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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강서 병원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삼진 그룹의 투자로 대한민국 최고의 의료시설과 의료진이 갖춰진 이곳은 재계 명사들만이 묶는 특별실이 존재했다.
VVIP 병동.
호텔 뺨치는 부대시설과 24시간 상주하는 호텔급 쉐프의 특식이 상시 준비되었고 간호사와 의사들은 VVIP 명사들을 접대하기 위한 서비스를 따로 받았다. 일반 병동이 아무리 미어 터지고 병실에 침대가 없어도, 이곳 특별 병동으로 옮겨지는 일은 없었다.
그야말로 몸을 치료하는 오성급 호텔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중에서도 특별병동에 가장 많은 투자가 된 것은 바로 보안.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재계명사들 중에는 수배자나 범죄자도 있었고, 성형 사실을 숨기고 싶어하는 탑 스타들도 있었기에 외부인이나 경찰들의 출입을 완벽하게 막아줄 보안이 필요했다.
사각 없이 설치 된 수 백 대의 CCTV 카메라와 복도마다 경계를 살피는 보안요원들은 지나가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놓치지 않으려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특별 병동의 가장 큰 병실.
삼진 그룹 내에서도 회장과 그의 직계 가족만 사용하는 특별실에서 종철이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었다.
“으··· 이 개새끼를 내가 씹어 먹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흐.”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그는 최고의 의료진과 최신의 의료기기로 인해 빠르게 회복을 해가고 있었다.
아버지인 김세중은 자신의 성적 괴벽 때문에 잔소리를 해댔지만, 부러진 팔 때문에 밥도 제대로 못 넘기는 모습을 보며 이내 관 두었다.
그리고 복수를 다짐하는 종철에게 성창파에게 일을 시켰다는 말을 해 주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세상에 태어난 것이 후회스럽게 만들어 줄 테니까.”
똑똑.
주사 맞을 시간이 되었는지 누군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인영의 그림자를 본 종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시발! 내가 김 간호사 그년 들어오라고 했잖아!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간호사들 중에 유달리 볼륨감 넘치는 몸매를 가진 김 간호사를 보며, 종철은 지혜에게 풀지 못한 회포를 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종철의 외침에도 인영은 계속 자신에게 다가왔다.
“이 시발 것들이 진짜 내가 누군지 몰라?”
이윽고 다가온 인영의 얼굴이 조명 아래 보이며 종철의 눈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크게 떠졌다.
“그때 알았더라면 그냥 죽여 버렸을 건데.”
“너, 넌!!”
종철이 언젠가 만나고 싶어 했지만, 지금 당장은 저승사자보다 만나기 싫은 한 사람.
최시우였다.
“방금··· 세상에 태어난 걸 후회하게 만들어 준다고 한 거 같은데. 내가 제대로 들은 거지?”
천천히 종철에게 다가간 시우가 종철의 귓가에 대고 말하자 종철이 부르르 떨었다.
이윽고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시큼한 암모니아 향이 퍼졌다.
“뭐야··· 너 나이가 몇 갠데. 오줌을 싸냐.”
“사, 살려 주세요. 제, 제발. 사, 살려 주세요.”
“너희 아버지가 조폭들 시켜서 나 죽이려고 했던 건 알지?”
“저, 전 절대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그, 그건 다 아버지의 독단 적인 행동이에요. 전 전 상관 없어요.”
종철의 말에 시우가 배를 잡고 키득 거리며 웃었다.
“너 같은 것도 새끼라고 품으려는 애빈데. 참···. 역시 안되겠다.”
시우의 품에서 성창파에서 대충 집어온 피가 뚝뚝 흐르는 사시미칼이 나왔다.
종철은 더 할 수 없이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고, 시우는 단숨에 그의 입을 틀어막고 사시미 칼을 내리 쳤다.
“안 돼에에에에!”
적막한 어둠이 가득한 침실.
김세중 회장이 비명과 함께 자지러지듯 자리에서 일어나자 부인이 깜짝 놀라 그의 안색을 살폈다.
“무, 무슨 일이에요. 여보?”
“아, 아니야. 아니야. 그냥 자.”
김세중은 방금 전 꿈에서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이 뜨거운 불꽃 안에서 타 들어가는 끔찍한 모습을 보았다고는 말 할 수 없었다.
조용히 침실을 나온 김세중은 술 생각이 나 자신의 서재로 향했다.
덜그럭.
김세중이 서재에 들어선 순간. 얼음이 부딪치는 소리가 서재 전체를 울렸다.
자신 말고는 아무도 들어와선 안되는 서재에 침입자가 있다는 생각에 김세중은 문 뒤에 연습용으로 두었던 드라이버를 들고 천천히 서재 안쪽으로 들어갔다.
“누, 누구냐!”
김세중의 커다란 의자가 혼자서 움직이고 있었고, 한쪽 손이 의자 밖으로 나온 체 얼음이 든 술잔을 살살 흔들고 있었다.
“내가 경고 했지.”
의자 뒤의 인영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김세중은 소름이 돋았다. 전화 상에서나 들었던 목소리를 여기서 듣는 다는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여, 여기가 어디라고!”
“내 말이 말 같지 않았나 보네.”
의자에 앉은 존재가 슬쩍 손을 움직이더니 작고 검은 물체가 천천히 김세중에게 날아갔다. 중력과 가속력을 무시하는 그 움직임에 김세중은 김세중은 잠시 넋을 잃었다가 손안에 톡 하니 들어오는 것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 물체가 사람의 손가락이란 걸 알고 대경실색하여 뒤로 물러났다.
“헙!”
“군대 면제 받기 편하게 오른손 검지를 잘랐는데, 맘에 드는지 모르겠네.”
“이, 이런 짓을 하고도 네··· 네가 감히!”
의자를 돌려 김세중을 바라보는 인영. 그는 다름 아닌 최시우였다.
“흐흐, 뭐라고 말할 건데? 조폭을 시켜 고등학생을 죽이려 했는데, 그 놈이 살아남아 손가락을 가져왔다고?”
“······.”
“한 번만 더 내 주변 사람들 건드리면, 그땐 손가락이 아니라 잘려진 머리를 보게 될 거야.”
시우는 그렇게 의자에서 일어나 천천히 김세중을 지나쳐갔다.
서재 밖을 나가려던 시우가 고개를 갸우뚱 하며 김세중에게 말했다.
“근데, 지금 이럴 시간이 있어? 진짜로 아들이 손가락 하나 없어서 군대 면제 받길 바라는 건 아니지?”
그렇게 말하고 서재 밖을 나가버린 시우.
김세중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시우의 말이 무엇을 말하는 지 깨닫고는 던져두었던 손가락을 집어 집밖으로 뛰쳐나갔다.
“황기사! 황기사!! 차 대기시켜!!!”
팡! 팡! 팡! 팡! 파팡! 파파팡! 팡! 팡! 팡!
연속 적으로 샌드백을 때리는 펀치 소리에 꽤 넓은 크기의 시설임에도 사람들의 시선은 절로 소리를 만들어 내는 사람에게 주목되고 있었다.
중키에 근육이 많이 붙지 않은 웰터급 체구, 이마의 깊은 상흔을 제외하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 소년의 행동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 시킨 것은 그 집중력 때문이다.
다이어트 복싱 체육관이라는 간판을 걸어 놓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체육관 안에는 경쾌한 음악이 연신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소년이 만들어 내는 파공음은 처음엔 거슬리다가 점차 호기심, 나중에 탄성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가벼운 나시 티에 광배가 살짝 부풀어 있는 소년이 밟고 있는 바닥에는 지난 30분간 소년이 흘린 땀방울이 홍건하게 젖어 있었다.
체육관을 다니는 여성 회원들과 남성 회원들, 그리고 한쪽에 모여 있는 선수 지망생들도 30분 간격으로 켜지는 종소리가 끝날 때까지 소년의 움직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띵띵띵띵띵띵
30분 간격으로 꺼졌다 켜지는 종소리의 종료 벨이 울리자. 소년은 그제서야 스텝을 멈추고 긴 한숨을 들이 내쉬었다.
흠뻑 땀을 흘린 탓에 갈증을 느낀 소년은 자신의 물통을 찾던 도중 불쑥 내밀어 지는 물통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이, 이거 드세요. 오빠.”
시우는 잠시 자신을 ‘오빠’라 칭한 비혈육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수줍은 듯 살짝 숙인 고개며 운동 때문인지 볼터치 때문인지 붉게 달아 오른 볼. 한쪽 발을 톡톡 거리며 조마조마하는 모습에 시우는 살짝 미소 지으며 물통을 받았다.
“고마워.”
그때, 진짜 혈육인 민서가 시우의 얼굴에 타올을 던지며 물을 건넨 소녀에게 핀잔을 내비췄다.
“이게 언제 봤다고 오빠야! 얘가 니네 오빠야!”
“친구 오빠면 우리 오빠지! 그러다 우리 아빠 되는 거고! 호호호!”
“이, 이! 기집애가 미쳤나! 어,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어! 넌 내가 뭔 말 하는 지 아나보네?!”
시우와 민서가 복싱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민서는 자신의 친구인 혜정과 소현도 체육관에 불러 들였다. 처음엔 땀 냄새 나는 퀘퀘한 복싱장 따위는 가고 싶지 않다고 버팅기던 그녀들이었지만, 버닝 복싱 한 타임에 타오르는 칼로리 표를 보곤 당장 체육관에 등록하게 됐다.
처음엔 오랜만에 보는 시우를 보며 어색해 하던 두 사람도 며칠 지나지 않아 변해있는 시우의 모습과 행동에 반하여 매일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아, 진짜 꼴사납네. 여기가 시바 애들 놀이터도 아니고.”
한쪽 구석에서 시우 일행의 모습을 보던 곽마권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3년 후 아시안 게임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시우가 체육관을 다니면서부터 점점 복싱에 집중하기 힘들어 졌다.
시우가 오면서부터 그나마 간간히 자신의 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관심을 받았던 누님들도 시우에게 점점 눈길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자신도 처음엔 시우가 꽤 흥미로웠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주먹질이라곤 유치원 때밖에 안 해봤을 이미지와는 달리 복싱장갑을 끼고 나면 세상에 자신과 샌드백밖에 없는 것처럼 미친 듯이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것.
하지만 그런 모습에 자꾸 자신의 운동하는 모습들이 퇴색되고 더구나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학생들까지 좋다며 엉기는 모습에 거친 욕설이 종종 튀어 나오기도 했다.
‘흐미, 저 허리 라인 봐라.’
시우 옆에서 민서를 밀치고 시우에게 안기려는 혜정의 착 달라붙는 운동복을 보며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호르몬이 폭발하는 나이, 여러 가지 이유로 곽마권은 쉽사리 집중 할 수 없었다.
“야! 정신 차리고 미트 똑바로 안 쳐!”
“아! 코치님 종 쳤잖아요. 좀 쉬었다 해요.”
“이 자식이, 너 관장님 올 때까지 땀 2리터 흘리라는 얘기 못 들었어.”
“사람이 어떻게 땀을 2리터 흘려요. 하여튼 관장님이나 코치님이나 비상식적인 건 똑같다니까.”
코치인 김철규는 머리를 긁적이며 곽마권의 시선이 시우 일행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며 한 숨을 내 쉬었다.
곽마권은 투박하게 생긴 외모와 거대하고 묵직한 체구와는 달리 꽤나 가벼운 관심종자였다. 특히나 곽마권의 이상한 취미 중 하나는 운동에 열중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여성들이 힐끔힐끔 보는 것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 다는 것이다.
관장님도 그런 곽마권의 성향을 이해하고 코치를 일부러 자신에게 맡겼던 것이다.
실제로 효과도 있었다. 곽마권은 직장인 여성들이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체육관에 와 한쪽 구석에서 미친 듯이 운동을 했다.
하지만 집중력에 관해선 괴물급의 시우가 다니기 시작하면서 곽마권은 점점 집중력을 잃고 운동 내내 시우와 그의 일행을 힐끔힐끔 보는 데 시간을 보내기 여념이 없었다.
‘으휴, 금메달 노린다는 새끼가. 진짜.’
곽마권 때문에 시우를 내보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운동에 미친듯한 시우의 모습은 다른 이들로 하여금 운동에 동기부여를 주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시우가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다른 회원들의 회원권 기간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꺄르르르르.”
시우 일행들 중 한 명이 까르르 웃자 곽마권의 눈썹이 삐죽 올라갔다. 곽마권은 고개를 훽 돌려 코치를 바라보며 말했다.
“코치님. 저 스파링 한 번 하면 안 됩니까?”
“이런 미친놈이.”
철규는 말하지 않아도 곽마권의 의도를 단숨에 깨닫고 미트로 머리를 내려 쳤다.
“정신 차려! 너 전국 체전 안 나갈 거야?”
“아··· 진짜 동기 부여가 안돼서 그럽니다. 동기부여가.”
“하아···.”
“저 사람이랑 한번만 붙게 해 주십쇼.”
“얌마! 네 체급이 몇인데 웰터랑 붙어.”
“아! 스파링이잖아요! 그냥 한번 하게 해줘요! 안 그럼 나 안 해! 나 안 해!”
복싱 글러브까지 내 던지며 바닥에 들어 눕는 곽마권을 보며 김철규는 감아 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행동이 가당키나 하던가 자신이 복싱을 배우던 때에 이런 행동을 했다면 맞아 죽어도 골백번은 맞아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시대가 많이 변했고, 곽마권의 재능이 너무 뛰어났다.
타고난 통뼈에 라이트 헤비급에선 믿을 수 없는 빠른 운동신경. 더구나 헤비급의 펀치를 맞아도 쫄지 않는 쇠심줄 같은 강단까지.
부상 없이 준비만 잘하면 아시안게임 메달권이 확실시 되는 인재였다.
“너 스파링 하면 살살 칠거야??”
철규의 말에 마권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민간인인데.”
“대신 조건이 있어.”
“뭔데요?”
“전국체전까지 군말 없이 따르기.”
철규가 평소 얼마나 빡세게 자신을 굴리는 지 아는 마권으로썬 잠시 고민이 되는 순간이었지만, 전국체전으로 한정지은 기간이라면 할 만 하다 생각했다.
“콜!”
“못 하겠다 힘들다 이딴 개소리 하지마. 그런 소리 하는 순간 죽빵 날아갈 테니까.”
“네! 네! 무조건. 무조건!”
김철규는 앞으로 시우는 보기 힘들겠다며 시우에게 다가갔다.
“저, 시우씨?”
혜정과 민서 사이에서 양쪽으로 끌어당겨지며 멍하니 있던 시우가 두 사람의 손을 놓고 철규를 바라보았다.
“네, 코치님.”
“저 괜찮으면, 스파링 한 번 안 해 보실래요? 저 친구랑.”
철규가 마권을 가리키며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어느새 쉐도우 복싱에 열중하고 있는 척 하는 마권이 보였다.
‘저, 저 우라질···. 에효.’
시우의 대답을 기다리던 철규에겐 카랑한 목소리가 대신 답했다.
“코치님. 지금 저 고릴라랑 우리 오빠랑 스파링을 하라는 거예요?”
철규는 민서의 일침에 쓴 웃음만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제가, 샌드백을 치느라 좀 지쳐서···.”
간접적인 거절의 말에 코치는 울상이 되었다.
“어, 어떻게 안 될까요? 저 친구도 가볍게 감만 잡으려고 하는 거라.”
철규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고,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들의 대화를 다 듣고 있던 시우는 작게 쓴 웃음을 지었다.
‘정신 교육이나 한 번 시켜줄까?’
운동하는 놈이 여자에 환장해 헤벌레 하는 모습이 영 탐탁지 않았던 시우였다.
“알겠습니다. 보호 장구는 다 착용하는 거죠?”
“아, 그럼요. 제가 감사의 뜻으로 마우스피스 하나 드릴게요.”
철규의 말에 시우는 대답 대신 핸드랩을 다시 착용하며 가볍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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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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