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다크위저드-16화 (1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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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異) 세계에서 6서클에 이르렀을 때, 더 이상 죽음의 공포와 싸울 필요 없었다. 강대한 마력과 갖가지 마법진을 이용해 싸울 줄 알았고, 누군가를 향한 ‘믿음’ 없이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다.

무인방범이란 개념이 없는 이(異) 세계에선 쉽사리 생각해 낼 수 없는 개념도 마법이 고서클에 이른 시우에겐 구현하기는 장난감 조립과 비슷했다.

그렇게 빈틈 없는 방범 마법에 어쌔신 하나가 걸려 들었다.

스스로를 ‘암살왕’이라 칭한 어쌔신은 통상 다른 어쌔신들과는 달리 말이 많고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기 싫어했다.

방범 마법에 걸려, 함정 마법이 발동되고, 인간의 힘으로 끊어 낼 수 없는 거대한 점액질의 거미줄에 걸려선 그가 시우를 처음 봤을 때 한 말은 ‘대체 이딴 생각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거야? 너 제정신인 인간이야?’ 였다.

그의 말로는 그가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 다른 어쌔신처럼 혀가 잘리지 않았다고 했지만, 시우가 며칠 느낀 바로는 그가 혀를 잠시도 가만 두지 않아 혀를 자르지 못한 것이라 생각했다.

암살에 실패한 하사트는 시우가 놓아 주었음에도 돌아갈 수 없다 했고, 시우의 마탑에 눌러 앉아 살았다. 그는 그를 쫓아 들어오는 어쌔신들이 자신과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며 함정 마법에 걸리는 것을 보며 즐거워했다.

시우가 하사트와 친구가 된 뒤로 하사트는 시우의 곁에서 늘 그를 지키는 그림자였다. 더불어 자신의 몸은 자신이 지켜야 할 때도 있다면서 시우에게 암살 기술을 전수했다.

잠행부터 그림자 숨기기, 암살, 은폐, 등등. 인터넷의 시대에 살다 중세 시대로 간 것과 다름 없었던 시우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뭐든 닥치는 대로 배워 두었다.

시우는 하사트의 살인 수업에서 인간의 몸이 꽤나 연약하다는 것을 배웠다.

“잘 들어 친구. 소드마스터도 오우거나 트롤도 딱 한방이야. 뭐 대단한 마법 무구가 필요한 게 아냐. 손바닥만한 단검. 이걸 제대로 찌르면 마법 무구 할애비라도 죽음의 사신을 피할 수 없어. 내 말 명심해.”

팔꿈치 안쪽의 상완 동맥은 2cm

손목의 요골 동맥은 1cm

목의 경동맥은 5cm

쇄골하 동맥은 7cm

의식불명부터 사망까지 채 1분도 걸리지 않는다.

인간의 여린 살점 바로 아래 그의 긴 인생을 끝장 내 버릴 수 있는 위험천만한 폭탄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마성창의 피부는 돌처럼 단단하고 뼈는 쇠처럼 묵직했다. 마치 철로 된 쇠갑옷을 입은 것처럼 시우의 타격은 하나도 먹혀 들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마성창이라도 밀도가 한 점에 모인 검날을 막어 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깊게 들어갈 필요도 없다.

몸이 과거로 돌아왔어도 하사트에게 배운 수업은 머릿속에 똑똑히 새겨져 있으니까.

사시미 칼이 바람을 가르며 마성창의 경동맥을 정확하게 찔러 들어갔다.

깡!

‘뭐 이딴 피부가!’

쨍깡!

마성창의 경동맥이 칼의 관통력을 버텨내자, 내질렀던 관통력은 반탄력이 되어 강철합금으로 만들어진 사시미로 전달되었다. 날카롭긴 했지만 주물을 부어 만든 대량생산 사시미는 시우의 힘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지며 시우의 손목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큭!.”

본능적으로 깜짝 놀란 마성창이 시우를 내 던지며 자신의 목을 만졌다. 그리고 작은 생체기 하나 나지 않은 것을 확인하며 확실한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겨우 그따위 칼로 내 흑철괴마신공(黑鐵怪魔神功) 뚫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하, ···하하.”

피가 줄줄 흐르는 상처를 초 재생 마법으로 회복시킨 시우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럼 네놈이 그 무공이란 걸 익혔단 말이냐?”

“최강 무공. 흑철괴마신공은 총알로도 뚫을 수 피부를 만들고 연성자에게 무한한 힘을 주지.”

모든 것이 설명되는 순간이었다.

얼마 전 얻었던 천살 뭐시기라는 무공은 아직 중국어가 미숙하여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구나 해석해 나갈 때마다 하늘을 날고 바다를 가르며 어쩌고란 말들이 나와 이게 고대 무협서적인지 진짜 ‘무공’인지 헷갈려지며 학습 의욕이 떨어진 탓이었다.

자신도 마법을 익히고 있지만, 그런 존재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무공이란 게 실제로 있다 이말이지···.”

“후후. 그걸 안 다고 네놈이 뭔가 달라지기라도 한단 말이냐?”

“당연한 거 아냐? 난 알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 질 수가 없는 존재거든.”

시우의 양 손이 잔상을 남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며 수인을 그렸다. 아직 이룩하지 못한 고서클의 마법을 발동하기 위해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혈해(血海)의 주인이여, 갈망의 짐승아, 달을 찢는 광기의 눈동자로 내 적을 바라보라. 나 그대에게 제물을 받치노니, 자신의 갈망이 사라지도록 뼈와 살을 먹어치워라.

[버서커!]

시우가 마성창은 알아 들을 수 없는 룬어로 마법을 영창한 순간.

성창파 총단에서 15km 떨어진 창건파 사무실에 마약을 얼굴에 잔뜩 묻힌 건달들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몸을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괴로운 신음을 내뱉고 온 몸을 긁어대며 악귀처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강원도 산골자기 한 정신병원.

인가와 꽤 멀리 떨어진 이곳은 가족들에게 외면 받거나 버림 받은 사람들만 갖히게 되는 악명 높은 정신병원 중 하나였다.

특히나 환자들을 관리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구속복을 입혀 놓은 체 일상을 보내게 해서 많은 인권단체와 의사협회로부터 수 차례 경고문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

그런 정신병원의 한 병실.

건장한 체구에 구속복을 입은 환자들 여덟이 동시에 몸을 들썩이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악몽을 꾸는 것처럼 괴로워하다가 즐거워하다가 고통스러운 사람처럼 침대에서 떨어져 방바닥을 마구 굴렀다.

“선생님! 환자들 상태가 이상합니다.”

데스크를 보던 간호사는 소란에 병실을 찾았다가 대경실색하고 당직의에게 보고했지만, 당직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할 뿐이었다.

“진정제 놔 주고 재우세요.”

“아녜요. 그게, 어엇! 혀! 혀를 깨물었어요! 피가! 피가!”

간호사의 말에 당직의 또한 깜짝 놀라 병실로 뛰어 오르기 시작했다.

공마인은 일상적인 악몽 속에서 흑마나를 생성하여 시전자에게 마나를 공급한다. 시전자는 대량의 마나가 필요할 때에 공마인의 고통을 극대화 시켜 순도 높은 양질의 흑마나를 공급 받곤 한다.

공마인이 된 창건파와 혈견파의 조직원들은 온 몸을 불에 달군 바늘에 촘촘히 찔리며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흑마나를 생성해 시우에게 보내고 있었다.

으드득 으드득

“호오.”

마성창은 흥미로운 눈으로 시우를 보고 있었다. 어깨에 무거운 짐을 갑자기 올려 놓은 사람처럼 온 몸을 구부리며 넘어질 듯 주춤거리다가 이내 조금씩 몸이 변하고 있었다. 어깨뼈가 빠졌다가 다시 껴지고, 근육은 마치 살아 숨쉬는 듯 부풀었다 줄었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보는 건 지루하군.”

마성창은 튀어 나가며 두 주먹을 모아 시우의 관자놀이를 직겨했다.

팟!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널 부러져야 할 시우는 단지 왼손으로 마성창의 두 손을 막고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다음 기회는 없겠지만 명심해. 상대에게 틈을 주는 건 싸움에서 가장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시우의 주먹이 마성창의 명치를 꽤 뚫을 듯이 꽂혔다.

마성창은 신공을 익힌 후 처음으로 타격으로 인한 고통을 경험하며 두 눈을 부릅떴다.

퍽! 콰르릉.

마성창은 몇 미터나 날아가 벽에 부딪쳤고, 큰 충격음과 함께 벽에 시공한 대리석 타일들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더불어 자신의 정보를 상대에게 알려 주는 것도 큰 오만이야.”

어느 새 달려온 시우가 볼펜을 꺼내 들어 마성창의 왼쪽 눈을 후벼 팠다.

“크아아악!”

마성창이 눈을 붙잡으며 철퇴같은 주먹을 마구 휘둘렀다. 제 때 빠져나오지 못한 시우는 마성창의 주먹에 맡고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 섰다.

“애송이, 네놈을 손가락 하나까지 씹어 먹어주마!”

육중한 마성창의 발이 움직일 때마다 바닥이 쿵쿵 울렸다.

시우는 침착하게 마성창을 바라보며 자세를 잡았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약한 상대라도 긴장의 끈을 놓치마!”

그렇게 말한 시우가 마성창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쉭 펑!

마성창의 뒤에서 나타난 시우는 두 손을 오목하게 모아 마성창의 양 귀를 때렸다.

마성창의 귀에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두 개의 고막이 터지며 순식간에 바람에 들어오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소리마저 잃은 체 한 쪽 눈으로만 시우를 찾아야 하는 마성창의 입장에선 사각지대가 너무 많았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시우는 마성창의 지근거리까지 접근해 그의 머리채를 잡고 그를 뒤로 넘겨 버렸다.

쿵!

뒤로 넘어간 마성창의 시야에 시우가 얼굴을 들이 댔다.

“그리고 절대 자신을 무적이라고 생각하지마. 그 순간 이미 싸움은 끝난 거니까.”

시우의 손에 든 볼펜이 마성창의 남은 눈에 파고 들었다.

“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마성창의 머리에 볼펜을 댄 시우는 공마인을 만드는 주문을 작게 외쳤다.

무공을 익히고 남들보다 악행을 더 많이 벌인 자다. 일반인에 몇 배나 되는 흑마나를 생성해낼 귀중한 자원이었다.

비명을 지르던 마성창이 이내 실어인이 되어 부들부들 떨기 시작할 때.

시우는 천천히 지혜에게 다가갔다.

“가자. 다 끝났어.”

피투성이가 된 시우와 흙투성이가 된 지혜는 곧장 집으로 향할 수 없었다.

인근 공원 화장실에서 대충 몸을 닦은 두 사람은 지혜의 집으로 향하는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겨우 집에 다달아서야 시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안.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할 게.”

“······.”

지혜는 말 대신 시우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씁쓸하게 미소 지은 시우는 지혜에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잘 지내. 그 동안 즐거웠어.”

시우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그렇게 몇 발자국이나 걸었을 까.

시우는 뒤에서 와락 안기는 따뜻한 몸을 느낄 수 있었다.

지혜는 그렇게 시우를 안고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시우는 그의 어깨에서 느껴지는 뜨뜻한 물줄기에 입을 열려다 말았다.

“왜 그냥 가는 거야.”

“······.”

“난 어쩌라고.”

“내가 무섭지 않아?”

“무서워! 근데, 네가 없는 이 세상은 ······더 무서워!”

시우는 천천히 지혜의 손을 풀고 그녀를 돌아봤다.

인연이라 하기엔 안 좋은 일이 많았고, 악연이라 하기엔 그녀와의 만남이 싫지 않았다.

영혼의 새겨진 카르마로 광인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지만 서클이 올라가고 흑마나의 농도가 진해질수록 인간으로서의 감정은 점점 퇴색되어가고 있었다.

지혜는 그런 시우의 감정을 계속 건드려 주었다. 간질이고 자극하고 부풀어 오르게 한다.

지혜는 시우를 인간이라고 자각하게 하는 몇안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내가 지켜 줄게. 언제나 내 품 안에 있어.”

지혜는 대답 대신 시우의 체온을 느끼기 위해 그의 팔짱 안 깊숙하게 파고 들었다.

커다란 가슴이 그와의 거리를 벌리는 것이라 생각한 그녀는 더욱 더 필사적으로 시우에게 파고 들었다.

시우는 아이 같은 그녀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푸하, 나 넘어지겠어.”

“가만있어. 나 아직 진정 안 됐단 말이야.”

둥두둥 탁!

서울의 모 심처 도시의 어둠을 밝히는 경망스런 밝은 빛과는 대조적으로 실내는 은은하지만 확실한 시야가 확보되는 고풍스런 등이 밝히고 있었고 향나무로 만들어진 창호지문 밖에선 여인내의 깔깔거리는 소리와 거문고 튕기는 소리가 시끄럽지 않게 들리고 있었다.

실내의 상좌에 앉은 여인은 허리를 곶게 펴고 고개는 조금 숙여 서류를 읽고 있었고, 여인내의 궁장차림과는 반대로 번듯한 수트 차림의 사내는 서류를 읽고 있는 여인내의 얼굴을 훔쳐보다 침을 꿀꺽 삼켰다.

“···빈 곳이 많군.”

“······.”

여인내의 혼잣말과도 같은 이야기에 사내는 고개를 푹 숙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김 실장이 찾아 내지 못할 정도인거야? 아님 이제 실력이 되지 않는 거야?”

정보가 힘이 된 21세기에서 한세아라는 이 여인내의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국내 유수의 대학을 조기졸업하고, 세계 최고의 대학원을 졸업한 뒤에 돌연 이곳 미화관의 애기 각시로 들어와 몇 년 안되어 미화관을 지배하고, 미화관을 정·재계의 가장 중요한 곳으로 만들어 버린 여성이었다.

아직 서른이 되지 않는 그녀의 나이를 생각하자면, 그녀의 머리는 차고 넘칠 만큼 뛰어났다. 그만큼 김 실장은 자신의 보고서가 5분 만에 틈을 보인 것에 부끄러움을 느낄 지언정 그녀의 능력은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라···.”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한세아는 처음 김 실장의 보고서를 받곤 그 고운 아미를 찌푸렸다. 보고서의 양이 평소에 열배는 넘었다.

재원 중에 재원인 김 실장은 일을 이렇게 어설프게 처리하는 자가 아니었다. 그가 이리 두꺼운 서류를 가져왔다는 것은 그만큼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것이지만, 정작 보고서의 내용은 드문 드문 빠져 있었다. 결국 보고서는 사실만을 나열한 채 정리되지 않은 채 자신에게 올려진 것이었다.

“삼진그룹은 한 사내···.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소년을 찾고 있었습니다.”

보고서를 덮어 버린 한세아는 김 실장의 말을 들으며 그 뛰어난 머리로 평범한 이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이 빠르게 가속시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의문의 소년은 김세중 회장의 아들인 김종철을 폭행한 혐의를 가지고 있지만, 증거부족 및 증인이 없다는 이유로 조사조차 하지 않았던 상황입니다.”

“김세중 회장은 스스로의 손으로 처리하길 바랬겠지.”

안 봐도 뻔 하다는 듯. 비웃음을 짓는 한세아에 김실장은 아득해지려하는 자신의 정신을 다잡았다.

“네. 실제로 김회장의 아들은 추문이 생길만한 일을 저질렀고, 겉으로 막아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막아내는 바람에 공권력에 도움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창파가 개입되었다?”

“정확히는 성창파 예하에 속한 혈견파가 개입되었습니다.”

“그래 그건 알겠어. 하지만 왜 삼진그룹이 부탁한 일을 처리하는 데 갑자기 혈견파가 그 사단이 난거지?”

“그 부분부터 모든 의문이 생겨납니다. 당시 다른 조직폭력단 중에 혈견파와 싸움을 했다는 정황이 드러난 곳이 한곳도 없었습니다.”

“그럼 이 소년이 혼자 그랬다??”

김 실장은 답 할 수 없는 질문에 입을 다물었다.

“혈견파는 지금 어떻게 됐지?”

“···강원도의 한 정신병원에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정신병원?”

“불이 나 소방관과 경찰이 출동했을 때는 이미 정신을 잃고 실어인이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한세아의 그 작은 머리 속의 뇌는 김실장의 그것 보다 훨씬 뛰어났다. 김 실장이 상식 선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에 멈춰 있을 때, 한세아의 뇌는 그 이상, 그 너머를 보고 있었다.

“······저.”

김 실장이 생각에 잠긴 한세아에게 조심스레 말했고, 한세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사실, 지금 막 들어온 정보 때문에 이렇게 급하게 보고를 올리게 됐습니다.”

“뭐지?”

한세아의 목소리가 차갑게 깔렸다.

“성창파가 무너졌답니다.”

“성창파가??”

성창파는 그냥 일개 조직폭력단원들이 아니었다. 특히 마성창은 그녀가 예의주시하는 한국을 뒤흔드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그가 무너지다니?

“총단 내부에서 조직원들끼리 피 튀기는 항쟁을 벌였다고 합니다.”

“얼마나 심각하게?”

“현장에 출동한 형사 말로는 부모를 죽인 철천지 원수를 만나도 그렇게 못 싸웠을 거라고 합니다.”

“마성창 회장은?”

“···두 눈을 잃고 실어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허!”

평소 어떤 일이 일어나도 잘 놀라지 않는 한세아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 나왔고, 그 모습을 보는 김실장도 내색하진 않았지만 적잖이 놀란 눈치 였다.

“설마, 성창파가 그 소년과 관계가 있었던 건가?”

“···창건파에서 그 소년을 납치하려는 시도가 있었답니다.”

“······.”

한세아는 도저히 연결되지 않는 사실들을 연결하기 위해 눈을 감고 다시금 그 고성능 뇌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서야 정리가 되었는지 한세아가 눈을 떴다.

한세아의 입가에 재밌다는 듯 희미한 미소가 감돌았다.

“그래서 결국 소년의 정체는? 삼진그룹에서 손을 떼진 않았겠지?”

“소년의 정체는 밝혀졌습니다. 중곡고등학교를 다니는 최시우란 학생입니다.”

김 실장은 덮여진 보고서 중간을 쏙 빼내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쁘게 생긴 아이네. 이 아이가 김회장 아들을 곤죽을 만들어 놨다고?”

“당시에 윤간을 당하려던 여학생을 구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는 그 윤간을 당할 뻔 했던 여학생과 사귀고 있습니다.”

“어머나 마음씨도 하해와 같이 넓은 아이네.”

한세아의 그 청초한 미모와 두 눈에서 탐욕이라는 눈빛이 흘렀다.

“그러니까. 시우란 학생은 윤간을 하려던 삼진그룹 아들을 포함한 네 명을 박살내고, 자신을 납치하려던 조직폭력배 서른 명을 반병신 만든 것도 모자라 성창파를 복구 불능으로 만들었다···.”

“······.”

한세아가 확실하다는 듯 단정 짓는 말에 김 실장은 입을 다물었다. 어디까지나 사실적인 정보만을 제공하는 사람.

불가능한 현상을 예상하듯 이야기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김실장은 작은 의문이 들었다.

한세아는 결코 몽상가도 아니고, 환상에 현혹되는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지독한 현실주의자고 냉철한 판단을 내리는 분석가였다. 그런 그녀가 이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을 단호하게 정리해 버린 것이었다.

“귀한 보석을 발견한 기분인 걸?”

“······어떻게 처리 할까요?”

“가지고 싶어 졌어. 자리를 만들어봐.”

“···네.”

김 실장이 발소리를 내지 않고 방 밖으로 나갔고, 나라를 뒤흔들어 버릴 것 같은 고혹적인 미소로 보고서 속의 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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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 끝

ⓒ 진(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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