민과 퍼클 멤버들의 악의적이고 집요한 폭행이었다.
하지만 시우는 힘없고 백 없는 집안의 자제이기에 그 타겟이 된 것 같았고.
반대로 조세형의 엄마와 도재민의 엄마를 보면 퍼클 멤버들의 집안 부모들 또한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시우에겐 미안하고 안타깝지만 이기지도 못할 싸움에 훈수를 두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었다.
“네에···. 저희가 출동한 게 조금 과한 면이 있는 거 같네요···.”
“키키키킥, 키킥, 풉, 푸흐흐흐.”
경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우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키킥 거리자 곽희숙과 정혜련이 쌍심지를 키고 바라봤다.
“야! 너 지금 웃음이 나와?!”
“나참, 어이가 없어서, 민중의 지팡이란 경찰이 이정도 심각한 폭행사건을 보고도 별일 아니라고 하면 경찰은 대체 뭐 하러 있는 거지?”
“하, 학생! 말이 좀 심하네! 막말로 증거가 있다 해도, 이게 조작되지 않았다 장담 할 수 있고, 엄연히 확실한 증인과 증거가 나오기 전엔 무죄추정의 원칙이란 게 있어요.”
“대체 무죄추정의 원칙을 어디다 가져다 붙이는 건지.”
“자, 자꾸 그럼 모욕죄로 감방 갈 수 도 있어 말조심해.”
중년의 경찰은 얼굴 까지 시뻘겋게 붉히며 시우를 협박 하고 있었다.
사실 시우에겐 학교 폭력이란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애들 장난의 수준이고, 예전엔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해도 지금은 그냥 날 파리가 눈앞에서 날아다니는 느낌 정도? 곤죽을 만들어 놓자면 할 수 있었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도 있었다. 심각한 병에 걸려 자연사 시킬 수도 있었다.
'그건 너무 쉽잖아?'
그것들은 너무 쉬웠다. 그리고 제대로 된 복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복수란 천천히 끊임없이 계속해서 해야 한다. 한 두 번의 폭력으로 상대가 굴종한다면, 무서워서 피하면서도 ‘더러워서 피한다’고 자신을 위안 한다면 시우 입장에선 너무 억울했다.
이(異) 세계에 떨어지기 직전, 시우는 자살까지 생각했다.
집요하고 계속된 괴롭힘과 폭력 일상의 무력감과 불안감. 이 모든 것들을 되갚아 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생각 만해도 울화통이 터지고 열이 받으면서 무력감과 불안감을 가지게 하고 싶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해.’
시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준비한 트릭을 쓸 차례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그때 교무실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들어섰다.
“제가 봤어요. 저 애들이 시우를 그동안 계속 괴롭혔습니다.”
소녀의 외침에 박성철의 눈이 부릅떠졌다.
“소, 소혜야!”
그때, 엉거주춤 소혜 옆에 선 이가 우렁차게 외쳤다.
“저, 저도 봤습니다. 저 새끼들이 우리 시우 엄청 때렸어요!”
아직 얼굴의 멍끼가 가시지 않은 우빈이었다.
.
.
.
.
< 25 > 끝
ⓒ 진(J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