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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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권의 입에 마우스피스를 물린 철규는 마권의 헤드기어를 당겨 이를 갈며 작게 얘기했다.
“살살해라. 민간인이다.”
마권은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이며 링 주변에 벌써부터 구경 온 여자 회원들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띵!
마권은 시합 전 인사의 의미로 글러브를 내미는 시우를 보며 속으로 비웃었다.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시우의 글러브를 대충 내려친 마권은 스텝도 밟지 않고 천천히 시우에게 다가갔다.
반면, 시우는 가볍게 링 주위를 돌고 있었다.
날파리처럼 뛰어다니는 시우의 스텝을 잽 몇 번으로 가둔 마권은 시우를 링으로 몰아 넣은 뒤 곤죽을 내 줄 생각이었다.
잽을 몇 번 날리자 예상외로 시우가 고개만 까닥 거리며 마권의 주먹을 모두 피해냈다.
마권은 다시 잽을 날림과 동시에 시우의 고개가 피할 수 밖에 없는 공간에 스트레이트를 꽂아 넣었다.
그때 탄성이 울렸다.
“와아!”
시우가 마권의 스트레이트 반대 방향으로 가볍게 몸을 피해 마권의 왼쪽 두부에 스트레이트를 꽂아 넣었던 것!
‘시, 시발!’
마권은 관자놀이를 제대로 맞은 뒤 링 구석에 몸을 숨겼다.
시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잽과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마권도 얼른 정신을 차리고 시우가 했던 것처럼 자신에게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려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시우의 주먹은 자석처럼 마권의 얼굴에 따라붙었다.
연속 3차례 콤보가 터지자 사람들이 다시 한 번 탄성을 내질렀다.
마권은 속으로 욕지기를 내뱉으며 시우를 밀쳤다.
사람들의 탄성은 자신의 공격으로 들었어야 했으나 그 반대 상황이 된 것이다.
‘제길.’
잠시 거리가 떨어지자, 시우는 자세를 가다듬고 마권을 기다렸다.
마권은 이를 악물고 두 번의 스텝으로 시우의 지근거리까지 다가가 냅다 스트레이트를 꽂았다. 시우 또한 훤히 보이는 그의 공격에 가드를 하고 있었지만, 단단한 시우의 두 팔이 간단하게 풀릴 정도로 강력한 한방이었다.
“야이 새끼야! 살살 안 해!”
철규의 외침에 마권이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슬쩍 들었다 내렸다.
이윽고 다시 붙은 두 사람. 이번에도 두 번의 잽을 피한 시우가 다시금 스트레이트를 막기 위해 가드를 올린 순간 힘을 잔뜩 실은 마권의 주먹이 가드를 산산이 부서 버렸다.
시우는 두 팔을 번쩍 들 정도로 휘청이며 뒤로 물러났다.
“야이! 고릴라 같은 놈아! 살살 하라고! 우리 오빠 다친다고!”
민서의 말에 살짝 마음의 상처가 난 마권은 종이 울리기 전에 끝내겠다는 생각으로 시우에게 달려들었다.
잽잽 스트레이트.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파괴적인 콤보. 마권은 이번에야 말로 가드를 뚫고 시우의 쌍코피를 터트려줄 생각이었다.
여전히 시우는 잽을 간단하게 피하고 스트레이트를 막기 위해 가드를 올렸다.
마권의 주먹이 전력을 다해 내질러지는 순간. 시우의 몸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마권의 주먹은 목표물을 잃은 체 허공을 맴돌았다.
그리고 얼굴로 느껴지는 묵직한 글러브의 촉감.
퍽!
스트레이트가 터지는 순간 위빙으로 마권의 오른쪽 바깥으로 피한 시우가 꽤 강력한 훅으로 마권의 안면을 강타했던 것이다.
마권은 예상치 못한 타격에 그대로 뒤로 자빠지며 순간 기절해 버렸다.
깜짝 놀란 철규가 링 위로 올라오며 마권을 마구 흔들었다.
“얌마! 곽마권! 정신차려! 임마! 곽마권!”
마권의 코에선 쌍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까 봤어? 그 코치님 얼굴! 완전 새 하얗게 질려가지고···.”
컴컴한 밤길을 걷는 민서의 손은 시우의 팔짱에 껴진 채 빠질 줄 몰랐다.
시우가 위빙을 하며 카운터를 날리는 장면을 리플레이하며 민서는 자신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듯 연신 시우를 흔들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작은 크기의 ‘자매 치킨’
이른 나이에 정리해고 당한 아버지인 최창호는 회사 일만 해온 사람이라 사업에 영 재주가 없었다. 퇴직금과 저축을 모아 처음 차린 프랜차이즈 커피숍은 인근에 연달아 생기는 다른 프랜차이즈 커피숍과 나날이 치솟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큰 손해를 보고문을 닫아버렸다.
집안이 휘청이는 위기에서 전업주부였던 어머니인 김서영은 집을 전세로 바꾸고 두 팔을 걷어 붙여 동네에 작은 치킨집을 아버지와 운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하루 종일 치킨을 튀기고 배달을 나가도 우후죽순 생겨나는 대형 프렌차이즈 치킨집들에 의해 겨우 네 사람이 입에 풀칠하는 수준의 생활만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시우는 당장에 아공간에 가득한 보석과 금들을 팔아 집을 이사하고 싶었지만, 어디서 난지 모를 돈에 대해 도덕적 결벽증을 가진 부모님이 그냥 넘어갈 일도 없고, 더 큰 오해가 생길까 자제하고 있는 중이었다.
‘일단은 돈을 버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데.’
고등학생인 시우가 사회적으로 돈을 버는 수단이란 것이 한계가 있었다. 대학생이라도 되면 과외를 한다는 핑계로 집에 돈이라도 가져다 줄 수 있겠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운동을 핑계 삼아 신문을 돌리는 것이 다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시우가 용돈이 부족하다는 것을 짐작한 부모님이 시우에게 신문 돌리는 것을 그만두라는 말을 안 하는 정도.
대신 시우는 다른 방향으로 가족들을 챙겼다.
연금술에도 조예가 깊었던 시우는 연금술을 이용해 가족들의 건강을 챙겼다.
아침과 저녁을 만든 다는 핑계로 음식에 알게 모르게 갖가지 약초와 포션 등을 조합해 신체에너지를 활성화 시켰고, 뼈와 근육을 단단하게 하였다.
먹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 민서를 위해서 기초 대사량을 높여주는 특별식을 만들어 두기도 했다. 물론 민서 본인은 스스로를 위한 것인지 모르고 맛있게 먹을 뿐이었지만, 덕분에 체중계에 올라갈 때마다 소리를 지르고 자신을 자학하는 욕설은 많이 줄어 있었다.
부모님을 위한 레시피도 금방 효과가 나타나 집에 오면 자기 바쁘고, 휴일날이면 시체처럼 잠들던 부모님들이 서서히 기력을 회복하고 등산이나 동창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들!! 딸!”
김서영이 가게 밖을 청소하다 시우와 민서를 보고 밝게 손을 흔들었다.
“엄마!”
민서가 냉큼 뛰어가 김서영의 품에 안겼고, 시우는 서영이 쥐고 있던 빗자루를 받아 바닥을 마저 쓸었다.
“허리 아프시다면 서요. 이건 제가 한다니까.”
“그러게 말이다. 신기한 게 허리가 싹 나았어. 달리 운동도 안했는데 원래 안 아프던 사람 같다니까!”
“그게 다 이쁜 딸 애교를 봐서 그런 거야.”
민서가 엄마한테 살갑게 달라붙으며 얘기하자 서영이 민서 엉덩이를 때리며 말했다.
“말은 똑바로 해! 니 오빠가 엄마 아빠 열심히 도와줘서 그런 거지.”
“엄만 오빠만 좋아하고!”
속내를 아는 시우만이 속으로 웃으며 가게 앞을 정리한 뒤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아버지는 시우가 들어오자. 정리하던 주방 도구를 내려놓고 시우를 반갑게 맞았다.
“내일 개학이라며! 뭘 오늘 까지 가게를 나와!”
“학교 갈 준비 다 끝났어요. 바닥 닦기만 하면 되죠?”
“그래, 니들 줄라고 닭 두 마리 튀겨 놨다.”
최창호의 얼굴은 시우가 처음 본 날에 비해 환하게 펴져 있었다. 피로를 풀지 못해 혈액순환이 잘 안되던 아버지의 얼굴은 병이 든 것처럼 거무죽죽 했었는데, 지금은 에너지 넘치는 운동선수처럼 온 몸에서 에너지를 발산하고 얼굴의 밝은 홍조가 가득했다.
자신의 건강 레시피가 잘 통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시우는 속으로 다짐을 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행복하게 해 드릴게요.’
“오빠! 빨리 가자! 닭 식어!”
“하여튼 너는! 가서 오빠 돋는 시늉이라도 해!”
드문드문 가로등이 설치된 골목길에 다정하게 걷는 네 사람이 나타났다.
한 손에 닭 봉지를 든 민서는 다른 한 손으로 시우의 팔짱을 끼고 신난 다는 듯 방방 뛰며 걸었고, 사이 좋은 남매의 모습에 흐뭇한 부부가 말 없이 서로를 보며 웃고 있었다.
“얌전히 걷지 못해! 네 오빠 힘들어!”
“베! 오빠는 안 힘드네요! 그치 오빠?!”
시우는 대답 대신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계속 걸었다.
“야! 최시우!”
그때, 골목 어귀에서 시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집으로 향하던 가족들은 우뚝 멈춰 서서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골목 어귀에서 수증기인지 담배 연기인지를 뚫고 두 명의 학생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오랜만이다 최시우.”
짝다리를 집은 채 시우를 죽일 듯 노려보는 두 학생의 모습에 방금 전까지 방방 뛰던 민서가 말없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아는 애들이니?”
엄마의 물음에 두 학생이 기대 된다는 듯 대답 대신 시우를 바라봤다.
“···아, 그냥 아는 애들이에요.”
시우의 무덤덤한 대답에 두 학생이 기가 찬다는 듯 콧웃음을 쳤다.
엄마는 그 의미를 모르고 밝게 말했다.
“반갑다. 시우 엄마야. 너희 시우 친구니?”
엄마가 그렇게 얘기하자 두 학생은 그제야 고개를 까딱 거렸다.
“조세형입니다.”
“전 도재민이에요. 시우랑 절친이에요.”
“우리 시우랑 사이좋게 잘 지내라. 나중에 우리 가게 놀러오렴, 저 아래 자매치킨이라고 알지? 아줌마가 닭 맛있게 튀겨줄게.”
“네. 저희만 믿으세요.”
“얌마 최시우! 왜 전화 안했어! 방학 때 얼마나 심심했는데.”
도재민이 시우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바짝 다가오자 담배 쩐내가 잔뜩 풍겼다.
끔찍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린 시우를 보고는 민서는 시우가 두려워서 인상을 찌푸린 거라 생각하고 얼른 시우를 재촉했다.
“어, 엄마! 빨리 가자! 가서 저녁 먹어야지.”
“응? 그, 그래.”
민서는 시우를 억지로 끌며 걷기 시작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시우야! 내일 학교에서 보자! 꼭 보자!”
등 뒤에서 도재민의 목소리가 크게 울릴 때마다 민서는 움찔 거리며 절로 고개가 숙여 졌다. 시우는 말 대신 팔짱을 빼고 민서의 손을 꽉 잡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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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 끝
ⓒ 진(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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