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
.
.
김철규는 조직의 인원들이 없는 곳에서 술만 들어가면 스스로를 ‘노스타’라고 칭했다.
그가 말하는 ‘노스타’란 별이 없다는, 감옥에 들어간 적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가 건달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그것이 자랑스러울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살인’을 저지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 살인을 저지른 적이 있었다.
직접적인 살인은 아니었다.
학교에 가지고 놀던 찐따 중 하나를 아파트 옥상으로 데리고 가 말했다.
“여기서 5분만 버티면 다신 안 건드린다.”
그 찐따는 한 시간이 안 되는 시간동안 고민한 끝에 결국 옥상 난간에 매달렸다.
그 사이 철규 자신의 협박과 회유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스스로 매달렸다.
5분이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어떻게 매달려도 버틸 수 있었다. 철규 자신이 학교 운동장에서 몇몇 다른 찌질이들을 대상으로 실험해 본 결과 평균적으로 8분 정도는 버텼다.
하지만 그 찐따는 결국 5분을 채우지 못하고 옥상 아래로 떨어졌다.
‘그 새끼 이름이 뭐였지?’
철규는 그 일로 책임을지지 않았다. 찐따는 자살로 처리 되었고, 자신과 어울리던 몇몇이 괴롭힌 적이 있다는 이유로 정학을 받긴 했지만 정작 원인 제공자였던 철규는 떳떳하게 학교를 다녔다.
철규는 폭행과 공포가 주는 거대한 공포를 사랑했다.
그랬기에 서울에서 세가 가장 큰 성창파에 막내로 들어와 선배들 수발을 드는 굴욕적인 일도 모두 감내한 것이다.
‘갑자기 그 새끼 이름이 기억이 안나네.’
번뜩 떠오른 그 녀석의 이름을 생각하던 철규는 문득 주위에 선배들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형님! 형님! 혀엉님!”
방금 전까지 숨막힐 듯 공간을 메우던 덩치들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발견한 철규는 절로 욕지기를 내뱉었다.
“이 씨발 새끼들은 대체 어딜 간거야? 같이 가던가.”
그때, 찌걱 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툭, 찌익, 툭, 찌익.
불안전한 목각 인형이 진흙을 밝고 다닌 것처럼 덜그럭 거리는 소리와 찌걱 거리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조명은 왜 또 지랄이야.”
동시에, 건물을 환하게 밝히던 조명도 깜빡 거리며 불온한 분위기를 극대화 시키기 시작했다.
툭, 찌익, 툭, 찌익.
철규의 눈에 웬 교복을 입은 남자애가 불편하게 걷는 모습이 보였다.
철규는 순간적으로 이곳에 잡혀 왔어야 할 시우인가 생각하며 그편으로 걸었다.
“야! 이 새끼, 너 형님들은 어쩌고 혼자 들어···.”
철규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상태가 심각해 보이는 남자애의 모습에 절로 인상을 찌푸렸다.
발은 꺽이지 말아야 할 곳으로 꺽이고, 머리카락은 피로 떡이 져 있었고, 정체 불명의 하얀 액체 같은 것이 얼굴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팔과 어깨엔 멍과 상처가 가득했다.
“이런 시발, 애를 왜 이지경으로 야 괜찮아?”
너무 심하다는 생각에 남자애에게 다가가는 순간 철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시, 시발···.”
철규는 순간적으로 남자의 명찰에 적힌 이름을 보고 잊고 있었던 그 이름을 기억해 냈다.
‘그래, 민철이··· 강민철. 시바···.’
민철은 고개를 들더니 철규를 보고 이빨 몇 개가 빠진 입을 달싹였다.
“처, 철규야, 나 이제 안 괴롭힐 거지? 그치?”
“시, 시발 네가 왜 여기있어?”
“약속 했지? 이제 안 괴롭히기로? 응?”
“야이 개새끼야! 왜 네가 여기 있냐고!”
“거, 거짓말이었어? 거짓말? 난 널 믿고 옥상에 매달리기 까지 했는데···.”
민철의 처연하던 눈이 악귀처럼 변하며 철규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리가 부러지고 온 몸에 부서진 사람의 것이라곤 상상 할 수 없는 속도였다. 그 속도가 철규를 공포로 몰아 넣었다.
“시발! 다가오지마! 다가오지마!”
철규는 품 안의 사시미를 꺼내어 자신의 목을 잡으려는 민철의 팔을 향해 휘둘렀다.
그럼에도 민철은 끝까지 철규에게 매달려 목을 조리기 시작했다.
봉쇄마법으로 분리된 성창파 총단 건물은 외부에선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여느 다른 회사의 건물들처럼 아무 일 없이 조용하고, 켜진 불빛만이 건물 안의 누군가가 뒤늦은 야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할 뿐이었다.
하지만 봉쇄마법을 뚫고 한 걸음만 들어가는 순간 건물 내부는 끔찍한 비명과 욕지기 피와 살이 튀기는 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건달이 건달을 향해 준비했던 무기를 휘두르고, 상대방이 빈사상태에 빠질 때까진 잠시도 쉬지 않았다.
그렇게 싸우다 이긴 쪽은 또 다른 상대를 향해 달려 들고 그 싸움을 끊임 없이 해 나갔다.
그들의 눈은 시뻘겋게 물들어 이성을 날려 버리고 눈앞에 같은 조직원이었던 건달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자신의 뇌리 속 깊게 박힌 공포를 공격하고 있었다.
시우는 그 사이를 산책하듯 천천히 걸었다.
그의 보보마다, 검은 물이 퍼지며 그들을 더욱 흥분하게 하였다.
[다크 사이트]가 [리얼라이즈 나이트 메어]를 더욱 흉폭 하게 끌어 낸 것이다.
방금 전까지도 형제고 전우라며 의기를 돋구 던 조직원들이 서로를 죽이고 있었지만, 그들을 보는 시우의 눈은 무감하기 그지없었다.
한때는 밑바닥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정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대륙 모든 이들이 거절하는 흑마법사였던 자신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 주었던 좀비굴의 사람들.
하는 행동 사는 삶 자체가 바닥이지만 단지 흑마법을 익혔다는 것과 자신의 눈과 머리가 검다는 것에 편견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
하지만 밑바닥 인간의 밑바닥은 평범한 인간들보다 더욱 추악했다.
겨우 좀비굴에서 안정을 찾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평범한 삶을 살아보려 했던 그를 잡기 위해 약혼자였던 미쉘을 죽이고 그녀가 살아 있다는 거짓말로 시우를 속였다.
‘미쉘.’
좀비굴에서 몸을 팔던 그녀가 시우에게 얼마나 많은 위안과 사랑을 주었던가.
그런 그녀를 거리낌 없이 죽이고 시우를 귀족 마법사에게 팔아 넘겼다.
후에 시우는 그들의 배신보다 은화 몇 푼에 자신의 목숨과 미쉘의 목숨이 넘어간 것에 더욱 분개했다.
그리고 5km에 달하는 거대한 좀비굴 전체에 성창파와 똑같은 마법을 걸었다.
시우가 건 저주 마법은 일반인에게 통하지 않는다. 겉으로 나쁜척 하는 이들, 거칠게 살아온 척 하는 이들에겐 시우의 저주마법은 그저 한낱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뇌리 속에 조금의 악이라도 가진 자들이라면 그 조그만 씨앗을 거대하게 부풀려 집어 삼킨다.
“한 놈도 없구나.”
서로를 죽이는 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며 시우는 그들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건달 중에 무늬만 건달인, 혹은 진짜 협객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있다면 꽤 골치 아프겠다는 생각을 하던 시우였지만, 성창파 내부에 그런 인물은 하나도 없는 듯 하였다.
“쓰레기 같은 놈들.”
시우는 천천히 걸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시우의 눈동자는 꽤 심하게 흔들렸다.
‘허···.’
칸막이가 나뉘지 않은 큰 공간에 임금님이나 쓸 법한 왕좌가 놓여 있고, 그 앞으론 최후에 만찬에서나 봤던 긴 테이블 위로 갖가지 요리들의 찌거기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백색의 정장을 입은 거구가, 수술칼을 휘두르고 있는 이의 머리를 한 손으로 잡아챈 체 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호오.”
마성창의 입에서 나온 탄식 또한 시우의 놀람과 그닥 다르지 않았다.
마성창의 손에 잡혀 있던 사내는 마성창의 악력에 머리가 터질 것처럼 괴로워도 끝까지 마성창을 죽일 듯이 손을 휘둘렀다.
하지만 긴 리치에서 나오는 공간은 짧은 수술칼로 닿기에는 한참 부족한 상태였다.
“네놈이 이 사건의 발단이냐?”
콰직.
마성창이 그렇게 말하며 손에 가득 힘을 주자, 사내의 머리가 터지며 축 늘어졌다. 마성창은 쓰레기를 버리듯 사내를 내던지고, 그곳엔 방금 전의 사내와 비슷한 몰골로 죽어 있는 건달 몇몇이 보였다.
“시우야!”
간절한 외침에 시우가 고개를 돌리자, 의자에 사지가 묶여 있는 지혜가 보였다.
시우는 재빨리 지혜에게 걸어가 그녀의 결박된 손발을 풀고 챙겨온 외투를 그녀에게 덥어주었다.
“미안해. 우리 이야기는 나가서 하자.”
시우가 지혜를 꼭 안아주며 그렇게 이야기 하자 지혜는 지금껏 걱정하며 괴로워했던 순간들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시우와 함께면 이 세계의 끔찍한 진실이 보인다.
하지만 시우와 함께면 불안함 보다 더욱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지혜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시우가 지혜와 회포를 푸는 순간에도 마성창은 여유있게 시우를 기다렸다. 그는 테이블로 돌아가 와인을 병째 입에 가져다 대며 순식간에 한 병을 모두 마셔버렸다.
“어떻게 아직 제정신이지?”
방금 전만해도 그는 한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그의 손속은 그런 일들에 익숙한 듯 보였다.
그렇다면 악몽의 저주에서 깨어날 수 없어야 하건만 마성창은 오히려 조금의 흥분의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건방진 애송이. 네놈만이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거냐?”
“뭔가 알고 있는 거라도 있나보지?”
“궁금하면 와서 알아 가던가.”
시우는 순식간에 보조 마법으로 자신의 몸을 전투 모드로 바꾸었다. 상대를 살려두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온갖 마법으로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었지만, 지혜가 보고 있는 한 함부로 마법을 뿜어낼 순 없었다.
시우의 몸이 조금 부풀고 눈이 붉어지자 먼저 움직인 것은 마성창이었다.
그 거대하고 육중한 몸을 가진 마성창은 화살처럼 튀어 나와 시우의 멱살을 잡고 시우를 콘크리터 기둥으로 내 던졌다.
마치 공깃돌처럼 기둥으로 날아가던 시우는 몸을 뒤집어 기둥을 등으로 받은 다음 바닥에 떨어져 자세를 다시 잡았다.
“꽤나 날렵한 몸을 가졌구나 네놈.”
시우는 대답 대신 다크스킨과 스트렝스로 단단하게 만들어진 주먹을 내질렀다.
마성창도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고 두 사람의 주먹은 중간에서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쿵.
뒤로 물러선 것은 시우였다.
다크 스킨에 스트렝스까지 걸어 일반인이라면 뼈가 부러지고 살이 튀어야 할 충격임에도 그의 손가 맞부딪친 마성창의 주먹은 마치 돌덩이처럼 단단하게 느껴졌다.
“단련을 특이하게 했나보네?”
시우가 스텝을 밟으며 마성창과 거리를 재기 시작했다.
“어디서 잔재주를.”
마성창은 피식 비웃으며, 양 손으로 시우의 어깨를 박살 내버릴 기세로 달려 들었고, 그때마다 시우의 몸은 아슬아슬하게 마성창의 손을 피하고 있었다.
슈슈슉.
스텝을 밟으며 피하는 것과 동시에 시우의 양 손이 바람처럼 내질러지며 마성창의 얼굴을 연타했다.
잽과 라이트 훅이 연신 마성창의 시야를 방해했다.
마성창이 어깨를 잡을라치면 구부린 팔뚝이 올라오며 더킹과 동시에 훅이 내질러졌고, 목을 잡으려 손을 휘두르면 위빙과 동시에 스트레이트가 터졌다.
펑.
순식간에 몇 합을 교환한 두 사람은 시우의 백스텝에 의해 거리가 벌어졌다.
시우는 내색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의 두 주먹은 벌겋게 퉁퉁 부어 있었다.
“사람은 맞는 거지?”
“그렇게 피하기만 해서 제대로 확인을 할 수 있겠느냐!”
바닥을 박찬 시우의 발이 마성창의 급소를 때렸지만, 마성창은 기별도 오지 않는 듯, 발을 잡고 그대로 바닥에 시우를 패대기쳤다.
“큭.”
통증이 복부를 타고 올라오며 입가에 핏물이 번질 때, 마성창의 손이 다시금 시우를 잡아 들었다가 다시 바닥에 내팽겨 치고, 고통에 몸부림 치는 그를 집어 들어 기둥에 내 던졌다.
퍽.
“시우야!!!”
지혜는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듯 몸을 움찔 거렸지만, 기둥에 부딪쳐 고통에 몸부림 치는 시우가 가장 먼저 오지 말라는 듯 손을 내민 것에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크흐흐, 이렇게 당하는 것도 꽤 오랜만이네. 웩!”
핏물을 한 움큼 내뱉은 시우는 그제야 안정이 되는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런 시우를 보며 마성창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네놈 꽤 괜찮은 것들을 가졌구나.”
시우가 혈견파를 작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범상치 않은 상대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김세중이 오직 최시우만 건드리라는 이야기에도 홍지혜까지 잡아다 협박하여 놈을 끌고 온 것이었다.
거기에 놈은 능력 뿐만 아니라 자신과 같은 괴물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대범함까지 갖췄다. 더구나 상대적으로 핀치에 몰려서도 투기를 잃지 않는 눈동자를 보자니 더욱 탐나기 시작했다.
“내 밑으로 들어와라. 그럼 네놈이 원하는 모든 것들을 주마.”
“큭, 밑에 있는 당신 조직원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면 그런 소린 안 나올 걸?”
“그런 놈들이야 얼마든지 다시 대체 할 수 있으니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지.”
“흐흐 너 같은 쓰레기 밑에서 개처럼 기었다는 걸 생각하면 그 놈들도 억울하겠네.”
“강자를 위해 약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 놓아야 하는 법.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마성창의 얘기를 듣는 시우는 부상 때문이 아니라 그의 이야기에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꼭 같 잖지 않은 힘을 가진 놈들이 그딴 개 소리를 하지.”
“후후.”
“네 놈이 개 작살 난 뒤에도 그 소리를 할 수 있을 까?”
“증명해 보거라.”
시우는 말을 끝나기 무섭게 다시금 마성창에게 달려 들었다. 이번엔 방금 전처럼 백스템을 밟지 않았다. 지근거리에서 주먹을 날리고, 그가 잡거나 내던지려 하면 자세를 고쳐 잡아 쉼 없이 공격 했다.
텁!
쨉을 날리던 시우의 왼손이 마성창의 오른손에 잡혔다.
우드득.
바위도 부술 듯한 악력이 느껴지며 뼈가 어그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엄청난 고통에도 이를 꽉 깨문 시우의 입가에 핏물이 주룩 흘렀다.
“마지막 제안이다. 내 밑에서···.”
“좆까!”
그 순간, 시우의 품안에서 사시미칼이 하나 튀어 나오며 전광석화처럼 마성창의 목덜미를 찔러 들어갔다.
.
.
.
< 15 > 끝
ⓒ 진(JIN)
=======================================